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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고전 1:26-27a)
윌리엄 캐리, 폴러스퓨리(Paulerspury) 유년기 일기 및 회고록
토머스 스콧(Thomas Scott), 성경 주석가이자 캐리의 영적 멘토의 회고록
서론: 구두장이의 흙먼지 묻은 작업대에서 태어난 세기적 비전
기독교 선교 역사에서 가장 거대한 물줄기를 바꾼 인물은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의 석좌교수가 아니었습니다. 런던의 권력 있는 대주교도 아니었습니다.
1761년 8월 17일, 영국 노샘프턴셔의 작은 시골 마을 폴러스퓨리(Paulerspury)에서 한 직조공의 아들로 태어난 윌리엄 캐리(William Carey, 1761–1834)는 정규 고등교육을 단 하루도 받아본 적이 없는 가난한 시골 소년이었습니다.
그는 햇빛에 노출되면 피부가 벗겨지고 짓무르는 심각한 피부병 때문에 농사일조차 할 수 없어, 16세에 생계를 위해 헉클턴(Hackleton)의 한 낡은 구두 수선공 집의 견습공으로 들어갔습니다. 악취 나는 가죽 냄새, 짐승 기름, 흙먼지가 가득한 오두막 작업대에서 구두 밑창을 꿰매던 이 무명의 청년의 가슴에 성령께서 열방을 향한 불꽃을 떨어뜨리셨습니다.
제1강은 도둑질의 죄책 속에서 몸부림치던 한 가난한 견습공이 어떻게 회심하고, 구두 수선대 벽에 붙여놓은 양피 가죽 세계지도 앞에서 눈물로 세계를 품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거룩한 비전의 태동을 다룹니다.
1. 유년기의 빈곤과 도둑질 사건: 율법 앞에서 무너진 자아
소년 캐리는 책 읽기를 병적으로 좋아했습니다. 특히 자연과학, 식물학, 곤충 채집, 그리고 탐험기에 유독 매료되었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그는 하나님과 무관한 죄인이었습니다. 당시 영국 국교회(성공회)의 형식적인 종교 의식에 갇혀 있던 그는, 겉으로는 도덕적인 척했으나 내면은 거짓말과 정욕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1777년 겨울, 16세의 캐리에게 영혼을 뒤흔드는 일생일대의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1 실링의 도둑질과 뼈아픈 수치
1. 성탄절 선물로 주인이 고객들에게 심부름을 보냄.
2. 한 상인이 캐리에게 잔돈과 함께 '가짜 1실링 주화' 하나를
섞어 건넴.
3. 캐리는 이를 눈치채고, 주인의 정당한 돈 1실링을 자신이
가로챈 뒤 주인에게는 가짜 주화를 내밀며 발뺌함.
4. 상인과의 대질 끝에 거짓말이 들통나고 끔찍한 수치를 당함
캐리는 회고록에 당시의 심경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내 거짓말이 백일하에 드러났을 때, 나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온몸이 수치와 공포로 떨렸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의 그 끔찍한 죄악을 사용하여 내 도덕적 의(義)가 얼마나 더러운 위선인가를 폭로하셨다.
나는 그동안 내가 정직하고 점잖은 청년인 줄 착각했으나, 실상은 지옥에 떨어져 마땅한 가증한 도둑놈에 불과했다."
이 수치스러운 사건을 계기로 캐리는 자신의 영적 파산을 직면했고, 동료 견습공이자 비국교도(청교도 침례교) 신앙을 가졌던 존 워(John Warr)의 끈질긴 영적 권면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1779년 2월 10일, 18세의 캐리는 홀로 골방에 엎드려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오직 십자가의 보혈과 은혜만을 의지하며 그리스도 예수께 온 삶을 굴복시켰습니다.
2. 가죽을 꿰매며 6개 국어를 독학한 성령의 천재성
회심 이후 캐리의 배움에 대한 열정은 단순한 지적 호기심을 넘어 '하나님의 말씀을 더 깊이 알고자 하는 거룩한 광기'로 전환되었습니다. 그는 하루 종일 헌 구두를 깁는 고된 노동 속에서도 책을 결코 손에서 놓지 않았습니다.
작업대 위의 책받침대: 캐리는 구두 수선대 한편에 작은 나무 받침대를 만들어 성경과 문법책을 올려놓았습니다. 왼손으로는 구두 가죽을 잡고, 오른손으로 송곳질을 하면서 눈으로는 단어장을 외웠습니다.
언어의 장벽을 부수다:
10대 후반에 라틴어 문법을 완전히 독학으로 마스터했습니다.
신약성경을 원어로 읽기 위해 헬라어를 정복했고, 이어서 구약성경의 히브리어 원전을 파고들었습니다.
프랑스어와 네덜란드어, 이탈리아어 서적들을 사전 하나에 의지하여 독파했습니다.
