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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봄이 우리 까까이 거의 다 왔습니다. 날씨가 포근하고 주변에 파란 풀들이 솟아나고 있습니다.
최근에 하나 됨의 글 즉 요한복음 17장 11절의 글과 율법으로부터의 자유 로마서 7장 6-7절의 글을 각각 따로 올렸습니다. 이번에 이를 다시 영어로 번역을 하면서 둘로 묶어서 조금씩 수정해서 한 번에 올립니다. 영어로도 같은 제목으로 같은 내용으로 올립니다. A4용지로 약 50페이지에 달하는 긴 글입니다. 이 글도 영어로 번역을 했기에 미국과 영국, 캐나다 등의 신학교 교수님과 한국의 신학교 교수님 약 200분께 동시에 보낼 것입니다. 먼저 보낼 내용과 똑같은 내용을 올립니다. 제가 알기로 온 세상에서 가장 먼저 이렇게 소개할 것이라 믿습니다. 영적으로 갈급하고 온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를 원하시는 원대한 꿈을 가지신 분들의 도전을 기대하고 제 글을 통해서 온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큰 꿈을 꾸시기를 바랍니다.
하나 됨(oneness)2-요한복음 17:11절과 율법으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 the law)-롬 7:6-7
요 17:11.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샬롬! 봄을 재촉하는 비가 촉촉히 내리고 있습니다. 군산의 원룸에서 가족과 떨어져서 지낸 지도 1년이 넘었습니다. 직장의 동료들도 잘 대해주고 주변의 환경이 너무나 좋습니다. 그리고 물가도 쌉니다. 홀로 지내기에 별로 불편함이 없는 이곳의 원룸은 한달에 20만원에 살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새만금으로 나가면 낚시를 할 수가 있는 곳이 많고 조개도 잡고 산도 등산을 하면 각종 식물도 만날 수가 있습니다. 여름에는 수영을 할 수가 있는 공간도 많습니다. 바다의 시원함과 많은 섬들과 각종 해산물이 풍부한 곳입니다. 그리고 넓은 땅이 대부분 농사를 짓고 있어 중국과 동남아의 교역이 늘면 한국의 제일의 항구가 될 것으로 믿어집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성경에 우리로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서 사람을 만들자 하시고 그리고 요한 복음 17장 11절에도 우리가 하나인 것과 같이 이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하고 예수님께서 대 제사장의 기도를 아버지께 드리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제는 곧 십자가를 지셔야 합니다. 서로 하나가 되라고 제자들에게 당부를 하십니다. 그 제자들의 제자들이 이제는 온 지구상에 다 흩어져서 국가별로 서로 다른 국적을 지니고 예수님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 약 200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이들 제자들이 성령을 받은 후에 이들의 유대인과 이방인의 전도로 이렇게 온 세상에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 하나가 되라는 명령은 지구상의 모든 예수를 믿는 이들이 하나가 되어야 함을 가장 잘 설명한 하나님의 말씀이며 명령입니다.
우리는 먼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께서 어떻게 삼위로 계시지만 하나가 되어 있는지 이해를 해야 하는데 우리가 배운 삼위일체 교리입니다. 하버드를 졸업하시고 미국의 덴버 신학교 학장으로 계신 정성욱 교수님의 "삶 속에 적용하는 Life 삼위일체"라는 책은 삼위일체 교리에 대해서 잘 설명해 주는 책입니다. 우리가 가정에서 아내와 남편 그리고 아들과 같이 생활을 합니다. 서로는 다른 세 명의 인물이지만 서로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있습니다.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서로 하나가 됩니다. 아들이 아프면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신이 아픈 것과 같이 아파하고 힘들어 합니다. 아들이 행복하고 잘 되면 자신의 행복보다 더 기뻐합니다. 그리고 아들은 부모님을 사랑하고 공경합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은 모두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서로 다른 일을 하십니다. 그렇지만 하나로 되셔서 일을 하십니다. 천지를 창조하실 때 하나님 아버지께서 계획을 하시고 아들이 직접 손으로 만물을 만드시고 성령께서 생명을 불어넣습니다. 요한복음 1장에서 예수님의 창조주의 사역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도 하나님의 형상 즉 삼위일체 하나님의 형상으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계획을 하시고 아들 예수님께서 직접 손으로 흙을 가지고 인간을 빚으셨습니다. 이 빚어진 인간에게 성령께서 생기를 불어넣으심으로 생령 즉 살아 있는 인간이 된 것이라고 성경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구의 모든 생명은 생기를 가지고 있고 서로 조화를 이루며 질서 있게 그리고 아름답게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과 그 질서와 조화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생명과 질서와 다양성의 어우러짐에서 오는 놀라운 아름다움이 창조주의 살아계심과 다스리심을 증거합니다.
우리는 산으로 들로 바다로 나가서 숲과 동물과 새들과 그리고 흐르는 물들을 보면서 하나님의 권능을 찬양하고 그리고 이렇게 아름다운 환경을 만들고 우리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셔서 이렇게 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주 예수님의 노고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이 죄를 짓고 타락함으로써 본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영생과 낙원에서의 삶을 잃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랑이신 하나님께서 이런 우리를 구원하셔서 예전과 같이 하나님과 교제하고 영생을 누리게 하기 위해서 이번에도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함께 사역을 하셨습니다. 첫째로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분의 아들을 이 땅에서 보내시고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하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그 분의 우리 모든 인간에 대한 사랑을 확실히 증명하셨습니다.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아들은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공경으로 기꺼이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낮은 이 땅에 가장 비천한 모습으로 오셔서 늘 들판에서 생활을 하시고 그리고 그 무거운 십자가를 지시고 피를 흘리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죽으십니다. 그리고 부활하셔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고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그리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지니시고 통치하시며 다시 재림하셔서 세상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고 명령하셨는데 이는 당시의 예수님의 제자와 함께 이후에 예수님을 믿는 모든 성도들에게 하시는 명령입니다.
행 1:4.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이 지구상에 있는 모든 성도들에게 하시는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그리고 이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기다리다 성령을 받게 된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성령을 받는 것이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임을 증거합니다.
행 2: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먼데 사람이 우리들입니다. 즉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은 모든 사람이 다 성령을 선물로 받는다는 약속입니다. 그러니 회개하고 예수님의 이름의 세례를 받으신 모든 분이 다 죄를 용서받고 이렇게 성령을 받을 수가 있음을 증명하는 말씀입니다. 저도 이런 절차를 거쳐서 베드로 사도와 똑같이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제 이 성도는 물세례를 받았기에 그리고 성령의 세례를 받았기에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새로운 창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신자는 반드시 절차를 지켜서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초대교회 성도와 바울 시대 성도는 이런 절차를 거치지 않은 사람이 별로 없었고 가만히 들어온 유대교 신자는 이런 절차를 거치지 않고 이렇게 절차를 거친 착한 사람들을 꾀려고 한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유혹으로 성령으로 시작된 성도가 다른 길로 가자 바울은 그들을 책망하고 바른 길로 가라고 그 분의 서신서에서 강하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이제는 우리와 함께 하시는데 우리 마음속에 계십니다. 우리에게 능력을 주십니다. 우리의 마음이 부드럽게 되도록 하십니다. 성령께서 이렇게 하지 않으면 거듭남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바꾸어 놓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새롭게 창조를 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인격으로 기도로 수양으로 절대로 바꿀 수가 없습니다. 반드시 성령을 통해서 사람이 거듭나는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도 이런 절차를 거친 믿는 사람들이란 뜻입니다. 믿는 이가 가장 시급하고 중요하게 생각해야 되는 것이 이렇게 하나님의 선물 중의 선물인 성령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아벨로는 성경을 깊이 알고 유대교에 대해서 잘 아는 유대인이었습니다. 성령에 대해서 모르고도 예수님을 증거했습니다. 그렇게 아볼로와 같이 지금의 성도들이 믿을 수가 있지만 능력이 없고 거듭남이 없습니다. 아볼로는 천막일을 하는 미천한 신분의 브리스 길라와 아굴라를 만나서 정직하게 성령의 세례에 대해서 모른다고 하고 이들이 성경을 더 깊이 풀어서 설명을 할 때 순종합니다. 그리고 더욱 능력 있게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고 교회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 아볼로가 히브리서를 기록했다고 여러가지 성경적인 증거를 제시했습니다. 아볼로는 이들 부부를 통해서 틀림없이 그 때 성령을 받았으리라 저는 믿습니다.
성령님은 아버지와 아들과 같이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께서 내 마음속에 계시는 것은 내가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리고 내 죄를 인정하고 그 죄에서 떠나서 회개를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나를 건지실 분은 오직 예수님 한 분밖에 없음을 고백하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모셨기 때문입니다. 이와 함께 성령님은 반드시 교회의 절차에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세례를 받고 죄의 용서가 있을 때 비로소 나에게 오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알고 성경을 읽고 이해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계심을 아는 것도 성령의 사역 이심이 맞습니다. 성령께서 알게 하지 않으면 예수님에 대해서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알고 믿은 후에 예수님의 명령대로 반드시 성령을 기다리고 받아야 함을 또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절차가 반드시 행해져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도 논의를 할 수가 있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와 바울 사도가 전도하고 바울 사도에게 배운 성도는 대부분 이렇게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선물로 받은 거듭난 새로운 창조물이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작품으로 성령의 낙관 즉 인이 찍힌 분들이었습니다. 우리도 역시 아무리 바빠도 아무리 급해도 아무리 어떤 신학이 주장을 해도 이렇게 예수님을 믿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너무나 중요한 내용입니다.
물론 제가 설명하는 내용을 저도 처음부터 다 이해를 하고 믿은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저를 이렇게 이해하도록 인도 하셨고 저는 성령으로 마태복음을 읽을 때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고백처럼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이심이 믿어졌고 그리고 그렇게 고백을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에 앞서서 회개 후 약 5년 뒤에 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그리고 다음 해 봄에 예수님께 직접 불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때로부터 약 32년이 지났습니다. 쉬지 않고 복음을 전했고 성경을 읽고 정리했고 이렇게 온 세상에 전하게 되면서 이런 과정의 이해로 왔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모두가 성령께서 하셨음을 믿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신 성령님께서 제게 오셔서 제 마음속에 계시면서 저에게 성경을 이해하게 하셨고 또 복음을 전하게 하심을 믿게 되었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한 인간 인간, 성도 한 분 한 분에게 함께 하시고 사랑하시니 이 놀랍고 큰 사랑과 비밀을 어찌 짧은 글로 다 표현이 가능하겠습니까? 이렇게 놀라운 일을 하시는 하나님 성령님을 받지도 못하고서 받았다고 믿고 아볼로와 같이 오직 말씀으로만 그리고 자신의 능력으로만, 이 험하고 거짓된 세상을 성도는 절대로 살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도 반드시 기억을 하셔야 합니다.
