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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옷
39:1-7
1. 그들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대로 청색 자색 홍색실로 성소에서 섬기기 위한 정교한 옷을 만들고 또 아론을 위한 거룩한 옷을 만들었더라
2. 그가 또 금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에봇을 만들었으되 3. 금을 얇게 쳐서 오려서 실을 만들어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는 베실에 섞어 공교히 짜고
4. 에봇을 위하여 견대를 만들어 그 두 끝에 달아 서로 연하게 하고
5. 에봇 위에 에봇을 매는 띠를 에봇과 같은 모양으로 금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에봇에 붙여 짰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대로 하였더라
6. 그들이 또 호마노를 깎아 금테에 물려 인을 새김 같이 이스라엘의 아들들의 이름을 그것에 새겨
7. 에봇 견대에 달아 이스라엘 자손의 기념 보석을 삼았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대로 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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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차를 타고 나가시면 누가 제일 두려우십니까? 보통 때는 괜찮다가도 운전 때만 잡으면 무서워지는 아저씨가 있습니다. 제복 입은 아저씨 그 제복만 보면 별로 잘못한 일도 없는데 괜히 주눅이 드는 경험을 아마도 몇번씩은 다 해 보셨을 것입니다. 이 제복은 자기가 입은 것이 아니라 나라가 입혀 준 제복입니다. 거기에는 권위가 있고 또 그 제복에 사명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제복을 바라볼 때 좀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군인의 제복도 그가 특별한 신분을 가진 존재임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까운을 입은 의사 앞에서 고분고분히 조심스럽게 그의 말을 듣는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나라가 그에게 부유한 권위가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가 가진 기능 때문에 우리는 그들의 말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도 제사장들은 반듯이 제복을 입어야 했습니다.
아무런 옷이나 입는 것이 아니라 반듯이 하나님이 지정해 주신 제복을 입어야만 했습니다. 구석구석을 다 설명하기에는 오늘 시간이 다 부족합니다. 그러나 이 옷을 잘 보면 제사장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어떤 사명을 가진 존재인가 하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 옷은 그의 삶과 그의 기능을 특별히 구별하는 거룩한 옷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제사장만 이 거룩한 옷을 입고 사는 것이 아니라 오늘 여기에 앉아 있는 모든 성도들도 어떤 의미에서는 제사장 같은 거룩한 옷을 입은 존재들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믿는 모든 사람들은 다 하나님 앞에서 왕 같은 제사장들이라고 주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이 베드로전서2:9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 하나님은 우리들은 많은 사람 가운데서 불러 주셨습니다. 성도라고 하는 거룩한 옷을 우리에게 입혀 주셨습니다. 재직이라고 하는 거룩한 옷을 입혀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거룩한 옷을 입혀 주셨습니다. 권사, 장로라는 옷을 입혀 주셨습니다. 목사라고 하는 옷을 입혀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입고 있는 이 옷은 아무에게나 마구잡이로 입혀 주는 옷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부르신 사람 하나님이 선택하신 사람 그런 사람들에게만 이 거룩한 옷을 입혀 주시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여기에 모인 모든 성도들은 다 지금 거룩한 옷을 입은 제사장 같은 모습으로 주님 앞에 모여 있습니다. 제사장들 끼로 모여서 우리 인사 한번 해 보실까요?
"제사장님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 한번 해봅시다. "옷이 참 훌륭하십니다." 인사를 잘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부르셔서 거룩한 옷을 입혀 주신 거룩한 제사장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입은 거룩한 옷은 어떤 옷입니까? 먼저 이 옷은 하나님이 입혀 주신 옷입니다. "하나님이 입혀 주신 옷입니다."
1절 말씀입니다. "그들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청색 자색 홍색실로 성소에서 성기기 위한 정교한 옷을 만들고 또 아론을 위한 거룩한 옷을 만들었더라."