정규 대학교육은커녕 중등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가난한 구두장이 청년이, 훗날 인도 대륙의 40여 개 언어로 성경을 번역해낼 수 있었던 초인적 언어 감각은 바로 이 어둡고 냄새나는 헉클턴의 수선공 작업대 위에서 눈물과 땀으로 벼려진 것이었습니다.
3. 작업대 벽에 붙은 양피 가죽 세계지도: 열방을 품은 중보기도
1783년 10월 5일, 22세의 캐리는 존 라이랜드 목사에게 침례를 받고 침례교회의 정식 성도가 되었으며, 이후 몰턴(Moulton)의 작은 침례교회에서 주말 설교자로 사역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너무 가난하여 사례비를 주지 못했기 때문에, 그는 여전히 주중에는 낮에 아이들을 가르치는 시골 훈장 노릇을 하고 밤에는 구두를 수선해야 했습니다.
이 시기 캐리의 영혼을 뒤흔든 두 가지 결정적인 영적 촉매가 있었습니다.
캐리의 영혼을 불태운 2대 촉매
1. 제임스 쿡 선장의 《세계 탐험기(Cook's Voyages)》:
- 태평양 군도와 미지의 대륙에 수많은 영혼이 복음을
듣지 못한 채 흑암과 식인 풍습 속에 죽어가고 있음을
지리적·인류학적 사실로 직면함.
2. 조나단 에드워즈의 책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의 생애와 일기》:
- 인디언들을 위해 눈밭에 무릎을 꿇고 피를 토하며 기도했던
브레이너드의 선교적 영성이 캐리의 뼛속까지 스며듦.
캐리는 가죽 조각들을 잘라 붙여 거대한 양피지 세계지도를 직접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일하는 구두 작업대 정면 벽에 그 지도를 붙여놓았습니다.
그는 지도 위에 각 나라의 면적, 인구, 종교(기독교, 이슬람교, 힌두교, 미신 등)의 통계를 꼼꼼히 기록해 넣었습니다.
가죽을 깁다가 지도를 올려다볼 때마다 그의 눈동자에는 눈물이 맺혔습니다.
*"나는 가죽을 꿰매면서 지도를 바라보았다.
저 거대한 아시아와 아프리카, 그리고 미지의 섬들 속에 살고 있는 수억 명의 영혼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조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채 영원한 지옥으로 쓸려 내려가고 있었다.
내 가슴은 터질 것 같았다.
나는 송곳을 내려놓고 무릎을 꿇었다.
'오 주여, 저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저 어둠의 땅에 누구를 보내시겠습니까!'"*
4. 시골 설교자의 거룩한 고독과 교회의 영적 동면
당시 영국 교회는 선교에 대해 철저히 잠들어 있었습니다. 칼빈주의를 왜곡한 '극단적 숙명론(Hyper-Calvinism)'이 교회를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목회자들은 "이방인들의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일이니 우리가 나설 필요가 없다"며 안락한 의자에 앉아 있었습니다.
대다수 신자는 영국의 울타리를 벗어난 세계에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캐리는 이 차가운 영적 결빙기에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가난으로 인해 빵 한 조각을 물에 적셔 먹으며 아내와 자녀들을 부양해야 하는 극한의 생활고 속에서도, 그의 시선은 언제나 작업대 벽의 세계지도를 향해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문명과 교회가 외면했던 헉클턴의 한 평짜리 구두 수선공 오두막을, 온 세상을 뒤흔들 '근대 선교 운동의 영적 사령부'로 삼으셨던 것입니다.
제1강의 결론: 오늘 우리를 향한 선교 부흥의 원리
윌리엄 캐리의 가난한 출발은 오늘날 환경과 조건의 한계 뒤에 숨어 핑계를 대는 현대 성도들을 향해 거대한 도전을 던집니다.
하나님은 비천한 일터의 성실함을 부흥의 도구로 쓰신다:
화려한 무대가 없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구두를 깁는 가장 낮은 자리에서도 성경을 펴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자를 통해 하나님은 역사를 바꾸십니다. 당신이 지금 서 있는 그 평범한 일터가 거룩한 사역의 훈련장입니다.
지도를 펴고 열방을 품는 기도를 시작하라:
내 문제, 내 가정, 내 교회의 울타리에만 갇힌 기도는 영혼을 메마르게 합니다. 복음의 은혜를 알지 못하는 잃어버린 열방과 미전도 종족들의 영적 비참함을 가슴에 품고 눈물로 중보하는 자에게 하늘의 불이 임합니다.
시대의 냉담함을 뚫는 거룩한 거룩성을 준비하라:
주변의 모든 사람이 잠들어 있을지라도, 홀로 깨어 말씀을 파고들며 성령의 무장을 갖추십시오. 고독한 골방에서 준비된 한 사람의 기도가 마침내 대륙의 영적 빙벽을 깨뜨리는 망치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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