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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 2: 21 붙잡지도 말고 - 골 2: 23 몸을 괴롭게 하는 데
골 2: 21 붙잡지도 말고 -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 (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 )
본 절은 규례가 요구하는 것에 대한 설명이다.
거짓 교사들은 세상적인 접촉과의 분리를 요구하며 외적인 금지 명령을 통해서 거룩해질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사람은 그러한 외적인 금욕을 통해서 내적인 변화를 초래할 수는 없다. 그리스도인은 오직 그리스도와 더불어 연합할 때만이 변화되며 성숙해져 갈 수 있다(Bruce, Caird).
1] 곧 붙잡지도 말고
세 가지 금지 명령 중 붙잡지도의 헬라어 '하프세'(*)에 대해 혹자는 성 생활에 관계된 것으로 보아 성 생활 금지를 요구한 것이라고 주장한다(R. Leaney).
그러나 본서에서 성 생활을 금지시키는 내용이 전혀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하프세'를 성 생활과 관련시킬 이유가 없다.
따라서 이것은 성생활과의 관계보다는 음식물과의 관계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O' Brien, Bruce).
2] 맛보지도 말고
이것은 골로새의 거짓 교사들이 명한 금욕주의의 표어(標語)를 사도가 인용한 것이다.
특히 어떤 음식물(혹은 혼인 문제까지 언급함)에 대한 금령이다. 당시 교회에는 이런 금욕주의가 흔히 유행되었던 모양이다.
* 딤전 4: 3 -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고 할 터이나 음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3]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
에덴동산에서 뱀이 유혹했던 말이다.
* 창 3: 3 -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따라서 겉모양을 건드려보는 것도 금하신 하나님으로 묘사한 것이다.
골 2: 22 사람의 명령과 가르침 - 이 모든 것은 한때 쓰이고는 없어지리라.) 사람의 명령과 가르침을 따르느냐? ( (이 모든 것은 쓰는 대로 부패에 돌아가리라.) 사람의 명과 가르침을 좇느냐? )
본문의 괄호는 삽입구이다(Vaughan, Hendriksen, RSV).
1] 이 모든 것은 한때 쓰이고는 없어지리라.)
앞서 언급된 음식물에 대한 금지 명령과 관계된 것으로 먹고 마시는 것이 모두 썩어지는 것임을 뜻한다.
결국 '의문'이 요구하는 것들은 일시적이며 부패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 이상 그리스도인들을 제한하거나 속박할 수 없다(Vaughan, Carson).
이 문구에 대해 해석상 두 가지 의견이 있다.
Ⓐ 이 모든 것이란 말은 20-21절이 포함하는 의식(음식물, 기타에 관한 의식)을 가리킨 것으로 이런 의식만을 행하는 것은 영생(永生)에 이르게 하지 못하고 부패와 영멸(永滅)에 이르게 한다는 뜻이다(Ambrose, Augustine).
Ⓑ 윗 절에서 말한 음식물(윗절 참조)로 부패하는 음식물의 문제가 천국에 있어서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 롬 14: 7 -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 고전 6: 13 - 음식은 배를 위하여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하여 있으나 하나님은 이것저것을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시느니라.
음식물을 먹고 안 먹는 문제로써 신자들을 정죄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 롬 14: 1-3, 6 - 1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2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믿음이 연약한 자는 채소만 먹느니라. 3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라. 6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이 해석은 칼뱅이 채용한 것으로서 자연스럽고 문맥에 적합해 보인다.
2] 사람의 명과 가르침을 좇느냐?
본 절은 사 29: 13의 사상을 배경으로 한다.
* 사 29: 13 -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떠나 사람의 계명에 빠져 있었던 것처럼 골로새 교인들을 현혹하는 각종 금욕주의적 금지 명령들도 그 기원이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있었다(8절).
