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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비추는 태양의 불법 -
제20회 진정한 보은은 광포 서원의 실천에
어느 날 우리의 은사 도다 조세이(戶田城聖)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내가 이렇게 광선유포를 지휘하기 까지 마키구치 쓰네사부로(牧口常三郞) 선생님의 대은을 입은 것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나는 마키구치 선생님의 자식으로서, 제자로서 한평생 아니 영원히 소중히 여겨 은혜에 보답할 결심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불타버린 들판에 홀로 서서 학회재건에 착수하신 도다 선생님. 선생님의 가슴속에는 선사 마키구치 선생님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반드시 광선유포를 이루겠다는 단호한 일념이 혁혁히 불타올랐습니다.
그리고 이 지상에서 비참이라는 두 글자를 없애고자 75만 세대 홍교라는 원업을 이루셨습니다.
‘사제의 길’은 ‘보은의 길’입니다.
나는 묘법 유포에 끝까지 살아가는 가장 존귀한 인생을 가르쳐주신 도다 선생님을 섬겼습니다. 불황으로 선생님 사업이 궁지에 몰려 직원들이 하나둘 그만두는 속에서 홀로 선생님을 지킨 까닭도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보은하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으로 살아가는 ‘지극히 성실한 길’
1950년 섣달, 사업을 타개하고자 사이타마 오야마 방면에서 동분서주하고 나서 도다 선생님과 강둑을 걸을 때였습니다. 총총한 별이 밤하늘을 수놓은 아름다운 밤이었습니다.
나는 당시 전쟁이 끝난 뒤의 어두운 세태 속에서 유행하던 ‘별의 흐름에 … 이런 여자로 누가 만들었나’라는 노래 가사를 ‘이런 남자로 누가 만들었나’로 바꿔 흥얼거렸습니다.
그러자 앞서 걷던 선생님이 휙 돌아보고 웃으며 “바로 날세!” 하고 대답하셨습니다. 유연한 스승의 한 마디에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지금 사업은 악전고투의 연속일지 모른다. 그러나 상황이 어쨌든 나는 평생 선생님의 제자로서 불요불굴의 정신으로 끝까지 싸우겠다. 반드시 승리의 깃발을 세우겠다.’고 어디까지나 스승과 함께 꿋꿋이 나아가겠다던 다짐을 잊을 수 없습니다.
훗날 나는 은사의 사진을 양복 안주머니에 넣고 스승의 꿈이던 동양광포, 세계광포의 여정에 올랐습니다. 나는 늘 선생님과 함께였습니다. 나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은사에게 배운 지도를 실천하고, 날마다 가슴속의 스승과 대화하고 있습니다.
보은은 인간으로 살아가는 ‘지극히 성실한 길’입니다. 니치렌(日蓮) 대성인은 자신이 누구보다도 보은의 생애를 관철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제껏 때때로 강의한 <보은초>를 다시 한번 배독하고 그 진수를 다 같이 배워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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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어서 293 1행~4행)
대저 노호(老狐)는 고총(古塚)을 잊지 않고, 백귀(白龜)는 모보(毛寶)의 은혜(恩惠)를 보답(報答)함이라. 축생(畜生)마저 이와 같은데 하물며 인륜(人倫)이랴. 그러므로 옛날의 현자(賢者)인 예양(豫讓)이라 하는 자(者)는 검(劍)을 삼킴으로써 지백(智伯)의 은혜(恩惠)를 갚고, 홍연(弘演)이라 하는 신하(臣下)는 배를 갈라 위(衛)의 의공(懿公)의 간(肝)을 넣었느니라.
하물며 불교(佛敎)를 배우는 자(者)가 어찌 부모(父母)·사장(師匠)·국은(國恩)을 잊을소냐. 이 대은(大恩)을 보답하려면 반드시 불법(佛法)을 깊이 배워 구명(究明)해서 지자(智者)가 되지 않고서는 불가능(不可能)하니라.
<현대어역>
본디 여우는 결코 태어난 옛 무덤을 잊지 않고, 또 흰 거북이는 모보의 은혜에 보답했다고 한다. 이처럼 축생조차 은혜를 아는데 하물며 사람은 그보다 더 하다. 또 위나라 홍연이라는 신하는 자신의 배를 갈라 의공의 간을 넣었다고 한다.
하물며 불법을 배우는 사람이 어찌 부모, 스승, 국토와 사회의 은혜를 잊으면 되겠는가. 이 대은에 보답하려면 반드시 불법을 철저히 배워 지자가 되어야 이룰 수 있다.
