그룹 홈스쿨링 ; 세계명작과 친해지기

[원푸리]

 그룹 홈스쿨링 ; 세계명작과 친해지기

2014년 말부터 그룹 홈스쿨링 독서지도 방식에 변화를 주고 있다. 크게 비문학은 '독서문답', '주제파악'을 통해 세상에 대한 지식 넓히기, 잘못 이해한 것을 발견해서 바로잡기, 모르는데 아는 것으로 착각한 것을 알고가기, 서술형 문답을 통해 단어 오남용을 바로잡기 등을 하고 있다. 문학은 '세계명작과 친해지기'를 통해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기, 타인에의 공감을 위한 상상력을 키우기 등을 하고 있다.

1월 들어 독서 시간을 4시간 반으로 늘렸다. 그룹 홈스쿨링하는 아이들의 책과의 접촉 시간이 늘었다. 오늘은 문학에 대한 독서지도 프로그램 '세계명작과 친해지기'에 관한 이야기다.

▷ 자기가 읽고 싶은 책을 직접 고른다

세계 명작을 중심으로 큰 범위만 정해 주고 책은 골라주지 않는다. 자기가 골라서 읽는다. 선택과 지정은 결코 '그게 그거'가 될 수 없다. 하늘과 땅 차이다. 방 청소에 관한 에피소드다. 아이들은 대개 자기 방을 스스로 치우지 않는다. 나도 그랬다. 그러다가 "이게 사람사는 곳이냐? 돼지우리지! 당장 안치워?" 하는 벼락딱총 한 방 맞고나서 마지못해 치우곤 했다. 그래도 1년에 한두 번 정도는 내 스스로 이건 정말 아니다 싶을 때가 있었다. 그럴 때는 대충청소가 되지 않는다. 하루종일 치웠다. 책 사이의 먼지도 떨어내고, 재미있는 책이 손에 잡히면 그 자리에 주저앉아 읽기도 했다. 하루종일 걸릴 수 밖에 없다. 그렇게 치우고 나면 그렇게 가슴벅찰 수 없다. 내가 사는 그 지겨운 공간에서 차마 눈을 뗄 수가 없게 된다. "웬일이야? 해가 서쪽에서 뜰 일이네! 오래살고 볼 일이야~" 하는 말을 듣고 씨익 웃기도 했다. 그 순간의 흐뭇함이란!

능동과 수동의 차이다. 스스로의 선택은 자기 삶의 주체성을 확인하는 행동이다. 선택과 지정은 천양지차다. 학교는 아이들이 선택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자신의 주체성을 능동적으로 확인하는 경험 기회가 없다. 아이들이 마음을 닫고 수동적이 된다. 그렇지 않은 아이가 오히려 이상하다. 아이들의 마음을 닫은 수동성은 아이들 탓이 아니다.

보다 널널해진 시간에 자기가 고른 책을 읽는 그룹 홈스쿨링하는 아이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훨씬 흥미있어 했고, 다음 줄거리를 궁금해 했으며, 원전에는 어떻게 묘사되어 있을까 궁금해서 찾아보고 싶다고도 한다. 

"1984 꿀잼"

* 순민이 2014. 12. 31일 일기 제목. 조지오웰의 <1984>를 읽는 중이다.

"민지와 내가 정한 책인 만큼 흥미있고 열심히 했던 것 같다.

문제를 낼 때 아저씨께서 얼마나 힘드셨는지 공감이 된다."

* 은성, 푸코가 들려주는 권력 이야기 (독서문답용 책도 스스로 고르게 했다)

셰익스피어라면 아름다운 문장이고 아름다운 문장하면 셰익스피어인데

이건 '초등학생을 위한 세계 명작 22가지'라 그냥 줄거리만 나와 있다.

셰익스피어가 이 줄거리에 어떤 문장? 대사?(희곡일지도 모르니까.)를 썼을까 참 궁금하다.

풀꽃에 있는 민음사 시리즈에는 '말괄량이 길들이기'가 없는데 휴가 때 도서관 좀 뒤적거려 봐야겠다.

* 민지, 2015.1.20 독서일기 중에서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읽고나서

 

▷ 공감하는 문장이나 구절을 뽑아 새김질한다

아이들은 쉽게 줄거리에 빠진다. 세계명작을 읽으면서 만나는 아름다운, 감동적인, 재미있는, 깨달음을 주는, 작가 의도를 확연하게 드러내는 문장, 구절을 뽑아 새김질하게 했다. 초록손이가 아이들에게 권한 명작독서법이다. 나도 피끓는 청춘 시절에 시 한 편, 문장 한 줄에 감동하고 외워 대화나 편지에 써먹지 않았던가? 유치할 때는 유치한대로 멋이 있었고, 인생의 맛을 알게 된 이후에는 또 다른 의미로 문장에 마음을 뺏기곤 한다. <책은 도끼다>가 그런 울림을 주는 멘트에 관한 책이다.  매일 쓰는 일기에도 쓰라고 했다. 아직 어려운 모양이다. 마음이 움직여야 하는데 공감, 이해, 깨달음 없이는 마음이 움직여지지 않을테니 말이다.  

