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꽃밭놀이
펑, 펑, 펑
펑~펑
폭죽이 올라가다
힘들었나 봐
모래밭 위 하늘에
꽃이 피었다
뽕, 뽕, 뽕
퐁~펑
은하수 냇물
소화가 덜 됐나 봐
별똥별 갈기는 오줌
줄무늬 편다
껄, 껄, 껄,
껄~껄
할머니 웃음소리
하늘 도화지에 그린
우리 할머니 그림
꽃밭 참 예쁘다.
2 비둘기
주영길/송천
하양 검정 줄무늬 알록달록 비둘기
백인 흑인 황인 혼혈인들아
비둘기 보고 배우라
한 마리 다섯 마리 열 마리
무리지어 앞으로 항꾸네 옆으로
모이 톡톡 부리로 쪼아
말다툼도 싸움도 없는
서로 보조 맞춰 단체 행동
평화의 새 사랑의 새라지
편 가르기 좋아 하는 양반들
매파니 비둘기 파니 싸우면
망할까 두려워요 피차.
3 쇠똥구리
코끼리똥
쇠똥 굴려
발로 뭉쳐
영치기 영차
구슬 만든다
또 하나 뭉쳐
둥굴게 말아
앞발 두개로
연대하여 힘을 합하니
단단한 지구가 된다
앞발을 땅에 대고
물구나무 서 내발로 버티며
협동하여 지구를 굴린다.
적을 만나면 악착으로 싸우고
불리하면 날개를 펴 날아가는
쇠똥구리 요새는 어디로 갔을까?
쇠똥구리 같은 사람아
욕조의 밀어
후끈 달아 오른 그이
어서 오라 부르네
모든 것 벗어 버리고
알몸으로 오라하네
불알만 차고 오라네
진탕 한 번 벗기고 또 벗기니
몸도 마음도 시원하네
따듯한 가슴으로
온몸을 안아주니
여기가 낙원 이네
5 털머위꽃
버스승강장 가는 길옆
파랑치마 위에
긴 모가지 풀고 꽃대를 세워
노랑 족두리 향내에
벌들의 노래
나방이도 춤을 춘다
꽃들의 향연
오고 가는 길손들 눈을 홀긴다
여름장마에 맥없이 무너지고
태풍에 사라져 형체도 없지만
내년에 볼 수 있으면 좋겠다.
6 지렁이
주영길
평생 농부 되어
밭을 갈아 곡식 가꾸더니
비오는 날 밖으로 나와
쟁기질 하려다 기진하고
콩크리트 마당 헤집다
지처서 뒤져 개미에게 보시하고
여름 땡볕 일광욕 하러 나와
쥐포 같이 마른 양식으로
일생을 지렁이처럼
살다간 안타까운 사람아.
7 하나님의 사랑
주영길
나의 소망 되신 주님
내가 의지 하오니
위태로울 때
피할 길 주시고
앞이 캄캄 할 때
별빛을 주시니
더듬더듬 걸어
다시 섰습니다
어느새 머리에 흰 눈
이마의 골짜기
또 다른 내 모습
서녘하늘 노을 봅니다
약한 나를 지켜보시며
잔잔한 미소로
아들아 부르는 음성
네 주님 여기 있습니다
화목하게 하는 자
부모님이 귀천하신 지 어느덧 7년이 지났다.
부산에서 직장 생활하시던 해방되기 전해에 나를 낳으셨다. 일본이 대동아 전쟁을 일으켜 패망 직전의 혼란한 세상에 부산 앞 바다에 폭격이 시작되고 비행기의 출몰이 빈번한 혼란한 시대에 가족의 생명을 보전하기 위하여 부모 형제들이 살고 있는 고향 진도로 귀향하셨다.
내려 오셔서 현재의 집 자리에 터를 마련하시고 목제를 비어 손수 집을 지으시고 70 여년 사시다 부모님이 귀천하신지 어느덧 7년이 지났다.
평생 흙에서 농사를 지으시며 사시다 흙으로 돌아가셨다.
