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그릇 心椀과
함께 배우는 불교
제 1141편
* 화두(話頭, 본참화두,
공안(公案))를 드는 법(法)
서론(序論)
화두(話頭, 본참화두,
공안(公案))란 무엇인가 ?
선가(禪家 선종)에는
《일전어(一轉語)》라고
하는 말이 있다.
선사(禪師, 佛祖師,
또는 선종의 큰 스승)가
거두절미(巨頭絶尾)하고
단 한마디
말(화두, 공안)로써
미혹(迷惑,
망령된 유혹)을 깨부수고
심기(心氣 마음의 기운)를
일전(一轉 하나로 전환)시켜서
전미개오(轉迷開悟,
미혹된 마음을 깨우침)하도록
하는 법문(法問)을
바로
화두(話頭, 본참화두,
또는 공안(公案))라고
말(언급)한다.
이러한
옛 선사(禪師),
또는 불조사(佛, 祖師)들의
선문답(禪問答 묻고 답함)과
가르침(敎義)들이
공안(公案)
화두(話頭)로
하나 둘 모아지고 이루어져
쌓이고 또 쌓여져서(累積)
편집(編集)되었다.
바로 그 것이
선어록(禪語錄 선종)의
가장 백미(白眉 최고봉)로서
손 꼽히는
《벽암록(碧巖錄)》이다.
이렇듯
역대(歷代)
조사(佛祖師 선사)
스님(高僧)들의 남겨진
화두(話頭,
본참화두, 공안(公案))는
다시 한번 우리들
자신(수행자)의 삶(人生)을
돌이켜보게 하고
느슨해졌던 마음을
추스리게 한다.
그러므로
불제자(佛弟子)
수행자(修行者)이던
불제자(佛弟子)
수행자(修行者)가
아니던
누구나 한 번씩은
《벽암록(碧巖錄)》의
일독(一讀)을 권(勸勉)하며
화두(話頭, 본참화두,
공안(公案))를 드는 법(法)을
여기에
풀어서 해석(解釋)하고
자세히 설명(說明)하며
나와 함께
공부(功夫)를 하고저
기록(記錄)하고
올려 본다.
본론(本論)
화두(話頭, 본참화두,
공안(公案))를 드는 법(法)
"
이러한
십종병(十種病)이라는
열 가지 병(病痛, 상기병)
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증오(證悟,
깨달음의 증거, 증명)를
구하는 마음(참구심)으로써
근본(根本,
뿌리, 목표)을 삼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속효심(速哮心,
빠르고 급한 깨달음에 대한
어리석은 간절한 욕심)을
일으켜 내거나
오직
깨닫겠다는(大悟覺惺)
마음(成佛一念)으로
위 없고 아래 없는
깨달음(無上正等覺)을
막연하게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기(待悟心)만 하는
대오지심
(待悟之心)을 갖는다는
사실 자체가
자기 스스로를
못 깨친 중생(衆生 수행자)으로
묶어 놓는 것(속박 구속)이며
나아가
위 없고 아래 없는
깨달음(無上正等覺)
anuttara samyak sambodhi
즉,
아뇩댜랴샴먁샴보리심
(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을
얻기(受持 得持) 위해서
갖가지
사량(思量, 생각, 관념)하고
계교(計較 이 것 저 것 계산하고
서로 비교) 하거나
사량분별(思量分別,
우리말로 알음알이(知見)) 및
허망(虛妄)한
노력(努力)을 하게 만드는
근원처(根源處, 근본 원인)가
되는 것이다.
※
사량분별(思量分別,
우리말로 알음알이(知見)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시비분별)하는 것
즉,
여러 가지 일에 대한
생각(思念)과 사물(事物)
등(etc)을
제 분수대로
각각 나누어서 분별하고
가름(분류)을 이르는
말이다.
여러가지 일에 대하여
깊고 깊게 생각을 하거나
또는
그런 생각을 말하는 것을
사량(思量)이라 하고
분별(分別)은
추량하고 사유(思惟)하는 것
구분하고 분석하는 것이다.
