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원 도피안사에서..2015.5.18.월 ▲시마을 전문영상시방 'eclin' 영상작가님 作 "민들레 처럼" 철의 삼각지대 철원 답사 나들이 2015.5.18.월 ▲철원평화전망대 앞에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해설자원봉사자 춘계답사 나들이에 함께 활동하는 우리부부도 따라 나섰다. 화창한 봄날 관의 배려로 모처럼 함께 만나 하나로 어울린 안보관광 답사길에서 나눈 정이 봄 햇살만큼이나 따뜻했고, 또한 평소 서로 다른 활동일로 떠나있던 마음들이 동그랗게 하나로 뭉쳐진 풍성한 날이기도 했다. 분단국가의 지난 아픈역사현장을 보면서 침울함으로 그분들의 값진 희생도 다시금 새겨본 하루이기도 했다. 이곳에 다녀온 흔적을 사진과 함께 공유차 게시 해 둡니다. 철의 삼각지대는 철원,김화,평강 등 세지역을 통틀어 부른 군사적 용어로 한국전쟁당시 중부전선 장악을 위한 전략적 요충를 말한다. 철원(鐵圓)은 쇠둘레라고 부르며 금학산(金鶴山)에 오르면 철원평야가 다 보인다. 청정하고 맛있는 오대미쌀, 그리고 화강암위에 화산재가 흘러내려 식어 굳은 현무암 그 위에 약 1~2m 찰흙이 쌓여있어 농사가 잘 되는 고장이다. 두루미 서식지이고 현무암을 채취하여 맷돌을 생산하여 유명하기도 하다. 일제강점기시대에는 약 2만명의 인구가 거주하기도 하였고 금강산 가는 철도를 여기서 갈아 타기도하여 크게 상업이 발달하였다고 한다. ▲의적 임꺽정 상( 義賊 林巨正 像) 의적 임꺽정은 본명이 임거정으로 경기도 양주땅 백정(白丁)의 장자출신으로 서기 1559년경을 전후하여 황해도, 경기도, 강원도 일대를 무대로 활동하였고, 이곳 고석정(孤石亭) 일대에서도 석성(石城)을 쌓고 활빈당 활동을 전개한 대 도적이었다. 임꺽정은 비록 도적이었으나 당시의 부패한 권력과 계급사회의 모순을 타파하고 탐관오리의 학정, 부정, 부패,토호들의 수탈에 항거하였고 억눌린 서민들의 자유를 위하여 활약한 의적이었다. 본 상은 부패된 권력과 계급사회를 문고리에 단 두 기둥으로 상징화하여 이를 박차고 나와 무너뜨리면서 자유를 획득하려는 의지를 생동감있게 표현하였다. 1998년 12월 조각 이원경 철원군..조각상 뒷면 해설 옮겨씀 ▲고석정(인터넷 옮긴사진) 한탄강 협곡에 서 있는 화강암을 고석(孤石)이라고 한다. 약 1억년 전 중생대 백악기에 암석을 뚫고 들어 온 마그마에 의해 만들어진 화강암은 고석 주변의 기반암을 이루게 되었다. 그러나 약 54만년~12만 년 전에 분출한 현무암질 용암류에 의해 고석은 완전히 파묻혔고, 이후 한탄강의 침식작용을 받아 다시 지표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고석은 용암대지 형성 이전의 원지형(原地形, initial form)을 관찰할 수 있는 중요한 지형, 지질 유산이며 고석의 아름다운 경관은 각종 영화, 드라마 촬영지의 배경이 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강 중앙의 고석과 정자 및 그 일대의 계곡을 총칭하여 고석정이라 부른다. ▲친환경 웰빙 쌈밥전문점, 門平 쌈家(033- 452-6868)집에서 쌈밥으로 맛있게 점심을 들었다 ▲오랫만에 만난 동료와 제2땅굴앞에서.. 위 해설 중 가운데 부분 부터 옮김 북한의 기습남침을 목적으로 한 제2땅굴은 1973년 11월20일 우리 6사단 청성부대가 경계작전을 수행 하던 중 지하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폭음을 청취한 후 이를 확인하기 위해 1974년 12월 16일부터 1975년 2월 7일까지 끈질긴 시추작업에 착수하여 총 45개의 시추공 중 7개가 지하로 관통됨으로써 감지됨. 그리하여 아군 제 5공병여단 예하 123공병대와 현대건설이 합작하여 1975년 3월1일부터 24일간에 걸쳐 차단터널 (108m)을 굴착 작업한 끝에 비로서 그 전모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됨. 그대들은 이 조국의 영원한 간성, 그 이름 영원히 빛나리라...... 