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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사진편지 romantic wal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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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스크랩 바둑의 생활세계와 현상학적 해석학-한상진 (한사모 고문)
함수곤 추천 0 조회 116 13.12.22 12:3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한밤의 사진편지   게시판  (13/12/22/일)    

 

   

   함수곤의 블로그 '한밤의 사진편지'로 가시려면 아래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http://blog.daum.net/ham60/> 

 

'한사모' 카페 'romantic walking'으로 가시려면 아래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 cafe.daum.net/hansamo9988 >

cafe.daum.net/hansamo9988

<맨 아래 '표시하기' 클릭하면 '음악' 흐릅니다.>

 

 

 

 

한사모 고문이신 지연 知淵, 한상진 박사는

한국교육과정 교과서연구회 고문,

21세기 한국교육포럼 공동대표, 한국교육정책연구소 이사,

세계문인협회 이사,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생활문학회 부회장,

한국생활문학상 수필부문 작품상 수상(2012.12),

서울교원문학회 자문위원, 문학세계문학상 수필부문 본상 수상(2013.6),

동작교육장, 문교부 인문과학 편수관을 역임했으며

바둑에도 심취해서  한국기원 공인 아마츄어 5단 입니다.

 

한상진 고문은 평소 바둑을 즐기며 아마 5단의 실력의 경지에 오른 분으로서

바둑을 통한 인격 도야에 이어지는 심오한 철학과 인생의 묘미를 느끼고

이를 정리하여 아래와 같은 글을 저에게 보내주셨습니다.

 

저는 바둑에 대한 전혀 소양이 없는 문외한이지만

한 고문의 글을 읽고 많은 공부와 깨우침을 얻게 되어

이 글을 필지의 허락도 받지 않고 우리 한사모 회원님들께

전해드립니다.

 

저처럼 바둑에 취미가 없는 회원님들 께도

일독을 권합니다. 참고가 되셨으면 합니다.

 

 

함수곤 드림

 

 

 

 

바둑의 생활세계와 현상학적 해석학

 

 

 

                            

한상진 (한사모 고문)

 

 

 

   19361의 판 위에서 벌어지는 흑백의 싸움인 바둑은

手談 hand dialogue 이다.

 

가로 42cm 세로 45cm 바둑판 규격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내밀한 交感을 오가게 하는 최적의 거리다.

 

바둑은 바둑판이라는 우주 속에서 소우주인 두 사람이

마주 앉아 돌을 매개로하는 대화이며 담론이다.

 

요즈음 글로벌 IT 시대에 있어서 교육의 큰 문제점은 소통의 단절이다.

세대 간, 부모와 자식 간, 부부 간, 스승과 제자 간 소통의 단절이

교육의 크나큰 이슈가 되고 있다.

 

手談은 두 사람의 인격과 인격, 세계관과 세계관, 인생관과 인생관,

집중력과 집중력, 사고력과 사고력, 예술관과 예술관, 몸과 몸의 담론이다.

 

그리고 새로운 세계와 역사를 창조하는 웅대한 세미나요 포럼이다.

돌을 통해서 내가 누구인가를 돌로써 실존의 공간을 디자인하고

창출하는 실존과 실존을 겨루어 보는 멋진 소통의 게임이다.

 

언어가 달라도 상관없고 남녀노소 모두가 담론과 소통을 펼칠 수 있어 좋다.

돌을 통해서 자기 인간의 모든 것을 표출할 수 있는 철학적인 hand dialogue 이다.

 

수담은 너와 나의 삶을 매번 새롭게 엮어가는 삶의 게임이다.

또한 바둑은 두뇌 스포츠 brain sports 이다.

 

바둑이 정식으로 스포츠로 인정된 것은 최근의 일이지만

분명 두뇌 스포츠인 것은 사실이다

 

바둑은 돌의 효율성을 활용하는 게임이다.

바둑의 돌을 한 점 놓을 때마다 생동감 있고 꿈틀거릴 때마다

자기 실존의 비전인 또는 패러다임이 만들어져 간다.  