요 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장로가 되고 목사가 되고 권사가 되고 신학자가 되어서 지도적인 위치에 있다해도 이 말씀에서 걸려서 천국에 가지 못하게 될 수도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직 생명이 있을 때 반드시 성령을 받기를 바랍니다. 제가 쉬지 않고 전하는 메시지입니다. 본인은(각자) 분명하게 이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전하면서 명성도 물질도 가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천국이 내 것이 아닙니다. 제 말이 아니고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아볼로와 같이 믿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성령에 대해서 침묵하면서 성경을 잘 가르친다고 하는 분을 압니다. 유명하신 분이고 책도 내고 이 분께 배우는 분도 많습니다. 그런데 성령에 대해서 침묵을 하는 것은 그 경험이 없기에 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어찌 그분이 초대 교회 성도와 같이 불을 받고 변화를 경험한 사실이 없는데 할 말이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이분도 아볼로와 같이 귀한 분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분께서 꼭 하셔야 하는 일은 비록 천한 일을 하고 있고 명성이 없더라도(아굴라와 같고 브리스 길라와 같은 분) 성령을 받은 분을 반드시 찾아가셔야 합니다. 그리고 회개하고 성령을 받아야만 이분께서 천국에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분이다 라고 믿는 여호와 증인도 있습니다. 오직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만 강조하면서 믿는 교파도 있습니다. 성령님에 대해선 정말로 멀리하고 기적도 믿지 않고 믿는 교파도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인 것과 같이 하는 예수님의 말씀과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서 사람을 만들자 하는 성경 말씀은 이분들의 말씀이 절대로 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온 세상에서 자신들이 가장 옳다고 분열을 조장하는데 이들이 바로 옳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각종 이단의 괴수는 곧 죽을 파리 목숨과 같고 아침에 피었다가 곧 사라질 이슬과 같은 운명에 있는 모든 인간과 같이 연약한 인간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이들이 스스로 하나님도 되고 예수도 되고 심지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성령이 되어 거짓으로 수십만의 한국인을 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이단 사상을 선교라는 명목으로 중국에 전하고 있고 심지어 방송도 하는 현실이 한국의 현실입니다. 다 지옥으로 갈 괴수들을 따라서 부지런히 지옥으로 쉬지 않고 행진을 하는 것이 그들을 따르는 사람들의 운명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고 성령을 받는 일이 이렇게 중요한 일입니다. 아무리 성경을 깊이 읽고 연구하고 박사가 되어도 이 사실과 다르게 믿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 시대에 초대교회와 같은 기적을 늘 보고 내가 기적을 통해서 병이 치유 받고 기적을 통해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길이 있는데 이렇게 기적을 부정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오직 성경의 인간적인 요소만 믿는 이들이 많습니다. 이들이 요한복음 강의도 하고 로마서 강의도 합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이들의 책과 강의를 보고 듣습니다. 그들은 책도 냅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올바른 사람을 만나서 잘 배워야 합니다. 자신이 다니는 교회와 목사님께 배우는 것이 가장 안전합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고 성령의 인도로 배우는 것이 가장 정확하게 안전합니다. 저는 그렇게 배웠습니다.
예수님 앞에서 서로 하나가 되라고 명령을 받은 당시의 무리는 이렇게 모든 절차를 다 마치고 오직 성령님을 받는 일은 아직 하지 못한 무리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을 다 보십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의 승천도 보십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의 명령을 순종해서 마가 다락방에서 성령을 기다립니다. 모두가 모여서 함께 말씀을 보고 찬송을 하면서 기다립니다. 그리고 그들 모두는 오순절 날 성령을 받게 됩니다. 120명 모두가 받습니다. 성령을 받은 베드로의 능력 있는 설교를 통해서 5천 명, 3천 명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습니다. 다 성령을 받습니다. 그리고 고넬료의 가족과 친구들이 다 동시에 성령을 받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회개하고 아나니야를 만나서 물로 세례를 받고 성령을 받습니다. 그리고 사도들과 바울 사도는 예수를 믿는데 성령을 받지 않은 분들을 만나서 성령을 전하고 받게 합니다. 사도행전의 기록은 이에 대한 기록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쉬지 않고 성령을 받는 일이 이 지구상 거의 모든 곳에서 일어났고 일어나고 있습니다. 한국에도 장대현 교회에 성령이 임했습니다.
Examples of Holy Spirit Baptism: Acts of the Apostles
구분 | 2장(1-4) | 8장(14-17) | 9장(1-18) | 10장(1-48) | 18장(24-28 | 19장(1-7) |
장소 | 마가다락방 | 사마리아 | 다메섹 | 가이샤라 | 에베소 | 에베소 |
사람 | 시도등 120 문도 | 그들, 무리 | 바울 | 고넬료, 가족 벗 | 아볼로 | 12명 |
사도 | 베드로12 | 베드로, 요한 | 아나니야 | 베드로, 제자 | 아굴라 브리스 | 바울 |
세례 | 예수 이름 | 예수 이름 | 예수 이름 | 성령세례 후 | 요한의 세례 | 요한의 세례 |
준비 | 마음을 합하여 기도 | 빌립 전도. 세례 줌 | 부활 주님 만나 회개 | 경건, 의, 구제, 기도 상달 | 하나님의 도를 정확히 풀어줌 | 예수를 증거함 |
임하시는 모습 | 급하고 강한 바람소리, 각 사람 머리 위 불의 형같이 임함 | 성령 받기를 기도하고 두 사도가 안수함 | 아나니야 기도 후 눈이 보임, 성령충만하게 됨 | 베드로 설교때,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림 | 바울이 안수 시 성령의 임하심 | |
권능 | 성령충만 방언 기적, 복음 증거 | 성령충만 기적 이방인의 사도로 복음전파 | 방언 하나님 높힘 | 믿는 이에게 유익하게 성경으로 그리스도 증거 | 방언과 예언함 |
제 글을 보시고 한 분이라도 정직하게 회개하고 가는 길에서 멈추시고 하나님으로부터 성령을 받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성령을 받아도 이런 내용을 다 이해하기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저는 성령을 받고 32년이 되었는데 가장 최근의 이해를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6년 전에 이 블로그와 카페를 시작할 때 이렇게 전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 공부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저도 최근에 이렇게 전할 수 있게 이해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까지 오는데 시간도 많이 걸렸고 또 죄도 짓기도 했고 하나님께 징계도 엄히 받았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기회가 있습니다. 부끄럽게 생각할 일도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그렇게 모든 성도가 성령을 받기를 간절히 바라십니다. 제가 어떻게 무슨 능력으로 온 세상의 모든 크리스천이 하나가 되라고 하겠습니까? 오직 놀라우신 하나님의 망극 하신 사랑과 우리 주 예수님의 보혈과 십자가 대속의 사랑과 그리고 늘 저와 함께 하심 덕분입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오셔서 저를 약 32년 동안 인내하시며 인도하신 결과입니다. 저는 온갖 부실함과 죄와 나약함과 그리고 목이 곧음을 가지고 세상 길로 갈려고 쉬지 않고 제 발걸음을 내 디뎠습니다. 오직 성령께서 때로는 탄식으로 때로는 위로로 때로는 감동으로 쉬지 않고 저를 인도하셨습니다. 저는 제게 오신 성령님을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인정합니다. 그리고 그분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립니다. 할렐루야!
온 지구상에 믿는 성도가 예수님의 말씀대로 하나가 되기 위해서 우선 성경이 이해에 있어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먼저 천주교가 홀로 존재했는데 성령의 발현 문제와 성상 문제 등의 갈등과 논쟁을 통해서 기원후 약 1000년경에 정교회와 천주교로 나누어지게 되었습니다. 교회의 분열은 예수님의 몸이 쪼개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아프십니다. 이제 1000년이 되었고 모든 국가가 자국어로 성경을 번역을 해서 누가 올바른지 분별이 됩니다. 성령께서 아버지께서 나오는가 혹은 아들이 보내는가 에 대한 논쟁입니다. 이제 우리는 다 번역 성경 찬송을 통해서 바로 확인을 해 볼 수가 있습니다.
요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요 15:26.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행 2:33.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창세전부터 함께 하신 분이니 인간이 능력으로 풀 수가 없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이제 모두가 가지고 봅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아버지께서 성령을 보내신다고 하고 예수님께서 아버지로부터 보내신다고도 하십니다. 성령을 보내시는 주체가 아버지냐 아들이냐 하고 다툴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아들도 아버지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먼저 아들이 오십니다. 그리고 아들을 믿고 죄를 용서받은 성도들에게 성령께서 임하십니다. 성령께서 선물로 성도들에게 오십니다. 세상을 창조할 때 아들과 아버지께서 함께 하시듯이 성령의 보내심도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하십니다.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신다는 말도 맞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신다는 말도 맞습니다. 인간인 우리 성도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리고 개개인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은 하나님 삼위의 일의 분별이 아니라 내가 먼저 성령을 어떻게 받냐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저는 분명하게 32년 전에 신림동 선민교회에서 예수님께 불을 받았습니다. 흑백의 예수님께서 성전에 나타나시고 그분의 입에서 빨간색의 불을 제 가슴에 부어 주셨습니다. 제 가슴을 보니 작은 촛불과 같은 불길이 두 세개가 일렁거렸습니다.
논의의 초점이 천주교나 정교회나 올바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위의 구절과 같이 믿으면 됩니다. 성령은 아버지께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보내신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아버지로부터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신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받아서 우리에게 보내신다. 성령님 입장에서는 분명하게 우리에게 오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이 성령의 파송에 똑같이 관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분이 누구냐 하는 논쟁은 별로 실익이 없습니다. 가령 예수님께서 이 땅에 죄인을 구원하려 오시는데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고 했는데 이를 예수님께서 스스로 오셨냐 혹은 하나님께서 강제로 가기 싫은 예수님을 보냈냐 하는 논쟁이 무슨 실익이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오셔서 비록 고난을 받으시며 하나님께 부르짖지만 인간을 사랑하시고 구원하시고자 함에 있어서 아버지와 하나가 되어 있습니다. 세분은 다른 위를 가지고 계시지만 서로 사랑으로 믿음으로 그리고 정의로우심에 있어서 하나로 되어 있습니다. 이 논쟁보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이 더 중요한 일입니다. 다툴 필요도 없는 일에 다툼이 일어났고 둘로 나누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일이 아니고 사람들과 다른 영의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가 되라는 명령을 두 교파가 어긴 것입니다. 이제 하나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성령도 받지 못한 천주교 신부와 정교회의 신부가 서로 이를 두고 다투면 천하에 어리석은 일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 이렇게 삼위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 연구도 필요하지만, 더욱 더 모든 신학자와 목사와 신부와 성도에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은 지상 최고의 선물인 성령님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귀한 선물을 우리에게 주셔도 받지도 못하고서 선물을 주시는 이가 누구인가 따지는 논쟁이 우리 모두에게 무슨 실익이 있겠습니까? 성경의 구절 대로 믿고 내가 성령을 받는 일이 우리에게 수천 수만 배 더 중요합니다.
그리고 또 오백 년이 흐르니 이제는 루터와 캘빈이 나와서 천주교에서 분리를 시도합니다. 로마서를 통해서 루터가 믿음으로 의롭게 됨을 주장하게 되고 이를 기회로 천주교와 개신교가 분리가 됩니다. 또 예수님의 몸이 찢어집니다. 그리고 500년을 치열하게 싸우고 논쟁합니다. 그리고 각각의 교회를 세우고 또 비난도 쉬지 않습니다. 그리고 한 편에선 그들은 연구도 같이 합니다. 그런데 로마서 1장 17절과 로마서 3장 21-26절의 루터가 이신칭의를 주장한 구절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 로마서 4장 17-22절을 보면 싸울 일이 없게 됩니다. 왜 500년 동안 두 교회가 이 구절은 외면하고 싸움에 몰두했는지 의문이 들 수도 있겠지만 오직 저는 복음 전파를 간절히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다고 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셨던 것은 두 교회의 성경의 정확한 이해보다 더 온 세상의 영혼의 구원이 개신교를 통해서 더 시급히 해야 할 일 이셨던 것 같습니다.
롬 4:17. 성서에 "내가 너를 만민의 조상으로 삼았다." 하지 않았습니까? 그는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게 만드시는 하느님을 믿었던 것입니다.
18. 아브라함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믿어서 마침내 "네 자손은 저렇게 번성하리라." 하신 말씀대로 "만민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19. 그의 나이가 백 세에 가까워서 이미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이 되었고 또 그의 아내 사라의 몸에서도 이제는 아기를 바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는 믿음을 가지고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20. 그는 끝내 하느님의 약속을 믿고 의심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더욱 굳게 믿으며 하느님을 찬양하였습니다.
21. 그리고 그는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능히 이루어주시리라고 확신하였습니다.
22. 하느님께서는 이런 믿음을 보시고 아브라함을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하셨습니다."
