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 안식으로 들어갈 자의 두려워할 일
- 히 3 : 12 ~ 4 : 2 -
서 론
안식을 향하여 가는 길은 싸우는 길이요, 환난과 역경을 통과하는 길이니 안식에 들어가기까지는 두려워할 일이 있다는 것이다. 두려움은 소망 없는 공포를 말한 것은 아니다. 소망이 확실한 사람으로서 두려워할 일을 말한 것이다. 예를 든다면 어떤 군대가 원수에게 죽을까 봐 무서워 떤다는 것은 실패의 근본이다. 그러나 승리를 이루지 못할까 봐 떠는 마음으로 목숨을 아끼지 않고 나갈 때 나는 죽고라도 승리를 이루는 것을 목적한다면 이러한 군대는 강병 중에 하나가 될 것이다.
일국의 영토를 위하여 싸우는 군대로서 목적을 위하여는 이루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어야 할 것이요, 우리는 영원한 안식을 확신하는 소망이 있다면 여기에 이르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는 일이 없이는 안 될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다 들어간 줄 알고 잠자는 것도 잘못이요, 목적을 향하여 가다가 원수가 무서워 후퇴한다는 것도 잘못일 것이다. 그러나 원수를 두려워할 것보다도 하나님이 두려워서 죽어도 나간다는 마음이 있어야 할 것이다. 여기에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안식으로 인도하시는데 이 하나님을 순종치 않을 수 없다는 데서 떠는 심정일 것이다.
이제 두려워하는 자의 할 일은 무엇이냐 하는 것을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1. 형제 중에 악심을 품고 떨어지는 자가 있을까 봐 염려하라는 것이다 (3:12)
(히3:12)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
우리가 만일 내가 죽을까 봐 떤다는 것은 합당치 않지만 어떤 형제가 잘못될까 봐 떠는 심정이었다면 사랑의 양심에서 움직이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어떤 종이 형제가 잘못되는 일을 보고도 안심하고 있다면 이것은 합당치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도 양떼를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항상 애타는 심정을 가졌다는 것을 늘 말한 것이다(히12:15).
2. 유혹을 받아 강퍅해질까 봐 조심해야 한다 (3:13)
(히3:13)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
우리는 항상 유혹이 없다는 것은 성서적이 아니고, 유혹이 있으나 피차 권면하여 유혹을 받지 않도록 한다는 데 항상 형제 가운데 유혹이 있을까 봐 조심하고 떠는 심정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복지를 향하여 가는 길이었으나 강퍅해지는 무리가 있으므로 수많은 대중이 재앙을 받고 화를 받은 일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3.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아야 한다 (3:14)
(히3:14)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리라
아무리 확실한 소망이 있고 확실한 안식의 도리를 안다 해도 끝까지 굳게 잡는 것이 없다면 하와가 말씀의 칼을 잡지 못하므로 떨어지듯이, 굳게 잡는 자라야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하는 자가 될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말세 진리가 틀림없다고 말하면서 굳게 잡는 그것이 없다면 이것은 아무런 효과를 낼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확실한 말씀을 주는 동시에 빼앗는 마귀도 대립을 시키는 것이다. 만일 확실한 것을 주고 빼앗는 대적을 두지 않는다면 누가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4. 하나님을 격노케 하는 자가 되지 않아야 한다 (3:15~18)
(히3:15) 성경에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할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하였으니
(히3:16) 듣고 격노케 하던 자가 누구뇨 모세를 좇아 애굽에서 나온 모든 이가 아니냐
(히3:17) 또 하나님이 사십년 동안에 누구에게 노하셨느뇨 범죄하여 그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자에게가 아니냐
(히3:18)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뇨 곧 순종치 아니하던 자에게가 아니냐
(히3:19) 이로 보건대 저희가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은혜로 홍해를 건너 광야에서 하늘에서 나리는 만나와 반석에서 나오는 생수를 마셨으나 하나님을 격노케 하는 원망이 있고 순종치 않을 때 전부 광야에서 쓰러지고 만 것이다. 이것은 말일에 안식에 들어가는 무리에게 준 교훈이다.
하나님의 교훈을 받고도 짐짓 말씀을 가감한다면 재앙을 받는다는 것이 계시록의 원대지가 되는 것이다. 왜냐 할 때 하나님은 어느 민족보다도 야곱을 더 사랑해서 인도하는 데도 불구하고 짐짓 순종치 않을 때 격노치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양의 피를 문에 바르고 나오는 이스라엘도 이와 같은 일이 있었거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다는 영적 이스라엘이 예언의 말씀을 순종치 않는다는 것은 멸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계14:9~10에 누구든지 짐승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고 표를 받는 자는 영원히 멸망이라는 것은 교회에 대한 경고의 말씀이다.
5. 안식에 미치지 못할까 봐 떨어야 한다 (4:1~14)
(히4:1)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히4:2)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
(히4:3)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었느니라
(히4:4) 제 칠일에 관하여는 어디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 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히4:5) 또 다시 거기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히4:6) 그러면 거기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치 아니함을 인하여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히4:7)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날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강퍅케 말라 하였나니
(히4:8) 만일 여호수아가 저희에게 안식을 주었더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히4:9)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히4:10)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히4:11)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히4:13)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 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히4: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찌어다
우리는 주님 다시 오셔서 들림 받을 때까지 가는 길은 이스라엘이 광야를 거쳐서 요단강을 건너 여리고성을 치고 들어가는 일과 같기 때문이다. 40년 광야에서 만나를 먹던 무리 중 여호수아, 갈렙만 안식에 들어가고 60만 대중이 다 쓰러진 것은 우리에게 주는 경고가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사10:22~23에 이스라엘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돌아온다고 한 것은 온 세계 중 끝까지 행할 일이라고 말한 것이다.
우리는 길을 떠나는 일도 해야 할 일이나 목적지에 도착하느냐, 못 하느냐 하는 문제를 중요시 아니할 수 없다. 만일 이날까지 기독교가 내려오다가 말세 예언을 믿지 않고 망한다면 이스라엘 대중 60만 명 중 두 사람만 남은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우리는 믿음도 시대적인 말씀을 믿는 것이니 말씀을 듣고도 화합치 아니하면 안식에 들어갈 수가 없다는 것이다. 슬픔 중에 슬픔은 안식의 길을 가다가 끝을 맺지 못하고 쓰러지는 인간이라고 볼 수 있다(사1:4).
결 론
우리는 소망 있는 인간이라면 두려울 것도 없다. 아무래도 죽을 바에는 해본다는 발악적인 행동을 하는 인간들을 황충이라는 것이다. 소망이 있고 두려워하는 일도 있고, 소망 없이 공포 중에 떨다가 죽는 일도 있고, 소망 없이 발악하는 단결도 있고, 소망이 확실해서 용기를 내는 단결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두려움이란 소망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 떨어질까 봐 두려워하며 화합해야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랑의 불길이 붙는 데서 한 생명도 잃을까 봐 떠는 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