여기에 잘 보시면 여호와께서 명하신 대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제사장을 위한 옷을 만들어 입혔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고 하나님이 명하시고 하나님께서 지정해 주신 제복입니다. 마치 각 학교가 지정한 제복이 따로 있듯이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에게 지정된 그런 제사장의 예복을 입혀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이 모든 제복은 반듯이 권위 있는 제복은 입혀 주게 되어 있습니다. 의사 옷을 자기가 마음대로 입으면 곤란하지 않습니까? 나라가 인정하고 나라가 허락하는 가운데 그 옷이 입혀져야 합니다. 그런데 나라가 인정하지도 않고 입혀 주지도 않았는데 자기 손으로 입는 사람을 무엇이라고 합니까? 그 사람을 우리는 돌팔이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사기꾼이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제복을 입기 위해서는 악역을 갖추어야 합니다. 장교의 옷도 아무나 입는 것이 아닙니다. 충분히 대가를 지불하고 훈련을 통과한 사람만 그 제복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조건을 충족 시켜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하나님이 입혀 주신 이 거룩한 옷은 우리의 자격을 보고 입혀 주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조건의 따라서 입혀 준 옷이 아닙니다. 우리는 죄인이지만 의인의 옷을 하나님이 입혀 주셨습니다.
원래 멸망 받을 진노의 자식들이었지만 하나님의 자녀의 옷을 우리에게 입혀 주셨습니다. 절망하고 살 수 밖에 없는 존재들이었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소망의 옷을 주셨습니다. 날마다 근심하면서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하면서 살 수 밖에 없는 우리들이었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찬송의 옷을 입혀 주셨습니다. 소망의 옷을 입혀 주셨습니다. 목동 다윗에게 왕의 옷을 입혀 주셨고 방탕한 아들이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그에게 아들의 옷을 다시 입혀 주었습니다. 그리스도를 핍박하던 사울에게 우리 주님께서는 거룩한 사도의 옷을 입혀 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우리들에게도 오늘 거룩한 이 옷을 입은 존재로 주님 앞으로 나올 수 있는 축복을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입고 있는 이 거룩한 옷이 쉽게 우리에게 입혀진 사실은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옷을 입기 위하여 하나님은 많은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 안됐습니다. 그는 참으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임 당하게 하는 귀한 대가를 지불하셨습니다. 그가 죽게 됨으로 그의 귀한 피와 그의 살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거룩한 옷이 입혀진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던 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고 숨어 있었을 때 하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아담 어디 있느냐?" 그리고 부끄러워 떨고 있는 아담 하와를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가죽옷을 입혀 주셨습니다. 그 옷을 그냥 입는 것이 아닙니다. 반듯이 무엇을 잡아야 합니까? 짐승을 잡아야 합니다. 짐승을 잡아서 피를 내고 껍질을 벗겨서 그 옷을 가지고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입혀 주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모든 죄를 다 가려 주며 우리의 모든 부족한 것들을 가려 주고 의인으로 성도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워 주시는 거룩한 제사장의 역할을 하고 어린양의 역할을 하는 우리 주님을 그대로 잘 보여주는 사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의에 옷, 소망의 옷, 기쁨의 옷이 되셨습니다. 참으로 귀중한 그리스도의 희생은 우리로 하여금 이렇게 아름다운 거룩한 옷을 입도록 해 주신 것입니다.
이 사실은 이사야53:5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을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으로 입었도다."
얼마 전에 잠깐 TV를 보는 가운데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고향 생각이라고 하는 짧은 프로그램이었습니다. 한 사람이 투고했어요. 이런 글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에 대한 회상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생선 장사를 행상으로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가난한 어머니였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열심히 일해도 끼니가 어려운 그런 집안의 어머니였습니다. 그런데 이 글을 보낸 사람은 그 쯤에 장갑 하나를 갖고 싶은 생각이 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시간마다 어머니를 조릅니다. "어머니 나 장갑 하나만 해줘." 그러나 어머니는 장갑을 살 돈이 없었습니다. 그날 저녁에 돌아오신 어머니 잘 지탱해 가면서 자기가 아끼고 입고 다니는 옷의 올을 풀었다고 합니다. 다 풀고 난 다음에 그 수외타를 가지고 자기의 장갑을 밤새도록 짰습니다. 자기 머리 맏에 두고는 아침 일찍 고기 팔로 가셨다고 하는 그런 글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 사랑합니다."라고 하는 글로 끝이 났습니다. 저는 그 글을 읽으면서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이처럼 우리의 누추하고 우리의 헐벗은 모든 상태의 모습을 보시고 우리의 귀한 옷이 되셨다고 하는 사실을 묵상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 우리가 입고 있는 거룩한 옷, 성도의 옷, 하나님의 자녀의 옷은 우리 주님 예수님께서 자신의 몸을 찢으시고 또 몸을 풀어내셔서 짜 주신 옷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살과 피로 말미암아 만들어서 우리에게 입혀 주신 옷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입고 있는 거룩한 옷은 하나님의 사랑의 옷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의 옷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의 옷인 것입니다. 우리가 자격이 있어서 이 거룩한 옷을 입게 되었다고 생각하지 맙시다. 내가 자격이 있어서 오늘 이 거룩한 자리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고 생각하지 맙시다. 내가 자격이 있어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백성이 되었다고 생각하지 맙시다. 우리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직분자가 되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었습니다.
