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더 이상 회색을 싫어하지 않아요.
이지은
어릴 때 저는 핑크공주였답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핑크면 뭐든 다 좋아했죠. 성인이 되고서도 여전히 핑크빛을 좋아했지만, 왠지 그걸 입 밖으로 꺼내기는 창피해져 버렸어요. 핑크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아직도 애처럼 핑크를 좋아하냐는 말을 자주 들었거든요. 핑크는 여자아이만을 위한 색깔이라고 인식되는 것 같아요.
성인이 된 지금의 나는 회색의 인간이랍니다. 눈에 띄지 않는 수더분한 사람이 되고자 했어요. “무얼 먹고 싶냐?”는 단순한 질문에도 “아무거나요.” 라든지, “전 가리는 거 없이 다 잘 먹어요.”라면서 나의 취향을 드러내는 걸 꺼렸어요. ‘가만히 있어도 중간만 간다.’라는 생각을 항상 품고 살았어요. 옷차림마저도 최대한 띄지 않는 무채색의 옷들만 입고 다녔죠. 근데 저는 회색을 싫어했어요. 흰색과 검정의 중간, 어중간한 그 상태라고 여겼거든요. 회색을 보면 한없이 우울하게 보이기도 하고, 너무 평범한 것처럼 저는 느껴졌어요.
이런 회색 인간이었던 저는 그림을 배우러 다니면서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저는 연필로 밑그림 그리는 건 싫어해요. 대충 스케치를 끝내고, 팔레트용 하얀 종이 위에 물감들을 조금씩 짜는 순간부터 신나요. 붓에 물감을 조금 묻혀 부침개 반죽을 펴듯, 흰 종이에 펼치고 거기에 다른 색을 섞는 순간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랍니다. 저는 이렇게 요리조리 색을 섞는 게 너무 재미있어요.
근데 신기한 건 제가 선호하지 않는 회색이 반드시 그림에서는 필요한 색인 거 있죠. 그림에서 회색은 다른 색을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역할을 해요. 선생님은 회색이 다른 색을 ‘눌러준다’라고 표현하시죠. 회색이 다른 색을 눌러주지 않으면 각각의 색이 다 제 목소리를 내기에 불협화음 그 자체가 되어 버리거든요. 그리고 선생님은 어두운색을 사용하기를 꺼리는 저에게 항상 “지은님, 지금보다 더 어두워도 좋을 것 같아요.”라고 채근하신답니다. 어두운색을 바탕으로 깔아두고 그 위에 점차 밝은 색을 얹히는 게 저는 아직도 너무 어색해요. 내가 지금 만든 색은 너무나 둔하고 어두워서 제 그림을 모두 잡아 삼킬 것 같거든요. 그럼, 선생님은 항상 괜찮다고 더 어두워도 좋다고 격려하시죠.
제가 탐탁지 않아 여기던 회색이 이런 쓸모가 있더라고요. 그때부터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회색을 미워하지 않고 가까이 두려고 마음먹었던 순간이요. ‘이게 회색의 숙명이구나.’ 싶어 측은한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요. 다양한 색을 만드는 데 필요한 녀석이지만, 본연의 색 자체를 마음껏 뽐낼 경우는 그리 흔하지 않죠. 회색의 삶이란.
선생님은 이어, 아주 어두운 바탕에 다른 색을 올리면 그 색들이 쨍하게 나타나는 데 반해, 밝은 색이 바탕에 깔려있으면 그 위에 덧칠하는 색들이 제빛을 발현하지 못한다고 알려주셨죠. 이제껏 제가 맑은 느낌이 좋아 선호해왔던 흰색은 오히려 방해만 되는 경우가 많아요. 자기 목소리가 얼마나 뚜렷한지 조금만 섞어도 제가 여러 색을 조금씩 섞어 만들어 놓은 색을 다시 진한 원색으로 만들어 버리는 어깃장을 놓는답니다. 이럴 때는 흰색이 얼마나 얄미운지. ‘내 색 돌려줘~’
이제 저는 더 이상 회색을 미워하지 않는답니다. 배경을 어둡게 칠하는 데에도 제법 익숙해졌어요. 이제는 잘 알고 있거든요. 내가 한없이 어둡게 색을 칠해도 그 위에 덧칠하는 색들이 오히려 더 빛날 거라는 걸요.
첫댓글 사람들은 밝고 환한 것만 좋아한다는 것도 어쩌면 편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이 글을 읽으면서 해 봅니다. 색깔이라는 테마로 삶과 인생을 곁들인 하나의 수필이 완성된다는 것이 지은님 만의 깊이 파고드는 능력이 아닐까 싶어서 부럽습니다. 제목도 부정문이 아니라서 더 좋은 것 같고요. 이야기도 더 펼쳐서 분량을 늘리신 것도 잘 하신 것 같아요. 모든 일이나 사물, 사건에는 어느 정도 장단점이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회색에도 장점이 참 많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어떤 색을 극단적으로 좋아하고 싫어 할 이유도 딱히 없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고생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서로가 조화롭게 돋보이는 이유가 회색 인간이 눌러주기 때문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