故 중사 김호영, 중사 김재대, 하사 이현기, 하사 김홍섭 故 하사 김명식, 병장 송영복, 병장 김영용, 병장 김봉래 75년 4월8일 전사자 전원에게 화랑 무공훈장 추서 적 남침지하갱도 작전중 작렬히 전사한 선배전우 이제 우리가 할 일은 그들이 풀지 못한 분단의 아픔과 냉기서린 전선의 산하를 따스한 봄기운으로 가득차게 하는 것이다. 또한 故중사 김호영 등 8명의 그들이 구현하려 했던 소박하면서도 열정적인 삶의 가치를 새롭게 꽃피우는 일일 것이다. 오! 우리의 영원한 전우들이여.... 북한이 땅굴을 팠다는 세가지 증거 1.다이너마이트 장전공의 방향이 북에서 남쪽으로 향하고 있다. -북에서 폭발을 하면서 갱도공사를 했다는 증거 2.갱도 배수로의 방향이 남에서 북으로 향하고 있다. -갱도 공사후 물을 빼내는 2중 작업을 피하기 위해 1000m당 약 3° 정도의 경사를 두고 공사를 진행했음 3.북한과 우리 대한민국의 굴착 공법이 다르다. -북한이 파내려 온 구간은 폭발 공법을 이용 벽면을 그을린 반면, 우리 대한민국은 역굴시 대형 굴착기를 이용하여 벽면 색깔의 변함이 없음 평화전망대로 이동 평화전망대로 오르는 모노레일카에서 바라 본 풍경 ▲철원 평화전망대앞에서 포즈 아름다운 동행으로 1주에 한번씩 만나는 8인의 동료해설사이다. 꽃같은 여인들이 그 어떤꽃보다 귀하고 예뻐 여기에 모시면서 좋아라 한다. 방실방실 인간화 ▲철원군문화해설사의 해설에 경청하는 일행의 진지한 표정들 ▲현재까지 발견된 4개의 땅굴 제1땅굴(74.11.5) 고랑포 동북방 8km 제2땅굴(75.3.19) 철원 북방 13km 제3땅굴(78.10.17) 판문점 남방 4km 제4땅굴(90.3.3) 양구 동북방 26km ▲제2땅굴 1975년 3월19일 철원 북방 13km지점 비무장지대 안에서 발견된 제2땅굴은 너비 2.1m, 높이 2m, 깊이 지하 50~160m. 깊이 약 3.5km에 달하며, 유사시 1시간동안 16000여명의 북한군 무장병력의 침투가 가능한 기습남침용 땅굴이다. ▲생명의 땅 비무장지대 DMZ(Demiliterized Zone)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각 2km씩 총 4km 폭으로 한반도의 허리를 가로 자르고 있는 비무장지대(DMZ)는 동서 간 길이가 155마일(248km)에 달하며 면적은 992km2, 계곡과 분지 그리고 여러 개의 강이 포함되어 있으며 산악지대 생태계, 내륙습지, 그리고 담수 및 해안 생태계가 함께 존재하는 생물 지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으로, 휴전이후 50년 세월 동안 인간의 출입이 통제되어 자연이 잘 보존되어왔다. DMZ에는 국제적 보호종 뿐 아니라 많은 천연기념물과 멸종 위기종 및 보호 야생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또한 국제적으로 중요한 물새나 두루미류의 서식처 및 이동경로가 됨으로써 유엔환경계획(UNEP)과 유네스코가 국제자연환경 조성과 생물권 보전 지역으로 지정할 정도로 국제적 차원에서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지역이다. 한반도에서 서식하는 2900종 이상의 식물 가운데 1/3이, 70여종의 포유류 가운데 1/2이, 320종의 조류 가운데 1/5이 이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철원평화전망대 모노레일카 타는 곳이다. 그 옆엔 특산물 판매점이 있다. 철원 8경 관광안내 고석정, 도피안사, 삼부연 폭포, 순담, 제2땅굴, 직탕폭포, 매월대폭포, 토교저수지 백마고지 전적지를 향하여..강원 철원군 철원읍 산명리 백마고지 전투지는 철원군 철원읍 산명리 산 215일대로 1952년 10월 국군 제9사단이 중공군 제38군과 6.25전쟁 시기 가장 치열하게 고지 쟁탈전을 벌인 전투지이다. 1952년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열흘간 395고지를 사이에 두고 혈전을 벌려 주인이 24번이나 바뀌었다. 