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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하나님을 왜 섬기고 있습니까? / 2021년 10월 10일 주일 예배
본문 / 욥기 1:6-12
영화 ‘실미도’는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의 한 부분을 담고 있습니다. 간첩을 침투시켜 대통령을 암살하려던 북한에 맞대응하기 위해 실미도 부대가 만들어졌습니다. 정부는 가난하고 힘없는 청년들에게 막대한 보상을 준다는 말로 속여서 지원자를 받았습니다.
31명의 청년들이 저마다 이 세상에서 행복과 성공과 희망의 돌파구를 찾아 나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엄청난 훈련과 가혹행위였습니다. 북한에 침투할 날만을 위해 훈련하였지만 그 작전은 남북이 화해국면으로 바뀌며 취소되었고 존재의 의미가 없어지자 지원이 끊기고 방치되었습니다. 그들은 총기를 탈취하여 청와대를 향해 가다가 사살이 되었습니다.
김일성 주석궁으로 가기 위해 목숨을 건 혹독한 훈련을 받았지만 그들은 청와대로 돌진하다가 죽었습니다. 공격 목표가 완전히 바뀐 것입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저는 실미도 부대를 통해 욥을 한 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탄이 실미도 부대에게 찾아와 너희들의 왕은 너희들에게 약속한 것을 이행하지 않고 예산을 끊고 먹을 것도 주지 않고 병이 들어도 치료해 주지 않고 버렸는데 그래도 그의 백성으로 충성하겠느냐? 아니면 그에 대항하여 일어나겠느냐? 속삭일 때에 실미도 부대원들은 불같이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애국이라는 말을 하는데 나라가 나를 배신하고 고통스럽게 해도 그 때에도 그 나라를 사랑할 수 있을까요? 실미도 부대원들이 나라를 위해 내 목숨을 기꺼이 초개 같이 버리겠다는 애국의 일념 하나로 지원하였다면 그들은 작전의 변경과 부당한 대우에도 분노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 나라에 그렇게 충성하는 사람들이 있겠습니까?
선수들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기 위해 나라를 버리는 것입니다. 개인의 행복과 성공과 명예와 영광을 위하여 나라를 이용하는 것이 현실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 나라가 나의 행복과 만족을 가로막으면 사람들은 그 나라에 맞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라고 합니다. 이 세상에서 자신의 영광과 만족과 기쁨을 위해 육신의 속한 나라에 맞서고 버리기도 하는데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는 성도들은 자신의 이름과 영광과 만족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다가 그것이 실패하였을 때에 하나님을 대적하거나 배신하거나 버리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을 떠나지 않겠습니까?
오늘 본문을 보면 사탄은 하나님께 성도들의 믿음을 참소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탄은 욥의 믿음을 하나님께 참소하였습니다. 사탄은 지금도 세상을 돌아다니며 성도들의 믿음을, 여러분과 저의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참소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믿음이 진짜인줄 아십니까?
지상에 있는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천상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겁니다. 최상호가 왜 목사가 된 줄 아십니까? 왜 하나님을 섬기는 줄 아십니까? 왜 그가 충성하는 줄 아십니까? 그것이 정말 하나님을 사랑해서 그런 줄 아십니까? 아닙니다. 최상호는 하나님을 이용하여 세상에서 자기의 이름을 인정받고 높아지고 섬김을 받고 육체의 영광과 만족을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사탄이 욥만 참소하고 말았겠습니까? 하나님은 욥에 대해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다.”고 하셨습니다. 욥은 믿음으로 일등인 사람이었습니다. 사탄이 하나님이 인정하는 일등도 참소하였는데 그 아래는 어떻겠습니까? 그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닙니다. 내 것이 된지 이미 오래 되었습니다! 참소하면 하나님도 그렇다고 할 성도들이 왜 없겠습니까? 사탄은 자기 것으로 만든 자들은 더 이상 참소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소유로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참소하는 것입니다. 그 믿음에 대하여 말입니다. 그 믿음이 가짜인지 진짜인지 말입니다. 우리는 욥의 믿음을 참소하는 사탄을 통해 온전한 믿음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탄을 통해서도 성도들에게 믿음이 무엇이지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사탄이 참소할 수 없는 진짜 믿음이 무엇인지 말입니다.
하나님은 욥을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라고 하셨습니다. 욥을 내 종이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러자 사탄은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 이유가 무엇인지 욥의 믿음의 근거가 대해 참소를 하였습니다. 사탄은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단지 하나님이 욥에게 세상의 힘과 영광을 풍족하게 주셨기 때문에, 그가 세상의 풍요로 만족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라고 참소한 것입니다.
