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상일기
— 두 눈을 잃은 청년 장교의 기록 —
수도통합병원 어느 병실에서
창밖에는 봄이 왔다고 한다.
간호장교가 오늘은 하늘이 참 맑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볼 수 없다.
이제 내 세상에는 빛도, 하늘도, 전우들의 얼굴도 없다.
눈을 감아도 어둡고, 눈을 떠도 어둡다.
처음에는 아직 붕대를 풀지 않았으니 곧 나아질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군의관의 떨리는 목소리가 내 마지막 희망을 무너뜨렸다.
“장교님… 죄송합니다.”
그 말 한마디에 나는 모든 것을 알아버렸다.
나는 이제 평생 앞을 볼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밤이 되면 전장의 소리가 다시 들린다.
포성이 귀를 찢고, 화약 냄새가 폐 속으로 밀려든다.
쓰러져 가던 전우의 목소리, “소대장님…” 부르던 그 음성이 아직도 귓가를 떠나지 않는다.
나는 살아 돌아왔지만 어쩌면 전우들 일부는 그 전장에 아직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살아남았다는 것이 미안할 때가 있다.
나라를 지키겠다고 젊음을 바쳤는데, 이제 나는 내 혼자 밥 한술도 뜨기 어려운 몸이 되었다.
어머니가 다녀가셨다.
돌아서는 발소리 뒤에 숨죽인 울음이 들렸다.
나는 모르는 척했다.
아들도 울고, 어머니도 울면 이 병실은 너무 슬퍼질 것 같았다.
전우들도 찾아온다.
억지 웃음을 지으며 “금방 좋아질 겁니다.” 말하지만, 그들의 침묵 속에서 나는 이미 진실을 듣고 있다.
오늘은 유난히 두렵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결혼은? 가정은? 군인의 꿈은?
젊은 날의 모든 설계가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나는 이제 누군가의 짐이 되어 살아야 하는가.
차라리 그날 전장에서 전우들과 함께 쓰러졌다면 더 나았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런데 오늘, 한 사람이 병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낯익은 목소리.
조용히 내 손을 잡아 주었다.
나는 말했다.
“이제 나는 앞을 못 봅니다.”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리고 아주 낮고 떨리는 목소리로 그 사람이 말했다.
“제가 눈이 되어 드릴게요.”
순간, 나는 말을 잃었다.
캄캄한 세상 속에 아주 작은 빛 하나가 들어오는 것 같았다.
나는 울지 않으려 했지만 끝내 참지 못했다.
군인이 전장에서 흘리지 않던 눈물을 그날 병상에서 흘렸다.
세상은 아직도 어둡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에는 작은 희망이 살아나고 있다.
나는 두 눈을 잃었지만, 누군가는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
어쩌면 사람은 눈으로만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닌가 보다.
누군가의 사랑이 한 사람을 다시 살아가게 한다.
언젠가 세월이 흐르면 오늘의 이 아픔도 누군가에게는 조국의 역사가 될 것이다.
그리고 젊은 세대들이 이 평화가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
누군가는 청춘을 바쳤고, 누군가는 눈을 잃었고, 또 누군가는 그 상처 입은 사람 곁을 평생 지켜 주었다는 것을.
오늘 밤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나는 조용히 기도한다.
“하나님, 부디 이 나라를 지켜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