마지막으로 UN군의 지원을 받은 국군 제9사단은 마지막으로 고지를 장악하였다. ▲자작나무를 양쪽에 두고 자작나무의 이름 유래 자작나무는 버찌(Birch)라고 하는데, 기름성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 나무를 태울때 자작자작하는 소리가 나서 우리나라에서는 자작나무라 불리우고 있다. 자작나무의 특징은 이란 나무와는 다르게 나무겁질이 백색을 띄고 있는 것이 특징인데 러시아의 대표나무이기도 하다. 추운곳에서 잘 자라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나무이다. 추운곳에서 잘 자란다고 하지만 햇빛을 충분히 받아야만 잘 자라는 나무로 나무의 질도 좋고 잘 썩지 않아 원목가구의 재료로 많이 사용되기도 하고 또한 다른 나무와는 다른 외형을 가지고 있어서 여러그루를 심고, 숲으로 만들어 관광지화하는 곳도 많다. ▲백마고지 위령탑 비문 조국의 자유와 평화통일을 위하여 이 격전지에서 장렬히 산화하신 용사들의 숭고한 애국충정은 영예롭고 백마혼은 무궁하리라 장하다 임이시여 고히 잠드소서 이 고지에서 희생된 국군 504위(중공군8234위)의 영혼을 진혼키 위해 5사단 전 장병과 대마리 주민, 백마고지참전전우회원의 뜻을 모아 세우다 서기 1985년 6월6일 잔디위에 그려진 대한민국 전도이다. 아래는 제주도, 특히나 오른쪽에 위치한 울릉도와 독도를 크게 상징적으로 그려 넣었다 백마고지 전투를 기념하기 위한 전적기념관 앞에 유난히 선명하게 보이는 국기가 새겨져 있다. 호국영령충혼비앞에서는 해마다 10월 16일을 전승(戰勝)기념일로 삼아 민관군 합동 위령제를 지낸다고 한다. 기념관에서 해설을 경청 중.. 기념관은 기념의 장, 회고의 장, 다짐의 장으로 나눠져있다. 회고의 장에는 피아 전사지를 추모하는 위령비와 분향소가 있으며 기념의 장에는 1952년 10월 고지탈환을 위해 군인정신으로 양손에 수류탄을 들고 탄우 속을 헤치며 단숨에 고지정상으로 내달아 적 진지를 박살내고 장렬히 산화한 전투 활약상이 자세히 적혀있다. 전투를 상상할 수 있는 동판그림과 전투용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수없이 반복된 전투의 내역까지 자세히 적혀있다. 백마고지의 해설을..참 잘 들었거든요. 2주전에 이곳에 왔다는 국방의무를 철통같이 지키는 꽃미남 장병 해설사님의 장한 모습이지요. 전투 과정에서 국군은 총 3천 4백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고 중공군도 1만 4천여명이 죽거나 다치거나 포로가 되었다. 극심한 폭격으로 민둥산이 되어버린 모습이 마치 백마가 누워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이후부터 395고지일대를 백마고지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과 당시 참전했던 어느 연대의 부연대장이 외신가자의 질문에 '화이트 호스 힐(White Horse Hill)'이라고 대답하여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다. 백마고지 전투에서 철원을 잃고 김일성이 분해 김일성고지에서 3일동안 애통해하며 식음을 전폐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그 만큼 당시 이곳은 철원평야와 서울을 연결하는 군사적 요충지였음을 알 수 있다. 노동당사는 스쳐지나가게 되어 옛사진 가져옴 ▲철원 노동당사(2013.9.22 사진) 이 건물은 1945.8.15 해방후 북한이 공산독재정권 강화와 주민통제를 목적으로 건립하고 6.25전까지 사용한 북한 노동당 철원군 당사로서 악명을 떨치던 곳이다. 북한은 이 건물을 지을때 성금이란 구실로 1개리당 백미 200가마씩을 착취 하였으며, 인력과 장비를 강제 동원하는 한편 특히, 건물의 내부작업때는 비밀유지를 위하여 공산당원 이외에는 동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시멘트와 벽돌조적으로 3층건물 구조인데 당시 이 건물 일대가 철원읍 시가지로서 6.25전란 당시 여타 건물들이 모두 파괴, 인명되었음에도 유독 이 건물만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얼마나 견고하고 튼튼하게 지어졌는지 짐작이 간다. 