부모님은 하나님을 영접하여 신앙생활 하시다 큰 고통 없이 목사님의 임종 예배를 드린 후에 고종명의 복으로 천국으로 입성하셨음을 믿는다. 어머님이 가신지 석 달 후에 아버지도 가신 것이 아쉽지만 누구든 함께 가시기는 어렵기에 큰 복이라 생각한다.
부모님이 평생 강조하신 것이 화목 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가르침도 화목, 이것이 우리 가문의 자랑 효도와 화목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런데 이 화목에 금이 간 것 같아 아쉽다. 더구나 하나 밖에 없는 남동생이 연락을 안 하는 것이 가슴 아프다.
논어의 공자의 말씀 「子曰 부모관기지父母觀其志요 부몰관기행父沒觀其行이나 三年無改於父之道라야 可謂孝이니라.」 공자가 말하기를 부친이 생존할 시에는 그 뜻을 살피고, 부친이 세상을 떠난 후에는 그 행적을 살펴 3년간 부친이 하시던 방법을 고치는 일이 없으면, 효도라고 하겠다. 이것을 완전히 지키지 못했지만, 신체발부身體髮膚를 우리에 주셨으니 부모님의 유품을 버릴 수 없어 놔뒀다. 그 후 동생들이 와 주요 세간살이와 옷가지 몇 개를 놔두고 집을 정리했다. 그 다음에 내려가서 아버지께서 주신 나에게 특별 조치법이 있을 때 이전하라고 준 등기 서류와 아버지의 내의 몇 벌과 어머님이 쓰시던 운동구를 챙겨왔다. 부모님의 유품이라 버리고 싶지 않았다. 부모님 사시던 집, 어머니 병구완 하시느라 힘드신 탓에 5~6년 동안 정원 손질을 못 해 나무숲이 되어 면목이 없다. 집은 풀로 가득차서 한 달에 한 두번씩 내려가 풀과 전쟁을 하기에 관리 하느라 골머리를 앓았다. 3년간 진도까지 오가며 관리 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 특별 조치법만 기다릴 수 없었다.
동생들은 모두 결혼하여 외지에 살고 막내 남동생도 남양주에 딸만 둘 있다. 나의 큰 아들은 서울에서 딸 하나이고, 딸은 서울에서 아들 하나, 막내아들 역시 딸만 2명, 있다. 상속법이 6개월이 지나서부터 세금이 할증되는 것도 모르고 지금 까지 왔으니, 관리하기 쉽게 진도에 가까이 있는 광주 막내아들에게 이전등기를 했다.
관리도 위임 했지만, 직장에 다니는데 신경을 쓰느라 여유가 없기에 내가 내려가서 보면 안 되겠는 생각이 든다. 나도 형편이 안 되고 누가 살면서 관리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 하던 차에 막내 동생이 진도 내려가 약초재배를 하고 싶다고 하여, 그러면 송군집에서 살면서 관리하라고 했다, ‘진도에 와도 송군은 땅도 좁고 양식업은 하지 않으니, 처가 쪽에서 혼자 산다고’ 해서 못내 아쉬웠다.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 너무 힘들어 여러 가지 궁리 끝에 ‘풀안나 포직’을 인터넷으로 구입하여 막내아들과 내려와 텃밭에 설치하였다. 텃밭과 정원 사이에도 깔고 갈고리를 박아 고정하였다. 이제는 방학 동안이나 주말에 와서 관리하라고 했다. 어느 정도 안심을 했는데, 겨울바람에 포직이 다 뽑혀 헝클어져 치워야 한다는 연락으로 할 수 없이 우리 내외가 내려와 다 치우지 못하고 올라가, 다음 다시 아들과 내려와서 치웠다.
제자들의 초대에 내려가 집 관리에 어려움이 많다고 했더니, 한 제자가 전세 내노라고 자기가 소개 해주겠다하기에 너무 좋았다.
주자의 정통을 이어 받은 우리 가문은 적장손 승계 원칙이다.
그런 면에서 내가 아버지의 집과 묵정밭을 이어 받은 것은 아버지의 뜻이고 원칙에도 맞다. 문제는 다음이다. 아버지는 2남 4여를 두셨다. 내가 장남이고 남동생은 막내이다. 나의 자녀는 2남 1여다. 동생은 두 딸을 두었다. 남동생이 아들이 있다면 동생에게 아버지의 유산을 넘겨주었을 것이다. 동생이 사는 곳이 남양주라 관리하기도 불가능하다. 나도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 관리가 힘들고 보전을 해야기에 수원에 사는 큰아들이 아니라, 광주에 사는 차남에게 이전을 하였다. 물론 큰 아들의 동의에서다.