위의 20-21절에 포함된 거짓 교사들의 의식주의(儀式主義)는 단순한 구약의 의식이 아니고 구약의 의식을 과장한 거짓 교사들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인조(人造)의 명령이요 교훈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인하여 십자가에 죽으셨으므로, 우리를 정죄하는 율법(구약의 의식도 포함함)의 작용도 도말(塗抹)되었다. 그렇다면, 성도들로서 인조의 의식주의를 좇을 필요가 무엇이랴?
* 마 15: 8-9 - 8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9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 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
* 막 7: 6-7 - 6 이르시되,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7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 도다 하였느니라.
골 2: 23 몸을 괴롭게 하는 데 -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데는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따르는 것을 금하는 데는 조금도 유익이 없느니라. (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데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좇는 것을 금하는 데는 유익이 조금도 없느니라. )
본 절은 앞 절까지 논술된 거짓 교사들의 주장(천사 숭배, 의식주의, 금욕주의)을 평가한다.
1]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데는 지혜 있는 모양이나
이런 것들은 앞 절 끝에 있는 사람의 명과 가르침을 가리킨다.
자의적 숭배는 하나님의 계획이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자기 생각대로 섬기는 것으로 이것은 하나님의 객관적 계시(客觀的啓示)에 의하여 실행하는 종교가 아니고 인간의 자의(自意)로 만든 그릇된 주장(예컨대 천사 숭배 - 18절)을 가리키는 말이다.
거짓 교사들은 바울이 전한 천래(天來)의 계시로 세운 참된 종교에 반(反)하여 자의적으로 숭배의 대상을 정하였다.
모든 인조의 숭배는 진리가 아니다. 이런 숭배는 하나님 앞에 가증한 것이니 벌을 면치 못한다.
나답과 아비후형제는 여호와께서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로써 분향하다가 불에 타 죽는 벌을 받았다.
* 레 10: 1-2 - 1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하신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2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
* 삼하 13: 8-14 - 8 다말이 그 오라버니 암논의 집에 이르매 그가 누웠더라. 다말이 밀가루를 가지고 반죽하여 그가 보는 데서 과자를 만들고 그 과자를 굽고 9 그 냄비를 가져다가 그 앞에 쏟아 놓아도 암논이 먹기를 거절하고 암논이 이르되, 모든 사람을 내게서 나가게 하라. 하니 다 그를 떠나 나가니라. 10 암논이 다말에게 이르되, 음식물을 가지고 침실로 들어오라. 내가 네 손에서 먹으리라. 하니 다말이 자기가 만든 과자를 가지고 침실에 들어가 그의 오라버니 암논에게 이르러 11 그에게 먹이려고 가까이 가지고 갈 때에 암논이 그를 붙잡고 그에게 이르되, 나의 누이야. 와서 나와 동침하자. 하는지라. 12 그가 그에게 대답하되, 아니라. 내 오라버니여. 나를 욕되게 하지 말라. 이런 일은 이스라엘에서 마땅히 행하지 못할 것이니 이 어리석은 일을 행하지 말라. 13 내가 이 수치를 지니고 어디로 가겠느냐? 너도 이스라엘에서 어리석은 자 중의 하나가 되리라. 이제 청하건대 왕께 말하라. 그가 나를 네게 주기를 거절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되 14 암논이 그 말을 듣지 아니하고 다말보다 힘이 세므로 억지로 그와 동침하니라.