17.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개역개정, 공동번역)
처음 부르심을 받을 때가 아브라함이 75세였고, 의롭다 인정을 받을 때가 100세 였습니다. 즉 25년을 한결같이 믿은 시간적인 측면과 변치 않는 강력한 믿음이 있었으므로 의롭다 인정을 받았습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됨이 절대적으로 맞으나 이렇게 아무나 믿는다고 그들이 의롭게 됨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시간적인 측면과 변치 않는 믿음의 측면이 동시에 갖추어진 믿음이 되어야 의롭다 이들이 인정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아는 이신칭의의 내용이 분명히 로마서에 이렇게 버젓이 있으니 서로 다투지 말고 이렇게 해석하고 풀어라 하는 하나님의 뜻인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행함과 완전함은 창세기를 통해서 충분히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직접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명령을 하셨고 아브라함의 삶은 믿음 외에도 행동에 있어서도 흠이 없었습니다. 자식을 경외함으로 바쳤습니다. 롯을 용감하게 가서 구했습니다. 그리고 롯에서 먼저 선택권을 주며 땅도 양보를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른 목적이 우리를 부르신 목적과 똑같이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 함이라 하셨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행함으로 모든 면에서 온전한 우리의 조상이고 이스라엘의 조상입니다. 단지 하나님을 믿고 절대로 경거망동하신 분이 아닙니다. 그리고 로마서 1장 17절의 말씀은 그냥 온 것이 아니라 이도 바울 사도께서 하박국 2장 4절에서 가져왔습니다. 당연히 하박국 2장 4절로 가서 이도 어떤 믿음인지 확인을 해야 합니다. 이런 절차가 없이 캘빈과 루터가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주장했다면 우리가 이제라도 확인하고 그 의미를 바로 이해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박국서는 단지 3장으로 구성이 되어 있어 모든 신자가 속히 가서 읽어보고 그 본래의 의미를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하박국은 기원전 608년경에 활약한 남 유다 말기의 선지자입니다. 남 유다가 586년에 망했기에 망하기 20년 전의 선지자이고 이도 이미 바벨론이 605년 598년에 남 유다를 침공해서 포로로 잡아갔기에 진실로 남 유다 말기의 예언자입니다. 그가 하나님께 묻습니다. 율법이 해이해져서 의로운 이가 살기가 힘이 듭니다. 어찌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그냥 두고만 보십니까? 하고 동족을 하나님께 고발을 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아니다 그냥 두지 않는다 바벨론을 들어서 심판하겠다" 하십니다. 이에 대해서 "어찌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가 더욱 악한 바벨론입니까?" 하고 다시 하박국이 하나님께 여쭙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하시는 대답이 우리가 아는 유명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하신 말씀으로 하박국서 2 장 4절에 있습니다.
합 2:4.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4. 멋대로 설치지 마라. 나는 그런 사람을 옳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의로운 사람은 그의 신실함으로써 살리라."
하나님께서 절대로 바벨론은 옳다고 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바벨론도 멸망하게 될 것이다"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벨론도 페르시아에 의해서 멸망했습니다. 그렇지만 의로운 사람은 신실함으로 믿음으로 살리라 하셨습니다. 여기서 의인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맞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어떤 하나님을 믿습니까? 율법을 완전히 어긴 택한 백성 이스라엘을 멸망을 시키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바벨론도 역시 멸망을 시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의롭다 인정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 믿음으로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어떻게 그들이 삽니까? 그들이 하나님께서 벌하시는 율법을 어긴 이스라엘과 같이 불의하게 삽니까? 아니면 그들이 불의한 바벨론과 같이 약한 자를 수탈하면서 삽니까? 우리는 분명하게 이 부분을 이해를 해야 합니다. 절대로 절대로 율법을 어기며 불의하게 사는 자는 이런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입니다. 이스라엘이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고 그들은 아무렇게나 살아도 하나님께서 절대로 자신들을 보호해 주실 줄로 믿었습니다. 그런데 예전과 같이 그런 백성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이 이제는 아니십니다. 도리어 그런 남 유다를 멸망을 시키시는 분이십니다. 불의한 자는 이제 반드시 죽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믿음으로 살 기회가 더 이상 없습니다. 믿음이 있다고 그들의 생명이 부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의인은, 살아남는 의인은 의롭게 사는 자들입니다. 하박국과 같이 믿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그루터기와 같은 자들입니다. 불의로 재물을 모으고 남의 토지를 매입해서 혹은 뺏어서 율법을 어기고 살던 모든 사람이 죽고 포로로 잡혀갑니다. 예레미야는 이렇게 망하는 민족을 잘 기록했습니다.
렘 39:5. 갈대아인의 군대가 그들을 따라 여리고 평원에서 시드기야에게 미쳐 그를 잡아서 데리고 하맛 땅 립나에 있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게로 올라가매 왕이 그를 심문하였더라
6. 바벨론의 왕이 립나에서 시드기야의 눈 앞에서 그의 아들들을 죽였고 왕이 또 유다의 모든 귀족을 죽였으며
7. 왕이 또 시드기야의 눈을 빼게 하고 바벨론으로 옮기려고 사슬로 결박하였더라
8. 갈대아인들이 왕궁과 백성의 집을 불사르며 예루살렘 성벽을 헐었고
9.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성중에 남아 있는 백성과 자기에게 항복한 자와 그 외의 남은 백성을 잡아 바벨론으로 옮겼으며
10.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아무 소유가 없는 빈민을 유다 땅에 남겨 두고 그 날에 포도원과 밭을 그들에게 주었더라
죽는 자들은 이렇게 택한 백성으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불의하게 산 사람들입니다. 절대로 어떤 경우에도 믿는다고 하면서 불의하게 사는 자들을 의롭다고 하실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그리고 그들은 처참하게 죽습니다. 사는 자들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는 분들은 이렇게 살지 않습니다. 그들은 불의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율법을 지키면서 어렵게 삽니다. 그렇게 어렵게 사는 것이 너무나 어려우니 하박국은 이 불의한 동족을 어떻게 해달라고 호소를 하나님께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어떤 믿음입니까? 그가 같은 하나님을 믿는데 아브라함과 같이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불의를 척결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그렇게 견디기 어려운 삶으로 이끄는 불의를 나라의 멸망을 통해서 처단하십니다. 그렇게 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불의 하지 않습니다. 정의롭게 삽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그들은 불의에 눈을 두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께서 불의한 자들을 몰아내시고 정의를 세울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그 심판의 도구가 바벨론인데 하나님께서 이들도 곧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십니다. 어느 시대나 믿는다고 하면서 불의하게 사는 자를 절대로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신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도 불의하고 사랑도 없고 곁에서 가난한 자가 죽어가도 자비의 손길을 내 밀지 않는 자들에게 어찌 정의로우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의롭다 하시겠습니까? 믿는다고 하면서 불의하게 사는 자들을 도리어 하나님께서는 어떤 일이 있어도 더욱 미워하실 지 모를 일입니다. 이스라엘의 예에서 우리는 반드시 배우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절대로 하나님께서 불의를 미워하시고 불의를 행하는 자를 그냥 두시지도 않는 분이심을 반드시 이해를 해야 합니다.
이제 이신칭의가 되는 믿음이 두 사람 하박국과 아브라함을 통해서 올바로 이해가 되었으리라 믿습니다. 먼저 아브라함의 예에서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은 맞지만 그 믿음이 세월이 가도 변치 않아야 되고 그리고 시간이 25년이 되었어도 변치 않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박국의 예에서 보면 칭의는 정의롭게 사는 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임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다른 민족을 우습게 알고 이방인이라 부릅니다. 이렇게 선민이며 특별하다고 자랑하던 불의한 이스라엘이 망하는 내용으로, 의인이 누구인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설명을 하십니다. 구약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절대로 망하는 믿는 남 유다 백성이 아니라 이들과 완전히 구별되게 사는 의로운 하박국과 같은 하나님을 믿는 분들을 의롭다 하십니다. 아무리 의롭게 살고자 해도 희망이 없으면 의롭게 사는 것을 포기합니다. 그런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이제는 죽게 하고 멸망을 시키는 하나님의 존재로 인해서 하박국 등은 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이제는 희망이 생깁니다. 그들은 의롭게 살 희망이 생깁니다. 이들이 하나님을 믿고 희망을 가지고 의롭게 산다 는 말씀이 하박국 2장 4절의 의미입니다.
이조 시대 100년의 천주교 순교 시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겐 너무나 가혹했고 하박국이 살던 시대보다 더욱 더 무섭고 살기에 어려운 시대였습니다. 수천년 묵은 종의 굴레는 벗기는 노예와 같은 노비의 삶을 청산하는 복음의 가르침은 죽음이 아니면 지킬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100년 동안 1만명 이상의 사람이 쉬지 않고 죽고 온 강토가 피로 물이 들어도 예수님을 포기하지 않는 분들에겐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하실 일에 대한 희망이 있었기에 그들은 순교를 택했고 살고자 생명을 구걸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 황사영이 하박국과 똑같이 행동을 했습니다. 교황에게 군대를 파견해서 조선을 어떻게 해 달라는 내용의 백서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발각이 되어 순교를 합니다. 그들은 부활을 믿고 천국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유롭게 신앙 생활을 할 조선이 되리라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하실 능력의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 소망으로 그들은 죽음을 견디었습니다. 이렇게 하실 하나님을 믿고 그들은 믿음의 행위 중 가장 위대한 순교의 길로 의연히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약 200년이 채 흐르지 않아서 그분들이 순교한 장소는 모두 순교지가 되었습니다. 교황이 방문해서 이들을 기념하고 그 시대의 동족을 죽인 고관의 비석들이 다 순교지에 진열이 되어 있는 것을 저는 보았습니다. 이 땅에 천주교를 믿는 이가 500백만 명이 되고 개신교를 믿는 이가 1000만 명이 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가장 축복된 국가가 되어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역사상 가장 강력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분들의 피 흘리심이 이렇게 복된 나라가 되는 축복으로 바꾸어 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온 세상에서 가장 멋진 믿음의 선조을 가진 성도들이 다 되었습니다. 이렇게 귀한 우리의 조상들의 업적을 천주교인이다 개신교인다 하고 편을 가르고 다투면서 기리지 못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고 저는 믿습니다. 개신교를 믿는 이 중에서도 순교하신 분들의 후손도 있을 것입니다. 이분들의 피로서 우리가 이렇게 쉽게 예수를 믿고 자유가 있는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모든 개신교인은 이런 천주교의 믿음의 선조에 대해서 늘 감사하고 그분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분들의 고귀한 희생을 본받아 자본주의가 판을 치는 현 시대를 복음의 참된 의미를 이해하고 이겨 내어야 할 것입니다. 정의는 반드시 실현이 되고 진실은 반드시 밝혀집니다. 정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이 두 예를 통해서 우리는 믿습니다. 북한의 순교자들의 피와 지하에서 숨도 제대로 못 쉬고 70년을 기도하신 10만 명이 넘는 분들의 희생으로 북한이 반드시 자유롭고 잘 사는 나라가 되리라 우리는 굳게 믿습니다. 반드시 그 날이 올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믿는 이는 반드시 세상이 어떻해도 정의롭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 정의는 모세 오경 율법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성도가 율법을 지키도록 인도하십니다.