공산치하 5년동안 북한은 이곳에서 철원,김화,평강,포천 일대를 관장하면서 양민 수탈과 애국인사들의 체포,고문,학살 등의 소름끼치는 만행을 수없이 자행앴으며, 한번 이 곳에 끌려 들어가면 시체가 되거나 반송장이 되어 나올만치 무자비한 살육을 저지른 곳이기도 한다. 이 건물뒤 방공호에서는 많은 인골과 함께 만행에 사용된 수많은 실타과 철사줄 등이 발견되었다. 2002.5.27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22호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도피안사(到彼岸寺)로 이동.. 도피안사는 당시 철조불상이 영원한 안식처인 피안에 이르렀다 하여 절이름이 도피안사로 명명되었다. ▲사천왕문으로 향하는 일행들 도피안사는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관우리 화개산(花開山)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 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神興寺)의 말사이며 865년(신라 경문왕 5)에 도선(道詵,풍수의 대가)이 향도(香徒) 1,000명과 함께 이 절을 창건하고 삼층석탑과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을 봉안하였습니다. 6·25 때 소실되어 완전 폐허가 되었으나 1959년의 어느 날, 제15사단장 이명재(李明載) 장군은 난데없는 꿈을 꾸었는데 땅속에 묻힌 불상이 답답하다는 내용으로 이튿날 전방 시찰을 나갔던 장군은 갑자기 갈증을 느껴 부근의 한 민가에 들어갔다가 간밤 꿈속에서 땅속에 묻힌 불상과 함께 보였던 안주인을 만나고는 깜짝 놀랐다. 이명재 장군은 그 여인의 안내를 받아 불타 없어진 도피안사터를 찾아가 뒤지기 시작했고, 땅속에 묻혀 있던 철불을 발견했는데 꿈에서 본 불상이었다. 땅속에 묻혀 있던 철불은 이명재 장군에게 현몽해 몸을 드러냈고 장병들의 손으로 도피안사가 재건되어 군에서 맡아 관리해 오던 도피안사는 1985년 조계종으로 넘어왔다. 최근에 대적광전을 새로 지었지만 단청은 하지 않은 상태고 일주문은 공사중이다. 문화재는 창건 당시 조성된 국보 제63호인 철조비로자나불좌상과 보물 제223호인 삼층석탑이 있다. ▲수령 600년된 도피안사 느티나무 밑둥 아 글쎄요. 사진이 아래사진보다 좋았는데 갑자기 불어닥친 바람이 여인의 헤어스타일은 멋지게 장식해 주었지만 여인의 앞 섶옷자락을 날려서.. 두사람은 얼굴만 간신히 건진걸요. 하하하 바람이 등장한 사진도 걸어두며.. ▲도피안사에 피어난 삼색 인간花..꽃보다 아름다운 인간화 호호호 극락보전 앞 뜰 ▲극락보전(極樂寶展)현판 새로 지은 대적광전(大寂光殿), 철제 비로자나불을 모셨다 ▲국보 제 63호 ▲범종각 사찰에서 금와 보살이 출연한 것은 양산의 통도사가 처음이고 두번째가 이곳 강원도 철원의 도피안사라고 한다. 도피안사의 3층 석탑에 살고 있는 금와 보살은 2009년 11월경에 찍은 사진으로는 염주를 돌리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보물 제223호 삼층석탑에서 연화 하대석과 간주석사이에서 金蛙菩薩(금개구리.금두꺼비보살)이 출현하였다 하여 sbs 세상에 이런 일이, kbs 무한지대에서방영되었다 윗 연지(上蓮池)에서 만난 금와보살(金蛙菩薩,금두꺼비,금개구리)이 헤엄치고 있다 크게 당겨서..금와 보살 툇마루에 앉아 쉬는 틈에 찰칵! 목욜 8인花 언제까지나 이처럼 예쁜꽃으로 동행의 기쁨이 이어지길 바랍니다. ▲찬란한 빛 김영희(좌에서 두번째) 도피안사를 마지막으로 답사일정이 맺음이다. 감사합니다. 부부행복기행 사진 글:권진순 김영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