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사사기 21:1-25
2010년에 북아프리카의 튀지니에서 시작된 대규모 시위가 이집트, 시리아, 리비아의 민주화 운동으로 번져나간 것을 아랍의 봄이라고 합니다. 오랜 기간 철권통치를 해온 독재정권을 무너뜨리는 계기가 되었지만 그 이후에 상황은 오히려 더 심각한 고통으로 빠져들었습니다.
권력투쟁으로 인해 리비아와 시리아는 내전으로 수많은 사상자들이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독재정권이 무정부보다는 낫다고 말합니다. 인간 세상을 다스리는 힘과 그 질서가 깨어지면 세상은 겉잡을 없는 혼돈에 빠지게 되고 그 고통은 참혹한 것입니다.
사사기는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그 다스림을 받아야할 하나님의 교회와 성도들인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탄핵하고 왕 없는 자들이 되었을 때 나타나는 고통의 실상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왕 없는, 하나님 없는 삶은 고통뿐이라는 겁니다. 예레미야 2장 19절에서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왕의 자리에서 끌어내린 성도들은 스스로 왕이 되어 하나님 흉내를 내며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법을 만들고 재판하는 율법주의자로 타락하였다는 것입니다.
사사기는 본문 21장을 끝으로 마치는 데 사사기의 저자는 그 마지막을 무엇이라고 증언하고 있습니까? 25절에서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라는 말씀으로 사사기를 마칩니다.
유일한 왕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스스로 왕이 되어 타락한 교회와 성도들의 모습이 사사시대였습니다. 그리고 그 현상은 지금도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그 마음에 영접하지 못한 교회와 성도들 사이에서 계속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사사기는 왕 없는 자들의 고통과 그 참상을 통하여 인생들에게는 반드시 왕이 있어야 한다는 것과 약속하신 왕을 보내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왕 없는 자들의 타락의 끝은 어디인지 그리고 그 절망에서 어떻게 하나님은 구원하시는지 증언하고 있습니다.
리비아는 40년 동안 철권통치를 하던 독재자를 몰아내었지만 지금 심각한 혼란에 빠져있습니다. 서로 왕이 되겠다는 싸움으로 나라가 쪼개길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이 세상의 평화가 없는 고통과 혼란도 하나님을 떠난 타락한 결과입니다. 하나님의 교회 이스라엘도 왕 없는 자들로 타락하였을 때 그 결말은 열두 지파로 이루어진 온전한 이스라엘의 붕괴였습니다.
본문 3절에서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어찌하여 이스라엘에 이런 일이 생겨서 오늘 이스라엘 중에 한 지파가 없어지게 하시나이까” 말씀합니다. 레위인의 첩을 능욕하고 죽인 기브아의 불량배들과 그 불량배들을 두둔한 베냐민 지파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베냐민 지파는 광야로 도망한 남자 육백 명만이 남고 전멸하였습니다.
타락한 인간의 의와 분노가 형제 베냐민을 완전히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왕 없는 자들의 범죄와 타락의 결말이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의 붕괴로 나타난 것입니다. 온전한 것에서 부족한 것이 되었고 완전한 것에서 불완전한 상태로 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지 않은 성도는 열둘에서 하나가 모자란 이스라엘처럼 불완전한 상태입니다. 그 겉모습은 예배와 헌금과 기도와 봉사 등 형식과 행위로 인하여 믿음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가 없으면 온전함과 거룩함은 이루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한 부자 청년은 어릴 적부터 모든 율법을 잘 지키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한 가지 부족함으로 인하여 청년은 온전한 믿음에 이를 수 없었습니다. 거룩함에는 도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부족한 그 한 가지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왕으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한 가지가 없으면 열한 가지가 아무리 뛰어나다 하여도 결국은 부족한 자입니다.
열두 지파 이스라엘이 한 지파가 부족하여 불완전한 것으로 드러나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지 않은 결과입니다. 왕 없는 자들은 마지막에는 온전하지 못하는 것으로 밝혀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왕 없는 자들이 불완전하고 부족한 것으로 드러났는데 이 왕 없는 자들이 그들의 능력으로 그 부족함을 완전함으로 바꿀 수 있습니까? 베냐민 지파는 남자만 육백 명이 남았습니다. 남자만 있어서는 멸망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베냐민에게는 딸들을 주지 말자고 맹세하였고 딸을 주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왕의 자리에서 탄핵하고 스스로 왕이 된 자들은 그 부족함과 불완전함을 자신의 지혜와 능력과 열심과 행위와 방법을 동원하여 변화시키고자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타락하여 거룩함에서 부족함으로 떨어졌을 때 어떻게 하였습니까? 그들은 율법주의자들로 타락하였기에 자신의 율법을 동원하여 그 부끄러움을 가리려고 시도한 것입니다.