이제 로마서의 이신칭의는 정의롭게 사는 행동하는 믿음이요, 25년 동안 변치 않는 믿음이라야 됨을 이해하시게 되었을 것입니다. 즉 정의롭게 사는 행동이 필요하고 시간이 필요하고 그리고 변치 말아야 함이 요구가 되는 믿음이 바로 칭의가 되는 믿음임을 모든 분께서 이해하셨으리라 저는 믿습니다. 이렇게 이해하고 믿으면 로마서와 야고보서는 어디 한 곳 어긋나는 곳이 없이 완벽하게 일치를 합니다. 그리고 천주교와 개신교가 다툴 근거가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칭의를 선포하시고 결정을 하시는 분이 나도, 너도, 신학자도, 목사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의 믿음을 보시고 적당한 때에 하시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제는 성경을 이렇게 이해하면 이를 바탕으로 천주교와 개신교가 나누어지고 다툴 필요도 없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정교회와 천주교와 개신교가 서로 다른 교리를 중심으로 나누어져야 하는 근거는 사라졌습니다. 오직 올바른 성경의 이해로 하나가 되는 길만 남았으니 서로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하나인 것과 같이 세 교회가 하나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오직 구약만 믿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스라엘과 모든 지구상의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하나가 되는 문제가 남았습니다. 이스라엘은 아직도 모세 오경을 어릴 때부터 잘 배우고 지키는 사람들이 있고 이들이 이스라엘의 핵심입니다. 유대인이라 부르는 이들은 나라가 망해진 2500년을 유랑하며 서럽게 살았습니다. 그들은 이 나라 저 나라를 방황했습니다. 바벨론에서 귀환도 했지만 지배국이 페르시아 그리고 그리스 그리고 로마로 바뀜에 따라서 그 나라의 속국으로 자신들의 전통을 지키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구약을 글자 한 자 틀리지 않게 모세가 처음 자신의 민족에게 주었을 때 즉 기원전 약 1447년경부터 지금까지 잘 보존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를 우리에게 잘 전해 주었습니다. 참으로 귀하고 고마운 일입니다. 모든 개신교, 천주교, 정교회 국가는 이에 대해서 감사하고 이스라엘을 품고 사랑하고 예수님께 인도해야 합니다. 온 지구가 다이어먼드가 되어도 신, 구약 성경책 한 권 보다 더 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모든 개신교인은 천주교가 성경을 잘 보존하고 자신들에게 전해 준 것에 대해서 늘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지금 예수님도 신약도 인정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2차 대전 때는 독일의 나치가 600만의 유대인을 학살했으니 그들이 개신교에 좋은 감정을 가지기 어려운 사정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성령님을 통해서 신 구약 성경을 통해서 완벽하게 유대인과도 하나가 되는 길이 있습니다. 유대인이 바울 사도와 같이 예수님을 믿고 이방인인 우리가 바울 사도와 같이 믿으면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서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유대인이 예수님 안에서 하나가 되면 온 지구상에 예수를 믿는 이는 모두가 하나가 되는 날이 올 것입니다. 이 날이 하늘에서도 기쁜 날이 되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이는 반드시 성령님을 통해서 하나가 되고 또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중요한 이 땅에 세워지는 하나님의 나라의 모든 신자가 배우고 지켜야 하는 법이 바로 유대인들이 그렇게 지금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지키고자 하는 모세 오경의 율법입니다. 이 땅에 세워지는 하나님 나라의 법이 바로 율법인데 모든 믿는 이의 헌법입니다.
이는 제가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을 증명을 합니다. 한 구절은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에스겔서 즉 구약에 있고 한 말씀은 로마서 7장에 있습니다. 두 말씀을 동시에 보겠습니다.
겔 36: 24.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롬 7: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7.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이스라엘은 1948년 오랜 방랑을 끝내고 비로소 고국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예언대로 되었습니다. 이 예언이 멸망 후에 3차례에 이르는 귀환으로 성취가 되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여전히 이스라엘은 페르시아, 그리고 로마의 속국으로 있었습니다. 나라가 완전히 회복이 된 것은 1948년인데 2차 대전이 끝나고서 이고 나라가 망한 지 약 250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다른 많은 민족에 흩어져서 나라도 없이 살던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을 건국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일어날 일들이 바로 에스겔서 25-27절과 로마서 7장 6-7절에 기록된 일인데 이미 바울 사도와 같이 예수님을 믿은 유대인들이 2000년 전에 누리고 살던 삶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아 성령의 인도로 산 수도 없이 많은 성도들이 또한 그렇게 살았습니다. 바울 사도의 동족에 대한 간절한 기도는 이제 응답이 가까워졌습니다.
이 응답은 바로 온 지구상의 성도와 사람이 다 율법을 잘 지키는 세상을 만드는 것인데 이 율법으로 인해서 하나가 되는 일이 바로 예수님과 성령님의 사역으로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앞에서 우리가 이해한 이신칭의 이해와도 너무나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로마서를 통해서 이신칭의 교리를 설명하고 또 율법에 대해서 언급을 합니다. 그는 로마서 7장 6절과 같이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이제는 섬기지 않는다고 합니다. 또 로마서 3장 20-21절 에서도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롬 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이 구절을 잘못 이해하면 이제는 율법의 행위도 필요가 없고 이제는 율법의 조문으로 섬길 필요도 없다고 하면서 오직 믿음만 있으면 구원도 받고 의롭게 되기도 하고 또 천국에도 간다로까지 이해할 수도 있게 됩니다. 개신교는 이와 같은 이해로 500년을 버티어 왔습니다. 그런데 앞에서 우리가 칭의 되는 믿음에 대해서 너무나 정확하게 그 믿음이 되려면 시간적인 연속성과 함께 변치 않아야 되고 또 정의롭게 살아야 되는 믿음이라야 됨을 확인 했습니다. 이와 함께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적당한 때에 비로소 그 사람이 의롭게 인정을 받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인정받기 위해서는 이제는 반드시 행동하는 정의로운 삶이 있어야 됨과 시간이 가도 변치 않고 하나님을 잘 믿어야 됨을 모든 성도는 이해하게 되었으리라 믿습니다. 그런데 정의롭게 살고 변치 않고 하나님을 믿고 사는 행동의 기준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이 문제의 답이 바로 로마서에 다 있습니다. 율법을 절대로 함부로 대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보시겠습니다. 틀림없이 로마서에 있는 말씀입니다.
롬 2:12.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롬 3: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롬7:7.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율법에 대한 바울 사도의 정확한 생각입니다. 그는 절대로 율법을 세우고자 하고 죄가 아니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심지어 율법을 행하는 자가 의롭다 합니다. 우리는 이 구절을 절대로 버리지 말고 기억하고 로마서를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구절을 가장 잘 보장하고 율법을 그대로 지키라고 바울 사도의 주인이신 그리고 모세에게 율법을 주신 천지가 창조되기 전에 계셨으며 만물을 만드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온 세상에 유대인, 이방인, 신학자, 목사 모두가 그대로 '아멘' 하고 따라야 하는 말씀입니다.
율법의 완성
마 5:17.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의 말씀을 없애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없애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18. 분명히 말해 두는데, 천지가 없어지는 일이 있더라도 율법은 일 점 일 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
19. 그러므로 가장 작은 계명 중에 하나라도 스스로 어기거나, 어기도록 남을 가르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사람 대접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계명을 지키고, 남에게도 지키도록 가르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늘 나라에서 큰 사람 대접을 받을 것이다.
20. 잘 들어라. 너희가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파 사람들보다 더 옳게 살지 못한다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예수와 율법
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공동번역, 개역개정)
이 구절들의 이해가 올바로 되어야 비로소 천주교 개신교 그리고 이스라엘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모든 구절들이 서로 충돌함 없이 자연스럽게 그 뜻이 통할 때 천주교도 개신교도 이런 해석에 수긍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도 이제는 예수님을 믿을 것입니다. 이 구절을 서로 충돌함이 없이 하나가 되게 하시는 분이 바로 우리가 믿는 예수님 이시고 성령님이십니다. 하나님 되신 이 분들이 신 구약의 말씀을 하나가 되게 하시고 로마서와 에스겔서와 야고보서 마태복음 등을 하나로 되게 하십니다. 그런데 이런 조화와 통일을 이미 바울 사도와 초대 교회 교인들이 다 누렸습니다. 후세에 이에 대한 해석으로 천주교와 개신교가 분리가 되었으니 이제는 올바른 해석으로 하나가 되는 길이 열렸습니다.
에스겔서 36장의 26-27절의 새 마음과 새 영으로 섬긴다는 말씀과 로마서 7장의 6절의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긴다는 말은 전적으로 동일합니다. 여기서 새 영은 당연히 성령님이십니다. 이 편지를 쓴 기원후 약 57년은 바울 사도는 성령을 받아서 성령의 인도를 받은 지가 약 20년이 지났을 때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조문 조문을 잘 지키라고 명령하시니 이를 어기면 절대로 아니 됩니다. 그리고 에스겔서에 새 영으로 율법을 잘 지킨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 로마서 7장 6절에서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같은 표현입니다. 여기에 우리는 답을 발견을 해야 합니다. 저의 이런 이해도 시간적으로 정확하게 한 구절 한 구절 하나님께서 인도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데 예수님을 믿고 약 40년 그리고 성령을 받고 32년이 되었습니다.
에스겔서 로마서 그리고 예수님의 율법에 대한 말씀이 다 통일이 되어 이해가 되는 것은 성령님의 역사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사역을 믿어야 하고 성령을 반드시 어떤 일이 있어도 받고 이렇게 살아야 됩니다. 돈을 모으고 집을 사고 땅을 사고 서울대를 가고 좋은 여자를 만나는 일보다 더욱 귀하고 중한 일이 성령을 받고 이렇게 사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을 받고 이미 사시는 분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영원토록 천국에서 큰 자로 살게 될 것입니다.
에스겔서의 새 영도 로마서의 영의 새로운 것도 모두가 성령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결론은 성령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율법을 완성시키는 것이 이루어진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으로부터의 자유를 설명하는 로마서의 7장은 이렇게 완전히 이해가 됩니다. 1000년의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신 하나님께서 온 인류가 율법을 지키는 방법을 이렇게 모든 인류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율법을 조문 조문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성령님의 뜻이시고 예수님의 뜻입니다. 이 부분에 있어서 삼위일체 하나님은 전적으로 통일이 되어있습니다. 절대로 통일이 되어 있습니다. 그 만큼 율법은 위대한 하나님의 법으로서 모든 인간이 이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정의롭게 살 수가 있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지구상의 물질과 인간의 존재를 넘어서 위대한 법이 율법입니다. 이 법에는 사랑이시며 정의로우시며 신실하신 하나님의 속성이 그대로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의 정의,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알고자 하는 이는 모세 오경 율법을 보시면 알 수가 있습니다. 1000년을 모든 민족을 우선해서 이스라엘 한 민족을 특별하게 하나님께서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율법을 모세를 통해서 시내 산에서 주시면서 계약을 맺었으니 구약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율법의 규정대로 살면 축복을, 만약에 율법을 어기면 이스라엘에게 저주를 내린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 다윗 시대를 제외하곤 율법을 잘 배우지도 지키지도 않습니다. 이를 성경은 간음한다, 우상을 섬긴다, 패역하다, 제 길로 간다, 목이 곧다, 산에 단을 짓는다 등으로 표현을 했는데 모두가 율법을 어긴다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죄악으로 가는 민족을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해서 돌이키게 합니다. 1년도 아니고 십년도 아니고 100년도 아니고 무려 1000년을 그렇게 희망을 가지시고 사랑하십니다. 어떤 사람이 만약에 자신의 아내가 다른 남자와 바람이 나고, 또 어떤 아내의 남편이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나면 이들은 바로 이혼하거나 혹은 불륜 남자나 여자를 찾아가서 때리고 혹은 죽이기도 할 것입니다. 정말로 인간이 한 시도 참을 수가 없는 죄악을 이스라엘은 1천년 동안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를 바로 잡으려고 선지자를 보내서 권면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런 선지자들을 도리어 죽이고 핍박합니다. 그리고 거룩를 상실하고 음란하게 즉 율법을 어기고 지키지 않고 무시하고 삽니다. 무려 인간이 한 순간도 참을 수가 없는 악행을 하나님께서 보시면서도 천 년을 참으시며 이스라엘을 사랑하십니다. 그러다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는 하박국과 같이 동족이 동족을 멸망시켜 주세요하고 기도할 때 쯤 하나님께서 마침내 이스라엘을 멸망 시키십니다. 이런 율법이 지켜지는 이스라엘을 천 년을 기다리시던 하나님께서 이제는 새로운 방법으로 율법이 지켜지는 세상을 꿈을 꾸십니다.