돌아가신 스승을 위한 추선의 글
니치렌 대성인이 젊은 시절 아와지방(지바현 남부)의 세이초사에서 수학하실 때의 스승이 도젠보(道善房)①이고, 동문선배가 조켄보(淨顯房)와 기조보(義淨房)② 두 사람이었습니다.
1276년 6월 대성인은 도젠보의 부고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7월에 돌아가신 스승을 위한 추선과 보은사덕을 위해 쓰신 어서가 <보은초>입니다.
<보은초송문>에 “귀하와 기조보(義淨房)와 두 사람이 이 승려를 읽는 이로 하여 가사가모리(嵩森)의 정상에서 두세번, 또한 고(故)도젠 스님의 묘소에서 한번 읽게 하고서는”(어서 330쪽)이라고 있듯이 이 어서를 도젠보의 묘 앞에서도 읽으라는 전언도 첨부하셨습니다.
스승의 은혜에 보답하는 구도와 홍교
대성인은 이 어서에서 스승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구도와 홍교의 생애를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은 이른바 말법의 모든 민중을 구제하려는 파사현정(破邪顯正)의 투쟁을 새긴 발자취이기도 했습니다.
더욱이 “이 글월은 아주 대사(大事) 중의 대사의 법문을 썼느니라.”(어서 330쪽) 하는 말씀대로 삼대비법(三大秘法)의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를 밝히어 인류의 미래를 구제할 길을 열었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이 어서 앞부분에 먼저 ‘노호(老虎)’③와 ‘백귀(白龜)’④의 예를 들어 축생조차 은혜를 갚는데 하물며 인간으로서 보은의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 나타내셨습니다. 또 ‘예양(禮讓)’⑤과 ‘홍연(弘演)’⑥의 고사를 인용해 ‘옛날의 현자’도 은혜의 길에 살았으니 불제자도 부모와 스승, 국토, 사회의 은혜를 절대로 잊으면 안 된다고 거듭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면 대은을 갚으려면 어떻게 하면 좋은가. 대성인은 불법을 철저히 배워 진정한 지자가 되어 은혜 입은 사람들을 이끌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받은 것을 안다
여기서는 먼저 보은을 생각해보겠습니다.
보은이라는 개념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성에 뿌리를 깊이 내려 민중의 생활 속에 녹아들어갔습니다. 이 어서에서 설화와 역사적 사실을 인용하신 대로입니다.
오늘날 자칫하면 보은이라고 하면 봉건적인 주종관계를 연상하기 쉬운데 그것은 ‘은혜’의 한 측면에 불과합니다.
경전에 나오는 ‘보은’의 원어는 산스크리트(고대 인도어)의 ‘크리타 쥬냐’라고 여겨집니다. ‘받은 것(크리타)’을 ‘알다(쥬냐)’라는 의미입니다.
오늘의 자신이 있는 건 많은 사람 덕분임을 알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번에는 자신이 남을 위해 진력한다. 이 행위가 바로 ‘지은(知恩)’이고 ‘보은’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보은은 인간성의 증명입니다. 그 위에 불법에서 말하는 보은은 주군이나 부모라는 특정인에 한정적으로 쓰이는 말이 아닙니다. 지은보은의 인생은 그대로 ‘일체중생에 대한 보은’으로 통합한다.
그리고 무엇으로 은혜에 보답할 것인가.
대성인은 일체중생의 은혜에 보답하려면 불법을 철저히 배울 필요가 있다고 보셨습니다.
앞서 인용한 성훈에 이어 “방풍(方風)을 판별치 못하는 대주(大舟)가 제상(諸商)을 인도해서 어찌 보산(寶山)에 이르겠느뇨.”(어서 293쪽) ‘방위와 풍향을 분간하지 못하는 큰 배가 많은 상인을 이끌고 어찌 보물산에 다다를 수 있겠는가’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은 불도수행으로 진정한 지혜를 얻지 못하면 많은 사람을 인도할 수 없다는 가르침입니다. 많은 사람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진정으로 보은하려고 크나큰 자기 자신을 구축하는 것이 불법의 보은입니다.
니치렌불법의 보은은 그대로 민중구제의 서원에 일어서는 일입니다. 그것을 대성인 자신이 겪은 대격투의 역사를 통해 가르쳐주신 것이 <보은초>입니다.
