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월 20일, 집사람으로부터 전화연락이 왔다. 군대동기생들이 부부동반하여 중국여행가는데 함께 갔으면 좋겠는데 휴가를 낼 수 있는가? 하는 내용이었다. 생각해 보니 부부가 30여년동안 살아오면서, 직장생활에 충실하다보니, 사람들이 많이 여행가던 동남아도 함께 가지 못한것이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막상 동행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집사람의 여권시효가 만료되어 갈 수가 없었다.
재발급 받기 위해선 10여일 이상의 기간이 필요하므로 여행 출발일인 3월1일 출발의 꿈을 접어야 하는 듯 하였다. 그런데 엄마의 여행포기의 안타까움을 알게된 딸이 백방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여 불과 3일만에 여권을 재발급 받아 오는 활동을 보였고, 아들은 출발하는 날, 이른 새벽부터 살고 있는 연희동에서 방배동 집에 왔다가 인천공항까지 직접 태워다 주는 운전기사로 자원하여 서비스를 베푸는 등의 노력과 희생을 하여 자식들을 둔 보람을 이번 여행을 통하여 새삼 톡톡하게 느끼게 하였다.
천진공항은 북경주변에 있는 지방의 공항으로 대기하고 있는 버스로 2시간동안 이동하여 북경에 있는 태가촌이라는 곳에서 김치를 곁들인 점심식사를 하였고, 오후에는 천당공원 왕부정거리를 둘러 보았다. 공원은 오래된 건물들로 낡아 보였으나, 그 건물들을 만지면 복을 받을 수 있다고 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의 손들이 닿았는지 반질반질 하였고, 넓은 면적의 땅이어서 인지 공원내에 수 많은 사람들(나이가 든 남녀)이 많이 모여서 마작과 카드놀이, 가창들을 즐기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탑골공원 같았으나 조금은 지저분한 느낌이 들었다. 저녁에는 서커스를 관람하였는데 높은 자전거를 타고 움직이며 스테인레스로 된 그릇을 발로 던져서 머리로 받는 기술들이 대단하였고 가이드 말에 의하면, 먹고 살기 위한 방법으로 하는 것이라 기술들이 아주 좋았으며 북한의 서커스단이 연상 되었다. 드디어 잠자는 휴식처는 북경의 경광뉴월드호텔에 2인 1실로 배정 받았는데 조금은 낡은 호텔이었다.
이곳은 물사정도 어려워 보였고, 전기사정도 넉넉하지 않아 보였으나 북경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어서 밖의 전경은 아름다웠다. 도로에는 많은 차량이 움직이고 있었고, 도로가 6차선쯤 되는데 2차선마다 중앙분리대가 있다는 것이 특별하게 느껴졌으며, 정부에서 토지권한을 가지고 있기에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고적으로 중국은 남북한을 합친 대한민국의 48배정도가 되며 북경은 서울의 28배정도 된다고 한다.
북경은 2008년 하계올림픽 준비하느라고 조금은 분주해 보이기도 하였다. 올림픽전까지 서울의 순환도로처럼 8개의 순환도로를 만든다고 하는데, 현재는 3개의 순환도로가 사용중! 이다고 한다.
“명13릉”이라는 곳에 갔다. 13명의 왕들의 무덤을 한 지역에 모아 놓은 곳인데, 한 왕릉에 가 보니, 깊이가 아파트의 9층 높이 만큼, 땅속 깊은 곳에 생전의 궁궐을 옮겨 놓은 듯한 공사를 300여년전에 어떻게 하였을까? 하고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북경의 북쪽에 있는 만리장성에 갔다. 이 만리장성이 달나라에서도 보인다고 할 정도로 불가사의 한 성으로 북경하면 떠오르는 곳인데 그 오래전에 수많은 돌 들을 현대처럼 헬기로 운반한 것도 아닐 텐데, 얼마나 많은 세월동안 공사를 했을 까?