나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좋다. 문장이 예쁘기 때문이다.

한문장 한문장 비유가 안들어간 문장이 없다. 그래서 내가 이해하는데에는 좀 벅찼던

부분들도 있었다. 이 책을 통해서 비유와 상징을 조금이라도 더 확장시킨 것 같다.

그대의 이름만이 나의 적일 뿐이에요. 몬터규가 아니라도 그대는 그대이죠.

몬터규가 뭔데요? 손도 발도 아니고 팔이나 얼굴이나 사람 몸 가운데 어느 것도 아니에요.

오, 다른 이름 가지세요! 이름이 별건가요? 

우리가 장미라 부르는 건 다른 어떤 말로도 같은 향기 날 겁니다.

로미오도 마찬가지, 로미오라 안 불러도 호칭 없이 소유했던 그 귀중한 완벽성을 유지할 거예요.

로미오, 그 이름을 벗어요. 그대와 상관없는 그 이름 대신에 나를 다 가지세요.

* 민지, 2015.1.6 독서일기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을 읽고나서

결심이란 기껏해야 기억력의 노예일 뿐, 태어날 땐 맹렬하나 그 힘이란 미약하오.

우리도 이 문구에 담겨있는 것처럼 무언가 결심하게 될 때엔 활기왕성하지만

시간이 점차 지나갈수록 결심했던 것이 무의미해지게 된다.

나만 그런게 아니라 보편적으로 그런가보다. 갑자기 책은 도끼다에서 읽었던 

시간의 흐름에 따라 슬픔이 사라지는 것이 슬프다라는 문장이 생각난다.

결심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라지는게, 너무 안타깝다.

* 유지, 2015.1.20 독서일기 중에서. <햄릿>을 읽고나서

먹는 데에는 구더기가 유일한 황제랍니다. 우린 우리가 살찌려고

다른 모든 짐승들을 살찌우며, 우리 자신은 구더기를 위해 살찌웁니다"

이 말에도 공감이 갔는데,, 사람이라는 존재가 정말 그런 것 같다.

우리는 자신이 살찌려고 짐승을 살찌우고 우리는 구더기를 위해 살찌우고,

이런 문구를 보면 사람이라는 존재가 지구전체상에서 강력한 존재인 것 같지만,

죽은 뒤 흙으로 돌아가는 걸 보면 나약한 존재이자, 다른 유기체들과 함께 공존하며 사는 세상인 것 같다.

* 유지 2015.1.20 독서일기 중에서. <햄릿>을 읽고나서

자넨 날 연주하고 싶지. 내게서 소리나는 구멍을 알고싶어 하는 것 같아.

         자넨 내 신비의 핵심을 뽑아내고 싶어해.

나의 최저음에서 내 음역의 최고까지 울려보고 싶어

자신의 친구들이 햄릿에 대해 캐물으려고 할때, 햄릿은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어떻게 연주되는 악기에서 소리나는 부분으로 표현할 수 있는지

나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 유지, 2015.1.20 독서일기 중에서. <햄릿>을 읽고나서

랠프는 몸부림치면서 목메어 울었다. 온몸을 비트는 듯한 크나큰 슬픔의 발작에 몸을 맡기고

그는 울었다. 슬픔에 감염되어 다른 소년들도 몸을 떨며 흐느꼈다.

그 소년들의 한복판에서 추저분한 몸뚱이와 헝클어진 머리에 코를 흘리며,

랠프는 잃어버린 천진성과 인간 본성의 어둠과 돼지라고 하는 진실하고 지혜롭던

 친구의 추락사가 슬퍼서 마구 울었다.

'살아있는 지리 교과서2'의 이스터 섬이 갑자기 떠오른다.

권력에 관한 주민들 간의 분쟁은 파리대왕의 아이들과 같다고 볼 수 없지만

그것의 결과인 환경파괴는 비슷한 것 같다. 섬에서의 아이들의 삶을 보면서

인간이 어느 한 공간에 갇혀있을 때 나타나는 본성이 보이는 것 같다.

* 형원, 2015.1.16 독서일기 중에서. <파리대왕>을 읽고나서

▷ 응용하기 - 인용, 패러디, 메타포

책을 꾹꾹 눌러 읽어야 할 필요가 있고, 따로 메모할 필요도 있고, 반추를 통해 마음에 새길 필요도 있으며, 적절할 때 활용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마음의 진동을 스스로 느껴보고, 통하는 사람과 나누고, 의외성을 자극하는 유머로 쓰는 즐거움까지 함께 할 수 있다. 아이들이 이 과정에서 감동이나 재미를 느끼면 기꺼이 책을 가까이 하고, 책을 읽는 방법도 달라질 것이다.