 

그러나 서로의 실존의 공간이 맞부딪히면서 쉽사리 창출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서 실존과 실존의 피나는 전투인 실존 겨루기( der liebende Kamph,

사랑스러운 싸움, Martin Heidegger)

두뇌 스포츠의 오묘한 진수라고 느껴진다

 

돌을 놓았을 때 그 돌이 살아 있고 그 돌의 무서운 힘과

효율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놓아야 한다.

 

돌의 저력과 힘, 그리고 그 돌의 꿈과 비전이 있어야 실존의 공간을 명품으로 디자인 할 수가 있다. 두뇌 싸움, 세계관의 싸움, 정신력과 체력의 싸움, paradigm의 싸움 얼마나 멋있는 스포츠냐. 바둑의 즐거움은 바로 자기가 창출한 실존 공간의 명품을 디자인하는 삶을 창출하는 예술이요 철학이다.

마음을 비우면 내 몸과 마음은 무한한 우주가 된다라는 말은

高手되는 성공의 법칙이라고 생각된다.

 

골프, 야구, 권투도 마음을 비워야 무엇인가 큰일을 해낼 수 있다.

그러나 엄청난 연습과 노력 없이는 棋力을 향상시킬 수 없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세상에는 고군 분투 대신 나태와 오만함에

몸을 맡겨 버리는 천재들로 넘쳐난다.

그들은 한때 면도날이었을지 모르지만 결국 번쩍임과 예리함을 잃어버린 채

 아무 의미도 소용없는 쇠붙이로 살아가리라라고 말했다.

 

하지만 끊임없이 우직하게 연습하고 단련하는 이는 날선 면도날 같이 될 수 있다.

바둑의 高手가 되기 위한 왕도라고 생각한다.

 

날 선 면도날이 될 것인가, 녹슨 쇠붙이로 남을 것인가?

그 선택과 결단 앞에 知淵은 예외 없이 서 있다.

 

영화 바람의 파이터의 실제 인물이자 極眞 가라테의 창시자인

최배달은 생전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일천일의 연습을 이라고 하고 일만 일의 연습을 이라고 했다.

그러한 혹독한 단련이 있고 나서야 비로소 승리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초의 흑인 홈런왕 행크 에렌은 정신이 아득할 정도로 많은 시간을

연습에 쏟고 나면 투수가 공을 던지기 전부터 그 공이 커브냐,

직구냐를 알 수 있게 되고 날아오는 그 공이

수박 덩어리처럼 크게 보인다는 것이다.

 

바둑의 급수를 높이려고 절치부심하고 있는 나에게 금과옥조의 말이다.

 

생활세계 Lebenswelt 는 원초적이며 구체적인 삶이다.

실존 철학에서는 고유세계 Eigenwelt, 타인과의 세계 Mitwelt,

그리고 환경세계 Umwelt가 하나의 세계를 구성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것을 바둑의 생활세계에 비유하면

나는 나의 고유세계 Eigenwelt이며 상대방은 타인과의 세계 Mitwelt이고

바둑판은 환경세계 Umwelt 라고 볼 수 있다.

 

바둑의 생활세계는 바로 인간의 생활세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바둑의 생활세계는 존재론적, 인식론적, 가치론적 삶의 생활세계다.  

 

존재론(ontology)이 우주의 궁극적인 본질이 무엇인가를 파악하려는

철학적 노력이라면, 인식론(epistemlogy)은 진리 또는 지식의

근거를 밝히려는 노력이다.

 

가치론(axiology)은 선악, 정사, 미추, 정의와 불의, 목적과 수단 등의

문제와 관련하여 그 근거와 판단 기준 등을 밝히려는 철학적 노력이다.

 

바둑의 생활세계에서도 사람의 그릇, 품격, 인간성, 교양, 매너, , 인품, 유머, 인간적인 향기, 좌절감, 분노, 환희, 성취감,

그리고 인간다움의 특색이 그대로 모두 표출된다.