만약 두 아들 중 누구에게서 던지 아들이 태어나면 그 애에게 대물림하는 것이 나의 뜻이다. 어버지의 유산을 지키려는 뜻을 모르고 막내 동생이 오해하는 것 같아 설명할 기회가 없어서 그런것 같다.
관리가 힘들 때 내려와 살라고 해도 사양하더니 대명리조트가 들어온다고 하니 이제 내려와 산다고 했다. 모든 권한을 막내아들에 주었으니, 직접 조카하고 전화를 하라고 했다. 그리고 아들에게 삼촌이 전화 오면 네 생각을 말하고 결정하라고 했다. 아들에게 전화 왔느냐고 물으니 아무 소식이 없다기에 잊고 포기 한 줄 알았다. 그런데 여동생들 모임에서 자형들에게 집을 자기에게 집을 주지 않아 서운하다고 했단다. 그리고 나와 연락을 끊었다. 우리 집안에 이런 일이 생기다니 부모님이 아신다면 얼마나 실망하실는지 장남인 내가 부끄럽다.
추도일에 가족들이 모여 일박 할 때 송군 집에서 모여 전정도 하면 좋겠다고 해도 멀다고 담양 펜션에서 모였다. 명절에는 처가에, 처모가 입원해 내려올 때 들리고 하던 동생의 연락이 끊어져 여동생들에게 물었다. 전화 잘 안 받는다며, 형제들 카톡에도 들어오지 않는다했다. ‘서운해 하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남양주에 수해 났을 때 전화를 해도 안 받았다. 나중에 또 형제들 모두에게 코로나로 못 만나서 책 몇 권씩을 보냈다. 잘 받았다고 전화왔지만, 막동이는 연락이 없어 뭐가 서운한지 궁금하다. 어려서 부터 광주 우리 집에 와서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살았었다. 막내라고 집에서 어려움 없이 지낸 탓인지 직장까지 알선해 주었던 형을 원망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우리 시조인 주휘朱憙, 주자朱子의 십회훈十悔訓 중 「불친가족소후회不親家族疏後悔」가족에게 친밀하지 못한 것은 소원해진 후에 후회한다. 부모님의 평소에 가족사랑에 강조에 대해 흠이 생긴 것 같아 마음 쓰리다.
막내 동생이 동기간에 연락을 않고 사는 까닭은 뭔지 모르지만, 장남인 내가 잘못이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전화도 해도 받지도 않는다면, 이유를 알아야겠다. 송군 집에 대해 오해한 것 같다고만 한다, 기옥에게 전화 안했다면서, 나보고 말 안 해서 그런 것 같다고 한다. 내가 욱박질러 될 일이 아니다. 부모님의 뜻에 따라 의논하여 정하였고, 지금까지 잘 지냈는데, 돌출한 행동에 마음이 아프다. 단독 카톡에 형으로서 이유 없는 사과 글을 올렸다. 응답이 없어 문자메시지로 보냈다. 이번에는 가족 카독방에 그대로 올렸다. 그 후에도 전화했지만 받지 않고, 소식이 끊기니 서운한 생각도 든다. 누나들에게 물어보면 모른다고 한다. 코로나로 면담은 안 되니 문자로 의사소통을 하라한다. 자기 생각과 오해가 때론 가시로 찌르기도 한다는 것을 느꼈다. 이제 보니 형제들의 카톡에도 들어오지 않는다니, 나의 탓인 것 같아 맏이인 나의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잘못된 일이 있으면 말하고, 용서해야지 나의 부덕이다. 만날 수 없으니 문자로라도 가까이 하자. 너의 가정에 평화를 빈다. 네가 남이라면 이렇게 비굴해질 수 있을까? 핏줄이기에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목사님께 1년간 기도제목으로 삼고 기도하고 있다. ‘형제들이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어서 돌아오라 동생아, 욕심일까? 부덕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