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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녹취록>
제목: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
https://youtu.be/YlF9UElVIvY?feature=shared
누가복음 16장 19절부터 나오는 우리 성경에는 부자와 거지라는 이름으로 제목이 붙어 있는데요 우리가 잘 아는 구절입니다. 하지만 한번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고 장사되매 그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먹어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아들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이 고통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아멘.
이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 부자와 거지 이야기는 아주 명백한 이야기입니다 한마디로 얘기하면 너만 배불리지 말아라. 네 옆에 가난한 사람, 힘든 사람 돌아보며 살아라 그런 말씀 아니겠습니까? 이 성경을 읽다 보면 흥부와 놀부 이야기도 생각이 나죠. 이집트의 ‘사자의 서’라고 하는 책이 있다고 하죠. 죽은 다음에 사람을 심판하는데 심장과 깃털을 이렇게 넣고 깃털보다 심장이 더 무거우면 그러니까 죄가 깃털보다 더 무거우면이 사람은 영벌에 들어간다는. 이집트인들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이 사는 어느 곳에나 죽은 후에 잘못하면 벌을 받는다는 이야기, 권선징악의 이야기는 모든 동서고금의 공통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가 읽은 예수님이 들려주신 이 이야기 부자는 죽어서 불구덩이에 떨어지고 거기서 괴로움을 겪고 가난한 거지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게 되는 이 이야기는 우리들에게 자기 자신만 생각하지 말고 측은지심,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생각하라 그런 교훈을 들려주시는 이야기로 이해하면 될까요? 그런 주제이지요.
그러면 성경의 이야기는 금방 말씀드린 측은지심 동양의 고전과 또는 우리 전래 동화에 나오는 이야기들 또는 다른 나라의 공히 나오는 착하게 살아라 하는 그런 이야기들과 공통점이 있다고도 볼 수 있는 거지요. 이 말씀은 너무나 명백하고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에 아이들이라도 이 이야기를 들려주면 금방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근데 이 이야기를 이렇게 초점을 바꿔 가지고 부자가 들어간 불구덩이 부자는 왜 불구덩이에 들어갔을까? 욕심부렸기 때문이지 하지만 그 불구덩이는 어디일까? 지옥이 아닐까? 나사로가 간 아브라함의 품은 천국이 아닐까? 그럼 누가 지옥에 가고 누가 천국에 가는 거지? 내 가까운 사람은 저런 지옥에 떨어지면 안 되는데… 가만히 있자 성경을 보니까 예수님을 믿으면 영생을 얻고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영벌을 받는다고 했는데 그러면 부자도 결국 예수님을 믿지 않고 자기 욕심대로 살아서 지옥 간 것 아닐까? 그래 예수님을 믿어야 지옥을 면하고 천국에 갈 수 있어!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부자처럼 다 지옥 불구덩이에 떨어지게 되고 말 거야. 그러니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천국과 지옥은 반드시 있기 때문에 꼭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라고 우리가 복음을 전하지요.
오늘 그래서 여러분과 함께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 이 이야기를 우리가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좋을까 제가 처음에 말씀드린 것처럼 이 이야기는 너무나도 명백한 겁니다. 너무나도 분명하기 때문에 딴 생각을 하기가 어려워요. 내 욕심만 차리면 안 된다. 내 옆에 있는 힘들어하는 사람 돌아보아야지 그러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 심판 받지 않겠느냐 하는 이야기에요. 그러니까 성경의 핵심 가르침 중에 하나인 하나님을 사랑하느냐, 그렇다면 네 이웃을 사랑하라 그 말씀과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죠.
그런데 이 말씀의 초점을 천국과 지옥 이야기에다가 딱 맞추게 된다면, ‘그래 부자는 지옥에 떨어졌어. 예수님 안 믿는 사람들도 지옥 갈 거야.’ 그렇게 이제 이야기를 확산시켜 나가면 ‘지금 지옥에 누가 있을까? 부자 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있겠지. 그럼 누가 지옥에 가는 거지? 예수님 안 믿는 사람 다 지옥 가는 거지. 그러면 이순신 장군도 지옥에 있을까?’ 그런 이야기가 가는 거예요. 예수님 안 믿는 시절 사람들 어떻게 되는 거지? 그렇게 하다 보면 이순신 장군도 지옥에 있을 거라고 말하기가 좀 그렇잖아요? 그러니까 우리는 이런 얘기를 하는 거예요? 누구를 천국에 보내고 누구를 지옥에 보내는 가는 전적으로 하나님 소관이다. 인간은 알 수가 없는거다. 그러면 그 이야기를 뭐하러 꺼냈어요? 누가 지옥에 가고 누가 천국에 가는 이야기를!