그리고 그 위대한 사역에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모두 함께 하십니다. 이제는 사람 자체를 율법을 잘 지킬 수가 있게 새롭게 창조를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수님을 주시고 성령님을 선물로 주심은 절대로 이 세상에서 돈이나 몇 푼 더 벌고 집이나 몇 채 더 가지게 하려고 하심이 절대로 절대로 아닙니다.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의 뜻은 율법을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잘 지키는데 있습니다. 그분들이 이 땅에 세우고자 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바로 율법을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 법은 이런 나라를 세우는데 너무나 완벽한 법입니다. 미천한 인간이 만드는 불공평하고 정의롭지 못한 법은 절대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신봉하고 믿고 죽도록 배우는 한국 헌법도 미국 헌법도 절대로 그 법이 아닙니다. 이 법도 우리가 존중함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고자 함입니다. 또 지금 세상의 법이 어느 정도 성경의 내용을 반영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먼저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고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 순종하셔서 이 땅에 오십니다. 모든 일이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비롯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실 대속의 희생이 되십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예수 이름의 세례를 받게 되면 죄에 대한 용서가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이제는 이 사람은 죄가 없는 상태가 됩니다. 이 사람에게 성령께서 선물로 오시고 이 사람은 마음이 부드럽게 됩니다. 이 사람이 거듭난 사람입니다. 물과 불로 거듭난 사람이며 새롭게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로 창조가 된 새 창조물(새 피조물)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엡 2: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2:10. 우리는 하느님의 작품입니다. 곧 하느님께서 미리 마련하신 대로 선한 생활을 하도록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창조하신 작품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공동으로 만드신 위대한 인간들입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낙관이 찍힙니다. 성령의 인 즉 도장이 찍힌 사람들입니다. 바울과 같고 초대 교회 모든 성도들이며 후대에 성령을 받은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위대한 분들입니다. 비록 외모는 과거와 같으나 진실로 이 분 한 분 한 분이 너무나 위대하고 영생을 누릴 멋지고 멋진 분들입니다. 믿는 성도는 이런 여자와 남자를 짝으로 선택을 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마음대로 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생각도 하고 우리 몸을 움직이기도 하지만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서 그냥 계시지 않고 역사를 하십니다. 우리를 감동하게도 하시고 기도하게도 하시고 어디로 가게도 하시고 악을 행할 때 우리를 막기도 하십니다. 우리가 율법을 잘 모르는 한국인이라도 이렇게 하십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는 일을 가장 원하시고 우리가 그렇게 할 때 성령께서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선한 일을 하게 하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로 남을 돕게 하시고 착한 행실을 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비록 율법은 잘 몰라도 성령께서는 모든 이를 품고 사랑하게 하십니다. 모든 이를 품고 전도를 하는 분들은 모든 분을 사랑합니다. 우리는(전도자들) 그분들의(전도 대상자들) 눈치를 봅니다. 우리는 그분들께 나눔을 기뻐합니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때에 따라서 분위기에 맞게 가장 귀한 진리의 말씀 복음을 전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분들이 아무리 우리들에게 악을 행해도 지혜롭게 대처합니다. 악에 악으로 대항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반응하면 전도 대상자가 떨어져 나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대상자를 정하고 우리는 끝까지 사랑합니다. 우리는 불신 가족을 그렇게 사랑하고 불신 직장 동료를 그렇게 사랑하고 이웃을 그렇게 사랑합니다. 그들이 원수같이 덤벼도 우리는 참고 기도하면서 사랑합니다. 이들이 성령을 받은 전도자들 입니다. 저도 100% 그렇게는 못했지만 그렇게 살고자 노력을 했습니다. 그런데 제 능력과 수양과 인격은 절대로 그렇게 못하고 능력도 없습니다. 그런데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특히 예수님께서 쉬지 않고 제 곁에서 함께 하시며 제가 그렇게 살도록 하셨습니다. 성령께서 제게 성경을 읽고 요약하게 하시고 이 일을 즐겁고 쉽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님께서(예수님께서) 쉬지 않고 제가 말씀을 하셨습니다. 들을 수가 있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네가 너를 사랑한다! 힘을 내어라! 걱정을 말아라! 너는 내 희망이다 내 꿈이다 이렇게 쉬지 않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루에도 여러 번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은행에서 나온 후 약 40년을 가난하게 살면서도 평안하게 버틴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저는 예전엔 성질이 급하고 누가 제게 악을 행하며 바로 응징을 하고 벌을 주었던 사람입니다. 이런 일을 하는데 천재적인 능력이 있었습니다. 과거의 저는 아무도 제게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하고 살았던 사람입니다. 제가 1986년 경 성경 말씀으로 회개하고 그리고 1991년 5월 19일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그리고 1992년 봄이 신림동 선민교회에서 예수님께 직접 불을 받은 후에 정말로 저는 천국에 3일간 있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부드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행정고시를 약 8년 대학원 대학으로 했지만 낙방을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목사가 되려고 성경을 읽고 요약했습니다. 전도를 쉬지 않고 했는데 30년이 넘었습니다. 시행착오도 많았습니다. 성령을 받아도 그 의미가 무엇인지 잘 몰랐습니다. 그리고 과거의 악한 행위를 다시 할 때도 있었습니다. 성경도 깊이 모르고 교회에 대해서 예수님과 하나님과 성령님에 대해서도 깊이 알지 못했습니다. 시간과 경험과 그리고 성경을 읽고 요약하고 복음을 쉬지 않고 전하는 과정 속에서 조금씩 성경의 내용들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성령께서 순서와 절차에 맞게 하나 하나 차근 차근 제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비로소 저는 이 구절이 이제 올바로 이해가 됩니다. 바울 사도는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고 복음을 전하며 약 20년이 지났을 때 로마서를 씁니다. 그리고 로마서 7장 6절에서 자신이 영으로 섬긴 것을 경험적으로 증거를 하시는 것입니다. 자신이 그렇게 율법을 사랑해서 율법을 가말리엘에게 잘 배우고 율법으로 흠이 없게 잘 지키며 살고 또 자신과 같이 이스라엘 사람이 살기를 너무나 바랐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남으로 바울 사도는 그렇게 사는 것이 절대로 율법을 잘 지키고 의롭게 될 수가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성령을 받고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면서 살다 보니 어느새 자신이 율법의 조문 조문을 잘 지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런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바울 사도는 간절하게 율법으로 의롭게 되려는 자신의 동족에게 로마서를 통해서 다른 서신을 통해서 이제는 율법이 아니다 예수님을 믿어야만 한다고 외칩니다. 그는 간절히 다음과 같이 외침입니다.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게 되면 성령의 능력으로 율법을 다 지키게 되는 길이 있다. 율법에 빠진 내 사랑하는 동족 이스라엘아! 그렇게 율법으로 절대 의롭게 되지 못한다. 이제는 예수님을 믿고서 성령의 인도로 율법을 완성하자" 고 말입니다. 이 외침이 바로 로마서입니다. 우리 성도는 모두가 율법을 지켜야 하는데 율법을 잘 배워서 조문 조문을 신경을 쓰면서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 방법은 예수를 알기 전 성령을 받기 전의 바울이 행하던 모습이고 과거의 바울과 모든 이스라엘인이 실패한 방법입니다. 이제는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기기만 하면 됩니다(롬 7:6) 우리가 즉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고 마음이 부드럽게 되어서 성령의 인도를 받기만 하면 저절로 모든 율법이 다 지켜지게 됨을 설명하는 말씀입니다(겔 36:24-27). 사람의 능력으로 불가능한 것을 예수님을 믿고 물로 씻고 죄를 용서받고 성령님을 선물로 받아 불로 거듭나게 되어 마음이 부드럽게 되면서 가능하게 되는 일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영적인 비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신 능력의 영이신 성령을 성도들에게 선물로 주셔서 성령의 도우심으로 인간이 절대로 불가능한 율법의 완성을 성도를 통해서 가능 하게 하십니다. 예수를 믿는 새로운 창조물을 통해서 하시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렇게 되고 이렇게 살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이제 예수님과 성령님을 통해서 율법으로부터 자유가 이루어지는 영적인 비밀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저도 아직은 가야 할 길이 먼 사람입니다. 이렇게 전도를 쉬지 않고 제가 사는 날 동안에 해야 되는 사람입니다. 유혹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 진리를 붙잡고 쉬지 않고 언제나 들판에서 복음을 전하며 살아야 합니다. 함께 해 주시기 바랍니다. 고독합니다. 외롭습니다.
율법으로부터의 자유는 이제는 사람이 아니 되니(사람이 아무리 애를 써도 불가능하니) 하나님께서 직접 우리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가능하게 하십니다. 그 성령님께서 아무에게나 들어가시는 것이 절대로 아니고 이렇게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죄를 용서받은 사람들에게 들어가십니다. 물론 고넬료와 같이 세례 전에 성령께서 오시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렇게 삼위 일체 하나님의 사랑을 동시에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을 받고 새 사람이 되어서 이제 정말로 온 지구가 놀라는 일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예전과 같이 믿지 않는 사람이 하나님도 모르고 사랑도 모르고 율법도 모르면서 하는 잘 먹고 잘 사는 일을 온 정신을 다 바쳐서 하고 있다면 어떻게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선한 일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로마서 야고보서, 마태복음, 에스겔서, 하박국서가 모두가 하나로 통일이 되어있습니다. 믿고 행해야 되고 그 행함이 반드시 정의로워야 합니다. 그리고 그 행위의 기준은 율법으로 악을 행할 때 율법으로 분별합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오셔서 우리가 율법대로 살도록 인도하십니다. 삼위일체 하나님도 한 분이시고 신 구약 성경도 통일이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성령님께서도 율법과 하나이십니다. 예수님 성령님 그리고 율법이 전적으로 통일이 되어 있습니다. 당연히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도 하나이십니다. 즉 율법을 성도가 잘 지킬 것을 너무나 간절히 원하십니다.
국가가 200억을 드려서 전투기 조종사를 모든 공군 병력 중에서 체력적으로 그리고 지적으로 우수한 사람을 골라서 훈련을 시켜 놓았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전투기를 몰고서 적과 싸우는 일은 포기하고 전투기를 버려두고 세상으로 가서 돈을 벌려고 하고 집과 땅을 찾아서 이리 저리 떠돌고 있다고 합시다. 그렇게 되면 그리고 그가 자신의 명성을 찾아서 미친 듯이 살아간다면 국가는 이 사람에게 헛된 일을 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돈도 헛되게 될 것이고 적이 쳐들어 올 때 모든 전투기 조종사가 이렇게 산다면 100전 100패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쏟아 붓는 사랑은 전투기 조종사를 선택해서 돈을 드려 훈련을 시키는 것과는 비교도 하지 못하게 우리에게 투자를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값으로 절대로 따질 수도 없는 수조 원을 주고도 절대로 살 수가 없는 울트라 스텔스 그리고 이 세상 무엇도 파괴하지 못하는 전투복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입혀 주십니다. 그 전투복이 에베소에 있는 6단으로 된 서랍장에 잘 보관이 되어 있고 우리가 믿음으로 입기만 하면 바로 입을 수가 있습니다. 그 열쇠는 단마다 일치합니다. 에베소서 6장 13-17절에 있는 전투복에 대한 말씀입니다. (열쇠 일치는 한국말로 숫자로 13-17이라는 뜻임)
엡 6: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15.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우리의 전투 복장 하나 하나는 그 값이 전투기보다 비교가 되지 않게 귀합니다. 수조 원으로 돈으로 절대로 살 수가 없습니다. 그 전투복은 의의 호심경, 진리의 띠, 평안의 복음의 신발, 그리고 믿음의 방패, 그리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모든 성령을 받은 성도는 이 모든 복장을 믿음으로 머리에, 허리에, 가슴에, 손에 그리고 발에 착용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놀라운 복장으로 우리는 전도를 하고 영적인 전투를 하고 주님과 함께 세상에 맞서서 싸웁니다. 이 전투에 참여하는 것은 팬텀기 조종사 보다 더 귀합니다. 그 영광스러운 일에 예수님께서 친히 부자 청년을 초대했지만 이런 예수님과 복되고 귀한 영광을 모르고 가진 단지 60-70년 누릴 물질에 더 큰 가치를 두고서 예수님의 초청을 거절했습니다.