 

현상학(phenomenology)사상 자체에로! Zu den Sachen Selbst!'라는

기치 아래 자신을 내보이는 것이 그것 스스로 나타나는 그대로,

그것 자신으로부터 보여지도록 하는 방법론이다

 

현상학적 에포케(Epoche)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존재확신은

인식 비판적으로 아무런 타당성도 가지지 못한다는 점에서

영이란 지표를 붙여 괄호 속에 보류한다( bracketing).

 

이렇게 한 다음 문제의 사물에 관해

자유변용(freie Variation in der Phantasie)' 이란

思惟실험을 통해 사물의 本質을 찾기 위한

형상적 환원(eidetische Reduktion)을 한다.

 

환원은 선험적 의식(transcendental consciousness)에로의 회귀다.

본질을 의식 내재화하는 방법이 선험적 환원이다

 

이것은 바둑의 생활세계에서 수읽기’, ‘침투와 삭감’,

, 유가무가, 환격, 장문, 사활의 급소, 코 붙이는 맥,

치중, 수상전, 응수타진, 양 날개, 전투, 붙이는 맥,

회돌이 축, 빈축, 후절수, 건너 붙이는 맥,

사석작전, 공격과 타개, ‘전체의 틀 짜기’ ‘바둑의 맛’,

돌의 효율성‘ ’공배를 두지 않고 집을 짓기 위한 행마

포석‘, 곤마, ’전투‘, ’끝내기‘ ’사활등 자기의 고유세계의 지평을

넓히는 실존공간을 디자인하는 방법론으로 활용할 수 있다.

 

해석학(hermeneutics)은 하나의 정신이나 세계,

그리고 다른 정신이나 세계사이의 시공간적인 거리에 다리를 놓는 일을 한다.

 

 이때 우리가 이해하려는 정신이나 세계에 있어서 낮 익은 것과

낮 선 것이 있다면 낮 익음과 낮 설음의 긴장을 해소시키려는 노력이

 바로 해석학의 과제다.

 

바둑은 바로 ‘link' 연결이다. 연결이 끊어지면 바로 끝장이다.

연결하면서 집을 짓고, 상대방의 집을 삭감하는 것이 바둑의 기본철학이요 원리다.

 

그러므로 현상학적 해석학은 바둑을 두는 사고방식

원리에 적합한 방법론이다.

그런데 현상학과 해석학의 연구 방법론을 조금은 공부한 내가

왜 적용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가.

 

그 이유는 학문적 깊이와 바둑의 깊이에 있어서 너무나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바둑은 신선놀음이요 바둑의 삼매경에 빠지면 세월 가는 줄 모른다.

그 위에 바둑의 맛과 멋, 인간의 멋과 향기를 갖는 바둑의 생활세계는

바둑의 진수를 체감하게 하는 우주가 된다.

 

바둑을 두는 기본자세와 바둑의 멋과 향기를 풍기게 하는

바둑의 철학을 실현시키는 패러다임과 전략을 수립하는 것은

지금 나에게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바둑의 정신과 철학을 知淵 룽타 135 Aratia Smart Power"라고 정해 보았다.

사콩 미팜이라는 티베트 명상가는 주황색 호랑이의 만족’,

흰색 사자의 기쁨’, 붉은 가루다(상상의 새)평정심’,

푸른 용의 유쾌한 지혜4가지의 마음을 얻으면 룽타라고 한다.

 

 룽타는 티베트어로 바람의 말을 뜻하며

이는 장수, 건강, 성공, 행복을 가져온다고 한다.

 

룽타의 명상 방법은 하루 일과 전에 바닥에 누워서 눈을 살짝 감고서

두발을 호랑이라 상상하면서 일상을 대지와 연결한다.

 

그리고 의식을 몸 안으로 옮겨 배꼽 바로 안쪽에 담겨 있는

사자의 에너지에 집중한다

 

그 다음 의식을 가슴과 두 팔에 두고 그곳을 가루다의 용감무쌍이라고

상상하며 의식을 머리와 어깨로 옮겨 용이 지닌 무아의 확신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수련이다.

 

135는 무엇이냐. 양상국 프로 9단은 33법칙을 가르쳐주었다.