그러니까 이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를 가지고 ‘너 지옥의 불구덩이 떨어지지 않으려면 예수님을 믿어야 해!’ 이렇게 발전시켜 버리면 곤란한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고 결국은 예수님이 본래 들려주셨던 이 이야기의 핵심은 사라지고 ‘천국이 어디고 지옥이 어디고 누가 지옥 가고 천국 가고… 아이 우리는 몰라 이거 하나님께 맡겨 해!’ 이렇게 해가지고 성경의 이야기가 왜곡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오늘 이 설교를 하기 위해서 우리나라 설교자들의 이 본문에 대한 설교를 여러 편 들어보았고 외국에 목회자들의 설교들도 들어보았습니다.
그래요 여러분들이 이 본문에 대한 설교를 찾는다면 쉽게 찾을 수 있고 또 충분히 들을 수 있습니다. 그중에 좋은 설교들도 있었어요. 하지만 제가 지금까지 구청 신우회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우리가 믿는 기독교 신앙이 무엇인가 그런 관점으로 이 누가복음 16장을 읽는다면 어떻게 이해를 해야 될까 그 부분을 잠깐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이 말씀을 하신 분이 누굴까? 처음에는 그대로 읽어요. 누구나 다 ‘아, 그렇지. 부자처럼 살면 안 되는 거지!’ 하고 본문 있는 그대로를 우리가 이해를 합니다. 그렇게 이해를 하다가 ‘가만히 있자.’ 이 말씀을 누가 하셨지? 누구에게 하셨지? 하고 이제 그 말씀을 하신 분 그분에 대해서 생각을 하지요. 우리는 이 말씀을 예수님이 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어떤 분이셨더라? 예수님은 평소에 무슨 말씀을 하신 분이었지? 하고 예수님에 대해서 생각을 하다 보면 아 예수님은 이런 분이니까 이 말씀을 이런 의도로 하셨겠구나 하고 성경을 한 걸음 더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이해할 때는 성경이라고 하는 본문이 있고요 우리의 삶이 있습니다. 성경 본문은 2000년 전에 기록되어 있고요. 또 그 본문에 말씀하시는 예수님과 그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 안에 있어요. 우리들은 여기 있고요.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가지고 성경을 읽는단 말이에요. 이 두 사이에 갭이 있어요 그래서 여기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면 우리 삶에 적용하고 우리 삶의 문제 가지고 성경을 또 읽고 하면서 이 둘 사이에 계속 이야기를 하는데요.
우리가 어렸을 때는 아주 단편적으로 이해를 하지요. 그러다가 우리가 신앙이 점점 성숙하면 예수님을 이해하게 되고 가만히 있자 사복음서가 있다고 하는데 하고 마태 마가 누가 요한. 가만히 있자, 성경 전체는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는 하나님의 어떤 일관성 있는 메시지를 전한다고 하는데… 하면서 성경에 대한 이해, 예수님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성경을 읽습니다.
그리고 ‘가만히 있자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셨는데 하나님 나라가 뭐였지?’ 예수님이 말씀하신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신 말씀은 사람들에게 정신 차려 이제 새로운 세상이 왔다고 이제 그러니까 낡은 생각 돌이켜야 해’ 하면서 ‘너희가 율법에서 이런 말씀이 있다는 것 들었지 하지만 그 원래 의미는 이거야!’ 하면서 예수님이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성경 해석 그 삶을 보여주신 거지요.
그래서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신 것은 하나님이 일하실 새로운 시간이 왔다 하나님이 역사를 새롭게 열어 주실 때가 되었다 이제 낡은 생각은 다 던져 버리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삶 가운데로 들어가자 내가 그것을 성경을 열어서 가르쳐 주고 내 삶으로 보여준다!
하면서 예수님이 가까이 하신 사람들이 누구예요? 세리와 죄인들이었죠? 당시의 사람들로부터 아웃사이더, 불가촉천민처럼 취급을 받았던 사람들 말이에요. 가까이 하면 안 될 사람들 그 사람들 그러니까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들과 가까이 어울렸었기 때문에 바리새인들이 수군거렸죠. ‘아니 저자는 유대인이면서 왜 저런 사람들과 어울리지?’ 예수님은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본질이라는 걸 행동으로 보여주신 거거든요 하나님 나라는 모든 사람들이 병든 사람은 고침을 받아서 기지개를 펴고 눈먼 사람은 다시 보게 돼서 사람답게 살게 되는 그런 세상이잖아요?
