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과학] 소리로 무엇을 할까?
소음으로 전기 만들고, 소리로 바닷물 온도 재요
입력 : 2024.01.30 03:30 조선일보
소리로 무엇을 할까?
▲ /그래픽=진봉기
'사각사각' '톡톡' '쉬이이이잉~' '삐!'
잠시 눈을 감고 청각에 집중해 볼게요. 어떤 소리가 들리나요? 연필로 글씨를 쓰는 소리, 창문 밖 바람이 부는 소리, 체육 선생님의 호루라기 소리…. 우리 주변에는 크고 작은 다양한 소리가 납니다. 덕분에 노래를 들을 수 있고, 친구랑 대화할 수 있고, 주위에 어떤 물건이 있는지 알아챌 수 있어요. 그런데 과학자들은 소리에서 더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고 있어요. 소리로 하는 과학, 함께 살펴봐요.
'왁자지껄' 관객 소리에 극장 전등이 '번쩍'
콘서트장, 공사장, 활주로, 헬리콥터. 이 단어들을 보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바로 귀가 찢어질 듯 시끄럽고 불편한 소리, '소음' 입니다. 보통은 낮 기준으로 50~70데시벨 이상의 소리를 소음이라고 해요. 친구들과 대화하는 소리는 60데시벨, 지하철 소리는 80데시벨, 경적이나 비행기가 내는 소리는 100데시벨을 훌쩍 넘죠. 그러니까 우리는 일상에서 꽤 많은 시간을 소음에 노출되고 있는 거예요.
인도 과학자들은 우리 주변 곳곳의 소음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어요. 그러다 소리가 내는 진동을 통해 전기를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를 떠올렸지요. 아이디어의 핵심은 압전 센서! 압전 센서는 진동을 전기 에너지로 바꿔주는 물체예요. 연구진은 극장에 압전 센서를 달아 아이디어를 직접 실험해 보기로 했어요. 밀폐된 공간이라 소리가 모이기 좋거든요.
소음을 압전 센서에서 전기로 바꾸고, 전기가 조명을 켜는 원리였죠. 극장에서 소리가 퍼지는 방향과 각도, 이런 소리를 가장 효과적으로 담을 수 있는 압전 센서의 위치, 압전 센서를 켤 수 있는 전기의 양 등을 컴퓨터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통해 계산했지요. 계산 결과, 압전 센서를 극장의 벽과 바닥, 천장을 따라 총 1042개를 이어붙이는 것이 최적이라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압전 센서에 전선을 달아 계단에 있는 조명 시스템과 연결했죠.
극장에 60~100데시벨, 최대 120데시벨에 이르는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영화 스크린 속 자동차가 경적을 울린 것과 비슷한 소음이라고 보면 되겠네요. 극장에 가득한 압전 센서를 통해 전기가 만들어졌어요. 계단의 LED 조명 48개를 켤 수 있었답니다.
소리로 바닷속 훤히 꿰뚫어… '소리 레이더'
소리는 어떤 물질의 떨림이 다른 물질을 통해 퍼져 나가는 현상이에요. 예를 들어, 내 목소리는 먼저 성대가 떨리고, 성대를 지나가는 공기가 함께 진동하며 만들어져요. 이 떨림은 입 밖으로 나온 뒤 공기를 타고 퍼져 나가 친구의 귀에 도달하고, 친구가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있죠. 그런데 만약 친구와 나 사이에 벽이 있다면 어떨까요? 아예 안 들리거나 아주 작게 들릴 거예요. 소리는 벽을 통과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대신 소리는 벽에 부딪혀 목소리가 시작된 내가 있는 방향으로 돌아옵니다.
이처럼 소리는 장애물을 만났을 때 튕겨 나오는 성질을 갖고 있어요. 이를 '반사'라고 해요. 과학자들은 소리의 이런 성질을 이용해 바다를 연구하고 있어요. 바다는 너무나 넓고 깊어 사람이 직접 구석구석 다닐 수 없어요. 이때 바닷속으로 소리를 보내는 거죠. 그런데 반대편에서 소리가 들리지 않거나 작게 들린다면, 바다에 장애물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장애물은 물고기, 암벽, 해초,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플랑크톤, 바다의 짠맛을 내는 염분 등 다양하죠. 바다 반대편에서 들리는 소리를 잘 분석하면 이런 바닷속 장애물을 세세하게 파악할 수 있어요.
소리의 반사를 활용해 멀리 있는 물체를 파악하는 장치를 '소나(SONAR)'라고 해요. 소리 레이더라고 할 수 있죠. 소리 파동이 특정 물체에 부딪혀 돌아오는 반사 파동으로 그 물체가 무엇인지 알아내는 기술입니다. 바다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소나를 원하는 깊이의 바닷속에 설치하고, 음파를 내보내서 되돌아오거나 다른 기기에 도착하는 시간을 측정하죠. 음파의 속도는 바다의 수온과 염도, 해류에 따라 달라져요. 그렇기 때문에 음파 속도를 분석하면 수온, 염도, 해류를 알아낼 수 있죠.
숲속에서 동물 소리 찾아내는 '생태음향학'
동물이 사는 모습을 연구하는 데도 소리가 유용해요. 풀과 나무가 울창한 숲속에서나 빛이 없는 밤에 활동하는 동물은 사람이 직접 만나기 어렵죠. 대신 탐사 장소에서 나는 소리를 분석해 동물들의 존재를 알 수 있는 거예요. 이렇게 연구하는 과학 분야를 '생물음향학'이라고 해요. 최근엔 인공지능(AI) 기술이 더해져 정확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어요.
독일 뷔르츠부르크대학교 연구팀은 열대우림에서 발생하는 소리를 분석해 어떤 동물이 얼마나 많이 살고 있는지 알아내는 인공지능을 개발했어요. 연구팀은 에콰도르 열대우림 주변 지역 55곳을 정해 나무에 녹음기를 설치했어요. 나무마다 매일 10분 간격으로 녹음한 소리를 차곡차곡 수집했죠. 연구팀은 AI에 동물별로 어떤 소리를 내는지 울음소리 데이터를 알려주고, 열대우림 소리에서 동물 울음소리를 구분하도록 했어요.
그 결과 AI는 조류 183종, 포유류 3종, 양서류 31종이 열대우림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어요. 연구를 이끈 뮐러 교수는 "포유류와 양서류 등 종별로 울음소리가 다르다는 점을 인식해 구별하는 데 성공한 것"이라며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지역의 생물 다양성과, 생물 다양성의 회복 정도를 정확하게 조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어요. 실제로 과학자들은 바닷속 돌고래가 아픈지 건강 상태를 확인하거나,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을 찾고, 특정 지역에 얼마나 다양한 생물 종이 살고 있는지 연구하는 데 소리 데이터를 활발하게 이용하고 있답니다.
이윤선 과학 칼럼니스트 기획·구성=장근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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