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는 '하느님의 통치(천국)'에 참여하는 자들에 대한 매우 중요한 비밀이 언급된다. 한 밤중에 몰래 찾아 온 니고데모에게 예수께서 언급한 바로 '거듭남'이란 비밀이다.
《니고데모》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이자 유대의 70인 산헤드린 공의회 의원으로서 당시 유대 사회를 다스리는 최고 권력층에 속한 엘리트였다.
그는 당시 이스라엘을 떠들썩하게 한 '소문'을 듣고 매우 궁금해 했을 터였다. 그러나 이로인해 권위에 위협을 느낀 엘리트 층의 눈길을 피해 일부러 한 밤중에 예수를 만나러 온 것이다.
"당신이 행한 모든 일들은 하느님으로부터 오지 않았다면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니고데모)
"내가 당신에게 진실로 말하는데 '물'과 '영'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를 볼 수 없습니다" (예수)
《물과 영으로 거듭남》
침례자 요한이 물로 침례를 베푼 과정에서 알 수 있듯, 물은 자신의 태도를 '전환'시키는 의례다. 문제는 '영'으로 어떻게 나느냐는 것. 흔히 거듭남을 주장하는 종단 교인들이 말하는 '특별한 체험'을 거쳐야 하는걸까? 우선 '영'으로 거듭남이 왜 필요할까? 이는 예수의 다음 말에서 그 이유를 발견한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아래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 하였느니라” (요한복음 8 : 23)
하느님의 통치에 참여하려면 인간의 몸(육)을 극복해야 한다. 즉 인간 몸을 버리고 영으로 변신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는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인간의 몸을 버리고 '영체화'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1] 일단 몸을 극복하기 위해 죽어야 한다.
[2] 하느님에 의해 '선택'을 받고, 이에 합당한 입증을 해야 한다. (결혼잔치 초대를 받고 합당한 '예복'을 입는 절차)
[3] 예수께서 왕으로 '왕좌'에 오를 때, 부활을 통해 영체로 예수와 결합을 해야 한다. (이를 오해한 일부 종단이 휴거를 통해 동시에 들어 올려진다는 퍼포먼스를 행했다)
[4] 예수와 결합한 이들은 예수의 '신부'로서 왕겸 제사장의 신분을 갖게되며, 이 신부 반열은 '새예루살렘'이란 명칭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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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거듭남'을 이해하려면, 왜 하느님은 예수의 신설 왕국에 '천사들'이 아닌 '인간'을 영체로 변신시켜 참여 시키냐는 것》
[1] 에덴에서의 '선악과 사태'는 기독교인들이 생각하는 단순한 불복종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하느님의 '우주 일가(一家)'에 대한 통치권이 도전을 받는 중대한 사태다. 이 사태엔 천사들의 대표급 존재(사탄)가 주동이 되고, 우주에 처음 나타난 《영과 물질의 합성체》인 '인간' 첫조상이 참여를 했다는 점이다.
[2] 이는 하느님의 '섭리적 목표'가 어긋나는 중대한 도전으로서 과녁을 벗어난 것이었다. 사탄은 이 사태를 통해 인간을 자신의 편에 동승시키고 하느님과 정반대의 선언을 통해 인간을 독립시키고자 했다. 즉 인간의 능력으로 '영생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 이는 입증할 기간이 필요했다.
[3] 결국 사탄의 계획은 실패하고, 하느님은 원래의 목표를 완성시키기 위해 아들인 예수를 통해 하느님의 '통치권 회복'을 위한 절차를 마련하고 당사자인 인간이 직접 이 절차에 동참토록 한 것이다.
이제 우주에 피조물이 점차 확장될 때, 이런 하느님의 통치권에 대한 도전은 '지구'라는 선행적 사태와 해결이 절대 금칙으로 작용할 것이다. (계속)
#천로역정_天路歷程
#천국_하나님나라_하늘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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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거듭남으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 "팔링게네시아(palingenesia)"는 팔린(palin, "다시")과 게네시스(genesis, "탄생")란 단어로 이루어져 있다(Vine's).
그러므로 "거듭난다"는 의미는 문자 그대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다. 이 단어가 신학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지만, 스트롱 성구사전(Strong Concordance)에 따르면 이 단어는 일부 구절을 제외하면 신약에서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딛3:5, 마19:28).
위클리프(Wycliffe)는 그의 성경사전(Bible Dictionary)에서 "신약에서 여러 가지 다른 표현들이 동일한 진리를 지칭하는데 사용되었지만, 다시 태어남 또는 위로 부터 태어남(요 3:3, 벧전 1:23), 하나님께로서 태어남(요 1:13) 같은 이러한 표현들은 새로운 출생 같은 역동적인 변화의 사상을 공통적으로 갖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