누가복음 4장 16절부터 나오는 나사렛 회장에서 예수님이 최초로 하신 설교 이제 주님의 여호와의 은혜가 왔다고 이사야가 선포했는데 그때가 지금 너희도 눈앞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하고 선포하시고 그것을 율법을 풀어서 설명해 주시고 비유를 들어서 설명해 주시고 그 다음에 행동으로 보여주신 건데 어떻게 하심으로 경계를 넘어서서 당시 사람들이 가까이 하지 않는 죄인들을 맞아 주시고 그들과 식사하시고 친구가 되어 주심으로 그러니까 사람들이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한 거죠.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못했다고 하는 이 사람들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지도자들이었어요. 말하자면 기득권층이죠. 그들은 모든 것을 갖춘 사람들이에요. 편안하지요 하지만 없는 사람들이 그들의 그룹에 들어오기는 어려웠죠.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수군거리지 마라 어떤 사람이 양 1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한 마리 잃어버렸으면 찾아가지고 와서 기뻐하지 않겠느냐? 잔치를 베풀 걸!
어떤 여자가 신랑으로부터 받은 드라크마가 있는데 그 예물을 잃어버려 가지고 쓸고 닦고 하면서 겨우 마침내 찾았다면 그 여자가 동무들을 불러 가지고, ‘야! 잔치를 벌이지 않겠느냐?
어떤 아버지가 두 아들이 있는데 둘째를 잃었다가 다시 찾았다면 동네 사람들 불러서 잔치를 벌이지 않겠느냐? 이게 지금 우리가 해야 될 일인데 너희들 왜 큰 형처럼 하나님 나라의 정신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느냐?
심지어 누가복음 16장에서는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들려주셨어요. 어떤 사람이 청지기가 있는데 공무원으로 말하면 어떤 직급에 있는 사람인데 이 사람이 잘못된 일, 일을 잘못 처리하고 부정한 일이 드러나서 이제 이 사람은 해고 또는 전보 발령이 난다고 예고가 되어 있어 가지고, ‘아! 이제 내가 나이가 들어 가지고 빌어먹지 못하고 어떡하나? 옳지 이렇게 해야 되겠다! 그래 가지고 자기 집 주인에게 채무가 있는 사람들 불러다가 당신 기름 얼마 당신 곡식 얼마 빚졌소? 빨리 오시오 백석이 빚졌으면 50석이라고 쓰시오. 내가 까줄게. 기름 30말 빚졌소? 열말이라고 써요! 깎아줄께. 하고 선심을 베풀었어요.
지금 공무원들이 이렇게 하면 뭐가 돼요? 배임죄가 되죠, 배임죄! 그런데 예수님이 그 이야기 들려주시면서이 세대의 아들들이 참 지혜롭게 행하지 않았느냐? 하고 그 사람의 행동을 칭찬한 거지요.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지금 우리가 읽은 누가복음 16장 앞부분에 있는 이 말씀은 누구에게 하는 이야기예요? ‘지금 시대가 새롭게 바뀌어 가지고 이제 낡은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왔는데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지 계속 너희들 낡은 생각에 사로잡혀 가지고 너희끼리 우리끼리 하고 산다고 하면 어떡하려고 그러느냐?’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이 바로 이처럼 사람들에게 일깨워서 야 이제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삶을 살아보자 너희들 돈 좋아하는 바리새인들 너희 돈만 좋아하면 이렇게 된다고! 하고 일깨워주는 거지요. 그러니까 예수님의 이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는 이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일하실 새로운 세상이 지금 시작되었고 너희들을 그 나라의 초청하는거다. 너희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새로운 일을 이루어 가실 텐데 왜 그렇게 갇혀만 있느냐?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거죠.
이것을 이제 성경 전체로 확대시켜보면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하나님의 의도가 뭘까요? 하나님이 이 세상 아름답게 지으시고 에덴동산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거기에 들이셔서 함께 하셨죠. 만약에 인간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다면 에덴으로부터 모든 복이 세상을 비옥하게 하겠죠? 그러나 인간의 반역으로 세상이 헝클어졌을 때 하나님은 다시 아브라함을 찾아오셔서 내가 너와 내 자손을 통해서 다시 한번 그래서 하느님의 약속대로 애굽에서 그 백성을 불러내서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시고 그들 가운데 집을 짓고 사시고 그들을 통해서 이제 너희들 나의 제사장 나라가 되어서 좋다 시온의 영광이 이 세상에 비칠 것이다 하고 그들 가운데 거하셨는데 아담처럼 다윗도 솔로몬도 그 이후에 대대로 범죄하였죠 그래서 하나님이 그 성전을 떠나 버리셨어요 결국 성전은 망하고 말았죠.
