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전 5: 3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 살전 5: 5 빛과 낮의 아들
살전 5: 3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한다는 말은 사람들이 심판과 멸망에 대한 두려움이 없이 안일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인다.
주 예수께서도 재림 직전의 세상의 모습에 대하여 노아의 때처럼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며, 롯의 때처럼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집을 짓는다고 말씀하셨다(마 24: 37-38. 눅 17: 26-28).
그때 멸망이 홀연히 임하게 될 것이다. 그 멸망의 갑작스러움은 마치 잉태된 여인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을 것이다. 홀연히 임하는 그 멸망은 아무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이 세상의 종말, 곧 인류 역사의 대 종말이 될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은 악인들에게는 멸망의 날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지금 회개하고 구원받아야 한다. 사람의 개인의 죽음도 예상할 수 없이 오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도 갑작스럽게 올 것이다.
1] 그들이
'그들'은 4절의 '형제'와 대조를 나타내는 말로서 비그리스도인을 지칭한다.
2]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평안'(*, 에이레네)은 내적인 '마음의 평온'을 뜻하며 '안전'(*, 아스팔레이아)은 '외부의 위협으로부터의 안전'을 의미한다.
바울은 본 구절을 통하여 예수께서 '인자의 오심'에 대해 하신 말씀이다.
* 눅 17: 26-30 - 26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27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망시켰으며 28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29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부터 불과 유황이 비 오듯 하여 그들을 멸망시켰느니라. 30 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즉 노아의 때와 소돔성의 멸망(창 6, 19장)을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상기시키고 있다(Bruce).
불신자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고 생각함은 자기들의 심령상 불안은 모르고 하는 말이며,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심판도 내다보지 못하고 하는 말이다.
* 렘 6: 14 -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면서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 렘 8: 11 - 그들이 딸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면서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이것은 이 세상에 속한 자들의 무지 몽매한 말이며 불신앙으로 나타내는 말이다.
* 마 24: 37-39 - 37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38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39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3]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이 비유는 예기지 못할 때 갑자기 멸망이 덮쳐오게 됨을 생동감(生動感)있게 표현한 것으로서 구약에서도 반복적으로 사용되었다.
* 사 13: 8 - 그들이 놀라며 괴로움과 슬픔에 사로잡혀 해산이 임박한 여자 같이 고통하며 서로 보고 놀라며 얼굴이 불꽃 같으리로다.
* 사 21: 3 - 이러므로 나의 요통이 심하여 해산이 임박한 여인의 고통 같은 고통이 나를 엄습하였으므로 내가 괴로워서 듣지 못하며 놀라서 보지 못하도다.
* 렘 4: 31 - 내가 소리를 들은즉 여인의 해산하는 소리 같고 초산하는 자의 고통하는 소리 같으니 이는 시온의 딸의 소리라. 그가 헐떡이며 그의 손을 펴고 이르기를 내게 화가 있도다. 죽이는 자로 말미암아 나의 심령이 피곤하도다. 하는 도다.
* 호 13: 13 - 해산하는 여인의 어려움이 그에게 임하리라. 그는 지혜 없는 자식이로다. 해산할 때가 되어도 그가 나오지 못하느니라.
* 미 4: 9 - 이제 네가 어찌하여 부르짖느냐? 너희 중에 왕이 없어졌고 네 모사가 죽었으므로 네가 해산하는 여인처럼 고통함이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은 갑자기 임한다.
이 문구가 보여주는 비유는 두 가지 요점을 가진다.
(1) 불신자들에게는 주님의 재림이 뜻밖에 이른다는 것.
(2) 그것이 고통 곧, 심판이라는 것이다.
4]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1) 멸망
최후의 심판, 곧 종말을 의미한다.
(2) 홀연히
이러한 일은 뜻밖에, 다시 말하면 그들이 예측불허한 상태임을 말한다.
(3) 그들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하는 불신자들을 말한다.
(4) 이르리니
이러한 심판은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역사적 사건이 될 것을 말한다.
(5) 결코
최후의 심판은 확실하게 실현 될 것을 확증하는 심판의 확실성을 말한다.
(6) 피하지
심판의 적용될 사람 가운데 예외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7) 못하리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에 대한 심판의 당연성을 말한다.
살전 5: 4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
'형제들아'라는 말은 본 서신에서 14회 나온다(1: 4. 2: 1, 9, 14, 17. 3: 7. 4: 1, 10, 13. 5: 1, 4, 12, 14, 25). 이것은 매우 친근한 호칭이다. 부활하신 주 예수께서도 우리를 형제들이라고 부르셨다.
