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가단보] 원기 110년 3월 : '본래 마음' 그대로가 '하나'자리
작성자 원포털관리자 (wonportal01) 작성일2025.03.10조회수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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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법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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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마음' 그대로가 '하나' 자리
사람의 마음은 참 미묘합니다. 마음과 마음은 아주 짧은 말을 통해, 때로는 아주 평범한 표정을 통해, 또 때로는 사소한 물건을 통해 전해지고 전달됩니다. 하지만 우리의 ‘본래 마음’은 사실 희로애락이라는 감정 너머 세계에 있습니다. 본래 마음자리에 바탕해 희로애락을 발현해서 활용하며 희로애락에 지배되지 않고 초월해 마음을 쓰며, 한 단계 더 나아가 희로애락을 필요할 때 마음대로 부려 쓰는 능력을 갖는 게 우리의 마음공부입니다. 그러기로 하면 우리는 희로애락이라는 감정의 지배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희로애락에 끌려서 살면 본래 마음을 회복하거나 찾거나 지킬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자성’을 떠나지 않는 공부(불리자성)를 해야 합니다. 그 ‘자성’ 자리를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제불 제성의 심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부처님과 모든 성인의 마음 도장은 어떻게 생겼을까요. 나의 본래 성품과 소태산 대종사께서 깨달은 그 자리가 도장을 찍은 듯 완전히 합일될 때 우리 모두는 부처가 됩니다. 이미 우리의 본래 마음자리에 그러한 모습이 갖춰져 있지만, 우리는 있는 줄을 모르거나 잘 모르고, 혹은 알아도 잊어버리고 삽니다.
종법사 인계인수를 하며 직인을 하나 받았습니다. 그 직인을 ‘제불 제성의 심인’ 또는 ‘일체 중생의 본성’에 비교해 생각해봤습니다. 누구나 내 본래 마음을 그대로 찍으면 ‘하나’ 자리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보면 남녀노소나 시비분별이 없고, 현실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번뇌망상과 시비분별을 넘어 진정한 하나를 이룰 수 있습니다.
내 마음 가운데 있는 모습과 이 우주 전체가 큰 일원상으로 하나 된 모습은 형상 없는 세계에서 보면 둘이 아닙니다. 그러한 일원상 진리를 모시고 일원상 진리를 닮기 위해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마음을 사용하는 것이 바로 일원상의 신앙과 수행입니다. 저를 비롯해 여러분 모두 그 마음 도장을 확실히 찾고 확보해 일원의 체성에 합하고 일원의 위력을 얻는다면, 진정으로 진리적인 삶 그리고 은혜 충만한 극락 생활이 될 것입니다.
우리 회상에는 회상을 지탱하는 중요한 네 가지 기둥이 있습니다.
가장 먼저 정녀(여성) 교무님들은 누가 뭐라 해도 우리 역사에서 부정할 수 없는 중요한 기둥입니다. 그와 함께해오신 남성 교무님들 역시 한 기둥이지요. 또 하나의 기둥은 교무님들을 받들어 호법하는 재가교도님들입니다. 남녀를 불문하고 재가교도가 있기 때문에 우리 회상이 지탱해올 수 있었습니다. 이 세 가지 기둥만 가지고도 어느 정도 회상을 이끌어갈 수는 있겠지만, 저는 우리 회상에 또 하나의 기둥 그룹인 ‘정토’가 있어서 튼튼하게 흔들리지 않고 지탱되고 발전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교단적으로 볼 때 이 네 개의 기둥 중 하나만 무너져도 연쇄 반응이 일어나 전체가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가정에서든 직장에서든 또는 사회생활을 하든 ‘사람을 어떻게 보느냐’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맹자>에 ‘애인불친반기인(愛人不親反其仁)하고, 치인불치반기지(治人不治反其智)하고, 예인부답반기경(禮人不答反其敬)하고, 행유부득자(行有不得者)는, 개반구저기(皆反求諸己)이니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애인불친반기인’이라는 말은 내가 누군가를 사랑으로 대하는데 그 사람이 나를 자꾸 멀리하고 친해지지 않으려 한다면 스스로 자기 자신의 어짊을 돌이켜보라는 뜻입니다. ‘치인불치반기지’는 사람 관계에 있어 서로 가르치고 배우며 살아가는 과정에서 누군가를 다스리는데 상대가 그 다스림을 받지 않는다면 자기 자신에게 다스리는 지혜가 부족했는지를 돌이켜보라는 의미입니다. 또 우리가 사람 관계를 맺는 데 있어 그 관계를 원만하게 지켜가는 것은 서로 도리를 주고받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유가에서는 ‘예(禮)’라고 합니다. ‘예인부답반기경’은 내가 그 예를 갖춰서 할 도리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그 도리를 몰라주고 그에 대한 정당한 반응을 해오지 않을 때, 자기 자신의 공경하는 마음을 돌이켜보라는 말입니다. ‘나는 나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덕과 인자함과 도리를 행하는데 그에 대한 반응이 내가 기대하는 만큼 돌아오지 않을 때, 상대를 탓하지 말고 자기 자신을 돌이켜보라’는 말씀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더욱 발전시키고 더욱 깊게 하고 더욱 원만하게 유지해나가는 데 핵심 요소입니다. 내가 진정으로 사랑했는가, 내가 참으로 지혜롭게 가르쳤는가, 내가 참으로 공경하는 마음을 갖고 도리를 행했는가를 돌아보라는 뜻이지요. 이러한 원리는 우리가 교화를 할 때나 세상에서 일을 할 때나, 또는 직장에서 위치에 따라 상하 관계를 맺을 때나 교우 관계를 해나갈 때나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행유부득자 개반구저기’라는 말은 매사에 구하는 것을 얻지 못할 때 그 원인을 밖에서 찾지 말고 자기 자신을 돌이켜보라는 의미입니다.
제가 종법사 취임법문으로 ‘마음을 하나로, 세상을 은혜로’라 한 것이나, 올해 신년법문으로 ‘우리 모두 하나 되어 감사하고 보은하자’고 한 것도 바로 이러한 공부를 하자는 의미입니다. 정산종사께서 열반하시기 직전에 ‘마음공부 잘하여서 새 세상의 주인되라’는 소박하고 평범한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우리가 결국 해야 할 것은 마음공부이고, 세상을 은혜 넘치고 평화롭게 만드는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마음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부촉과 당부입니다.
- 1월 18일 정토회교당 동선 말씀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