* 대하 26: 16-21 - 16 그가 강성하여지매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곧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 17 제사장 아사랴가 여호와의 용맹한 제사장 팔십 명을 데리고 그의 뒤를 따라 들어가서 18 웃시야 왕 곁에 서서 그에게 이르되, 웃시야여 여호와께 분향하는 일은 왕이 할 바가 아니요 오직 분향하기 위하여 구별함을 받은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이 할 바니 성소에서 나가소서. 왕이 범죄하였으니 하나님 여호와에게서 영광을 얻지 못하리이다. 19 웃시야가 손으로 향로를 잡고 분향하려 하다가 화를 내니 그가 제사장에게 화를 낼 때에 여호와의 전 안 향단 곁 제사장들 앞에서 그의 이마에 나병이 생긴지라. 20 대제사장 아사랴와 모든 제사장이 왕의 이마에 나병이 생겼음을 보고 성전에서 급히 쫓아내고 여호와께서 치시므로 왕도 속히 나가니라. 21 웃시야 왕이 죽는 날까지 나병환자가 되었고 나병환자가 되매 여호와의 전에서 끊어져 별궁에 살았으므로 그의 아들 요담이 왕궁을 관리하며 백성을 다스렸더라.
우리는 오직 성경이 가르치는 하나님을 공경하고, 또한 성경이 가르치는 방법대로만 그를 예배할 것이다.
겸손은 위선적인 겸손을 가리키며, 이런 불건전한 겸손은 영적 교만을 내포한 것이지 진정한 겸손은 아니다.
몸을 괴롭게 하는 데는 금욕주의를 의미한다(Bruce, Vaughan, Carson).
금욕주의자들은 몸을 죄의 원천이라고 오해하여 그것을 고의적으로 괴롭게 하는 것을 가리킨다. 고행주의(苦行主義)는 흔히 삼중(三重) 죄악에 빠지지 쉽다.
(1) 홀로 자기만이 경건한 줄 알기 쉽고,
(2) 외식하기 쉽고,
(3) 하나님이 주신 몸을 고의적으로 학대하는 일과 같은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신앙을 위하여 고생을 당하게 됨은 귀한 일이니, 성도마다 그리하기를 힘쓸 것이다.
* 빌 1: 29 -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나 영적 허영심을 가지고 고의적으로 고행을 일삼는 것은 부당한 것이다.
의문에 쓰여 있고 거짓 교사들이 요구하는 금지 조항들은 앞서 언급한 세 가지 사항을 행하는 데는 탁월한 유익이 있다.
그러나 그러한 사항들은 하나님과 전혀 관계가 없는 인간의 계명을 따른 행위에 불과하다.
지혜 있는 모양은 이와 달리 '지혜 있다 하는 명성(名聲)'이라고 번역하는 이도 있다. 이 번역이 더욱 신임할 만하다(Alford).
2] 오직 육체 따르는 것을 금하는 데는 조금도 유익이 없느니라.
육체'는 죄악 된 본성을 가리킨다.
* 갈 5: 19-21 - 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또한 따르는 것에 해당하는 헬라어 '플레스모넨'(*)은 '만족' 혹은 '충만'이라는 의미로 '육체적인 탐닉'을 가리킨다.
바울은 본 절에서 골로새의 거짓 교사들이 요구했던 금지 조항들이 인간의 죄악 된 본성에 따라 나타나는 육체적인 탐닉을 제한하는 데에는 아무런 유익이 없음을 진술한다(Vaughan, Moffatt, Bruce, Carson, NIV, RSV 각주).
이 문구의 뜻은 위에 언급된 고행주의가 육체(신체를 의미하지 않고 인간의 부패한 성품 곧, 죄성(罪成)을 의미함)를 금제(禁制)하는 데 하등의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Lightfoot).
그러나 이 밖에도 또 한 가지 학설이 있다. 그것은 마이어(Meyer)의 해석으로 곧, '그것은 존귀로운 것이 아니고 다만 육체의 요구를 채워 줄 뿐이다'라고 번역하는 것이다.
이 번역이 포함하는 의미는 거짓 교사가 명성은 있으나 그 명성은 존귀로운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복음의 빛을 드러내는 일과 같은 존귀로운 것이 아니고 그들의 육체의 욕심(명예심)을 채우고 마는 것이다.
우리 성도들에게 참된 명예가 있다면, 그것은 사람으로 말미암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칭찬하여 주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