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정말 사과할 일 없는 KBS가 되길... 이상호(소소감 리더십연구소 소장) 진심에서 우러난 사과는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킨다. 그리고 그동안의 서운함과 분노를 눈처럼 녹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진심이 깃들지 않은 사과가 잦으면 사람들은 그 사과에 전혀 감동하지 못하고 ‘또 사과하네’하고 빈정댄다. 사과는 자기가 한 일과 행동에 대하여 사과해야지 다른 사람이 한 일을 대신 사과하는 일은 어쩌면 어정쩡한 변명이며 때로는 자기 정당화를 위한 구차한 변명일 수 있다. 이전 사람은 잘못했는데 앞으로 나는 잘못하지 않겠다는 오만으로 비칠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이제까지 KBS가 해 온 사과는 구차한 변명이며 이전 경영진의 실책에 대한 비판이다. 전임 경영진에 대하여 비판함으로 자기를 정당화하기 위한 일이었다. 그리고 당사자가 한 일과 행동에 대한 사과라는 사과의 기본 요건에도 어긋나 왔다. 그리고 그런 일이 반복됨으로써 양치기 소년처럼 신뢰를 잃어버렸다. 이를테면 상습화된 것이다. 얼마 전 KBS 박민 사장이 새로 취임한 이후 사장과 함께 간부들이 나와 “공영방송의 핵심 가치인 공정성을 훼손해 국민의 신뢰를 잃은 상황에 정중히 사과한다”고 대국민 사과를 했다. 사장과 간부들이 도열하고 10초 이상을 크게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그것을 지켜본 나의 입에서는 반사적으로 “어라, 또 사과하네”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그런데 내 생각으로는 그런 말이 튀어나온 사람은 나만 아니라 그것을 지켜본 많은 국민이 그랬을 것 같다. 나를 포함한 국민은 그 사과를 별 반응 없이 지켜본 것 같다. 이번 신임 KBS 박민 사장의 대국민 사과에서는 “그동안 불공정 편파보도의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며 그 실례로 윤지오 사건, 검언유착 오보, 생태탕 집중 보도, 김만배 녹취록 인용 보도, 등 전임 정권, 전임 사장 시절에 있었던 일을 거론 했다. 이 말은 무슨 말인가? 그동안 KBS는 이전 정권에 충실하였다는 말이 아닌가? 그리고 이제는 새 정권의 구미에 맞는 보도를 하겠다는 다짐으로 들린다. 그 말 자체에 이미 공정성에 대한 훼손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동안 KBS는 대국민 사과를 수차 해 왔다. 특히 정권이 바뀌고 사장이 바뀔 때마다 해 왔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새로 임명된 이병순 사장은 취임사에서 ‘지난 몇 년간 KBS는 공정성과 정치적 중립성 시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제 KBS 제작자와 진행자들은 공영방송의 공정성과 중립성의 중요성을 깊이 가슴에 새겨야 한다’고 하면서 사과와 다심을 했다. 그러나 KBS는 그렇지 못했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섰다. 당연히 KBS 사장은 다시 임명되었다. 간부들도 바뀌었다. 새로 임명된 양승동 사장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의 KBS를 ‘지난 10년의 실패’로 규정하고 ‘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KBS’를 지향한다고 하며 거듭날 것을 선언했다. 이 역시 이전 경영진에 대한 비판과 새 정권에 충실하겠다는 다짐으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이처럼 KBS는 1987년 민주화 이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전 정권에서 잘못한 일, 이전 경영진에서 잘못한 일을 사과와 반성을 하며 새 정권에 충실할 것을 다짐했다. 어쩌면 그 사과와 반성 자체가 사과와 반성의 요건을 갖추지 못했으며 사과와 반성에 따른 다짐에는 다시 새 정권의 구미에 맞는 방송이 되겠다는 충성 선언으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이러한 KBS 사과의 역사를 돌아보면 KBS는 그동안 공정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정권의 구미에 맞는 어용 방송을 계속 해 왔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되었다. 공영방송은 어디까지나 공영방송이 가치를 지녀야 국민의 신뢰를 받는다. 정치적인 사안은 복잡하여 모든 일에 정치적 중립성을 견지하기는 어렵다고 하나 특정 이념 세력이나 구미에 맞추기 위해 기획하는 그런 일, 특히 정권의 구미에 맞는 기획 보도나 뉴스 편집은 지양하여야 한다. 그런 뼈를 깎는 각오와 노력이 깃들지 않는 한 아무리 사과를 해도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없다. 오히려 사과할 때마다 의혹만 제기하고 그동안 자기들이 공영방송의 사명을 다하지 못했음을 자인하는 꼴이 된다. 그래서 차라리 사과하지 않는 편이 낫다. 앞에서 말했듯이 사과는 자기의 과오에 대한 사과를 해야 한다. 이전 사람의 일을 대신하여 사과하는 일은 변명에 불과하며 이전 사람을 딛고 서겠다는 발상이다. 그래서 전혀 지지를 받지 못한다. 이제 정말 사과하지 않는 KBS가 되길 바란다. 사과할 일을 만들지 않을 KBS가 되길 바란다. 상습적인 사과는 안 하느니만 못하고 스스로 모순을 드러내는 일이다. 이젠 정말 사과할 일 없는 KBS가 되길 바란다. 그래야 신뢰받는 KBS가 되고 공영방송의 푯대를 세울 수 있다. 우리가 사과하지 않는 KBS가 되길 바라는 것은 공영방송에 거는 기대 때문이다. 한국의 공영방송을 제자리에 세우기를 바란다. 그래야 국민이 내는 수신료에 보답할 수 있을 것 아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