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글 긴 울림, 단시短詩의 미학
시를 읽기 좋은 계절 가을입니다. 우리 모두 바쁘고 고단한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찬바람이 불고 단풍이 지는 지금 아주 잠시만이라도 시 한 편 즐기는 작은 사치를 누려보는 것 어떨까요?
에이, 먹고 살기도 바쁜데 무슨 시야.
시는 너무 어려워. 읽어도 잘 모르겠어.
한때는 나도 시집을 선물하던 문학소녀였지. 하지만 다 옛날 일...
지금 이렇게 혼잣말 하시는 분들 분명히 계시죠? 자, 그런 분들을 위해 아주 쉽고 편안하게 시의 세계에 입문할 수 있는 시집 한 권을 소개하겠습니다. 아름다운 자연과 따뜻한 인정人情을 노래한 20자 남짓의 한글시와 그것을 이어받는 한 줄의 한문시. 이렇게 소박하고 단아한 정취의 단시短詩(짧은 시) 130여 편이 실려 있는 <송산하頌山河>라는 시집입니다. <송산하>의 저자 김일로 시인은 동시집 <꽃씨>를 남긴 아동문학가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의 진가는 한글시와 한문시의 결합이라는 독특한 형식을 시도한 바로 이 <송산하>에 담겨 있습니다.
<꽃씨 하나 얻으려고 일 년 그 꽃 보려고 다시 일 년> 67쪽
마치 이른 아침 맑은 공기를 마시며 개울가를 산보하는 듯한 청량감으로 가득하다. 김일로의 시를 읽고 누가 시가 어렵고, 책이 재미없다고 할 것인가. 김일로의 시는 대단히 짧다. 자연에서 느낀 시정을 가볍게 던진 외마디의 단상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 시구에 주석을 달듯이 가한 한문 한 구절의 함축적 의미가 절묘하다. 널리 조명 받지 못한 김일로의 시를 현재로 다시 불러온 김병기 교수의 ‘역보’ 작업은 귀감이 될 만하다. _ 유홍준(미술사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