아마추어들은 바둑을 너무 빨리 두는 것이 단점이라고 했다.

 

첫 번째 ‘1’10초를 의미한다. 돌을 한 점 놓을 때

반드시 ‘10를 생각하고 놓아야 한다는 철칙이다

10rule은 바둑을 둘 때, ‘형세판단’, ‘계가’, ‘급소’, ‘대세 점’ ‘사활’ ‘수읽기

적어도 ”10동안 생각하고 놓아야 한다는 철학이다.

 

인내심을 가지고 바둑판의 우주공간을 이리 저리 곰곰이 생각하면서

현 시점에서 급소와 요소, , 큰 곳이 어딘지를 판단하는 예리한 통찰력과

결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 총체적으로 10rule을 정한 것이다. 그리고 ”3“3앞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방이 돌을 놓았을 때 적어도 3수 정도는 앞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 그 의도나 수를 꿰뚫어보지 않고서는

소통의 게임이 되지 않는다.

 

런데 그것을 잊고서 바둑을 둔다는 것은 바둑의 기본자세를

잊고서 바둑을 두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5“50분이다. 바둑 한 판을 두는데 적어도 50분 이상을 두눈 것이

필수적이라는 의미이다

 

AratiaSocrates의 평정심을 의미한다.

바둑에 있어서 균형감각“ balance 을 지탱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평정심은 Mother Teresa 평화 peace와 상통한다.

 

침묵이 기도를 낳고 기도가 믿음을 낳고 믿음이 사랑을 낳고

사랑이 봉사를 낳고 봉사가 평화를 낳는다.

 

Aratiapeaceful Aratia이다

평화스러운 평정심, 균형감각은 바둑을 두는데 있어서

유지해야 할 기본자세요, 철칙이다

 

Smart Powersoft power + hard power 이다.

하버드대 조셉 나이 교수는 21세기에 있어서 국가의 성공 여부는

하드파워와 소프트 파워의 균형을 이룰 줄 아는 "smart power"

달려 있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hard power는 건강, 집중력, 몰입정신, 체력, 강한 의지 등을 의미한다. soft power는 수읽기, 행마법, 포석, 전술, 끝내기, 사활, 마음 비우기 등 바둑의 실력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知淵 바둑 7王積薪과 양상국 교수의 위기 10결중

특히 나에게 해당되는 것을 골라 만들어본 것이다

 

공격은 최대의 수비이며 최대의 공격이다.

한쪽으로 너무 치우치지 않고 허술한 가운데 실익이 있고 

실익이 있는 가운데 허술함이 있다.( 一攻 一守 虛虛實實)

 

적을 공격할 때 먼저 나를 돌아보라.(攻披顧我) 적을 공격할 때는

상대방이 눈치를 차리지 못하도록 정 반대쪽에서부터 시작하라.

 

기대기 전법이다.(聲東擊西) 작은 것을 탐하면 큰 것을 잃는다. (小貪大失)

지 못할 돌은 빨리 버리고 先手를 잡아라.(棄子爭先)

 

승부란 모름지기 이겨야 즐거움이 따르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수담을 나누고 두뇌 스포츠를 할 수 있는 좋은 친구를 만나

대국할 경우 저도 기쁜 마음을 가질 餘裕를 가져야

군자의 도락이 아니겠는가?(勝固欣然 敗亦可喜)

 

바른 눈, 바른 마음씨, 바른 몸가짐, 바르게 사는 길, 바로 이것이

 바둑을 통하여 얻어지는 인생의 멋과 향기이다.(棋正有道)

 

상수와 하수의 생활세계 상수는 머리로 두고 하수는 눈으로 둔다

상수는 충분히 생각해 두고 하수는 두고 난 후에 생각한다.

상수는 손자병법처럼 싸우지 않고 이기려고 하고

하수는 잡는 것을 목적으로 둔다.

 

상수는 지지 않는 것을 신조로 두고 하수는 어느 한 쪽에 편중한다

상수는 수순과 모양을 중시하고 하수는 공배를 메운다.