아담과 화와는 스스로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입었습니다. 율법주의자들로 타락한 인생들은 자신의 부족함을 해결하는 방법도 율법적입니다. 이스라엘은 베냐민 지파의 남은 남자들에게 아내를 주어 지파를 살리기 위해 총회에 참석하지 않은 야베스 길르앗 주민들을 진멸하고 그 중에서 결혼하지 않은 처녀 사백 명을 얻어 베냐민 지파에게 주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모습이 하나님의 교회 같습니까? 거룩한 성도들 같습니까? 자기 힘을 의지하고 그 힘을 신으로 삼는 하나님 없는 이방인들과 똑같은 것입니다. 뭐든지 힘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힘이 곧 정의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을 힘으로 삼지 않는 타락한 인간들은 자기 힘을 신으로 삼고 사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타락한 인생들에게 정의는 곧 자기 힘입니다. 내가 법이고 정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정의는 강한 자의 편이고 강한 자가 역사의 주인공으로 기록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와 성도들이 의지하는 게 무엇일까요? 정말 보이지 않는 왕이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와 말씀입니까? 교회와 성도들도 세상 사람들처럼 보이는 세상의 돈과 물질과 세력과 권력 등 이 세상의 영광과 힘을 의지하고 자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돈과 물질로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세력을 키울 수는 있겠지만 그것으로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자기 왕국을 키우는 것입니다. 외형은 확장되어 세상에 힘과 세력과 영광을 자랑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심장과 폐부와 그 중심을 모시는 하나님 앞에서는 왕 없는 자인 빈 쭉정이와 가라지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왕 없는 자들로 타락한 인간의 지혜와 지식과 능력으로는 그 부족함의 실존을 완전함으로 바꿀 수는 없습니다.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도 결국은 부족한 자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율법을 잘 준수하여도 하나님 앞에서는 부족한 자 악인으로 드러나고야 마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입어도 소용없는 일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치마를 찢어내셨습니다.
이스라엘이 그들의 힘과 정의와 지혜를 다 동원하여 베냐민의 남은 남자들에게 아내를 만들어주어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회복하여 온전함을 이루려 하였지만 어떻게 되었습니까? 본문 14절부터 “그 때에 베냐민이 돌아온지라 이에 이스라엘 사람이 야베스 길르앗 여자들 중에서 살려 둔 여자들을 그들에게 주었으나 아직도 부족하므로 백성들이 베냐민을 위하여 뉘우쳤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지파들 중에 한 지파가 빠지게 하셨음이더라.” 말씀합니다.
이스라엘이 자기들 힘과 지혜와 그들의 율법으로 최선을 다했지만 그 결과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부족한 상태였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그들의 열심과 행위와 능력으로는 결코 부족한 상태를 벗어나 온전함으로 나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 밝혀지는 것입니다.
여전히 부족한 이백 명의 아내가 어떻게 채워져 베냐민이 회복되어 이스라엘이 열두지파로 온전해집니까?
본문 19절부터 “보라 벧엘 북쪽 르보나 남쪽 벧엘에서 세겜으로 올라가는 큰 길 동쪽 실로에 매년 여호와의 명절이 있도다 하고 베냐민 자손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가서 포도원에 숨어 보다가 실로의 여자들이 춤을 추러 나오거든 너희는 포도원에서 나와서 실로의 딸 중에서 각각 아내로 삼아 베냐민 땅으로 가라.” 말씀합니다.
베냐민 지파의 부족함이 채워지는 장소가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실로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에 예배하기 위해 올라온 여자들을 통해서 죄로 죽어 있던 베냐민 지파가 하나님의 성전에서 베풀어지는 은혜로 회복되어 이스라엘이 온전함을 이루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열두지파가 이스라엘로 세워졌듯이 하나님의 은혜로만 열두지파가 회복되어 이스라엘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본문 23절에서 “베냐민 자손이 그같이 행하여 춤추는 여자들 중에서 자기들의 숫자대로 붙들어 아내로 삼아 자기 기업에 돌아가서 성읍을 건축하고 거기에 거주하였더라.”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성전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만 부족함에서 완전함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왕이 될 수 없기에 반드시 왕이 필요한 존재들입니다.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만이 왕이십니다. 하나님은 아들을 왕으로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는 않는 인생들은 이 세상에서 잠시 왕으로 행세하다 영원한 멸망으로 가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정말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가 여러분의 왕입니까? 주여 주여 하는 성도들이 다 예수를 왕으로 모신 것은 아닙니다. 마지막 날 정말 예수를 왕으로 모시고 살았는지 하나님 앞에서 드러날 것입니다.
입으로만 주님의 이름을 부르면 소용없습니다. 예수를 왕으로 모시지 못한 자들은 영원한 고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굴복하고 왕이신 주님의 뜻만을 받들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오직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만 회복되고 구원으로 충만하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만을 영원한 왕으로 모시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