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 나의 신부, 강릉여고
강우량과 똥냄새
오후 수업이 끝난 후 저녁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교실을 나서는 학생들에게 말했다.
"오늘 밤 10시쯤부터 비가 제법 올 것 같으니 우산 갖고들 와라"
"아까 저녁 뉴스 보았는데 비 올 확률이 매우 낮았는데요"
"갖고 오라면 갖고 와, 우산 하나 들고 온다고 큰 탈나는 거 아니잖아"
"예에~~"
그런데 그 날 야간 자율학습이 끝난 10시쯤 정말 꽤 많은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현관 앞은 발을 동동 구르는 아이들로 북새통이었고 교문 앞은 우산을 갖고 온 엄마들의 차로 난리법석이었다. 그때 우리반 아이들만 유유히 우산을 쓰고 교문을 빠져 나가고 있었고 그 걸 바라보는 나는 절로 어깨가 으쓱했다.
나는 강릉여고에 10년 정도 근무했다. 사실 3년정도 다닌 동문들보다 더 오래 강릉여고 히말리야시타 아래 머물렀고 중앙정원에서 서성거렸다. 강릉여고 건물은 중앙에 계단이 배치되어 있고 양쪽 끝에 화장실이 배치되어 있다. 이상하게도 담임을 맡으면 교실 위치는 늘 화장실 옆이었고 그러다보니 우리 반 청소 담당 구역도 자연스레 화장실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보니 화장실이 막히면 고무장갑을 끼고 달려가 막힌 이물질을 빼내는 일들도 많았다. 이런 상태에서 하도 오래 근무하다보니 나중에는 화장실에서 나는 똥냄새의 진하고 옅음을 감지하게 되었다.
나중에는 그 냄새의 농도로 강우량을 예측할 수 있을 정도였다. 몇 번 예측이 성공한 뒤 과학선생님에게 물어보니 충분한 과학적 근거가 있다고 하신 적이 있다. 비가 오는 날은 대개 기압골이 낮게 형성되고 그런 상태에서는 굴뚝 연기가 낮게 퍼지듯 똥냄새도 상승해서 날아가지 않고 낮게 주변에 머물게 되고 그게 냄새의 농도를 증가시킨다는 것이었다. 몇 번은 신통하게 강우량을 예측한 후 나중에는 다른 반 아이들이나 선생님들도 나에게 저녁 날씨를 묻는 일도 생기게 되었다. 개교 60주년 기념문집에 똥 관련 얘기를쓴 적이 있어 다시 한번 보태어 본다.
(중략)
나의 사랑 나의 신부
여학교에 있을 때 넥타이 하나 새로운 것만 매고 가도 "선생니임! 넥타이가 너무 멋져요"하며 까르르 웃어주던 여석들, 머리만 새로 깎고 교실에 들어가도 "선생니임! 10년은 젊어보여요"하며 웃던 녀석들, 별로 웃기지도 않는 나의 썰렁한 농담에도 책상을 두드리며 유쾌하게 파안대소하던 여석들, 아! 지나고 나니 그 녀석들이 나의 사랑, 나의 신부였다는 것을 환갑 진갑 다 지난 지금에서야 실감하게 된다.
지금은 40~50대 아줌마가 되어 이따금 찾아와 옛날 학창시절 얘길 나누는 같이 늙어가는 제자 녀석들도 내가 나이 60이 다 되어 '바리스타 자격증'을 땄다는 얘기를 하면 여전히 "선생님, 너무 멋있게 사는 것 같아요" 하면서 반겨 주곤 한다. 그들이 그렇게 반응해 줄 때, 나는 표정 관리를 하면서도 내내 절로 코를 벌름거리며 콧노래를 흘리고 다닌다. 아, 나의 팬이 있고, 내 가슴에 설렘을 줄 수 있는 여석들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가, 내가 그 녀석들과 이미 정신적인 교감을 하며 충만한 삶의 활기를 되찾고 있다면 이미 그걸로 충분하지 않겠는가.
이 땅의 남성들이여, 당신의 여자들에게 운전이 서툴다고 구박하지 말라, 길을 잘 찾지 못한다고 길치라 놀리지 말라, 여자들에게 논리나 이성이 결여되어 있음을 탓하지 말라, 그런 씉데없는 것을 갖지 않았기에 그녀들은 그런 걸 넉넉히 가진 우리처럼 매일 시시비비를 가리고 싸우지 않는다. 그녀들은 이미 그런 차원 저 너머에 있는 바다처럼 포용성과 관용성의 품을 지니고 있고, 우리 남자들은 그 여인의 품 안/위에서 손오공이 부처님 손바닥에 근두운을 타고 노닐 듯 할딱이고 있을 뿐이다. 그녀들은 적마저도 감싸 안는 넓디넓은 바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