욥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준 세상의 물질과 풍요와 번영과 안전과 명예와 영광과 존경과 자식들로 복을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지 만약 하나님이 욥에서 준 그 복을 거두어간다면 그래도 그가 하나님을 사랑하겠느냐는 겁니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욕하며 대적할 것이라는 겁니다.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주께서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울타리로 두르심 때문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의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의 소유물이 땅에 넘치게 하셨음이니이다.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
하나님은 누구를 시험하지 않아도 다 아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욥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그 믿음이 하나님이 주신 선물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사탄의 참소를 듣고 욥에게 시험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하나님이 사탄의 참소에 말려든 것입니까?
그것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사탄은 믿음을 모르는 자입니다. 사탄을 지배하는 것은 불신과 의심입니다. 왜냐하면 사탄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그 믿음에서 떨어진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탄은 하나님이 인정하는 욥의 그 믿음을 보고도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그 물질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척하는 것이라고 의심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탄에게 말려든 게 아닙니다. 욥의 믿음을 인정하면서도 사탄의 시험에 욥을 내주는 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시험과 고난을 받아야 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왜 하나님을 섬기십니까? 왜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왜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나오십니까? 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고 기도하십니까?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질문입니다. 나는 왜 하나님을 섬기는지 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믿음을 가지고 사탄이 하나님 앞에서 참소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심판대 앞에서 우리는 왜 하나님을 섬겼는지에 관하여 심판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이스라엘 교회에 오셨을 때 성도들은 호산나를 외치며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환영하였습니다. 그런데 많은 성도들이 예수님을 메시야로 환영한 이유는 정치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경제적인 빈곤을 풀어주고, 사회의 정의를 실현해줄 세속적인 민속 메시야를 원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로 부르신 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부름을 받았을 때 그물과 배와 가족을 버리고 주님을 따라갔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이용하여 이 세상에서 훨씬 더 좋은 것을 얻으려고 그보다 못한 것을 버린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이 붙잡히던 날까지 세상의 영광을 놓고 싸웠습니다. 그들은 세상에서 자신의 이름과 영광과 명예와 만족과 더 큰 것을 얻기 위해 예수님께 과감하게 투자를 한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왜 베드로에게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라고 하시며 사탄아 물러가라고 하셨겠습니까? 예수님은 베드로를 향해 사탄이라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사탄에게 참소를 당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탄은 베드로의 마음에 들어와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적하게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탄이 너를 밀 까부르듯 요구하였다 하시고 내가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으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들을 굳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베드로의 믿음을 위해 기도하지 않았다면 베드로는 사탄의 참소에 넘어가고 말았을 것입니다. 욥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욥을 사탄에 시험에 내주셨지만 욥을 버린 것이 아니라 그를 사랑으로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내 종아! 네 믿음을 나에게 보여 달라고 말입니다. 아들을 십자가에 내주신 하나님은 잠시 아들을 버렸지만 그 믿음과 순종을 아신 것입니다. 그 순종과 믿음을 보시고 아들을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만약 제자들이 예수님을 통해서 육신이 원하는 만족과 세상의 영광과 풍요를 얻었다면 그들은 사탄에게 참소를 당할 때 어떻게 되었을까요? 예수님을 따르던 많은 사람들이 예수가 그들이 원하는 세속적인 메시야가 아님을 알고 실망하여 돌아갔다고 증언합니다. 그때 그들은 사탄의 참소에 넘어가 가짜 믿음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십자가의 주님을 만나 죄를 회개하고 사람의 영혼을 죄에서 구원하는 메시야를 만난 것입니다. 십자가의 주님을 만나 회개하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하면 누구든지 사탄에게 참소를 당할 때 그 믿음이 가짜로 드러나고 맙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의 주님을 만나 성령과 피로써 거듭나지 못하면 자신의 타락한 육체의 만족과 평안과 영광을 위해 예수님을 이용하는 종교인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나와 예배, 기도, 헌금, 전도, 봉사, 충성을 하니 영락없는 믿음으로 보일 겁니다.
