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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사람> / 월터 윙크 지음 / 한성수 옮김 / 한국기독교연구소 펴냄 / 560면 / 2만 4000원 |
"이 책은 지난 15년 동안 한국기독교연구소에서 출판한 120여 권의 책들 가운데 가장 탁월한 예수 연구서일 뿐 아니라, 이 땅에 복음이 전파된 이래로 가장 정직하며 가장 설득력 있는 예수 연구서이다."
한국기독교연구소(한기연) 김준우 소장이 최근 번역된 월터 윙크(Walter Wink)의 <참사람>을 두고 한 말이다.
한기연은 북미의 최신 역사적 예수 연구들을 국내에 활발하게 번역·출판함으로써 신화화된 예수 이해의 틀을 벗어난 예수의 역사성에 관한 담론의 장을 개척해 온 신학 연구소이다. 번역을 통한 학문적 성취를 허술한 학술논문 한 편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평가하는 학계의 어처구니없는 관행을 생각할 때 해외에서 학위를 마치고 귀국한 유능한 연구자들이 양서 번역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기를 바라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해외 박사 학위 소지자들이 대학교수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양서의 번역이 여전히 부족하고 더딘 이유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이 점에서 지금껏 120여 권의 역사적 예수 관련 연구서들을 번역·출판해 낸 한기연의 활동에 국내의 모든 신학 연구자들과 독자들은 큰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재정적으로 열악한 처지에 있는 작은 연구소가 이윤을 기대하기 힘든 책들을 지속적으로 출판해 낸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그것은 아마도 한국의 개신교가 제도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그 근본정신인 신학에 있어서도 전적으로 새로워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종말론적 위기의식이 불러일으킨 소명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가 알기로, 한기연은 북미의 역사적 예수 연구로부터 신학과 교회의 쇄신을 위한 하나의 참조 지점을 발견하고, 이를 국내 독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소개함으로써 새로운 신학적 사유와 실천을 위한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줄곧 노력해 왔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한기연은 "신학이 자본의 이해와 타협하지 않고서도 '큰'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입증해 주는 희망의 한 증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한기연의 소장인 김준우 박사가 "지난 15년 동안 출판한 120여 권의 책들 가운데 가장 탁월한 예수 연구서"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은 이 책 <참사람>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2.
월터 윙크의 이 책이 예수 연구서로서 정말로 탁월한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비전공자인 내 능력의 한계를 벗어나는 일이다. 그럼에도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저자의 방법론에 관한 것이다. 윙크는 복음서에서 진짜 예수 말씀을 가려내기 위한 투표를 한 것으로 악명(?) 높은 예수 세미나(Jesus Seminar)의 회원이자 역사 비평 방법론의 학문적 성취를 기반으로 여러 권의 학술서를 출판한 저명한 신약성서학자로서의 명성에 어울리지 않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성서 해석의 방법론을 제안하고 있다. 그것은, 놀랍게도, '극단의 축자적 본문 읽기(extremely verbatim reading)'이다. 윙크는 이른바 객관주의에 함몰된 역사 비평적 읽기의 한계를 보완하는 대안적 성서 읽기의 방식으로 '축자적 본문 읽기'를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 존재하는 자료들만으로는 예수의 복음(the gospel of Jesus)으로부터 복음서들의 예수(the Jesus of the Gospels)를 우리가 구별해 낼 수가 없으리라."(21쪽) "참으로, 역사적 예수 탐구는 '있는 그대로의 예수'를 내어놓지는 못했다. 오히려 역사적 예수에 대한 탐구는 시종 우리에게 생명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그런 예수를 무의식적으로 찾아온 긴 여정이었다."(239쪽)
윙크는 지난 19~20세기에 걸쳐 지속되어 온 '예수 탐구(Jesus-quest)'의 결과 역사의 예수에 대한 판이한 이해가 공존하게 되었고, 이로써 '있는 그대로의 예수'를 발견하려는 노력은 실패로 돌아갔다고 말한다. 이른바 객관주의의 붕괴와 더불어 모든 것이 '하나의' 해석으로 자리매김하였으며, 하나의 해석과 다른 해석 사이의 충돌이 일으키는 갈등 속에서 '예수 탐구'가 추구해 온 본래적 가치-기독교 학자들이 자신들과 당대의 종교 안에서 잃어버린 무엇인가 성스러운 것(numinous)을 찾아보려는 미완의 욕망-가 유실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3.