아시아에서 가장 크다는 부국해저 라오베이징에 갔다. 수족관으로 바다에 살고 있는 물고기들이 많이 있었지만, 63빌딩밑에 있는 수족관이 생각났고, 서울 강남 코엑스몰이 더욱 잘 되어 있다고도 한다.
북경내에서는 대부분 한국돈이 통용되었다. 팁을 준비한다면 1000원짜리로 준비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한다. 호텔과 식당에서 나오면서 1-2장을 놓고 나오거나, 주면 좋아한다. 밤에는 북경에서 유명하다는 북경의 번화가에 있는 포장마차촌을 가 보았다. 북경거리의 한구간을 정부에서 승인하에 오후 4시경부터 한밤중까지 포장마차에서 꼬쟁이에 개구리, 지네, 뱀, 양고기 등등을 꽂아 구워서 파는 것으로 한국 사람들이 주 고객인 것처럼 친절하게 호객행위를 하곤 했다.
다른 장소에서는 일반인들이 고구마를 쪄서 자전거 운반대에 실고 다니며 파는데, 조금만 관심을 보이면 졸졸 따라 다니며 끈질기게 호객행위를 한다. 물론 길거리에서 도와 달라고 구걸 하는 사람도 있어서 1000원 자리 지폐를 주니, 다른 구걸자가 나타나서 자기한테도 달라고 한다. 북경의 포장마차촌 주변에도 북한에서 온 듯한 어린아이들도 보였다.
한국내에서는 1000원이 별것이 아닌 것처럼 생각되었지만, 외국에 나와보니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 저녁식사는 북경에서 유명하다는 북경오리구이를 먹었는데 생각보다는 별로였다. 이 오리는 알에서 깨어난지 한달후에 오리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입에 강제로 3개월간 먹이만을 줘서 살이 찌도록하여 잡은 훈제오리고기 인데, 다른 사람들은 오리주둥이 뼈까지 싶어 먹는 것 같았다.
옆에 있는 국립박물관을 둘러 보았다. 옛날 장개석이가 모택동에게 쫒겨 대만으로 도주하며 각종 보물들을 가지고 갔기 때문에 보물들이 적다고 하는데 그 이후에 발견된 보물들도 여전히 많았다. 드디어 천안문광장!! 아직도 모택동의 초상화가 자유화운동을 했다는 천안문에 계속 부착되어 있었다. 그런데 북경시민들의 생각은 등소평이 자신들을 더욱 잘 살게 해준 영웅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천안문광장에는 항상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다는데 천안문 우측에 있는 인민대회장(국회의사당)에서 정부행사가 있을 때에는 소요가 발생할까 염려되어 인원을 통제한다고 한다. 우리가 방문한 시각이 통제되기 수 시간전이었다. 천안문광장을 걸어서 구경하고 지하도를 건너서 천안문 뒤에 있는 자금성에 갔다.
자금성은 황제가 집무한 곳으로 청와대와 같은 곳이다. 어찌나 넓은지 자금성내에서 굶어 죽어도 알지 못 할 정도로 넓고 크다고 한다. 황제의 첩들은 얼마나 많은지 첩들에게 번호표를 주어서 하룻씩 잠자리를 한다고 할 때 한 바퀴 도는데 27년이 걸릴 정도로 많은 첩들을 두고 있다고 가이드가 설명하는 것을 볼 때, 그 당시에는 황제의 권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께 한다. 어찌나 넓은지 자금성의 일부분을 구경하는데도 다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느 정도 종업원들도 우리가 사용하는 호칭에 대하여 이해를 한다고도 하지만, 이들이 원하는 호칭은 “접대원동무”라고 한다. 한국사람들이 왔다고 접대원 동무들이 “반갑습니다”라는 곡과 우리의 옛날 노래를 불러 주었고, 우리한테 한곡 노래하라고 해서 노래방 기기에 입력되어 있는 우리의 옛날 노래 한곡을 부르니 종업원들도 나와 함께 불러 주어서 화합된 분위기로 좋았고, 팁으로 우리돈 1000원짜리 10장을 주었더니 사양하다가 고맙다며 받는다.
