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촉도(歸蜀途) 서정주(徐廷柱) 눈물 아롱아롱 피리 불고 가신 님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 삼만 리. 흰 옷깃 여며 여며 가옵신 님의 다시 오진 못하는 파촉(巴蜀) 삼만 리. 신이나 삼아 줄 걸 슬픈 사연의 올올이 아로새긴 육날 메투리. 은장도 푸른 날로 이냥 베어서 부질없는 이 머리털 엮어 드릴 걸. 초롱에 불빛 지친 밤하늘 굽이굽이 은핫물 목이 젖은 새. 차마 아니 솟는 가락 눈이 감겨서 제 피에 취한 새가 귀촉도 운다. 그대 하늘 끝 호올로 가신 님아. [시어, 시구 풀이] 귀촉도(歸蜀道) : ‘촉나라로 돌아가는 길’을 의미하지만, 이 시에서는 귀촉도의 울음소리를 표현한 것으로 돌아가신 임을 표상한다. 촉나라 망제(望帝)가 쫓겨나 촉나라를 그리워하다가 죽어 그 넋이 새로 화했다는 전설이 있다. 전통적으로 애절한 정한(情恨)을 표상하는 새로서, 돌아가신 임을 표상하는 동시에 임과 시적 화자를 연결해 주는 사랑의 매개체 구실을 한다. 다른 이름으로, 자규(子規), 불여귀(不如歸), 소쩍새, 접동새 등으로 불린다. 이 시에서 한(恨)의 객관적 상관물로 쓰였다.
서역(西域) : 여기서는 아미타불의 세계인 서방정토(西方淨土)를 뜻함 여며 : (옷깃 따위를) 바로 잡아 단정하게 하여 파촉(巴蜀) : 중국의 서북 변방에 있는 쓰촨성에 있던 촉나라 땅을 일컫는 말. 여기서는 한 번 가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죽음의 세계로 ‘파촉 삼만리’는 떠난 님과의 정서적 거리를 나타낸 말. ‘서역 삼만리’와 같은 말 육날 메투리 : 날줄이 여섯 개인 미투리 은장도 : 화자가 여성임을 암시하며, 여성의 정절을 상징한다. 부질없는 머리털 : 임이 죽은 지금 누구에게도 더 이상 예쁘게 보일 필요가 없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초롱 : 등불을 켜서 어두운 곳을 밝히는 기구로 기다림을 상징함 제 피에 취한 새 : 임의 표상이자 임과 나를 연결시켜 주는 사랑의 매체 [핵심 정리] 지은이 : 서정주(徐廷柱, 1915-2000) 시인. 호는 미당(未堂).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벽’이 당선되어 등단. 김광균, 김동리와 함께 <시인부락> 동인 활동하였는데 흔히 그들을 생명파라 불렀음. 초기에는 악마적이고 원색적인 시풍을 갖기도 했으나 후기에는 동양의 정신을 추구하는 시를 많이 써 그 시적 깊이가 심화되었다. 시집에 <화사집(花蛇集)>, <귀촉도(歸蜀道)>, <서정주 시선>, <신라초>, <동천(冬天)>, <질마재 신화> 등이 있다.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율격 : 내재율 성격 : 전통적, 낭만적 구성 : 1연 임과의 영원한 이별(임의 죽음) 2연 임의 부재에서 오는 슬픔(못다한 사랑의 회한) 3연 애절한 정한과 영원한 사랑(가신 임에 대한 그리움) 제재 : 귀촉도의 전설, 임과의 이별로 인한 슬픔 주제 : 이별의 애상과 승화된 사랑. 여인의 사랑에 대한 아픔과 변함 없는 사랑 출전 : <귀촉도>(1948) ▶ 작품 해설 전 3연의 자유시로 전통적, 불교적이며 주정적(主情的)인 상징어를 구사하였다. 7․5조를 바탕으로 3음보의 율격을 지녔으며 중첩어를 사용하여 운율의 묘를 살렸다.
“두견, 소쩍새, 접동새, 자규라고도 하는 다른 이름이 있는 귀촉도는 그런 발음으로 우는 것으로, 지하에 계신 우리들의 조상 때부터 들어 온 데서 생긴 말이다.” 라고 시인 자신은 밝히고 있다. 곧 임을 떠나 보낸 한 청상의 애절한 모습으로, 망국의 한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서역’과 ‘파촉’을 ‘삼만 리’라고 표현하면서 얼마나 저승길이 멀고 먼가를 나타내고 있다. 결국 이 시에는 우리 고유의 한과 체념이 스며들어 있고, 두견의 전설을 소재로 망국의 한을 여인의 애절한 가락으로 엮은 시이다.