이제 예수님 안에서 성령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즉 율법으로 온 지구인이 유대인 그리고 이방인 그리고 개신교인 천주교인 정교인 할 것 없이 하나가 되는 길을 보았습니다. 성령을 받고 모두가 이 길로 가기를 바라며 주안에서 하나가 되어 함께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저는 이런 일을 위해서 하나님께 선택이 된 도구입니다. 남해 노량 작은 시골의 어부의 아들을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과 제자들을 제 어린 시절의 바닷가 삶으로 너무나 잘 이해할 수가 있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책을 좋아하게 하시고 눈에 보이는 데로 어릴 때부터 읽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님께서 미군부대 카투사 생활과 대학 대학원을 다니며 몰두한 고시 공부를 통해서 현대의 학문을 잘 배우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고시에 실패하고 천주교 여인과 7년을 살면서 천주교 평신도 신학도 하고 강의도 듣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전처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죄인을 사랑하는 예수님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천주교도 조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저를 너무나 사랑한 아내가 집을 나가고 극심한 우울증과 불면증에 4년을 시달리면서 저는 삶을 체념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제 마음을 보게 하셨는데 마음이 손바닥만 한데 거의 끝 부분 조금만 남겨두고 다 찢어져 갈라져 있는 모습을 보게 하셨습니다. 제 마음이 너무나 아파서 십자가를 보는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무게로 밑으로 몸이 쏠리는데 두 손에는 못으로 두 발에도 못으로 박히셔서 극심한 고통을 받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제 고통이 아무리 커도 예수님보다 작을 것을 볼 때 제 마음의 아픔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저의 재혼을 허락하시고 아들을 낳게 하심으로 전처에 대한 아픔을 다 씼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제 현재의 처가 러시아 국적의 정교회에 왔습니다. 제 아내는 개신교를 믿지만 러시아에 대해서 제가 전적으로 무지하기에 20년간 문화적이 차이로 너무나 강하게 쉬지 않고 서로 싸우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러시아와 정교회에 대해서도 부분적으로 이해하게 하셨습니다. 행정고시 2차 시험에서 1점차 낙방을 하고서 장신대 도서관에서 신학대학원 입학 공부를 할 때 저는 테리 홀이 쓴 파노라마 성경에서 성경을 읽고 요약하는 법을 보았습니다. 그 방법대로 쉬지 않고 약 25년 이상을 하게 되었고 모든 자료를 오천만의 로마서(모든 이를 위한 로마서)에 다 올렸습니다. 그리고 전도하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극도로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먹고 살고자 한 일은 모두가 실패했고 오직 전도와 성경 요약 공부는 풍성함도 차고 넘쳤습니다. 약 20년 동안을 한 달에 40만원으로 수입으로 쉬지 않고 버틴 경험이 있습니다. 저와 제 가족이 한 달에 40만원 정도로 20년 동안을 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어렵게 살다 보니 그리고 제가 생활력이 너무나 없기에 첫 여자는 떠나간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고 성경을 읽고 요약하는 일 외에 달리 다른 일을 할 여유도 없게 된 것입니다. 옷을 모두 중고로 남이 버린 옷을 주워 입었습니다. 어머니와 막내 남동생이 쉬지 않고 제 생활을 도왔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이런 일들이 규모가 조금씩 늘어나서 100개국이 넘는 곳에서 약 35만명이 제 글을 읽었고 책을 약 10권 이상을 낼 준비가 되었습니다. 부활을 소재로 한 전도 자료는 역시 책으로 낼 준비를 하고 있는데 중국어, 러시아어, 그리고 영어, 일본어 한국어로 번역이 되어 온 세상의 사람을 구원할 것이라 저는 믿습니다. 제 자료는 약 4년 전에 미국의 하버드와 예일 그리고 프린스턴 신학교 교수님께 그리고 영국의 옥스퍼드에 역시 교수님께 영어로 번역을 해서 보냈습니다. 이번에 십일 전에 한국의 신학 대학 약 10곳과 미국과 영국 그리고 캐나다의 신학 대학 10곳에 각각 5분의 교수님께 역시 "하나님 나라의 건설과 바울 서신"이라는 글을 영어와 한국어로 모두 80여분께 보냈습니다.
제가 약 6년 동안 쓴 900편의 글을 보시면 오늘 이 글과 같이 긴 글들이 대부분인데 제가 제 자료의 보존을 위해서 모두를 복사해서 워드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양이 300페이지 책으로 약 75권쯤 되었습니다. 1년에 약 12-13권씩, 한 달에 300페이지 책을 한 권씩 6년 동안 한 달도 빠짐없이 쉬임 없이 쓴 것입니다.
제 스스로도 감당이 되지 않는 양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글은 오늘 이글을 아침 약 7시 반에 시작해서 지금 오후 1시에 끝을 내는데 99% 이렇게 단숨에 다 썼으니 어찌 인간의 힘으로 이렇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제가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아니고 그럴 능력도 없습니다. 이 사실도 이 일이 제가 한 일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저를 통해서 하시는 일 임이 온 세상에 증거가 됩니다. 6년을 쉬지 않고 하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이고 그 많은 양을 절대로 절대로 제 머리로 쓸 수가 없습니다. 언젠가 제가 전도 편지를 쓸 때 이런 영적인 체험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게 오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너는 저리로 가라 내가 쓴다 하셨는데 제가 글을 쓰는지 예수님께서 쓰시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글을 다 쓴 후에 제가 이렇게 개인적인 경험을 적는 것은 부디 제 글을 읽고 믿으시고 이렇게 온 세상을 하나 되게 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의심치 말고 믿으라는 뜻에서 입니다. 그리고 언제나 강조하는 말인데 성령을 반드시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렇지만 베드로를 통해서는 사람이 말씀으로 거듭나게 된다고 하셨습니다(저도 전도자가 전해 준 성경책으로 하나님께서 저를 회개 시겼습니다. 고린도 전서 13장의 말씀이 거울과 같이 제 마음을 비추고 악하고 흉한 제 모습이 보였습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 회개했습니다. 당시에 다시는 예전과 같이 살 수가 절대로 없게 강력하게 제 자신의 죄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통해서 쉬지 않고 인도 받고 깨닫고 위로 받고 새 힘을 얻었습니다. 말씀의 능력도 말로 다 할 수 없이 위대합니다)
하나님의 일이 때론 다양하게 나타남으로 어떤 한가지 사례와 말씀으로 모든 것을 다 설명할 수도 없음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제가 아는 바는 여기까지 입니다. 더 깊고 온전한 이해가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제 글이 또한 그런 이해로 나아가게 하는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볼로와 같이 아직 성령의 세례를 모른 채 성경을 깊이 연구하고 잘 이해하시는 분들이 성령님을 받게 되면 너무나 놀랍고 위대한 일을 이 시대에도 할 수가 있으리라 믿습니다. 성경을 늘 읽고 묵상하시고 또 배우고 가르치시는 모든 분을 존경하며 모든 분께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이 늘 지속되기를 기도합니다. 성경을 학문으로 연구하시는 모든 분께 도움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베드로의 신앙은 고넬료를 만남으로 더 넓어졌고 바울 사도와 교제함으로 더욱 깊어지게 되었으리라 믿습니다. 자신이 체험한 것과 다른 성령께서 오시는 절차를 보고 자신의 한계(이방인도 예수를 믿음, 세례를 받지 않고 먼저 성령께서 오심 후에 세례를 받음)를 극복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배움과 다른 율법의 깊이가 있는 성령을 받은 바울을 볼 때 느끼는 바가 많았을 것입니다. 베드로의 신앙의 바운더리는 이들을 통해서 더욱 풍성해지고 넓어지게 되었으리라 믿습니다. 저도 모든 분께 신앙의 한계를 넓혀주고 깊이를 더해주는 형제가 되기를 원합니다.
흉악한 죄인인 저를 택하시고 인간이 할 수가 없는 인내로 기다려 주시며 사랑하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사랑으로 너무나 큰 죄들을 예수님의 보혈과 십자가 대속으로 용서받게 하신 우리 주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 그리고 성령님의 언제나 함께 하심과 인도하심을 또한 감사하며 찬양합니다. 이 말로 다할 수 없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이 이렇게 온 세상에 하나 됨의 글을 저로 하여금 쓰게 하셨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다 돌립니다. 주님의 이름이 세세토록 영광을 받으소서! 할렐루야!
하나님 아버지! 제가 아버지의 망극 하신 사랑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십자가 대속의 은혜와 그리고 성령님의 선물로 새롭게 창조가 된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이렇게 글을 쓰게 됨을 믿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 모든 인간에게 주신 말씀을 찬양합니다. 성경 말씀을 통해서 죄를 깨닫고 하루하루 험하고 어두운 세상을 성경 말씀의 비추임과 인도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로 받고 힘을 얻고 영혼의 갈급함을 해소합니다. 세상의 모든 성도가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해서 사랑하기를 바랍니다.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할렐루야!
2024년 2월 20일 13시 1분
율법으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 the law)
샬롬! 새 봄이 오고 있습니다. 2월도 얼마남지 않았습니다.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하나됨에 이어서 율법으로부터의 자유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다양한 사람의 다양한 의견이 있는 부분입니다. 저의 이해는 모든 분께 새로운 흥미와 관심을 줄 것입니다. 모든 분이 성령을 받고 성령의 인도로 율법을 완성하는 그 날이 속히 오기를 바랍니다. 모든 지혜를 주신 성령님을 찬양합니다.
롬 7: 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7.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율법으로부터의 자유는 이해가 쉬운 말이 아닙니다. 진실로 율법에 대해서 자유를 누린 사람의 고백이며 주장이기 때문입니다. 에베레스트 8,000M 급 고산을 전부 등반을 해 본 사람이 산의 정복에 대해서 남긴 말을 이제 동네의 작은 야산을 오르고자 하는 이가 이해하기 어려운 것과 같습니다.
진실로 율법으로부터 자유를 누려보지 못한 사람이 이 부분에 대해서 아무리 연구를 해도 머리를 짜도 이해가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 성경 구절에 대한 이해가 분분한 실정입니다. 바울 사도는 홀로 율법을 가말리엘에게 잘 배우고 이 율법대로 살려고 몸부림을 쳐본 사람입니다. 그리고 율법으로 자신은 흠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고 믿었습니다. 그 정도로 율법을 구절 구절 잘 배우고 실제로 삶에서 실천했고 율법에 대해서 신뢰가 두터웠습니다. 그리고 모든 유대인이 자신과 같이 율법을 잘 배우고 실천하기를 바랐습니다. 실제로 율법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살아야만 된다고 강조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신은 율법으로 즉 율법을 그대로 잘 지켰으므로 스스로 의롭다 여기면서 살았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그렇게 믿었습니다. 이런 자신의 생각이 틀리고 착각임을 알 수도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자신의 신념과 다르게 행동하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자신이 믿는 유대교에 대적하는 사람으로 굳게 믿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잡아서 옥에 가두는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나자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자신이 그렇게 옳다고 믿던 신념 체계가 송두리째 흔들렸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예수를 믿어야 한다는 복된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과거에 자신이 누리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헌신했습니다. 그렇게 적어도 20년 이상을 외치며 다니다 이제 고린도에서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자신과 같이 살라며 이 편지를 보냈습니다. 기원후 약 57년 경 이었습니다. 그 내용이 우리가 오늘 배울 율법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진실로 율법을 어려서부터 조문 조문 잘 배우고 이 율법대로 모든 것을 다 바쳐서 살고자 했던 사람이 이렇게 율법으로부터 자유를 외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람이 왜 이렇게 되었는가를 이해를 해야 우리도 이 구절을 이해하고 바울 사도가 누린 율법으로부터의 자유를 비로소 누리가 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제는 율법의 묵은 것이 아니라 영의 새로운 것(방법)으로 섬기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과연 영의 새로운 것은 무엇이며 우리는 어떻게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수가 있는가? 이 문제가 풀려야 합니다. 영의 새로운 것은 과거 바울이 체험하지 못한 새로운 체험이었습니다. 우리는 영의 새로운 것(방법)이 성령의 방법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성령을 모르고 성령이 없던 사람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서 이렇게 주장을 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영의 새로운 것(방법)과 예수님과는 너무나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 됩니다. 이 관계를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이해를 해야만 됩니다. 이 이해가 없이 우리는 절대로 이 구절의 올바른 이해로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 성령의 새로운 것으로 개역개정은 번역을 했습니다. 제가 보니 영문 NIV는 새로운 것을 way로 되어 있습니다. 성령의 새로운 방법이 더 적합할 것 같아서 괄로에 방법을 넣었습니다.