에베소서2:8절 말씀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의 옷이 입혀졌습니다. 은혜의 옷이 입혀졌습니다. 성도의 옷이 입혀졌습니다. 직분의 옷이 입혀졌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사랑을 감사하면서 그 크신 은혜와 사랑으로 거룩한 옷을 입혀 주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복된 제사장들 되시길 축원합니다. 우리가 입고 있는 이 옷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것은 섬기기 위한 옷입니다. "섬기기 위한 옷입니다." 이 옷은 괜히 남들에게 자랑하기 위한 옷이 아닙니다.
제사장에게 왜 이렇게 복잡한 옷을 입혀 주셨습니까! 이 휘향 찬란한 옷은 자기를 자랑하고 사람들에게 영광을 받고 섬김을 받기 위해서 하나님이 입혀 주신 옷이 아닙니다. 도리어 사람들을 섬기고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그 거룩한 옷을 입혀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는 선입견이 있습니다. 우리가 입고 있는 화려한 옷, 좋은 옷, 우리에게 주어진 훌륭한 역할에 옷들, 직분의 옷들 이것을 입게 되면 착각을 하게 됩니다. 내가 남보다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또 내가 남을 섬기는 것 보다 섬김을 받으려고 하는 이런 생각이 우리 머리 속에 자리잡게 되는 것을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내게 어떤 직분이 주어지든지 어떤 역할이 주어지든지 계급이 주어지든지 그것은 다 섬기기 위한 옷인 것을 바로 이해 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섬기는 자가 되기 위하여 우리에게 직분을 주었습니다.
우리에게 은사를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재능을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재물을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직위를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허락하신 모든 것들은 제사장 된 우리가 섬기기 위하여 하나님을 섬기고 사람들을 섬기기 위하여 주신 거룩한 옷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 예수님의 옷이 변화 산 위에서 변화하실 때 참으로 찬란한 모습으로 빛나고 변하였습니다. 주님의 얼굴과 함께 옷도 얼마나 아름답게 빛나게 영광스럽게 변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옷은 무엇을 위한 옷이었습니까? 주님의 빛나는 영광은 무엇이었습니까?
옷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우리 주님의 그 옷의 영광은 그 변화 산 사건 이후에 주님의 지식의 되는 십자가, 사람들을 섬기기 위하여 그들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버리시는 이 십자가 사건 그것이 바로 주님의 영광이었습니다. 섬김의 옷이었습니다. 우리 주님의 옷은 섬김의 옷, 십자가의 옷, 희생의 옷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옷은 그렇게 빛나는 옷이 되었던 것입니다.
마가복음10:45절 말씀입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주님의 옷은 섬기기 위한 옷이었습니다. 주님의 영광은 바로 섬김을 통한 영광이었습니다. 우리를 불러 주신 우리 주님의 뜻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영광은 높이 올라가는 영광이 아닙니다. 사람들에게 대접받는 영광이 아닙니다.
사람을 섬기고 사람들 앞에서 낮아지며 참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십자가를 잘 지는 영광 이것이 위대한 성도의 영광인 줄로 믿습니다. 골로새서3:12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여기에 '옷 입다.'라고 하는 말씀은 '내'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내라고 하는 뜻이 무엇입니까? 섬길 준비를 하고 있어라는 뜻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들은 섬김을 위한 것입니다. 나에게 주신 모든 것들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고 사람을 섬기기 위하여 준비 자세를 취학 있어라고 하는 그런 말씀입니다. 여러분 여기 화면에 뜨는 얼굴이 누구인지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아시는 얼굴입니까?