◇
①도젠보(道善房) - ?~1276년. 아와지방(지바현 남부) 세이초사의 승려. 니치렌 대성인이 출가하실 때의 스승. 1253년에 대성인이 입종선언하실 때는 염불자로 박해를 가한 지두 도조 가게노부 등에게 굴복해 대성인을 지키지 못했다.
1264년 고마쓰바라법난 직후에 대성인을 찾아왔는데 그때 도젠보는 대성인에게 성불할 수 있느냐고 질문했다. 이에 대해 대성인은 염불을 파절하고 정법에 귀의하라고 촉구하셨다. 그 뒤 도젠보는 신심을 조금 일으킨 듯했으나 개종은 하지 않고 일생을 마쳤다.
②조켄보(淨顯房)와 기조보(義淨房) - 모두 세이초사의 승려로 니치렌 대성인이 어릴 때에 수학을 도왔다. 대성인이 입종하실 무렵에는 지두 도조 가게노부의 박해에서 대성인을 지켰고 대성인의 가르침에 따라 제자가 되었다. 기조보는 기조보(義城房)나 기조보(義成房)라고도 씌어 있다.
③노호(老虎) - 늙은 여우. 늙은 여우는 자신이 태어난 언덕(무덤)을 잊지 않고 죽을 때는 옛 보금자리가 있는 언덕 쪽으로 머리를 향한다는 중국의 고사.
④백귀(白龜) - 중국의 고사. 모보(毛寶)라는 장수가 어부에게 붙잡힌 거북이가 애처로워 사서 풀어줬다. 그 뒤부터 십여년 뒤 전투에서 패하고 강에 몸을 던진 모보를 자신이 살려준 거북이가 구해줬다고 한다.
⑤예양(禮讓) -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사람. 은혜를 입은 주군 지백(智伯)의 원수를 갚고자 모습과 목소리를 변장해 다른 사람으로 둔갑하여 원수를 갚고자 했지만 발각되어 자결했다고 한다.
⑥홍연(弘演) - 중국 춘추시절의 사람. 사신으로 외국에 있는 동안에 주군인 의공(懿公)이 살해되어 간이 버려져 있었다. 하늘을 보고 대성통곡하며 자신의 배를 갈라 주군의 간을 배속에 감추고 죽었다고 한다.
◆
<본문> (어서 293쪽 5행~9행)
불법(佛法)을 배워 구명(究明)하려고 생각한다면 시간(時間)이 없으면 이루지 못하며, 시간(時間)을 갖고자 생각한다면 부모(父母)·사장(師匠)·국주(國主) 등(等)에 따르고서는 이루지 못하느니라. 어떻든 간에 출리(出離)의 도(道)를 모르는 동안은 부모(父母)·사장(師匠) 등(等)의 마음에 따르지 말지니라.
이 의(義)는 제인(諸人)이 생각하기를, 현(顯)에도 벗어나고 명(冥)에도 어긋난다고 여길 것이다. 그렇지만 외전(外典)의 효경(孝經)에도 부모(父母)·주군(主君)에게 따르지 않고서도 충신(忠臣)·효인(孝人)이 된다는 것이 쓰여 있으며, 또 내전(內典)의 불경(佛經)에 가로되 「은(恩)을 버리고 무위(無爲)에 들어감은 진실(眞實) 보은(報恩)의 자(者)이니라」 등(等)운운(云云).
비간(比干)이 왕(王)에게 따르지 않고서 현인(賢人)의 이름을 얻고, 실달태자(悉達太子)가 정반대왕(淨飯大王)을 어기고서 삼계제일(三界第一)의 효자(孝子)가 된 것은 이 때문이니라.
<현대어역>
불법을 철저히 배워 지자가 되려면 불도수행에 시간이 필요하다. 더욱이 조금이라도 시간을 만들려면 부모, 스승, 국주 들을 따르면 틈이 나지 않는다. 어쨌든 불도수행이 끝나지 않은 동안은 부모와 스승 등의 마음에 따르면 안 된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그러면 세간의 도덕에도 어긋나고 신불(神佛)의 가르침에도 위배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외전 《효경》에서도 “부모, 주군의 마음에 따르지 않고도 충신과 효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하고 설했다. 또 내전의 불교에서는 “부모 등에 대한 은혜와 정을 버리고 불도에 들어가는 사람이 진실로 보은하는 사람이다” 등이라고 밝혔다.
비간은 왕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오히려 현인의 이름을 높였다. 또 석존은 실달태자 시절에 아버지인 정반대왕의 마음을 저버리고 불도에 들어가 삼계(욕계, 색계, 무색계로 즉 전 세계를 말함) 최고의 효자가 된 일이 그 예이다.