즉, 정확하게는
화두 공안(話頭 公案)을 가지고
이리 따지고,
저리 따지고,
서로 비교하고
분석하고 분별(分別心)하며
어떤 결론(結論 맺음)을
반드시 내리려는 것으로
마치
불덩어리에 훨훨 타는
무서운 번뇌의 불길과 같은
생각이나
분별심(分別心)을 말한다.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
라고도 한다.
※
그러므로
단 한 마디(句節)
단 한 개의
《무(無) !》자(字)만을
간절(懇懇絶絶함)하게
간(看)할지언정
깨닫고(大悟覺惺)
깨닫지 못한 것(不覺)과
뚫고(一貫),
뚫지 못한 것(不一貫)을
애써
관계(觀係, 비교, 평가)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즉,
간화선(看話禪)을
닦는(수행정진, 명상, 참선자)
입장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기피(棄避, 피하거나 포기함,
매우 조심하여 삼가함)하여야 할
점(중요한 요점)은
막연히
깨달음(무상정등각)을
기다리는 마음(待悟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로 지금(至今)
여기(現處 수행정진처)에서
오직 모를(唯不知見) 뿐
그러므로
황면노자(黃面老子,
석가모니 여래불 세존)께서
말씀(說法)하시되
※
황면노자(黃面老子)는
주로
불교 선종(禪宗)에서
사용하는 말로
황면구담(黃面瞿曇)
황두대사(黃頭大士)
라고도 한다.
또한 줄여서
《황두(黃頭)》
《황면(黃面)》
이라고도 한다.
부처(如來佛 세존)의
몸(體 법신 보신(응신) 화신))이
황금빛(黃金色)이라는 데서
유래한 명칭(名稱)으로
《황면구담(黃面瞿曇)》에서
구담(瞿曇)은
고타마(Gautama, 붓다)를
음(音)을 따라
한자(漢字)를 사용해서
음사(音寫)한 것으로
황면노자(黃面老子)에서
《노자(老子)》는
그(석가모니 여래불 세존)에
대한 존칭(尊稱)으로써
사용하는 것이다.
※
"
마음(心)으로
망령(妄靈 헛 된 번뇌)되이
과거법(過去法, 옛 법(구태))을
취(가질 取)하지 말고
또한
미래사(未來事,
내일, 먼 후일, 결과)에
탐착(貪着,
탐욕, 고정, 집착)하지 말며
현재(現在,
현실, 눈 앞, 現前處)에도
일체(一切)
머무르는 바가 없어서
제행무상(諸行無常)
삼세(三世間)가
제법공상(諸法空常)
모두 다 공적(空寂)함을
깨우치고
요달(要達,
중요한 깨우침을 뛰어넘고
초월하여 통달)하라.
"
하시니라.
과거사(過去事,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일 가운데)에
혹 선(착할 善 착한 이)과
혹 악(악할 惡 나쁜 이)을
사량(思量, 생각, 관념, 분별)
하지 말지니
사량(思量)한 즉
도(成佛道, 일불승대도)를
걸림하고 막아섬하며
장애(障碍)하리라.
미래사(未來事,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일)를
계교(計較,
이 것 저 것 계산하고
서로 비교)하지 말지니
계교(計較한 즉
광란(狂亂 미칠 듯 어지러움)
하리라.
현재사(現在事,
當處, 지금, 여기, 눈 앞의 일)가
면전(面典 얼굴 앞)에
이르거든
혹 역(逆, 순리를 거역함)과
혹 순(順, 순리를 따름함)을
또한
뜻(의미를 부여함)을
붙이지 말지니
뜻(意味付與)을 붙인 즉
맑고 밝고
깨끗한 마음(淸淨一心)을
뒤흔들고
요동(搖動)치게 하리라.
―《서장(書狀)》―
"
ㅡㅡㅡㅡㅡㅡㅡㅡ
※
원문을
해석함에 있어서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見解)와
해석(解釋)으로
오역(誤譯)
오판(誤判)한 부분도
분명하게 있을 것이다.
언제든지
글 내용 가운데
잘못 된 부분은 옳고 바르게
지적(指摘)해 주시고
새로운 가르침을 주시기를
간절히 바램해 본다.
- 마음그릇 心椀 드림 -
ㅡㅡㅡㅡㅡㅡㅡㅡ
마음그릇 心椀과
함께 배우는 불교
《== 다음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