이 사람은요 얼마 전만 해도 대 회사의 부회장님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무엇이 되었느냐하면 호텔 식당에서 사람들을 섬기는 웨이터가 되었습니다. 이 사람의 이름은 바로 서상록 그가 삼미 그룹에 부회장이었을 때 우리는 그의 이름을 몰랐습니다. 별로 유명한 사람이 아니었어요. 지금은 아주 유명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도 말합니다. 자기가 많은 사람들의 섬김을 받고 있을 때 그는 행복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 섬기는 자가 되었을 때 행복하고 보람차다고 하는 말을 서슴지 않고 대학 강단에서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섬기는 자의 행복은 엄청납니다. 하나님의 우리를 부르신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을 동원하여 섬길 준비를 하며 그것을 통해 남을 섬기게 될 때 그때 비로소 우리의 옷은 가치 있는 옷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내가 입고 있는 모든 종류의 옷, 직분의 옷, 모든 역할의 옷, 은사의 옷들을 웨이터의 옷으로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우리에게 그 옷을 입혀 주셨습니다. 이 옷을 영광 받기 위한 옷으로 절대로 사용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서 사람 앞에서 섬길 자세로 서 있는 성도의 옷 이것이 바로 거룩한 옷이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슈바이처 박사는 30세도 되기 전에 박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졸업한 대학에 신학 부장이 되었습니다. 행복한 결혼 생활의 기쁨에 잠겨 있었습니다. 너무 너무 좋았습니다. 부족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일기를 쓰는데 자기 마음속에 깨달음이 왔습니다. 이런 그를 썼습니다. "아침에 밝은 햇살에 눈을 떴다. 내게 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가? 나는 이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그것은 죄악이다."
그는 자신의 영광의 옷, 빛나는 옷, 학위의 옷, 섬김 받는 이 모든 옷 그 옷의 의미를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아프리카 가봉의 토인들을 섬기는 제례로 사용하는 그런 복된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혹시 남보다 잘하는 것이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섬기기 위하여 주신 귀중한 옷으로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남들보다 더 가진 것이 있으십니까? 그것은 바로 섬김을 위한 제사장의 옷입니다. 남들보다 조금 더 높은 지위에 있으십니까? 그것은 그만큼 더 하나님과 사람을 그 자리에서 섬기기 위한 하나님이 입혀 주신 거룩한 옷으로 이해하시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기도가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 섬김 받자 않게 하시고 섬기게 하옵소서. 칭찬 받는 것 좋아하지 않게 하시고 칭찬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위로 받는 것 좋아하지 않게 하시고 위로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영광 받게 하지 마시고 영광을 돌리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입혀 주신 거룩한 옷을 입고 잘 섬기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가 입고 있는 이 옷은 중보의 옷입니다. 여러분 제사장이 입고 있는 화려한 옷은 자기를 위한 옷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해 내는 그런 옷이었습니다. 축복하는 옷이었습니다.
6,7절 말씀입니다. "그들이 또 호마노를 깎아 금테에 물려 인을 새김같이 이스라엘의 아들들의 이름을 그것에 새겨 에봇 견대에 달아 이스라엘 자손의 기념 보석을 삼았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하였더라."
여러분 제사장의 옷들은 복잡합니다. 이 복잡한 제사장의 복장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여기에 보시면 안에 파란색으로 길게 있죠 그 위에 받쳐 입는 옷이 있습니다. 이건 마치 행주 치마 같이 그런 길이가 이렇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 앞 뒤로 입는 이것을 같다가 에봇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앞면과 뒷면을 이어주는 끈이 있습니다. 끈을 견대라고 부릅니다. 견대 위에는 호마노라고 하는 보석을 한쪽 어깨에 6개씩을 달았는데 그 안에다 이름을 새겨야 합니다. 이스라엘에 12집하의 이름을 새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사장은 계급장처럼 이스라엘의 12집하를 어깨에 달린 보석으로 여기며 그 옷을 입어야만 했습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제사장의 사명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기 어깨에 지고 하나님 앞으로 중보하며 나아가고 그들은 축복하고 그들을 잘 인도하는 사명이 있다고 하는 것을 깨닫게 해 주기 위한 주님의 메시지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뿐아니라 이 가슴에 흉패가 있습니다. 이 흉패에도 보석을 12대를 답니다.