민중을 구제하기 위한 지자
대성인은 세이초사에 들어간 열두 살 때에 “일본 제일의 지자(智者)가 되게 하소서.”(어서 888쪽 등)라는 서원을 세우셨습니다.
이것은 앞부분의 성훈에 ‘불교를 배우는 자가 부모, 스승, 나라의 대은에 보답하려면 반드시 불법을 철저히 배워 지자가 되어야 한다’고도 있듯이 보무를 비롯해 모든 민중을 구제할 길을 바라는 서원이었다고 배견됩니다.
‘민중을 구제하는 지자로’ 이것이 대성인이 자신에게는 구도의 시작이자 생애를 관철하는 홍교의 원점이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대성인은 그런 지자가 되려면 불도수행에 전념해야 한다. 불도수행을 성취하고 모든 사람이 흔들리지 않는 행복을 확립할 수 있는 길을 철저히 배우는 일이 부모와 스승의 마음에 진정으로 보답하는 것이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형제초>에서도 “일체는 부모에 따라야 하는 것이기는 하나 부처가 되는 길은 따르지 않는 것이 효양의 본(本)이로다.”(어서 1085쪽) 하고 말씀하신대로 불도를 성취하는 일이 바로 효양의 근본이 되는 길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묘법으로 자신이 부처의 생명을 개현함으로써 광대한 지혜와 자비를 발휘해 부모도 구하고 모든 사람을 구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와 스승을 구하는 진리를 탐구
그래서 이 어서에서는 외전에서 설하는 ‘충신’이나 ‘효자’, 불전에서 설하는 ‘진실로 보은하는 자’가 모두 부모와 주군의 뜻에 따른 것이 아니라고 나타내셨습니다.
또 은나라 주왕의 왕자 ‘비간(比干)’⑦이 왕명에 따르지 않았지만 나중에 현인이라 칭송받게 된 일, 석존이 자신이 출가할 때에 왕인 아버지의 뜻을 저버리고 불도에 들어와 세계 제일의 효자로 우러르게 된 일을 인용하셨습니다.
대성인도 부모와 스승, 국주의 뜻마저 저버리고 나아가 묘법을 홍통한다는 이유로 받을 대난조차 무릅쓰고 거듭 구도하셨습니다.
<보은초>의 후반부에는 “이번에 목숨을 아낀다면 어느 세상에 부처가 될 수 있겠는가. 또한 어떠한 세상에서 부모, 사장도 구제해 드릴 수 있을까 라고 오로지 결단을 내려서 말하기 시작하였더니”(어서 321쪽) 하고 씌어 있습니다. 마키구치 선생님이 어서에 줄을 친 구절입니다.
대성인만큼 진정한 효자는 없습니다. 니치렌불법의 출발점은 어디까지나 보은에 있습니다. 이 원리는 어느 시대에도 바꾸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청년은 자신의 인생을 서원하는 출발점을 첫째로 효도에 두기 바랍니다. 부모를 사랑함이 타자를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쁘게도 지금 창가의 많은 청년이 존귀한 ‘보은의 인생’을 걷고 있습니다. 지고한 정신성에 살아가는 지용의 청년들은 학회의 보물 같은 인재이자 인류의 재보라고 나는 확신합니다.
스승의 은혜에 보답하는 인생이 가장 존귀하다
이 어서에서 “이것은 오로지 부모의 은혜, 사장의 은혜, 삼보(三寶)의 은혜, 국은(國恩)을 보답하기 위해 몸을 헤치고 목숨을 내던졌지만”(어서 232쪽)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은(四恩)’에 관한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심지관경’에서는 ①부모의 은혜 ②일체중생의 은혜 ③국왕의 은혜 ④삼보의 은혜라고 설합니다.
대성인도 이것을 인용해 <사은초>⑧ 등을 저술하셨습니다.
그러나 <보은초>에서는 ‘일체중생의 은혜’는 ‘부모의 은혜’ 속에 포함하고 그 대신 ‘스승의 은혜’를 드셨습니다.
이것은 대성인이 젊은 시절 수학할 때 스승인 도젠보에 대해, 엄연히 스승의 은혜에 보답하는 자세를 나타내시기 위해서라고 배견됩니다.
실제로 도젠보는 스승이라고 해도 겁이 많고 소심했습니다. 대성인이 박해 받을 때에 지켜준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염불의 가르침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대성인은 스승을 소중히 여기셨습니다.
