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예정은 로마서 9장의 토기장이 비유를 문맥과 다르게 해석하도록 한다. 극단적 칼뱅주의자들은 이 비유를 이중예정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사용했는데, 그것은 본문을 잘못 적용한 대표적 사례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 본문은 이중예정을 위한 근거가 될 수 없다. 바울이 이 비유를 사용한 의도는 저주의 백성이었던 이방인들을 하나님이 전적으로 그분의 주권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의로 여기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기로 작정했다고 해서 누가 감히 하나님을 비난할 수 있는가를 반어적으로 묻기 위한 것이었다. 비유의 초점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김명용은 이 부분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바울은 로마서 9장부터 11장까지 영원 전에 있었던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이중 예정을 설득하기 위하여 글을 쓴 것이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이’(롬 10:12)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롬 10:11) 선택되고 구원받음을 설득하기 위해 글을 쓴 것이다.” 바울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선택이 이방인에 대한 선택으로 확대될 수 있는 것이고,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하나님의 주권적 행위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본문의 초점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이 아닌 자를 자기 백성으로 부르시기로 작정했는데 이에 대해 아무도 항변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려는 데” 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육적 자손들을 선택하신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하시기로 예정하셨다. 그리고 그를 믿는 자는 누구든지 약속의 자녀로 삼겠다고 한들, 너희가 감히 “하나님의 계획에 대해 왈가왈부 할 수 있겠느냐”고 힐문한 것이 토기장이 비유를 사용한 바울의 의도였던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한스 큉의 다음과 같은 주장도 참고할 만하다: “바울에게 – 아우구스티누스에서 중세를 거쳐 루터와 칼빈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점[하나님의 선택]은 잘못 이해되어 왔다 – 개인의 구원이나 멸망, 또는 개인의 선택이나 배척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사실 토기장이 비유는 로마서에서 처음 사용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경고하실 때에도 이 비유는 등장한다(사 29:16; 45:9-13; 렘 18:1-12). 특히 이 토기장이 비유는 하나님이 이스라엘도 예외 없이, 어느 민족이든 순종하지 않으면 재앙을 내리고 악에서 돌이키면 복을 주시겠다고 선언하실 때 적절하게 사용된 것이었다: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가 하는 것 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내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뽑거나 부수거나 멸하려 할 때에 만일 내가 말한 그 민족이 그의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에게 내리기로 생각하였던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겠고 내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건설하거나 심으려 할 때에 만일 그들이 나 보기에 악한 것을 행하여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면 내가 그에게 유익하게 하리라고 한 복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리라”(렘 18:6-10). 이런 하나님의 선고는 선민이라 자처하던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충격적인 것이 아닐 수 없었다. 도저히 그런 처사를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토기장이 비유는 하나님의 주권을 드러내고 이스라엘의 오만과 엘리트의식을 깨뜨리기에 적절한 것이었다.
사실 당시 이스라엘 사람에게 하나님이 자신들을 버린다거나, 이방인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대단히 낯설고 이례적이어서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그들은 자신들이 거룩한 백성이고 이방인들은 부정한 백성이라 상관하지도 않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베드로의 환상경험(행 10장)에서 보여준 것처럼, 이방인에게 복음을 증언해야 할 당위성을 말하기 위해서는 전면적인 시각전환이 필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관점을 쉽사리 바꾸려고 하지 없었다. 그들은 여전히 이방인들을 복음전파의 대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토기장이 비유는 이런 상황에서 나온 것이다. 하나님은 야곱을 사랑하고 에서를 미워할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 하나님의 주권은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까지 구원의 대상으로 삼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의미한다. 유대인들이 그것을 놓고 시시비비를 따질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야곱과 에서 이야기는 장자인 유대인이 아니라 이방인의 구원을 염두에 둔 것이다(롬 9:24-25; 11:33). 로마서 9장은 하나님의 주권 사역과 이방인에게 베푼 긍휼에 대해서, 10장은 구원이 믿음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것을, 11장은 이방인과 이스라엘이 모두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로마서의 주요 핵심 의도 가운데 하나는 이방인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에 있다.
[회중주체적 조직신학], 38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