그리고 그 보석 안에다가 이름을 써야 합니다. 12집하의 이름을 다 씁니다. 무엇을 상징하고 있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가슴으로 뜨겁게 사랑하고 섬겨야 됨을 잘 정리하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왜 이렇게 복잡한 복장을 제사장을 위하여 준비하셨을까요?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읽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에는 의미가 없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한 마음을 읽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로 우리의 존재가 하나님에게는 어깨에 달린 보석의 새겨진 이름 같기 때문입니다. 가슴에 달린 보석에 새겨진 이름 같은 아름답고 귀한 존재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제사장의 옷에 그렇게 보석을 달게 하고 그 보석 안에 이름을 쓰게 하셨던 것입니다. 나폴레옹의 부인은 바로 조세핀이 아니었습니까!
얼마 전에 조세핀이 사용하던 보석이 발견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안에는 조세핀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아주 고가의 보석이 거래가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바라보시는 마음이 이러합니다. 귀한 것이 아니면 절대로 보석 안에 이름을 새기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을 보석처럼 귀하게 여기십니다. 보석에 기록된 이름처럼 깊이 기억하고 관심을 가지시고 우리를 참으로 사랑하신다고 하는 사실을 이 귀한 복장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43:4절 말씀입니다.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 즉 내가 사람들을 주어 너를 바꾸며 백성들로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주님은 우리를 바로 가슴에 달린 보석처럼 아끼고 사랑하십니다. 주님의 사랑과 관심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 하나의 이름은 참으로 주님의 가슴에 달린 보석 안에 기록된 이름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시며 돌보시고 책임지시는 위대한 존재라고 하는 사실을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깨닫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여기에 있습니다. 거룩한 옷을 입은 제사장에 사명입니다. 제사장은 바로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으로 사람을 대하여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주님 앞으로 인도해 내는 그런 존재라고 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룩한 옷을 입은 제사장 같은 존재라고 한다면 우리의 옷은 바로 중보의 옷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어깨는 보석에 새긴 이름 같은 귀한 이름이 달려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책임이요, 사명입니다. 우리의 어깨는 과연 몇 개의 보석이 달려 있습니까? 내가 기도해 주어야 할 사람, 내가 인도해야 할 사람들, 내가 양육하고 돌보아야 할 그런 사람들 그들을 보석처럼 우리의 어깨에 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 주변에 수많은 사람들을 그냥 보지 마세요. 그들은 내 어깨에 달기 바랍니다. 그들을 내 중보 기도의 제목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그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나의 귀중한 보석들로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어깨에 다시고 그들을 주님 앞으로 가지고 나가시기 바랍니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눈물 흘리며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우리는 어깨에 보석을 달고 있는 제사장의 거룩한 옷을 입은 성도의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일생 동안 어깨에 달린 보석 같은 존재에 대하여 충성하고 봉사했습니다. 그의 고백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2:19-20절 말씀입니다.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바울의 기쁨, 바울의 계급, 바울의 영광은 바로 바울이 복음을 전하고 양육 시켰던 그들 교인들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 우리의 영광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계급이 영광이 아닙니다. 우리의 직급이 영광이 아닙니다. 우리가 많이 벌어 두었던 돈이 영광이 아닙니다. 내 어깨에 달린 보석 같은 귀한 영혼들 우리가 하나님 앞으로 데리고 나왔던 그 귀한 생명들 우리가 잘 양육하여 하나님의 귀한 일꾼 되게 말들었던 그런 영혼들이 우리의 계급이요, 우리의 보석이 될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이웃들을 보석에 새긴 이름처럼 어깨 위에 달고 중보하며 기도하고 그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몇 명이나 주님께로 인도하셨습니까? 그 숫자만큼 우리 어깨에 별이 빛날 것입니다. 보석이 빛날 것입니다. 지금 현재 여러분 어깨에는 몇 개의 보물이 보석이 달려 있습니까? 우리가 중보하고 기도하는 만큼 우리의 계급은 하나님 앞에 정해 질 것입니다. 여러분 누가 가장 높은 자입니까? 직분으로 높이를 결정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보석을 어깨에 많이 달고 있느냐? 얼마나 귀한 영혼을 위하여 많이 기도하고 많이 중보하는 사람인가? 여기에 하나님 앞에서의 계급이 결정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제사장처럼 내가 책임져야 할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잘 양육하시기 바랍니다. 누가 내 주변에 있든지 그들을 내 어깨의 보석으로 여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뿐 아니라 그들이 내 가슴에 달린 보석으로 여겨야 합니다. 때로는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섭섭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무시하지 마세요. 힘없이 보이는 자도 있습니다.