이 어서에서 스승의 부고를 들었을 때는 당장 미노부에서 아와로 달려가 묘 앞에서 추선하고 싶었다고 술회하실 정도입니다. 사제란 이처럼 숭고한 유대입니다.
‘인간을 위한 종교’의 광채
하물며 광선유포의 올바른 스승을 만나 인간혁명과 숙명전환의 드라마를 겹겹이 엮은 인생이 얼마나 거룩하고 존귀한가. 우리는 더할 나위 없는 인생 드라마를 만들고 있습니다.
스승은 어디까지나 제자가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제자는 어디까지나 스승의 은혜에 보답하겠다고 굳게 서원합니다.
사제는 인간의 혼이 어우러지는 가장 거룩한 교향곡입니다. 대성인은 이 사제의 길을 가르치셨습니다. 석존불법을 어떻게 바르게 계승하는가. 학문을 닦을 때 최초의 스승에게 어떻게 보답하는가.
인간을 위한 종교인 불법은 사제에 철저할 때 불멸의 광채를 내뿜습니다. 사람의 행동에서 최고인 사제에 살아가는 삶의 자세가 청년을 비추고 인류의 경애를 고양시킵니다.
만인구제의 대투쟁
대성인은 이 ‘사은’에 보답하고자 불석신명(不惜身命)의 투쟁을 관철하셨습니다. 그것은 다른 말로 바꾸면 만인을 성불시킨다는 부처의 서원을 실현한 것이라고도 배견됩니다.
대성인은 불교의 진수를 탐구하신 결론으로 입종선언(立宗宣言)할 때 남묘호렌게쿄의 제목을 확립하셨습니다. 이것은 부모와 주위 사람들에게 보은하려고 ‘일본 제일의 지자’가 되겠다고 서원하신 것을 법의 확립이라는 차원에서 성취하겠다고 할 수 있겠지요.
이 불법탐구의 성취는 다음에 불법홍통의 새로운 여정이 되었습니다. 법을 넓히고 사람들을 공덕으로 윤택하게 만들어야만 진정한 서원 성취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미래영겁에 걸쳐 모든 민중을 구할 수 있는 길은 엄연히 열렸음을 나타내셨습니다.
이 어서에서 말법에 대성인이 홀로 정의를 외치고 연이은 대난 속에서 불석신명의 홍법을 관철한 대성인 자신의 행동이 씌어 있습니다.
“수라(修羅)와 제석(帝釋), 부처와 마왕(魔王)과의 합전보다도 못지 않느니라.”(어서 313쪽) 하고 말씀하실 정도의 인난홍통(忍難弘通)의 대투쟁입니다.
“일본 육십육개 지방, 섬 둘 중에 일일 잠시도 어느 곳에서도 안주할 곳이 없도다.”(어서 322쪽) 하는 대난 속에서 일체중생에 대한 보은을 관철하셨습니다.
그리고 대성인은 마침내 대서원을 성취했다고 밝히신 뒤 이 어서 끝부분에서 “그러므로 꽃은 뿌리에 돌아가고 열매는 흙에 멈추느니라. 이 공덕은 고(故) 도젠보의 성령의 몸에 모일 것이니라.”(어서 329쪽) 하고 끝맺으셨습니다.
묘법을 말법만년에 유포하여 사람들을 윤택하게 하는 공덕이 고(故) 도젠보의 몸에 모인다는 말씀입니다. 이 얼마나 위대한 대자비입니까.
도젠보 같은 스승도 묘법의 공덕으로 철저히 구제하는 길을 밝히셨습니다. 여기에 대성인의 서원과 하나인 진정한 보은의 길이 시사하는 깊은 뜻이 있다고 배견됩니다.
◇
⑦비간(比干) - 중국 은나라 사람, 악역무도한 주왕(紂王)에게 왕의 숙부인 왕자 비간이 강하게 간언했다. 그 일로 비간은 가슴을 찢기는 극형을 당했다.
⑧<사은초> - 1262년 1월 16일에 저술하여 유배지인 이즈에서 아와지방 도조향의 문하 구도전(구도 요시타카라고 전한다)에게 주신 편지. 예언대로 대성인을 유죄시킨 사람에게 법화경을 신독시켜 주는 자로서 은혜를 느끼고 진실한 보은의 길을 설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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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사은초>, 어서 937쪽 13행~14행)
일체중생이 없으면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의 원(願)을 일으키기 어렵다. 또한 악인이 없어서 보살에게 유난(留難)을 하지 않으면, 어찌 공덕을 증장시킬손가.