예수님과 3년을 같이 보내며 예수님으로부터 하늘나라와 신 구약에 말씀에 대해서 잘 배운 제자들도 성령에 대해서는 깊이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물세례 시에 성령이 비둘기와 같이 예수님께 내린 것을 본 제자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께 성령에 대해서 들은 바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의 세례에 대해선 모든 제자가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승천하시기 전에 말씀을 하실 때에도 잘 이해가 되지 못했습니다. 이는 그들이 말로만 성령세례를 들었지 과연 그 의미가 무엇인지 직접 체험을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역시 성령세례를 받지 못한 모든 성경을 읽고 연구하고 예수를 믿는 사람도 당시의 성령을 받기 전의 제자들의 상태와 같다고 보면 될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직접 체험하지 못한 일에 대해선 아무리 귀로 들어도 믿는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120명의 성도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마가 다락방에 모여서 기도하고 말씀을 볼 때 성령께서 급하고 강한 바람 소리와 함께 임하셨습니다.
불의 혀 같은 것들이 각 사람의 머리 위로 임하는 것을 모두가 보았습니다. 그리고 각자에게 임한 성령을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갑자기 다른 나라의 말을 유창하게 하는 것도 체험했습니다. 자신들이 배우지 못한 외국어를 마음대로 하는 자신들을 보고 자신도 놀라고 당시에 명절을 맞아서 온 디아스포라 유대인도 놀랐습니다. 이를 보고 놀라는 동족에게 베드로가 설교를 하니 5천 명, 3천 명이 믿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성도들이 이 기적을 보고 또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며 병자를 위해서 기도할 때 치유가 되는 기적이 일어남을 보았습니다. 그들 모두는 성경의 말씀대로 성령을 받자 권능을 받고 예수님의 증인이 될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그대로 실현이 됨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변화를 어떻게 이런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는가 묻는 동족에게 베드로는 이렇게 설명을 합니다. 이 구절의 말씀이 바로 바울 사도에게도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이 바울 사도는 성령의 새로운 것(방법)으로 섬긴 20년이 넘는 자신의 경험을 로마서 7장 6-7절에서 하는 것입니다.
행 2: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이제 이 과정을 바울 사도에게 적용을 시켜봅시다. 과연 바울 사도는 이런 과정을 겪었을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서 말에서 떨어지고 눈이 멀게 된 장면으로 가 봅시다. 예수님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순종할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된 바울 사도에게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십니다.
행 9: 6.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7.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서 있더라
8.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9.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니라
15.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16.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17.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18.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이제 바울이 예수님을 직접 만나니 과거의 모든 일은 송두리째 잊고 예수님에게 순한 양이 됩니다. 자신이 모르던 예수님의 본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고, 눈이 멀게 되었으니 과거의 일은 이제 모두가 흘러간 일이 되었고 이제 해야 할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일이 눈을 회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3 일을 먹고 마시지도 못했으니 먹고 마시는 것을 회복하는 일도 너무나 중요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졸지에 가장 잘 났다고 기세가 등등하던 사람이 이 세상에서 가장 초라한 볼품없고 쓸모없고 희망이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나니아가 그의 생명의 소망입니다. 아나니아를 만나는 일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때 아나니아에게도 오셔서 명령을 하십니다. 그래서 둘이 만났습니다. 아나니아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신 바울의 눈의 회복과 성령의 충만에 대해서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바울과 아나니아는 베드로 사도의 행전 2장 37-39절의 말씀과 같은 절차를 행했습니다. 우선 바울의 회개는 이미 예수님을 만났을 때 너무나 강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신 분도 아니시고 만만히 대해야 할 분도 아니시고 바울 자신을 죽고 살릴 생명의 주인이 되심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과거에 믿던 것들이 전부 날아갔습니다. 그리고 절대로 죽어도 예수님께 덤빌 생각도 없어졌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을 잡으려 갈 생각도 날아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자신이 살 수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회개입니다. 과거의 일들을 모두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회개입니다. 이제 아니니아가 바울에게 안수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이 이름의 물세례도 받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과거에 지은 바울의 모든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설명한 성령을 받는 요건이 충족이 됩니다. 성령께서 바울에게 오셨습니다. 성령 충만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이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아라비아 사막에서 예수님의 훈련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그렇게 자신이 있던 구약의 말씀을 성령의 조망으로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구약에서 약속하신 메시야가 예수님이심을 너무나 정확하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예수님께 천국에 대해서 교육을 받은 서기관 1호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즉 주인과 같이 때에 따라서 옛 보물도 새 보물도 보물 창고(성경책)에서 나누어 줄 능력자가 되었습니다. 사실 보물 창고가 바로 예수님 자신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면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물을 만나는 것이 됩니다. 지구 전체가 다이아몬드가 되어도 성경책 한 권 보다 귀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성경책의 주인이며 성경책의 주인공이 예수님이시니 예수님을 만나는 것은 이렇게 복된 일입니다. 바울 사도의 변화는 예수님과 만남에서 비롯됩니다.
마 13: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그리고 바울이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되니 성령님께서 성경도 가르치시고 능력도 행하게 하시고 복음도 전하게 하시고 선하게 살게 하십니다. 만능이십니다. 율법을 그대로 조문 조문 예수님의 말씀대로 지키게 하시고도 남을 능력의 분이 바울 마음속에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 사도는 이제는 영의 새로운 방법으로 모든 이를 섬기게 되었습니다. 그는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을 말씀으로 세웠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약속대로 바울과 늘 함께 하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를 3층 천으로 초청을 하셔서 말도 다 이를 수 없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때 그는 성령의 인도를 너무나 잘 받게 마음도 부드럽게 되었습니다. 에스겔서의 내용이 그대로 바울 사도를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주가 되신 예수님께서 늘 그와 함께 하셨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는 예수님의 보호와 성령님의 인도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귀를 기울이고 순종 하면 죄를 지을 틈이 없습니다.
겔 36:24.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28.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바울은 절대로 절대로 하나님의 말씀이며 핵심인 모세 오경의 율법을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율법 조항은 그대로 존중하면서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데로 순종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은 사랑 중에서 가장 큰 사랑을 하는 것입니다. 온 한국의 땅을 다 자식에게 물러 주어도 복음을 전하지 못하면 그 자녀는 겨우 70-80년 이슬과 같은 짧은 삶을 살다가 죽습니다. 지옥에 갑니다. 그런데 자녀에게 아무것도 물려 주지 못해도 당신이 예수님을 자신의 자녀로 하여금 믿게 하면 놀라운 축복이 당신의 자녀에게 임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를 돌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이 땅에서 복된 일만 하게 하시고 천국으로 인도하시고 상도 받게 하십니다. 이렇게 전도는 귀한 일이고 사랑을 실천하는 일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가장 큰 사랑을 실천하는 일을 일생을 합니다. 그리고 전도자(바울 사도는)는 절대로 악을 행치 말고 선하게 의롭게 사라고 늘 외칩니다. 율법의 완성은 사랑을 하면 된다고 하셨는데, 바울 사도는 이 사랑의 실천으로 모든 율법을 다 지키게 되고 실천하게 됩니다.
바울 사도는 이 놀라운 율법의 완성을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몸으로 실천하고 이를 눈으로 보고서 로마서 7장에서 그렇게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아서 성령의 새로운 방법으로 섬기다 보니 자신이 그렇게 율법을 통해서 의롭게 되고자 했던 꿈을 이루게 된 것을 확인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에서 다른 서신서에서 쉬지 않고 외쳤습니다. 율법이 아닙니다. 행위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으세요 그리고 성령으로 섬기세요 하고 외쳤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을 하면 사람들이 너무나 귀한 율법을 함부로 할까 보아서 율법에 대해서 쉬지 않고 또 말씀을 하셨습니다.
롬 2:12.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롬 3: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롬7:7.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율법으로부터 자유는 비록 율법을 이제는 잘 알지만 그 조문 조문 지키려고 애를 쓰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에 대해서 죽은 것으로 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자유롭게 되어서 성령의 인도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죽어도 하지 못하는 율법의 완성을 이제는 성령께서 전능하신 하나님이신 성령께서 우리 마음속에 오셔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나를 새롭게 창조하심으로 가능하게 하십니다. 율법을 잘 지킬 마음이 부드럽게 된 새로운 인간 즉 창조물이 된 우리, 거듭난 우리에게 능력의 영이신 성령께서 오셔서 직접 모든 율법이 지켜지게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반드시 알아야 하는 한 가지가 있으니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인간을 에덴에 살게 하신 후 지금까지 너무나 간절하게 모든 인류가 율법을 지키기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사랑이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천 년을 지켜보셨습니다. 율법이 잘 지켜지기를 간절히 바라셨습니다. 그런데 결국은 이스라엘은 실패했습니다. 이제 삼위 하나님께서 다시 새로운 인간을 창조하시고, 이 인간은 이제 율법을 잘 지킬 정도도 부드럽게 마음이 된 창조물입니다. 즉 이제는 삼위 일체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율법을 잘 지킬 수 있는 인간으로 죄인들을 재창조하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성령님의 사역으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이 이제 홀로 율법을 지키도록 내 버려 두시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하나님의 한 분이신 성령님께서 마음속에 직접 오셔서 내주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감동하시고 인도하시고 기도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하십니까?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선하게 살게 하십니다. 결국은 율법을 완성시키는 방향으로 인도하십니다. 율법으로부터의 자유는 결국 예수님과 성령님을 통해서 율법을 조문 조문 잘 지킴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거시적으로 사랑으로 그렇게 하시고 미시적으로 율법의 준수를 통해서 그렇게 하십니다. 놀라운 영적인 비밀입니다.
참고로 새 피조물 즉 새 창조물이 어떤 사람인지 도표로 표시를 했습니다. 먼저 그 사람은 자신이 죄인임에 대한 인식과 고백이 있어야 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을 그의 구세주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세례를 받게 됩니다.이제 하나님께서 이 사람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으니(물 세례) 과거에 그가 지은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이제 이 사람이 사도 행전 2장 37-39절의 말씀대로 성령을 선물로 받을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기다렸다가 성령을 받게 되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함께 사역하심으로 새롭게 창조가 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작품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그 작품에 성령께서 도장을 찍습니다 화가가 그림을 다 그려놓고 낙관을 찍어 자신의 작품임을 표시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제 이 사람은 마음이 부드럽게 되어 율법을 잘 지킵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됩니다. 초대 교회 바울 사도와 모든 성도는 이렇게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이들이 성령의 인도를 받고 율법을 잘 지키게 될 때 이들이 율법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것입니다. 이들 중에서 적당한 때에 하나님께서 의롭다 인정을 하십니다.
성령의 체험도 없고 인도도 없고 오직 성경을 배워서 이를 풀고자 하면 정말로 어렵고 시간이 가도 풀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미련한 저도 게으른 저도 하나님의 말로 다할 수 없는 사랑과 은혜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보혈과 십자가 대속의 사랑으로 성령을 받아서 이렇게 설명을 드립니다. 죄를 용서받고 성령을 받고 약 32년을 살고 이렇게 말씀을 드립니다.