다음은 “이화원”이라는 곳에 갔다. 이곳은 서태후라는 첩이 황제들을 농락하며 즐겼던 곳으로 수많은 인원들을 동원하여 끝이 보이지 않는 넓은 호수를 만들었고, 이곳에서 파낸 흙으로 높은 산을 하나 만들었으며, 그 높은 산위에 넓은 호수를 내려다 볼 수 있도록 암자를 만들어 우리나라로 생각하면 대형 별장같은 것을 산정상에 짖고 즐긴장소라는 것이 특징이다.
황제들을 농락했다는 서태후가 도대체 얼마나 머리가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이화원의 면적은 호수까지 합하면 수천만평쯤 되게 느껴지는 넓은 곳이었다. 저녁식사는 말로만 듣던 사천요리라고 하는데 다른 중국식 식사와 특이한 것을 느끼지 못 했다.호텔을 옮겨 북경 변두리에 최신식 춘휘원 5성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이곳은 정말 마음에 들었다. 우리나라의 특급호텔처럼 아주 깨끗하고 좋았다.
밤인데도 호텔 손님에 한하여 노천탕에서 목욕할 수 있다기에 호텔 건물밖에 있는 황실 온천에 갔다. 수영복을 입고 들어가서 수영도 할 수 있는 이곳은 우리나라의 수영장과 다름이 없었고, 노천탕에 가니 5-6명이 동시에 들어 갈 수 있는 탕이 밖에 7개 있었고, 밖의 공기가 조금은 추운 느낌도 들었지만 나름대로 개운하였다.
흠이라면 호텔자체가 북경변두리에 있는 것이었고, 종업원들도 중국어 외에 영어를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행중 몇명은 별도의 행동을 하다가 길을 잃고 의사소통이 안되어 진땀을 빼는 체험을 하였다고 한다.
또한 현대자동차의 쏘나타가 북경시내를 질주하는 모습, 중국정부에서 방문을 권장하는 동인당약국, 옥가게, 비단가게, 차가게 등에서 한국말로 여행객들을 위하여 유창하게 설명하는 것 등등 이 모두가 우리들의 국력신장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되어 가슴이 뿌듯하였다.
관광객이 가볍게 생각하는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지갑에서 쉽게 꺼내도록 화려한 유혹이 그들의 놀라운 상술로 보였다. 관광지에서 물건의 가격이 만원이 넘으면 물건의 필요성을 일단 한 번 더 생각을 하게 되어 사지 않기 때문인것 같다. 그러나 천 원짜리의 물건은 관광객이 웃으며 그냥 쉽게 물건을 집어 들고 가볍게 지갑을 연다.
저쪽 길 끝 부근에서는 똑같은 옥수수가 다섯 개에 천원을 주고 살수도 있었다. 천 원어치의 먹을거리 한 다발을 사면 둘이서 한참을 먹을 수가 있다. 우리 관광객이 상점의 물건에 눈길만 주면, 하나라도 더 팔려고 집중적으로 점을 찍어 공격한다. 물건 값을 깎아 주는 것이 아니라 물건을 하나 더 덤으로 끼워 천원으로 맞추는 기막힌 상술이다.
찾지 않으면 내 얼굴이 들어있는 메달이 쓰레기통에 버려지면 어쩌나하는 순간의 인간심리를 이용한 것일까? 내 초상권을 완장 없는 사진사에게 침해당하고 ‘억울하다’라고 한마디 말도 못하고, 오히려 그들의 상술에 말려들어 내사진이라고 찾고 만다. 나도 웃고 있는 내 모습의 메달 사진을 세 개나 구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