<현대어역>
일체중생이 없다면 보살의 사홍서원(四弘誓願) 중 하나인 중생무변서원도의 원을 일으키기 어렵다. 또 정법을 비방하는 악인이 없어 보살에게 유난을 가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공덕선근을 늘릴 수 있겠는가.
보살의 서원을 학회원이 실천
보은에 관해 <사은초>의 한 구절도 배독하고자 합니다.
지금까지 확인했듯이 불법의 보은은 부모를 비롯해 주위 사람들, 즉 일체중생에게서 입은 은혜라고 할 수 있겠지요.
<사은초>에 “일체중생이 없으면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⑨의 원을 일으키기 어렵다.” 하고 말씀하셨듯이 은혜를 입은 일체중생이 있기 때문에 보살은 중생을 한없이 구하려는 서원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현대에 이 보살의 서원인 일체중생을 끝까지 구제하는 보은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 창가학회의 한 사람 한사람입니다.
도다 선생님은 어느 날 차분히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키구치 선생님은 세계 사람이 알지 못하는 가치론과 제자를 남겨놓았다고 말하고 돌아가셨다. 그 제자답게 후회 없는 투쟁을 해야 한다.”
도다 선생님은 마키구치 선생님이 남기신 수제자로서 스승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선사의 위대한 가치론을 세계로 넓히려고 후회 없는 투쟁을 하셨습니다. 나도 도다 선생님이 미래를 위해 구상하신 모든 것은 내 생명에 새겼습니다.
도다 선생님의 꿈을 실현
일찍이 미래부 벗이 “이케다 선생님의 꿈은 무엇입니까?” 하고 질문했을 때에 “내 꿈은 도다 선생님의 꿈을 실현하는 일입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것이 세계평화, 인류의 숙명전환에 이르는 직도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동시에 “여러분이 앞으로 명실상부한 훌륭한 박사가 되고 지도자가 되기 바랍니다. 그것이 가장 큰 꿈입니다.” 하고도 말했습니다.
세계광포 신시대를 맞이한 지금 이때 전국 아니 전 세계의 청년들이 이 꿈을 실현하려고 나섰습니다.
나는 언제나 여러분이 승리한 소식을 들을 때마다 도다 선생님이 웃고 계실 얼굴이 눈에 선합니다. 보은은 자신이 받은 은혜를 다음 세대에 건네줌으로써 완결되기 때문입니다.
‘만년외 미래까지도 유포하리라’
다시 <사은초>로 돌아가 대성인이 서원성취를 밝히신 뒤 말법 광선유포를 일대선언하신 불멸의 구절을 배독하겠습니다.
즉 “니치렌의 자비가 광대하면 남묘호렌게쿄는 만년외(萬年外) 미래까지도 유포하리라. 이로본국의 일체중생의 맹목을 여는 공덕이 있으며”(어서 329쪽) 하는 말씀입니다.
니치렌 대성인 개척하신 보은즉서원을 성취하는 길. 모든 인류의 행복을 실현하기 위한 광선유포를 지금 바야흐로 현실에서 전개하는 교단이 창가학회입니다. SGI(국제창가학회)입니다.
따라서 ‘창가학회불’입니다. 위대한 부처의 힘과 복덕이 우리 동지들 한 사람 한사람에게 넘치지 않을 리 없습니다.
그러므로 학회정신을 청년이 또 다른 청년에게 맥동쳐 만대까지 유통시켜 광선유포 운동을 영원히 계승하는 궤도를 확립하는 것이 지금 가장 중요한 주제입니다.
불의불칙의 교단인 창가학회의 전진 없이는 말법만년에 걸친 니치렌불법의 세계 광선유포는 없기 때문입니다.
창가의 전진은 희망의 빛입니다.
창가의 단결은 승리의 힘입니다.
창가의 개가는 평화와 번영의 근원입니다. 우리 창가의 보은하는 인생을 더욱더 힘차게 걸어갑시다! 자, 활기찬 신시대의 행진을 세계의 벗과 함께!
― 지난해 존귀한 노고로 승리의 역사를 구축하신 전국, 세계의 보우(寶友)에게 진심어린 감사를 담아.
◇
⑨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 - ‘중생의 무변함을 건너게 하겠다고 서원한다’고 읽음. 일체중생을 모두 부처로 만들겠다고 서원하는 것. 사홍서원(중생무변서원도, 번뇌무수서원단, 법문무진서원단, 불도무상서원성)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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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보았습니다 노고에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정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