상수는 생각을 하고 난 후에 돌을 잡고 하수는 돌을 잡고 나서 생각한다.

상수는 사석을 아끼지 않고 하수는 한 집도 안 버린다.

상수는 선수를 다투고 하수는 후수를 감수한다.

바둑 생활세계의 원리 싸우지 않고 이기는 바둑을 두고, 大馬를 확실히 살려두라. “배를 움직이게 하는 돌이 되게 하라.

묶여진 배가되지 말라.

가급적 단수를 치지 않는 것이 을 남게 한다.

 

요소와 급소의 10점짜리 행마를 하라. 10번 수읽기,

10번 행세판단, 10번 계가를 하면서 바둑을 두어라.

입구 자행마와 끼우는 수를 활용하라.

귀살이가 큰 집이다. 利敵手는 두지 말라.

대마불사는 사막에 오아시스가 있는 것처럼 반드시 살 수 있는 가 있으니

끝까지 찾아야 한다. 모자 씌우면 두 칸 벌린다.

 

젖히는 수는 20집이다. 어깨 집는 방법으로 공격한다.

곤마가 되지 않도록 포석을 해야 한다.

사활문제는 확실하게 알아 두는 것이 좋다. 철벽 쪽으로 포석을 해서는 안 된다.

상수는 다른 곳에 누를 끼치는 것을 두려워하고 하수는 단지 살려고만 한다.

죽이고 외벽을 쌓는 것이 훨씬 실속이 있다

이겼다 하여 좋아하지 말고 더욱 분발하라.(好想追算)

바둑에서 돌을 치우고 나면 홀연히 태초의 침묵-로 돌아간다.

이것이야말로 바둑의 특권이다.

한 판의 바둑을 두는 동안에 動搖, 苦痛, 決斷, 歡喜, 온갖 情念

구름이 지나간 것처럼 맑아진다.

 

바둑의 큰 매력이 여기에 있다.

사르트르(Jean Paul Sartre) 는 존재 자체와 인간 존재를 구별한다.

존재 자체는 Kant卽自(Sein-an-sich), 인간 존재는

헤겔의 對自(Sein-fur-sich)로 이해한다.

 

인간 의식은 對自로 비 생명의 현상은 卽自로 파악된다.

예를 들면 사람은 현재 보이는 그대로가 아니다.

산이 산이라고 하는 것과 똑같은 의미에서

사람은 웨이터거나 군인이거나 교수가 아니다.

 

사람은 자기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그가 살아있는 한 결코 자기 자신이거나 스스로 지니고 있는

자기 과 일치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Sartre는 인간이란 이러한 자기 자신과 實存

일치의 결여(the lack; manque)라고 정의한다.

 

그래서 對自인 인간은 否定(negation)으로 가득 차 있다.

인간과는 달리 卽自인 자연은 어떠한 부정도 없으며 달걀처럼 충만해 있다.

 

그러나 인간은 달걀의 充滿性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미래를 향한 洞空( a hollow which is always future)과 같으며

세계 안에 (nothingness)가 끼어들 수 있는 존재이다

 

미래를 향한 洞空이나 의 존재가 바로 太初의 침묵이나

 의 세계가 아니겠는가.

그리고 다시 실존공간 창출의 멋진 디자인을 위하여

바둑 생활세계의 삼매경에 빠져들게 된다.

 

 “忠恕는 양상국 교수가 나에게 써 준 글이다.

나의 거실에 걸려 있다.

은 자신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고 는 상대방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해석하여 주었다.

 

바둑과 인생에 있어서 좌우명으로 삼을만한 멋진 철학이다.

이제부터 나는 한 판의 바둑을 둘 때마다 知淵 바둑 7”,

 “상수와 하수의 생활세계”, “바둑 생활세계의 원리를 담은

 필승 전략 知淵 룽타 135 Aratia Smart Power"

 

패러다임을 마음속으로 음송하고 생각함의 (現象學的 解釋學)

연구하면서 인생과 바둑의 생활세계를 멋지게 엮어 갈 것이다. Upgrade or per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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