역사 비평은 성서에 대한 독자(연구자)의 상상력에 끊임없이 의존하면서도 상상력의 범위를 '객관적' 사실의 범주 안으로 철저히 제한해 왔다. 본문에 대하여 "모든 해석이 가능하지만, 아무 해석이나 정당화될 수 없는" 최소한의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역사 비평은 객관적 지식을 추구해 왔으며 이러한 노력은 여전히 지속될 필요가 있다고, 윙크는 말한다. 그러나 그는 본문에 대한 이해가 '객관주의'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역사 비평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역사의 최종적인 진리"가 아니라 "증거가 뒷받침하는 비근한 진리(approximate truth)"(27쪽)이기 때문이다.
성서는 변화를 위한 책이다. 성서학자들이 "증거가 뒷받침하는 비근한 진리"의 발견에 몰두하는 이유는 단순히 정보를 축적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역사 비평이 추구해 온 것은 합리성의 시대에 기독교가 잃어버린 영적인 가치를 성서가 기록된 역사적 상황에 대한 탐구를 통해 재발견해 내려는 것이었다. 성서를 파헤치고, 해부하고, 그것의 부당함을 고발하는 비평의 전위성 자체가 역사 비평의 목적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환언하면 그것은 과학적 합리성이 지배하는 서구 근대의 정신사적 구조 속에서 성서가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토대에 놓여 있는 텍스트임을 동시대인들에게 입증시킴으로써 근대성의 거대한 흐름으로부터 신학을 이탈시키지 않기 위한 필사적인 생존 투쟁의 산물이었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도 과학적이다!" 역사 비평은 근대성의 법정으로 소환된 신학을 위해 이렇게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 점에서 윙크는 축자적 읽기를 통해 객관성이라는 거대한 흐름으로부터의 이탈을 통해 성서를 생동하는 텍스트로 부활시키기 위한 필사의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생각한다.
4.
언제나 예외가 있음을 염두에 둔 말이지만, 성서학(자들)은 '객관주의'와 '전문화'가 불러일으키는 역설적 무지에 대체로 취약하다. 이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아마도 성서학이 근대성의 법정으로 소환된 신학을 위한 변호에 나선 까닭이 아닐까 생각한다. 성서학은 신학의 여러 분과 학문들 가운데에서 가장 엄밀한 과학적 사유를 추구하는 신학 방법론에 뿌리내리고 있는데, 이 점에서 성서학(자들)의 신학적 사유와 논리 전개의 방식은 '거의' 과학(자들)에 가깝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는 이른바 보수와 진보, 문자주의와 극단의 역사 비평을 지지하는 양자에 있어 공통점이다.
근본주의자들에게는 "성서가 문자적으로 사실인" 것이 중요한 반면 자유주의자들에게는 "성서가 문자적으로 사실이 아닌(혹은 다른 방식-역사·은유적으로-사실인)" 것이 중요하다는 차이가 있을 뿐, '사실'인지의 여부가 가치판단의 최우선적인 고려 사항이 된다는 점에 있어서 이들 양극단에서 싸우는 이들 사이에 아무런 차이를 발견할 수 없다. 이 점에서 이른바 객관성이 지닌 한계를 긍정할 수 없는 성서학(자들)의 과학적 엄밀성의 추구는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사실근본주의'라는 오명을 벗어 버릴 수 없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윙크의 다음과 같은 이례적인 언급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성서를 읽는 새로운/오래된 독법에 장애가 되는 것은 실증주의와 객관주의가 남긴 유산이다. [...] 성서신학자들은 하이젠베르크(Heisenberg) 원리, 즉 관찰자가 언제나 관측되는 대상 장(field)의 일부가 되며, 관측하는 행동에 의해 그 장을 교란시킨다는 원리의 의미를 포착하는 데 놀랍도록 둔감하다. 해석학적 과제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예수의 '진짜 모습'에 대한 객관적인 견해에 대해서 의문의 여지가 없다는 뜻이다. '객관적인 견해'라는 말 자체가 이미 어불성설이다. 모든 견해는 어떤 특별한 시각에서 바라본 주관적인 견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나 개인의 사적인 흥미를 가지고 성서 본문을 대한다. 우리는 언제나 이해관계를 갖고 성서를 읽는다. 우리는 언제나 보는 관점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본문들을 해석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혹은 해악이 되기도 한다."(25쪽)
윙크는 "공평무사한 본문 주석이 가능하다는 객관주의자들의 환상을 극복하고, 또 가장 엄밀한 주석을 거쳐서 과거의 현재적 의미를 확증(29쪽)"하는 것을 성서학의 과제로 새롭게 설정한다. <참사람>에서의 그의 해석학적 시도가 빛나는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다. 윙크는 근대 성서학의 객관주의적 환상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허약한 방식으로라도 우리 자신을 예수에 의해 계시된 진리에 적합하게(42쪽)" 만들 필요가 있음을 역설한다. 이 허약한 방식이란 '축자적 읽기'가 될 텐데, 이 엄밀하지 않은 비과학적 성서 읽기의 방법론을 통해 우리는 오히려 객관적 지식에 의해 가려졌던 사실 너머의 진실에 다가설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윙크는 본문과 적정한 거리를 두는 비판적 읽기로부터 독자들을 "예수에 의해 계시된 진리"를 향한 영적인 변화의 길에 이르도록 초청하고 있다는 점에서 탁월하다. 서두에서 언급한 <참사람>에 대한 김준우 소장의 극찬이 설득력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다.
