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족사(氏族史)에서 상고사(上古史)를 논하기 전에 먼저 용어(用語)를 정의(定義)해야 할 것 같다. 흔히 사용되는 용어로 시조(始祖), 비조(鼻祖), 원조(元祖), 원시조(原始祖), 중시조(中始祖) 등이 있다. 시조는 족보에 수록된 세계표(世系表)에서 가장 꼭대기 조상인데, 비조나 원조도 같은 뜻으로 통용된다. 또 먼 윗대 조상으로서 현대인과 세계표 연결이 안 되는 분을 원시조, 세계표가 연결되는 꼭대기 조상을 중시조라 하기도 한다. 중시조는 시조와 같지만 대개 원시조의 상대적 개념으로 사용된다.
용어와 개념이 복잡하므로 단순화하기 위해 현대인과 세계표는 연결되지 않지만 처음 가문을 일으켜 두각을 나타낸 조상을 원조, 세계표 맨 꼭대기에 위치하는 조상을 시조, 계파가 나누어지는 피라미드 꼭짓점에 위치하는 조상을 비조로 정의하고자 한다. 말하자면 모든 면에서 명확히 검증되는 실제적 시조는 비조이고, 비조 위로 부족한 정보로 확인되는 가장 윗대가 시조이고, 드문드문 분포하는 부정확한 정보로 확인되는 최고위 세대가 원조다.
역사는 크게 선사시대(先史時代)와 역사시대(歷史時代)로 구분된다. 선사시대는 문헌적(文獻的) 근거가 없어서 고고학적(考古學的) 유물(遺物)이나 유적(遺蹟) 등으로 검증해야 하는 시대이고, 역사시대는 기록이 있어서 문헌적 근거로 검증 가능한 시대다. 통사[1]와 달리 씨족사는 가문(家門)이라는 지극히 좁은 범위에서 역사이기 때문에, 가문 밖에 있는 기록과 가문 안에 있는 기록은 차이가 있어서 관점(觀點)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경주김씨 씨족사에서『삼국사기』를 어떻게 볼 것인가? 『삼국사기』가 있으므로 경주김씨 씨족사에서 역사시대를 기원전 57년까지 확장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결국 『경주김씨족보』를 기준으로 경주김씨 씨족사의 선사시대와 역사시대를 나누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즉 족보를 기준 삼아 족보에 수록된 비조 이하 세대를 역사시대라고 하고 비조 이상 세대, 즉 원조와 시조가 살았던 시대를 선사시대로 하지 않을 수 없다.
족보는 후세 사람이 만든 책이다. 처음 족보를 만든 사람은 자신으로부터 위로 한세대씩 거슬러 올라가면서 자료를 검증하여 궁극(窮極)에 이른 조상이 비조다. 그러나 비조보다 윗대 조상도 어딘가 비석이나 역사책 같은 곳에 적혀 있기도 하고, 전설로 전해오는 이야기도 있을 수 있어서 그런 자료를 바탕으로 확장해서 기록된 최초 조상이 시조다. 그러므로 대부분 가문에서 시조와 비조 사이 세대는 기록이 분명하지 않다. 비석이나 문헌에 한 줄로 적혀 있는 휘(諱)가 패총(貝塚)에서 글자로 추정되는 무늬가 그려진 목간[2]과 특별히 다르다고 할 것 있겠는가?
문성공계처럼 비조와 시조가 같으면 시조까지 역사시대에 포함되지만, 이런 경우는 보편적이지 않다. 어쨌거나 사대부가 아니어서 잘라낸 문성공 최아(崔阿)의 아버지 최입평(崔立平)이나 할아버지 최명(崔明)이 살았던 시대는 선사시대다. 사도공계는 시조 사도공 최균(崔均)에서 비조 완산군 최사검(崔思儉)까지 8세대가 고려 귀족으로 『고려사』 또는 <묘지명> 등을 통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지만, 완산군 직계선조에 한정된 것일 뿐이어서 경주김씨 가문에서 『삼국사기』를 다루는 관점과 다르지 않다. 문열공계도 시조 문열공 최순작(崔純爵)에서 비조 문정공 최재(崔宰)까지 7세대가 『목은집』<문정공묘지명>을 통해 확인되지만 역시 문정공 직계선조에 한정된 것이고 정보가 거의 없다.
사도공계 상계 세계표를 보면 사도공에서 완산군까지 자그마치 8세대에 이르므로 완산군 동항[3] 세대 인구는 상당히 많겠지만, 완산군을 제외하면 구체적인 정보를 알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문열공계도 문열공에서 문정공까지 역시 7세대를 내려왔으므로 문정공 동항 세대도 만만치 않겠지만 문정공과 아버지 전서공 최득평(崔得枰) 정도를 제외하면 휘를 제외한 어떤 정보도 알려진 사람이 없다. 따라서 두 가문 상계 세계표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완산군과 문정공의 직계선조 이력(履歷)이 화려(華麗)하다는 정도에 불과하다. 완산군과 문정공 직계선조의 화려한 이력은 완산군과 문정공 개인적 정보이므로 『고려사』 및 『목은집』<문정공묘비문>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완산군과 문정공 이상 세대는 역사시대에 포함할 수 없는 것이다.
상고사는 선사시대에서 역사시대 초입(初入)까지를 말하는 것이므로, 씨족사에서 상고사는 기록이 희미하여 증명할 수 없거나, 기록은 명확하지만 한 줄로 내려오면서 휘만 적혀 있어서 어떤 한 개인의 상계(上系)로 볼 수밖에 없는 부분을 선사시대에 포함하고 족보를 통해 세계(世系) 전체가 뚜렷하게 밝혀지는 비조로부터 4~5세대 정도를 내려간 역사시대까지를 포함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전주최씨 상고사는 4대 계열 모두 대략 조선 세종 때(1450)까지 잘라서 보는 것이 옳겠다.
* 각주 ------------------
[1] 通史. 시대나 지역을 한정하지 않고 전 시대, 전 지역에 걸친 역사.
[2] 木簡. 글자가 적힌 나무 조각. 종이가 없을 때 문서나 편지로 사용되었다.
[3] 同行. 항렬(行列)이 같은 사람. 즉 같은 세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