마태복음 28: 10,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모든 성도는 다 하나님의 자녀들이며 하나님의 가족이며 주 안에서 형제자매이다.
본문은 어두움에 있는 자들에게는 주의 날이 도적같이 임하지만, 어두움에 있지 않는 자들에게는 그 날이 도적같이 임하지 못할 것이며, 예수님 믿고 구원 얻은 자들은 어두움에서 빛으로 나온 자들이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주의 재림의 날이 도적같이 임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어두움에 있는 자들은 안일하게 살다가 갑자기 멸망을 당하지만, 빛의 자녀들은 준비하며 살다가 재림을 맞이할 것이다.
1]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어둠'(*, 스코테이)은 '불신앙의 상태, 임박한 멸망에 대한 무지, 무감각한 도덕심'등을 의미한다(Lenski, Frame).
또한 롬 13: 12에서 바울은 '어두움의 일을 벗으라.'고 권면한 바 있다.
곧,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어두운 세상에 속하지 않고 천국의 광명에 속하였다는 말이다. 그들은 복음을 믿는 자로서
(1) 그 심령 속에 벌써 내세의 광명을 어느 정도 받아 가지고 있으므로 주님의 재림 앞에 깜짝 놀랄 필요가 없다.
* 요일 4: 12-13, 17-18 - 12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13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17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그뿐 아니라,
(2)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재림의 징조들을 미리부터 알고 있으니만큼, 그 날짜는 모를지라도 그 일에 대한 마음 준비는 할 수 있다.
2] 그 날이 도둑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1) 그 날이
종말, 곧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최후의 심판을 의미한다.
(2) 도둑 같이
주의 강림이 비밀스럽게 은밀하게 성취되는 일이 아님을 말한다.
(3)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믿음의 성도들에게는 여러 종들을 통하여 재림의 때를 예언하였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재림과 심판을 사전에 미리 준비하도록 하셨다.
살전 5: 5 빛과 낮의 아들 -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
본문은 이와 같이 빛의 아들과 어두움의 아들, 낮의 아들과 밤의 아들을 대조시킨다.
어두움의 아들과 밤의 아들은 세상 사람을 가리키며 구원받기 전의 우리의 상태를 가리킨다. 밤은 좋지 아니하다. 밝은 것이 좋다. 범죄자들은 밤을 좋아하지만, 그것은 밤이 좋아서가 아니고 자기의 행위를 감추기 위해서일 뿐이다.
구원받은 성도는 어두움에 속하지 않고 빛에 속한다. 그는 어두움의 아들이나 밤의 아들이 아니고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다.
어두움은 무지와 죄와 불행과 죽음을 가리키고, 빛은 지식과 의와 행복과 생명을 가리킨다.
1] 너희는 다
'다'는 데살로니가 성도들 전부를 포함한다.
혹자는 이 말이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용기를 심어주는 말이 되었을 것이라고 한다(Frame).
2] 빛의 아들이요
'빛'은 '진리(眞理), 생명(生命), 의(義)'를 상징한다.
'빛의 아들'이라는 말은 요 12: 36의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와 엡 5: 8의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에서 찾아볼 수 있다.
'빛의 아들'이란 '빛 속에 있다'는 의미 이상의 것이다(Morris).
하나님은 빛이신 고로 그의 자녀들의 삶은 '빛'에 의해 특징져진다(Bruce). '빛의 아들'이란 말은 그리스도께 속하여 진리, 생명, 의를 받아 가진 성도를 가리킨다.
3] 낮의 아들이라
'낮'(*, 헤메라스)을 '빛'의 은유적인 표현으로 간주해 '빛의 아들'과 같은 의미로 생각하는 견해(Lightfoot)와 '주의 날'을 그의 '재림의 날'로 확대 해석하여, '낮의 아들'을 '파루시아의 영광에 참여하는 자'로 해석하는 견해(Bruce, Morris)가 있다.
'낮의 아들'도 역시 같은 뜻을 가진다.
* 호 6: 5 - 그러므로 내가 선지자들로 그들을 치고 내 입의 말로 그들을 죽였노니 내 심판은 빛처럼 나오느니라.
* 롬 13: 12-13 - 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 엡 5: 8, 11 - 8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11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4]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1) 우리
믿음의 성도들을 의미한다.
(2) 밤이나 어두움
비진리를 상징한다.
(3) 속하지 아니하나니
성도들은 빛의 자녀이므로 밤이나 어둠에 속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