이제 앞에서 보여드린 도표로 율법으로부터의 자유를 설명을 해 보겠습니다.
동그란 원은 지구의 둘레입니다. 약 40.000km입니다. 초록색과 빨간색은 각각 248구간과 365구간으로 나누었습니다. 약 200km와 130km 길이의 구간이 지구의 둘레에 각각 248개와 365개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구간 중간에 스탬프를 찍는 막사가 있고 각 구간에 다 휴식처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지구상에 불신자, 유대인 그리고 예수를 믿는 이가 살고 있습니다. 248구간과 365구간의 각각 모세 오경의 율법 조항을 의미합니다. 무엇 무엇을 하라는 조항은 248 게 조항으로 초록색입니다. 하지 말라는 조항은 365 조항 빨간색 구간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살면서 반드시 초록색의 구간 248구간을 발로 걸어야 한다고 정해 두었습니다. 그 구간을 걸을 때마다 상급이 있고 사는 날 동안에 복을 받고 살고 난 후에 천국에 가는 복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빨간색 구간은 가면 이 땅에서 저주를 받고 너무 어기면 지옥에 간다고 정해 두었습니다. 가족과 함께 초록색 구간을 걸어도 되고 홀로 가도 되고 친구와 같이 가도 됩니다. 그리고 빨간색 구간도 역시 그렇게 갈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각 구간 중간에 지나갔음을 확인하는 스탬프를 찍는 곳이 빨간색과 초록색 구간마다 다 있습니다. 그냥 지나가는 경우에는 복을 받고 벌을 받는 조건에 조금 부족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초록색을 모두가 걸을 때 온 지구상에 평화와 질서가 있고 하나님의 축복이 넘쳐서 천국이 됩니다. 그런데 빨간색의 길을 걸을 때 지구는 무질서와 불행이 임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정해 놓은 법이라 합시다. 그런데 직접 파란색과 빨간색 구간을 실지로 걸으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기준에 충족이 됩니다. 그런데 이와 달리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법으로 올바르게 살면 또 초록색 구간을 걸은 것으로 보아 준다고 정했습니다. 그리고 악하게 살면 빨간색 구간에 직접 가지 않아도 간 것으로 보아 스탬프가 찍힌다고 합시다. 하나님께서 정해 준 기준으로 사는 법이 직접 40.000km의 지구 둘레를 완주함으로 성취하는 방법이 있고 또 세상에서 기준대로 살면 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리고 빨간색의 길과 파란색의 길에는 나름대로 사람을 끄는 일들이 숨어있다고 합시다. 아무리 가지 말라고 해도 빨간색의 길에는 달콤한 유혹이 있다고 하고 초록색의 길에도 나름대로 즐거움이 있다고 합시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정해 두었다고 합시다. 그리고 세상에서 살다가 초록의 길로 가고자 마음만 먹으면 즉시 이동이 가능하다고 합시다. 그런데 빨간색의 길고 즉시 이동이 가능한데 3번 예해야 된다고 합시다. 즉 초록색이나 빨간색의 길로 이동하는데 시간과 비용이 들지 않고 마음만 먹으면 즉시 갈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구간을 마치면 또 즉시 세상으로 복귀가 가능합니다.
유대인은 이를 믿고 어려서부터 자녀들에게 이를 교육을 잘 시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자녀가 반드시 초록색의 구간을 일생을 통해서 다 걸을 수가 있게 교육을 시킵니다. 아버지는 자녀에게 구간의 종류와 특징에 대해서 잘 배워줍니다. 그리고 자녀들이 가서는 아니 되는 구간에 대해서도 잘 설명을 합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도 틈이 나는 대로 가서 초록색의 구간을 걷고 스탬프에 도장을 잘 찍습니다. 일생을 사는 동안 자신도 이를 잘 지키려고 하고 아들과 딸에게도 잘 순종하게 합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도 역시 정직하고 정의롭게 살고 그렇게 살도록 자녀를 가르칩니다.
이를 믿지도 않고 마음대로 사는 사람이 또 있습니다. 이들은 이방인입니다. 이들은 이런 약속에 대해서도 무지하고 그 구간에 대해서도 무지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마음대로 살다가 보니 자연스럽게 빨간색 구간만 쉬지 않고 방문하는 결과가 됩니다. 빨간색 구간의 스탬프가 쉬지 않고 찍힙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주신 양심의 법을 지키며 초록색 구간의 길로 걷는 사람도 없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모든 지구상의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믿으면 죄를 용서해 주고 선물로 이 구간을 걷지 않고 육지도 다니고 물로도 다니고 그리고 하늘로도 다닐 수 있는 하늘 차(도표에 있는 차)를 한대씩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아주 능력있는 운전자도 믿는 이들에게 붙여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제는 내가 원할 때 그 초록의 구간을 차를 타고 가거나 날아서 갈 수가 있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역시 성도는 스탬프가 있는 곳에 내려서 스탬프만 자신이 찍도록 했습니다.
차의 성능도 너무나 우수해서 40.000km를 순간적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운전자는 너무나 나와 잘 맞습니다. 운전자는 모든 상황을 알고 나를 이 땅에서도 행복하게 즐겁게 살고 그리고 그 초록색의 길도 쉽게 가게 합니다. 내가 싫다고 하면 운전자는 조용히 나를 기다립니다. 내가 빨간색 구간으로 가고자 하면 운전자는 아니 된다고 막습니다. 그러나 강제는 아닙니다. 물론 때론 강제로도 막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차를 그냥 준다고 합니다. 단 예수를 믿어야 준다고 합니다. 그리고 치 차는 선물인데 반드시 예수를 믿고 베드로가 말한 조건을 지켜야 준다고 합니다. 이 하늘 차가 성령의 선물입니다.
내가 받아서 타고서 운전자와 소통하면서 세상에서 착하게 살고 행복하게 살면서 하나님께서 지키라고 명하신 초록의 길을 쉽게 다 스탬프를 찍으면서 갈 수가 있게 하십니다. 운전자는 나를 강제로 막 끌고 다니지 않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믿게 되면 하늘 택시를 선물로 받고 우리는 마음이 너무나 부드럽게 됩니다. 운전자에게 순종하게 될 정도로 부드럽게 됩니다. 이렇게 즐겁고 쉽게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할 차와 운전자를 받았는데 내가 내 고집을 부리면 아니 됩니다. 그래서 유대인이 일생을 걸어서 수행하는 초록색의 길을 하늘 차를 타고 수행합니다. 우리는 하늘도 날고 육지도 가고 물에도 가는 놀라운 성능을 지닌 차를 타고 운전자가 운전하는 데로 갑니다. 그렇게 우리가 타고 다니다 보면 초록색의 길을 걷지도 않고서도 모든 의무를 다하게 됩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살 때도 빨간색의 길로 가고자 할 때 친절한 운전자는 가지 말라고 권합니다. 그리고 이 운전자는 늘 나와 함께 하면서 나를 돕고 위로하고 격려합니다. 그리고 초록색의 길과 빨간색의 길에 대해서 내가 잘 이해가 되게 설명을 해 줍니다. 내 삶이 풍성해 집니다. 쉬워 집니다. 평안이 넙칩니다. 세상에 하늘 택시와 같은 이런 귀한 선물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예수를 믿는데 이 차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가 이 차를 받고 타고서 평안하게 40.000km의 초록 구간을 완주해야 하는데 차가 없습니다. 심지어 어떤 이는 이런 차가 존재하는 것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들은심지어 차를 선물로 받는 방법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들은 힘들게 초록색의 길을 걸어서 완주하고자 합니다. 때론 그들은 빨간색의 길도 유혹에 넘어가서 걷기도 합니다. 그들은 자기 힘으로 세상을 삽니다. 선물을 받지 못해서 그들의 마음도 부드럽지 못합니다.
누구든 예수를 믿기로 했다면 유대인과 같이 적어도 초록색 구간과 빨간색 구간에 대해서 잘 배워야 합니다. 그래야 복을 받고 저주를 받지 않는 길을 알게 되니 말입니다. 그리고 하늘을 나는 차에 대해서 깊이 관심을 가져야 하고 선물로 받기 위해서 절차를 반드시 지키고 사모해야 되고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차와 운전자에 대해서 잘 배워야 합니다. 선물로 받게 되면 일생을 함께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 놀라운 예수를 믿는 무리가 등장합니다. 그들은 예수를 믿기만 하면 그 초록색 구간은 걷지 않아도 저절로 다 지키게 된다. 즉 그들은 예수를 믿기만 하면 누구든지 의롭게 된다는 주장을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세상에서 이 구간에 대한 공부가 없어서 마음대로 살다 보니 때론 초록색 구간으로 가기도 하지만 또 쉬지 않고 빨간색 구간으로 가기도 합니다. 이들은 그리고 예수를 믿기에 회개만 하면 빨간색으로 간 것은 모두가 다 지워진다 라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빨간색으로 갔지만 즉 세상에서 악하게 살았지만 예수를 믿기에 그들은 그들의 주장대로 빨간색으로 다닌 흔적이 지워질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의 그 행위로 세상은 점점 불행해지고 살기에 어려워 질 것이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빨간색으로 갈 때 패해를 입는 사람들이 생기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천국이 이 땅에 건설이 되지 않습니다. 무려 이렇게 살고자 하는 예수를 믿는 무리가 세상에 대거 존재한다면 어떤 세상이 되겠습니까? 이들이 어떻게 살든지 모든 죄를 용서받아 오직 초록색의 길로만 다닌 것으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신다고 이들은 주장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빨간색의 길로도 가지만 또 회개하면 그 길로 간 흔적이 지워지기 때문에 별로 걱정이 없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이들로 인해서 점점 더 더럽게 되고 악하게 됩니다. 이들에게 불의로 피해를 입는 사람도 많게 됩니다.
그런데 세상이 예수님을 믿는 이를 통해서 맑아지고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편에서는 이들의 행동으로 기쁠 수는 없습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세상이 너무나 더러워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들이 이들 죄인을 위해서 피를 흘리고 죽기까지 했는데 이 사랑과 희생의 대가가 아무런 가치가 없게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이들을 천국으로 반갑게 맞이할 수가 있을지 궁금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이라면 이렇게 사는 사람을 어떻게 하실 것입니까?
율법으로부터의 자유가 율법을 그냥 두고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아서 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또 우리가 새롭게 창조가 되어서 마침내 율법을 모두 다 지킬 수가 있게 됨을 말하는 것을 우리는 앞에서 잘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세상은 너무나 살기에 좋은 천국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런 세상을 만들기 위함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이를 잘못 이해하고 믿는 이들이 행하게 되면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만 사는 세상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는 악한 세상이 됩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이 많아도 잘못 알고 믿으면 세상이 그렇게 될 수가 있습니다. 진실로 하나님의 뜻은 어디에 있을까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정말로 예수를 믿고 회개하고 절차를 지켜서 죄를 하나님께 용서를 받고 그리고 성령을 선물로 받고 그리고 성령의 인도로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모든 것 중에서 하나라도 결핍이 되면 아니 됩니다. 예수님을 믿습니까? 성령을 선물로 받았습니까? 예수님도 믿지 않고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좋아서 지옥에 갈 준비를 이 귀한 생명으로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부디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서 성령의 인도로 이 세상을 행복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지닌 당신도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나도 너도 행복하고 우리의 자녀도 행복한 세상을 만듭시다. 절대로 홀로 마음대로 살지 마시기 바랍니다. 모든 분이 예수를 믿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 행복한 일생을 사시고 천국에서도 상을 잘 받기를 바랍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 아버지께 돌립니다. 우리 주 예수님의 보혈과 십자가 대속의 사랑을 찬양하고 전합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함께 하심과 교통하심을 찬양합니다. 주여! 영광을 받으소서!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