밥상머리 교육이 사라진 시대다. 세상이 더 빠르게 돌아가서, 아버지의 위치가 가장에서 돈 벌어오는 기계로 내려앉아서일 수도 있고, 아이가 가족 중 최고 서열이 되어서, 각자 손 안의 친구에 빠져서일 수 있다. 그럼 문화 전승 통로는 어디인가? 없다. "학교가 하는 일이 뭐야." 할 수도 있다. 내가 아는 학교는 아이들을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곳이다. 내 아이가 어렸을 때는 유아는 TV에, 어린애는 어린이집에 맡기는 가정이 생각보다 많았다. 우리도 맞벌이라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겼다. 애엄마 초록손이는 그 때 가슴으로 울곤 했다.

우리는 그룹 홈스쿨링하는 아이들에게 밥상머리 교육을 시도했다. 아이들은 그저 묵묵히 밥을 먹었다. 이미 전근대적이라는 암묵적 사형선고를 받은 방법이 참신하게 부활되려면 흉내내기에 그쳐서는 안된다. 우리도 흉내내기에 그쳤기에 밥상머리 교육을 끌고 갈 동력을 상실했다. 귄위로 밀어붙일 수는 없다.

얼마 전부터 묵묵히 밥만 먹는 과묵한(!) 아이들에게 밥상머리 잡담을 요구하고 있다. 어제는 농반진반으로 말했다. "밥먹을 때 말 안하는 아이 이름 적어내." 세상에! 학교에서는 떠드는 아이 이름 적어내라는데 여기서는 이러고 있다. 밥먹을 때 왜 과묵한가?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이유는 모르겠고 어디서건 그렇다고 한다. 왜 그럴까? 나는 '흥미의 상이함'과 '화제의 식상함'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게임을 좋아하는 아이, 예능에 관심 많은 아이, 책을 좋아하는 어른, 삶터에 관심 많은 어른.... 공통 화제가 없다. 흥미의 상이함이다. 반면, 어른의 말은 교훈을 담고 있어 재미없다. 특히 내가 그 전형이다. 아이와 아이 사이에 담이 있고 아이와 어른 사이에 산이 있다. 내 탓이다.

그룹 홈스쿨링하는 아이들에게 물었다. "공감할 줄 아는 사람과 공감을 못하는 사람이 있다. 누구와 사귀고 싶어?" "유머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이 있다. 누구와 사귀고 싶어?" 그 답을 모르는 아이는 없다. 누구나 공감받고 싶고 웃고 싶어한다. 아이들에게 말했다. "그런데 왜 공감하려 하지 않고, 유머에도 관심이 없지? 다른 사람이 좋아하지 않을텐데?" 아이들 표정이 '어? 그러네?' 한다. 의표를 찔렸을까? 생각하지 않았던 의식의 신천지를 발견한 걸까? 그 표정이 귀엽다.

민지는 세익스피어를 영혼의 아버지로, 도리스레싱을 영혼의 어머니로 삼는다고 했다. 아직은 독서의 폭이 작아 얼마 안가서 바꿀지도 모르겠다. 그럼 어떤가? 그 사이 영혼의 부모로부터 충분히 감화를 입었을테니. 아이들이 서양식 유머집이나 개그 사례집에서 외운 유머도 좋지만 촌철살인의, 의표를 찌르는, 감동을 주는, 생각을 불러 일으키는, 세상의 본질에 대한 궁금증을 자극하는, 세계명작의 인용, 패러디, 은유가 들어있는 잡담으로 밥상머리 가 채워지면 좋겠다.

[형원]

자유 독서를 하면서 많이 변화되고 있는 것 같아요^^ 오늘 책 따라읽는 시간에 10분 만 했는데 목이 아프더라고요... 평상시에 말을 하도 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갑자기 생각이 들었어요. ㅠㅠ 말 많이 하고 유머 많이 배워서 밥상에서 절대로 조용히 있지 않는 사람이 되어보겠습니다~ ㅎㅎ

[김민지]

제가 골라서 더 잘 읽혀지는 것 같아요.
나중에 공감하고 유머를 할 수 있는 사람과 결혼할 수 있도록 공감 능력과 유머 능력을 키우겠어요.

[순 민]

인용,패러디,메타포 까지 할 수 있는 수준으로 절 키워야 겠어요.그렇게 된다면 엄청 멋질것 같아요

[은성]

스스로 골라서 그런지 지정한 독서보다는 흥미가 있었어요.ㅎㅎ
말을 많이 해서 유머감각도 늘리고 조용한 사람보다는 사람들과 재미있게 소통하는 사람이 되보겠습니다.

[유지]

독서를 수동적으로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하고 있어서 좋긴한데,,아직 제대로된 독서습관이 길들여져 있지 않아..
그 부분이 좀 아쉬워요..이젠 슬로리딩에서 했던 것 처럼 꾹꾹눌러읽는 독서습관으로 바꾸려고 노력해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