5.
내용에 있어 이 책은 성서에 나오는 "사람의 아들"이라는 표현의 역사적 맥락과 의미를 살펴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를 위해 윙크는 히브리 성서 속에 나오는 '사람의 아들'이라는 표현을 살펴보는 데 이 책의 전반부를 할애한다(제2부). 이어지는 장에서는 '사람의 아들'이라는 표현이 어떻게 예수에게로 돌려지게 되었는지를 부활절 이전과 부활절 이후의 전승에 초점을 맞춰 고찰한다(제3부, 제4부). 남은 장에서는 유대교의 신비주의와 영지주의 전통에 나타난 '사람의 아들'의 유사성을 살펴보면서 그것이 기독교에 국한되지 않는 신화적 원형에 속하는 이미지임을 밝히는 것으로 내용을 마무리 짓고 있다(제5부, 제6부). 이 긴 탐구의 여정은 예수가 '사람의 아들'이라는 단순한 사실과 그 사실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독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한 하나의 목적 아래 전개되기 때문에 이 주제에 관심 있는 독자들은 윙크의 논의를 따라가 보는 것만으로도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윙크는 '사람의 아들'의 역사적 기원과 전승의 다양성을 살피는 과정에서의 "기독론의 불가피한 상대성"에 대해 언급한다. '사람의 아들'에 대한 이해가 역사적으로 다양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당신은 당신이 필요로 하는 예수를 갖는다. (그러나) 우리들이 필요로 하는 예수는 생애를 통해 변화한다. 우리의 발전 단계가 적절한 기독론적 유형을 좋아하게 만든다. 성령이 우리들의 안내자이다."(238쪽)
다시 말해 예수에 대한 이해가 어떠한지에 따라 그 사람의 현재를 가늠할 수 있다는 말이겠다. 나는 평생 '내가 필요로 하는 예수'의 틀을 벗어난 '있는 그대로의 예수'를 만나지 못할 것이다. 나는 끊임없이 내가 욕망하는 예수와 만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내가 욕망하는 예수가 곧 나의 오늘이며, 나를 비추는 거울일 것이라고, 그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윙크는 "메마르고 야윈 기독교가 세상에 줄 수 있는 것은 교리들, 신조들, 이론들, 예배 의식들이 아닌 단순히 예수(Jesus)"(528쪽)라고 말한다. 그는 이 '사람의 아들 예수'야말로 우리가 기독교로부터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렇게 자신의 예수에 대한 이해를 밝힌다. "나는 예수를 하느님으로 예배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예수가 예배했던 하느님을 예배하고 싶다. 기독교가 줄 수 있는 것, 그리고 기독교가 줄 필요가 있는 것은 인간 예수의 신화(the myth of the human Jesus)다. 그것은 유대인 예수, 한 인간, 성육한 사람의 아들의 이야기다."(529쪽)
사람의 아들 예수는 "불완전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모범적이고, 권력자들에게 희생되었으나 여전히 승리자이며, 부서졌지만 다시 일어나는 자, 힘 있는 자들의 군홧발에 짓밟혀 땅에 먼지처럼 가루가 되는 사람들과 연대하는 자, 죽음의 세력 아래 있는 자들을 치유하고, 배척받아 변두리 인생들이 된 모든 자들을 사랑하고, 용서하는 자, 해방시키는 자, '문명'이라고 부르는 지배 세력의 암적인 존재들을 폭로하는 자, 그 예수는 권세들이 죽였지만, 죽음이 그를 없애버리지 못하는 자다."(529쪽)
당신이 믿고 따르려는 예수는 누구인가, 당신은 '어떤' 예수의 제자인가, <참사람>은 독자들에게 이 질문을 남긴다.
홍정호 / 신반포감리교회 목사, 연세대학교 박사과정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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