나에게 아무 관심도 두지 않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내 가슴에 단 보석들로 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그들을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용서해 주어야 될 사람은 누구입니까? 내가 이해해야 할 사람이 누구입니까? 사랑해 주어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이번 사순절에는 이들을 모두 내 가슴에 달린 보석처럼 여기고 사랑하는 역사가 일어나기 바랍니다. 여러분 그들은 내 가슴에 다십시오. 이해할 수 없는 그를 내 가슴에 다십시오.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우리를 가슴에 달린 보석처럼 여기듯이 우리가 제사장이라면 그들을 나의 귀한 사람을 다하여 이해하고 덮어 주어야 할 존재로 안고 품는 그런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지난번에 장로님들과 태국에 갔을 때 우리 교회가 후원하는 김재희 선교사님을 만났습니다. 김재희 선교사님 훌륭한 분이십니다.
그런데 공항에 우리를 Pick up을 하러 오셨는데 그 차를 탔습니다. 그 차는 반트럭이었습니다. 흔히 Pick up라고 하는 차가 있지 않습니까? 그 차 옆에 탔는데 김재희 선교사님 운대에 조그마한 종이가 있는 것을 보고 그 글을 읽었습니다. 짧은 글인데 은혜가 있었습니다. 'Do small thing with great love' 여러분 짧은 글이죠. "작은 일을 큰 사랑을 가지고 하라." 얼마나 감동을 받았는지 그들은 지금 그렇게 일하고 있습니다. 고아를 돌보고 있습니다. 한 영혼 한 영혼을 가슴에 달린 보석처럼 어깨에 달린 보석처럼 여기며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큰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작은 일을 큰 사람으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 달 4월호 '생명의 삶' QT책에 우리 김재희 선교사님께서 투고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그것을 인쇄를 해서 주보에다 끼워 드렸습니다.
지금 보지 마시고 집에 가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거기에 보면 솜이라고 하는 그 아이의 고아에 대한 간증 중입니다. 그는 오줌싸게였습니다. 부모의 사랑도 받지 못하고 몸이 얼마나 뚱뚱한지요, 문제가 많았습니다. 학교를 보냈는데 그 매일 옷이 젖어 돌아옵니다. 왜요? 오줌싸게니까요. 20분에 한번씩 화장실에 같다 오는데 오줌을 싸는지 하는 아이였습니다. 그러나 그를 참으로 귀한 가슴에 달린 보석처럼 여기면서 어깨에 달린 보석처럼 여기면서 사랑하고 또 사랑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그 오줌싸게 병이 깨끗하게 치료를 받았습니다. 몸무게도 줄었고 허리 싸이즈도 줄이 하는 그런 간증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귀합니다. 우리 김재희 선교사 그는 태국의 제사장 거룩한 옷을 입은 태국의 제사장으로 솜을 사랑해 주었습니다. 솜을 책임져 주었습니다. 돌보아 주고 인내해 주었습니다. 그러길 느는 역사가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택하여 이 세상속에서 .거룩한 제사장으로 불러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거룩한 옷을 입혀 주셨습니다. 이 옷은 섬기기 위한 옷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하기 위한 중보의 옷입니다. 우리를 가슴에 달린 보석처럼, 어깨에 달린 보석처럼 여기시고 우리 위해 피 흘리사 거룩한 옷을 입혀 주신 예수님께서 오늘 아침 우리에게 기대하고 있습니다.
세상속으로 들어가서 수많은 사람들을 우리의 가슴과 우리의 어깨에 달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주님 앞으로 인도하는 제사장이 될 것을 명령하고 계십니다. 어떤 사람이든지 모두 섬기며 모두 사랑하고 모두 존귀하게 여기고 용납하는 제사장이 될 것을 바라고 계시는 것입니다. 거룩한 옷을 입은 제사장으로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은혜목회정보(산성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