그러나 그것은 십자가에서 내 죄를 대속하고 나를 사망과 심판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구원하신 갚을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사랑과 십자가의 믿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의롭게 만들고 그 열심과 행위를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내가 원하는 이 세상의 영광과 만족과 평안을 얻어내고 그것을 지키려는 자아숭배에 불과한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의 교회 안에서 얼마나 많은 목회자와 성도들이 사탄의 참소에 넘어가고 있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이 시대의 성도들도 여전히 예수님을 정치적이고 경제적이며 세속적인 메시야로 이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온전한 믿음은 이념과 사상의 싸움에 예수님을 이용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나라의 정치에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목사나 성도나 교회를 세상의 정치의 판으로 만들면 안 되는 것입니다. 어떤 교회는 정치판으로 이용하는 곳도 있습니다. 저는 정치인들이 교회의 행사에 나와 얼굴을 내미는 것도 아주 싫어합니다. 선거에서 예수님과 교회를 이용하는 자들을 싫어합니다. 그것은 마치 사업하는 사람이 교회를 이용하여 장사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식당을 개업한 어떤 사람은 교회를 선택할 때 그 지역에서 가장 큰 교회가 어디인지 보고 결정했다고 합니다. 그 교회와 거리도 먼 데도 말입니다. 정말 그것은 하나님의 교회를 추악한 정욕과 탐심으로 이용하는 교활한 짓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이미 사탄의 참소에 넘어간 마귀의 자식들인 것입니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사용하는 자들은 저주를 받습니다. 하나님을 이용하여 이 세상에서 육신의 영광과 만족을 누리는 것이 축복인 것 같습니까? 큰 교회를 만들고 또 그런 자리를 차지하여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그 이름이 높임을 받고 좋은 옷과 큰 집과 고급 승용차를 몰고 다니며 돈을 걱정 없이 사용하며 사람들에게 부러움을 받은 것이 과연 축복일까요?
그것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해서 주신 축복으로 알고 있을 때 사탄이 그 사람의 믿음을 참소하여 욥처럼 그가 이 세상에서 누리던 영광과 존귀가 다 사라지고 인생의 가장 밑바닥으로 내려갔을 때에도 과연 하나님은 나를 사랑한다고 고백할 수 있겠습니까?
자신의 의를 위해 예배하고 기도하고 헌금하고 봉사하고 전도하고 열심을 내는 자들도 이 세상에서는 믿음 있는 자들로 보이지만 사탄에게 참소를 당할 때 하나님을 사랑하는 믿음이 아닌 자들로 드러나고 말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 나라에 가신 박용익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이 목사님은 정말 교회를 위해 몸을 아끼지 않고 충성을 다하고 성도들을 자식들보다 더 사랑한 분이라고 합니다. 문제가 있는 교회가 있으면 본부에서 이 목사님을 파송했습니다. 그러면 이 목사님은 강단에 가마니 하나를 깔아놓고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금식을 하였다고 합니다. 목사님이 금식하며 죽어가는 것을 보고 성도들은 회개하고 화해를 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목사님이 평생 목회를 하면서 기도 중에 환상을 딱 한 번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환상에서 자신은 하나님 앞에서 다 떨어진 옷을 입고 구걸을 하는 거지의 모습이었습니다. 자신은 이 세상에서 문제가 있는 교회마다 기도로 그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 있는 목사로 존경을 받았는데 하나님 앞에서는 다 떨어진 더러운 옷을 입은 거지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목사님은 하나님에게 제가 어떻게 하나님을 섬겼는데 제가 얼마나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헌신하고 충성하였는데 거지입니까? 믿을 수가 없어서 큰 충격을 받고 하나님께 물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네가 한 일이 다 나를 위한 것이었냐고 묻더랍니다. 네가 나를 정말 사랑해서 한 것이냐? 사람들에게 네 이름을 인정받고 싶어서 너를 위해 한 것이 아니었느냐? 물으실 때 이 목사님은 그 자리에게 고꾸라져 회개하였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동기로 하지 않는 것은 조금도 받지 않으십니다. 이 세상에서는 정말 신실한 믿음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많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그랬습니다. 천국은 맡아놓은 사람들 같았습니다. 부자가 그랬습니다. 하나님께 믿음으로 큰 축복을 받은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사탄의 참소를 넘지 못한다면 아무 것도 믿음으로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사탄은 우리의 믿음을 반드시 참소합니다. 정말 그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줄 아십니까? 자신의 이념과 사상과 정치적인 욕망을 위해, 세상에서 재물과 돈과 영광과 힘과 만족을 얻기 위해, 자신의 누리는 만족을 안정하게 지키기 위해, 자신의 의와 믿음을 인정받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 자신의 성공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고 있을 뿐이라고 참소할 때 하나님은 그 사탄의 참소로 성도의 믿음을 달아보시는 것입니다.
사탄의 시험을 이기지 못한다면 그 믿음은 다 가짜로 드러나는 겁니다. 지금 이 시간 여러분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모하는 마음으로 나오셨습니까?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예배하십니까? 시간이 되니 습관적으로, 형식적으로 나온 것은 아닙니까? 이 시간에 그래도 앉아 있다가야 내 마음이 편하니 온 것은 아닙니까?