성경 이야기를 알고 있는 이 사람들은 예수님 시대 사람들 말이에요 하나님이 떠나버린 성전의 지성소 안에는 법계도 없는 이곳에 하나님이 다시 오셔야만 우리들이 회복되고 우리들이 회복되어야 이 세상에 다시 하나님의 뜻이 펼쳐질 텐데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를 새로운 시대를 주님이 다시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는 이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지금이라니까 너희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었다고 하고 초청하는 거지요 그리고 그 초청에 응답해 나오는 사람들을 제자로 삼으시고 그들에게 얘들아 너희들은 겨자씨와 같다! 얘들아 너희들은… 하면서 지금은 작아도 이게 대세를 이루게 될 거야. 하고 비유로 들려주고 율법의 새로운 의미를 깨우쳐 주시고 그들에게 이 옆에서 아직도 완고하게 있는 사람들을 책망하시면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거지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할 수 있어요? 그래요 주님! 우리가 단지 그 권선징악의 흥부와 놀부 이야기처럼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를 교훈으로 받을 수도 있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단지 그런 교훈만이 아니라 우리가 누구이며 어디에서 있고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대하드라마로 큰 서사를 가슴에 품고서 우리를 이해하고 이 교훈을 받아들이고 한다면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새로운 의미를 던져줄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제가 신우회에서와 우리 교회에서 노력하는 것이 이거예요. 우리가 누구인지를 성경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고 확신할 수 있게 될 때 성경의 이야기는 우리들에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는 거지요. 그러니까 우리들이 만약에 예수님을 믿고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이 새로운 일을 하시기 위하여 우리를 부르셨다면 그리고 새로운 미래를 우리에게 주신다면 그 미래는 어떤 사람들이 여러 갈 미래예요? 그 미래는 집 나간 아들이 돌아왔을 때 아버지와 함께 기뻐하는 사람들, 자기 주변에 우리가 넘지 못할 저 사람들과는 함께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회적 풍조가 있지만 그것을 그 경계를 뛰어넘어서 소통하려는 사람들.
저는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여러분에 대해서 생각해 봤어요. 여러분들이 자신의 직무를 감당할 때 직무를 수행할 때 여러분들은 NGO 단체 어떤 사람들처럼 또는 우리가 우리 신우회인데 그래도 선교사 한 사람은 후원해야 되지 않을까요 하고 후원금을 모아 가지고 선교사를 후원할 수도 있고 또 어디 가난한 사람 도울 수도 있고 하지요.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업무를 처리할 때 우리가 계획을 세울 때 우리가 어떤 사람들을 마음에 두어야 될 것인가? 우리 성동구청에 그 정책과 사업방향과 이런 것들이 어떤 사람들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는가? 여기서 배제된 사람들은 없는가? 그런 것들을 잘 생각해 볼 수 있다면 참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 나오는 부자는 자기 대문 앞에 있는 나사로를 발견할 수 없었어요. 눈이 가린 거지요. 날마다 파티 하면서 우리 성동구청에 근무하시는 여러분들이 이 하나님 나라의 대리인으로서 하나님이 나를 통하여 예수님이 하시던 일을 하게 하실 것이다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자신의 본분을 다 하신다면 여러분들이 지금 잘 하고 계시지만 훨씬 더 빛나는 일들을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모두가 지금 업무를 잘 수행하고 계실 거예요. 하지만 성경에 있는 이 이야기를 우리가 한번 읽을 때 ‘진짜로 내가 잘하고 있을까?’ 저는 목회자인 저도 말이에요. ‘나는 눈을 감고 지나쳐 버린 사람은 없을까?’ ‘나는 너무 안정적이기 때문에 내가 감지하지 못하고 있는 그런 사람은 없을까?’ 그런 생각을 이 성경을 읽으면서 좀 해 볼 필요는 있는 것 같아요.
오늘 이 말씀이 우리들에게 또 우리가 그동안 들었던 설교 말씀과 융합이 되어 가지고 새로운 의미가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존귀하신 주님, 주님이 꿈꾸시던 하나님의 나라를 저희들이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기를 그리고 소망할 수 있기를, 그리고 그것이 진짜로 실현된다는 확신 가운데 거할 수 있기를, 그리고 그 확신으로 인하여 우리 자신의 안락함을 내려놓고 또 손길이 닿지 못하는 가진 것이 부족해서 힘들어하는 그런 사람들을 공감할 수 있고 그들을 위하여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저희들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원합니다.
주님, 우리를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우리들의 눈이 세태에만 갇혀 있지 말게 하여 주시옵고 하나님께서 이미 하신 놀라운 과거와 그리고 성경을 통해 약속하신 아름다운 미래 그리고 그 미래를 우리에게 주신다고 하신 그 약속을 믿고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 나라의 아름다운 꿈을 꾸고 또 소망하고 기대할 수 있게 도와주시옵소서. 그렇지 않으면 저희가 메마른 사막을 지나는 사람들처럼 우리의 일상에 지치고 고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신우회 예배를 통하여 우리에게 다시 한번 희망과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소망과 그리고 우리의 하는 일에 대한 새로운 의미가 명확해질 수 있도록 주여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신우회 예배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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