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묵상
2022년 3월 14일 월요일
시편 47편
1. 너희 만민들아 손바닥을 치고 즐거운 소리로 하나님께 외칠지어다
2. 지존하신 여호와는 두려우시고 온 땅에 큰 왕이 되심이로다
3. 여호와께서 만민을 우리에게, 나라들을 우리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며
4. 우리를 위하여 기업을 택하시나니 곧 사랑하신 야곱의 영화로다 (셀라)
5. 하나님께서 즐거운 함성 중에 올라가심이여 여호와께서 나팔 소리 중에 올라가시도다
6. 찬송하라 하나님을 찬송하라 찬송하라 우리 왕을 찬송하라
7. 하나님은 온 땅의 왕이심이라 지혜의 시로 찬송할지어다
8. 하나님이 뭇 백성을 다스리시며 하나님이 그의 거룩한 보좌에 앉으셨도다
9. 뭇 나라의 고관들이 모임이여 아브라함의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다 세상의 모든 방패는 하나님의 것임이여 그는 높임을 받으시리로다
시편 4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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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찬송하라 우리 왕을 찬송하라
바쁜 일로 하루를 보내고 저녁 시간이 되었습니다. 마음을 정돈하고 책상 앞에 앉아 찬양을 들으며 성경을 묵상합니다. 오늘 만난 분들을 생각해 봅니다. 나눈 대화들을 되돌아봅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을 읽고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그 말씀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오늘 본문은 시편 47편입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고 사는 사람의 찬양입니다. 하나님이 온 땅에 큰 왕이시라고 시인은 노래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높이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은 위로 올라가십니다. 나팔 소리 중에 올라가십니다. 이스라엘의 찬양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이 생각납니다(시편 22:3).
십여년 전에 태국의 치앙마이에서 산속으로 오랫동안 차를 타고 들어간 적이 있습니다. 선교여행을 갔었지요. 그곳에서 카렌족의 찬양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산속의 예배당에서 목소리로만 부른 카렌족의 찬양은 천상의 하모니처럼 들렸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더불어 부른 찬양의 경험은 잠깐 동안 천국의 체험을 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분명 교감과 감동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다는 느낌이 밀려와 가슴이 벅찼습니다.
이스라엘의 찬양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은 어쩌면 하나님을 높이며 부르는 찬양 가운데서 예배자들이 느끼는 거룩한 체험일 수 있습니다. 그들의 찬양은 공기를 진동하고 마음을 감동하며 향기로운 제사처럼 위로 올라가는 것처럼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진동과 감동 속에 하나님이 위로 올라가신다고 시인은 확신했습니다. 이것이 예배의 경험입니다.
사람은 왜 예배를 드리고 나면 그렇게 마음에 기쁨이 밀려올까요? 가장 기억에 많이 남은 예배의 기억은 고등학교 때 주일예배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그렇게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었던 경험입니다. 아마 한주간 동안 학교생활에서 지친 마음을 달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하나님을 뵙고 다시금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 힘과 위로를 얻었기 때문이었을 거라고 생각해 봅니다.
사실 사람은 완벽하지 않기에 자신이 최선을 다한다고 할지라도 부족함이 있습니다. 더욱이 열악한 상황 속에서 몸부림을 치노라면 점점 고갈되어 가는 자신을 보고 마음이 무거워질 수 있습니다. 그런 날에는 염려와 걱정이 마음과 눈을 가리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을 암울하게 바라보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를 지치게 하고 낙심하게 합니다. 누구나 그럴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면서 상황은 달라집니다. 왜 그럴까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높이면서 우리는 어쩌면 세상을 다시금 발견하는 것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뒤죽박죽인 것만 같았는데 하나님이 왕으로 다스리시고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것을 예배 중에 느끼고 다시금 확인하게 됩니다. 그것이 우리의 찬양과 예배 가운데서 느끼는 신앙의 체험입니다. 그런 체험을 통해서 우리는 세계의 질서를 다시 확신하고 하나님이 이루실 일을 소망하며 다시 일상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청년 시절에 기도회에서는 ‘아시지요~’라는 찬양을 자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자신의 형편을 마음 속으로 호소하는 성도의 기도입니다. 너무 답답할 때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무언가 마음을 짓누르는 것이 있습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그때 하나님께 기도와 찬양을 드리면서 우리는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과 연결됩니다. 나는 모르고 나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이 아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에 나는 두렵지 않습니다. 그것이 예배와 기도의 체험입니다.
그것은 자포자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다시 시도하고 어렵지만 버티고 희망을 가지고 견디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회복과 소성(蘇醒)만 계속 이어진다면 우리는 끝까지 달릴 수 있습니다. 국어사전에 소성이라는 말의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소성(蘇醒, 되살아날 소, 깰 성)
1. 정신을 잃었다가 다시 깨어나다
2. 큰 병을 앓고 난 뒤에 몸을 회복하다
주일마다 예배를 드리고 나면 왜 그렇게 좋은지요? 그것은 아마 우리가 소성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되살아나서 이렇게 일상을 다시 살아갑니다. 그리고 날마다 우리는 주님을 찬양하며 바라보며 새 힘을 얻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릴 때는 그 기쁨이 배가되고 훨씬 커집니다. 우리가 다시 만나 예배 드릴 때까지 우리는 각자의 삶 속에서 주님과 동행하고 기도와 묵상의 삶을 살아갑니다.
일상에서 주님을 바라보고 말씀을 묵상하는 모든 이에게
날마다 소성의 기쁨이 샘솟기를 빕니다.
그리고 우리가 모여 함께 주님을 찬양할 때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될 것을 기대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