촉나라 망제의 전설을 잘 살린 것인데, 다시 오지 못할 곳으로 떠난 임에게 자기의 정성을 다하지 못한 시적 자아의 회한과 임에 대한 끝없는 사랑이 잘 나타나 있으며, 사랑의 본질이 비극적인 것이고 더 나아가 생의 본질이 비극적이라는 인식이 반영되고 있다. 이 시의 지배적 정서는 사랑하는 임을 사별(死別)한 여인의 정한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각 구절마다 그 비유의 주지(主旨)를 쉽게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그 비유의 속성은 아주 선명하게 느껴진다. 이 시의 주된 심상은 상징에 의해 제시되고 있다.
이 시는 두견의 전설을 소재로 하여 망국(亡國)의 설움을 여인의 애절한 가락으로 나타낸 시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전통적인 한(恨)과 체념, 비애 등이 잘 드러나 있으며, 사랑의 본질이 비극적인 것이고 더 나아가 생의 본질이 비극적이라는 인식이 반영되어 있다. 이 시의 지배적 정서는 사랑하는 임을 사별한 여인의 정한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각 구절마다 그 비유의 주지(主旨)를 쉽게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그 심상의 속성은 아주 선명하게 느껴진다. 이 시의 주된 심상은 상징에 의해 제시되고 있다. 각 연별로 나누어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연. 이별의 상황 제시. 경어체의 여성 어조를 통해 이별의 슬픔을 극도로 고조시키고 있다. 다소곳한 한국의 전통 여인의 태도는 경어체의 어사(語辭)에 실려 있고, 드러내지 않는 가운데 한은 내면화되고 있다. 아롱진 눈물로 슬픈 피리 소리를 남긴 채 머나먼 서역 땅으로 임이 가버린 상황이다. ‘진달래 꽃비, 흰 옷깃’ 따위의 시어는 이별의 비감을 시각적으로 보여 준다. ‘서역 삼만 리’와 ‘파촉 삼만 리’는 같은 의미의 반복이다. 다시 오지는 못할 것만 같은 거리이며, 화자의 정서적 깊이를 보이는 시어다.
2연. 임에게 배려가 부족했다는 안타까움. ‘슬픈 사연의’는 행간 걸림이다. 슬픈 사연의 신이면서, 슬픈 사연으로 올올이 아로새긴 육날 메투리가 되는 셈이다. ‘이냥’이라는 부사어는 사랑의 절대성을 드러내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임이 없는 상황에서 머리털은 부질없는 것이 되고, 그것을 단호히(이냥) 베어서 드리지 못한 죄책감에 안타까워하고 있다. 여성에게 머리털은 존재의 전부와 마찬가지이다. 한국 여인에게서 머리털을 베어 내는 일은 자기를 버림과 통한다. 그 머리털을 벤다는 것은, 임이 절대성을 지닌 존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3연. 임에의 그리움. 초롱은 기다림의 상징이다. 초롱의 불마저 지친 늦은 밤하늘을 여성 화자의 감정이 이입된 새가 날고 있다. 은핫물(임과 나 사이의 단절된 공간의 상징)에 그리움으로 목이 젖은 새이다. 애절한 부름에 목이 잠기고, 그리움의 애타는 노랫가락이 차마 솟구치지는 않지만, 어쩌다 솟구치는 노랫가락에도 눈이 감겨지고(눈물이 솟아나고), 제 피(그리움의 몸부림)에 취한 새가 귀촉도 운다. 귀촉도는 중의적 표현이다. 첫째, 귀촉도, 귀촉도 ··· 우는 울음소리의 의성어이며, 둘째, ‘귀촉도’의 자의적(字義的) 의미는, 촉나라로 가는 길이란 의미인데, 임에게로 가고파 하는 애절한 갈망이다. 셋째, ‘귀촉+도’의 구조로 된 말로, 귀촉(울음소리)과 도(강세 조사)가 결합되어 ‘귀촉 귀촉 ··· 애절하게도’ 운다는 것이다.
끝 행은 이별이 주는 단절감을 말하고 있다. ‘그대 머나먼 곳으로 홀로 간 님이여!’라고 하여 감정이 일순 고요해진 것은, 이별의 아픔을 어느 정도 누그러뜨린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지는 않다. 흐느끼는 슬픔보다 안으로 확연한 인식이 선명히 드러남으로써 독자는 이별을 엄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명확한 아픔으로 다가온다.
|
첫댓글 귀축도 詩
잘감상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