사탄이 참소할 때 우리의 믿음은 어떻게 드러날까요? 저는 결혼하기 전 전도사 시절에 십에 오조를 드렸습니다.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폐물을 팔아 드렸습니다. 제 차를 팔아서 교회차를 샀습니다. 교회를 떠날 때 어떤 사람들은 전별금으로 한 몫을 챙길 때 저는 최선을 다해 몇 달치 사례비를 헌금을 하고 떠났습니다.
두 번째 교회에도 몇 년간 사례를 다 건축헌금으로 드렸습니다. 아이들 통장까지 다 털어 헌금했습니다. 돈을 꾸어서도 헌금을 했습니다. 일 년을 넘게 더위와 추위를 견디며 강단에서 이불을 깔고 자며 기도했습니다. 그 교회를 떠날 때에도 전별금을 받은 것이 아니라 사례비를 전부 헌금을 하고 왔습니다. 대천에 와서도 삼 년 동안 사례비를 건축헌금으로 드렸습니다.
어떤 목사는 교회를 건축할 때 교인들에게 헌금을 강요하면서 자신은 수 십 억을 갖고 있었다고 하는데 저는 하나님이 아시지만 있는 게 없었습니다. 제 부모님이 저에게 이십억을 물려주었다고 하여도 얼마 남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없어서 못 드렸지 있는데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사례비를 다 드리고도 저에게 돌아온 것은 십일조도 안하는 목사라는 모함이었습니다. 온갖 멸시와 고난을 받고 교회를 나올 때 하나님은 저에게 너는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혀 사람들에 매를 맞고 옷이 다 찢어져 예수님께 끌려 온 그 여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상에 있는 제가 천상에서 결정된 일을 어떻게 알겠습니까만 욥을 통해 생각해보니 사탄은 하나님께 제 믿음을 참소한 것입니다. 최상호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해서 사례비를 받으면 다 헌금하고 가는 곳마다 헌신하고 충성하는 줄 아십니까?
하나님은 제가 하나님을 사랑해서 헌신하고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 아셨습니다. 제 마음에 있는 그 시커먼 속을 왜 모르셨겠습니까? 하나님과 그 교회를 이용하여 내 이름을 높이고 인정받고 영광을 받으려고 한다는 것을 다 아셨습니다. 자신의 만족을 위해 열심을 낸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사탄의 참소를 듣고 시험을 허락하셨습니다. 왜 그러신 줄 아십니까? 저에게 기회를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가 내 종이라면 반드시 회개하고 돌아올 것이다! 사탄의 시험에 절망하거나 실족하지 않고 그 불같은 시험과 고난으로 자신이 어떤 길을 가고 있었는지 돌아보고 연단을 받고 반드시 온전한 믿음으로 설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닙니다. 저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긴 것이 아니라 세상의 재물과 그 영광으로 나를 숭배하기 위해 하나님을 철저하고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탄의 참소를 통해 하나님은 그것이 영적인 간음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의 남편과 아내가 버젓이 간음을 하고 있는데도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사랑할 수 있습니까? 일 년에 단 하루만이라도 그 짓을 한다면 용납하겠습니까?
이혼하지 말라고 하신 예수님도 간음을 하면 끝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잠시 세상에서 부부로 살 때에도 순결해야 그 하나 됨을 지킬 수 있는데 어떻게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며,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두려워하며, 하나님보다 재물과 돈과 더 좋아하며, 하나님보다 나를 더 숭배하며, 하나님을 이용하며 내 만족과 영광을 취하는 영적인 간음을 행하며 예수님의 신부가 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신랑이라면 다른 남자의 아이를 밴 여자를 아내로 맞겠습니까? 에덴동산에서 마귀에게 너희들이 하나님이 될 수 있다고 미혹을 받고 타락한 인간은 세상의 물질로 자신을 섬기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마귀는 욥이 세상의 물질의 풍요로 자신을 섬기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참소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저주를 받고 심판을 받아야 할 죄인이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만나 회개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로 나를 섬기기 위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죄악에서 떠나지 못한 것입니다.
왜 하나님을 섬기십니까? 내 돈 좀 잘 지켜달라고요? 재산 좀 늘려 달라고요? 자식들이 잘 되게 해달라고요? 건강 좀 지켜 달라고요? 사고 나지 않게 해달다고요? 우리는 사탄이 참소할 때 참소를 당하지 않을 온전한 정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을 갖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믿음이 없으면 참소에 넘어가 사탄의 자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내 죄를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믿음으로 그 구원의 하나님으로 기뻐하고 만족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