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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 팥죽 드시로 오셔요.
올 해도 동지 팥죽 공양올리면서
축원 하고 싶으신 분 계시면 문자로 주십시요.
주소, 이름(가족 모두), 생년월일, 연락번호
승에게 보내 주시면 되겠습니다.
늘 하던대로 축원은
무료로 올려 드립니다.
육법 공양물 올리실 분자님 계시면
승에게 연락 주시면 되겠습니다.
동지와 화복禍福
동지는 해마다
양력으로 12 월 22 일이나 23 일이 동지에 해당하는데,
음력으로는 일정 하지가 않습니다.
동지는 24 절기의 하나로
태양은 이때 가장 남쪽으로 기울어져
한 낮의 태양이 뜨고 지는 방향도
가장 남쪽으로 기울어지며,
북쪽으로 갈수록
그 도는 심하여 북극 지방에서는 수개월 동안
태양이 전혀 지평선 위로 나타나지 않는 곳도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태양이 떠 있는 시간이 일 년 중 가장 짧고,
열량도 가장 적으며,
밤이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입니다.
그러나 이 날을 기점으로
짧아만 지던 낮의 길이가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는 날입니다.
그래서 동지를
일양시생지일一陽始生之日이라고 하는데,
양陽의 기운이 비로소 시작하는 날이라는 뜻 입니다.
밤이 가장 긴 날이면서
양이 시작하는 날이라는 것은
매우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인간만사는 흥진비래요,
고진감래 이듯이
자연 현상도 이처럼
음지와 양지가 교차 하는 것입니다.
옛날에 민간에서는
동지 팥죽을 쑤어서 조상님께 시식으로 차례를 지내고
대문이나 문간에 팥죽을 뿌림으로써
악귀를 쫓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이 날 팥죽을 뿌리는 유래는 [형초세시기]에 보면
옛 날에 공공씨 라는 사람이 불효자식을 두었는데,
이 아들이 동짓날에 죽어서 역귀가 되었으므로
이를 물리치기 위해서였다고 되어 있습니다.
죽어서 역귀가 된 공공씨 의 불효자식은
평소에 붉은 팥을 싫어 무서워했기 때문에
동짓날에 붉은 팥을 쑤어서 재앙을 면하기를 빌었다고 합니다.
또 [삼국유사]에 보면
선덕여왕을 사모한 지귀 라는 사람이 죽어서
역시 역귀가 되었는데
전국적으로 피해가 극심하므로 팥죽을 쑤어서
지귀 귀신을 물리친 데서 유래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고사는 별로 신빙성이 없고
팥죽을 뿌리게 된 동기는
음양오행이나, 태양숭배사상에서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음양오행상
붉은 색은 귀신을 쫓는 능력이 있다고 보고,
또 붉은색은 태양을 의미하는데
태양은 어둠을 물리치는 힘이 있고,
귀신이란
원래 어두운 곳에서만 활동 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이런 민속 신앙과
음양오행사상이 결합되어 팥죽을 뿌림으로써
귀신을 물리치려고 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지금도 절에서는
구병시식을 할 때 팥을 사용 하는 것이라든지,
부적을 붉은 색깔의
경면주사를 사용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생각 됩니다.
동짓날은
'다음 해가 길어지는 날' 이라는 뜻으로
[아세亞歲]라고도 합니다.
하지 때 짧아지던 낮 시간이
이 날을 기점으로 조금씩 길어지기 때문에
새해가 시작되는 날이라고 보고 '작은 설'이라고도 하였습니다.
이처럼 태양이 비추는 시간이 길어지는 현상을 보고
옛 사람들은 태양이 죽음으로 부터 부활하는 것이라고 보아서
생명과 광명의 주인인 태양신에 대한 축제가 거행 되었고,
천문학계서는 이 날을 신년의 원단元旦으로 치는 풍습이 있었던 것 입니다.
또 작은 설 이라고 해서
동지 팥죽을 정초에 먹는 떡국과 마찬가지로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표상으로 삼은 것은
역시 고대에는 동지를
새해의 첫 날, 즉 설로 생각을 했던 풍습이기도 합니다.
이 동지와 관련된 풍습을 살펴보면,
이 날 관상감(觀象監 ;지금의 기상대에 해당되는 부처)에서는
이 날 달력을 만들어 임금에게 올렸고
임금은 이 달력을 모든 관원들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하사하는 달력에는 동문지보同文之寶라는
임금의 인장을 찍었다고 합니다.
요즘 같으면 대통령이 사인해 주는 것과 같겠죠.
절에서도 대게 동짓날에 새 달력을 배포하는 풍습이 있는데,
아마 여기서 유래 되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 됩니다.
요즘은 동지절에 특별히 하는 일이 없지만
옛날에는 농사와 관련된 일로 무척 바빴다고 합니다.
새끼 꼬기도 하여야 하고,
가마니도 짜고,
지붕도 새로 이어야 하고,
아마 이 시기가
가장 힘든 시기였다고도 볼 수 있을 것 입니다.
농가월령가 에 보면,
"동지는 명일이라,
일양이 생하도다.
시식으로 팥죽을 쑤어 이웃과 즐기리라.
새 책력 반포하니 절후 또한 어떠한고,
해 짧아 덧이 없고 밤 길어 지리하다."
언제부터 인지 몰라도 절에서도
해 마다 팥죽을 쑤어서 부처님 전에 공양을 올리고
화를 멀리 여의고,
복을 받고자 하는 원화소복遠禍召福의 기도를 올리는
풍습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원화소복遠禍召福: 화는 멀리 하고 복을 부른다 는 뜻입니다.)
동지.........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긴 날.......
그렇습니다.
낮이 있기에 밤이 있고 낮이 짧기에 밤이 길고,
밤이 있기에 낮이 있고,
밤이 길기에 낮이 짧은 것......
그것이 바로 세상사는 이치와 같은 것 입니다.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이 나오기 마련이고
내리막길이 있으니 오르막길이 나오듯
세상사가 늘 굴곡이 있게 마련입니다.
팥은 붉은 색 입니다.
붉은 색의 상징적인 사물은 태양 입니다.
태양은 어둠을 물리치는 가장 위대한 힘을 지닌 자연입니다.
동지에 기도를 드린 다는 것은 가내길상을 비는 일이기도 합니다.
동지 기도를
불자님들이 드리는 최대의 목표는 간단하게 말 하면
복된 생활을 누리게 해 주십사 하는 바램들 일 것입니다.
이제 동지가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밤과 낮이 합하면 하루가 되듯,
복과 하도 합하면 별게의 것이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우리 삶의 양면성이요,
복과 화는 바로 우리의 마음에서 오는 것 입니다.
스스로 화를 불러들이는 어리석은 생활을 하지 맙시다.
늘 복을 짓는 연습을 하여 나날을 생활함으로써
다 같이 공덕천이 되어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이웃에게도 복을 선사하는 동짓날 의 불자가 됩시다.
동지의 유래
동지는 일 년 중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길어 음이 극에 이르지만,
이 날을 계기로 낮이 다시 길어지기 시작 하여
양의 기운이 싹트는 사실상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입니다
민간에서는 동지가 11월 초순에 들면
애동지라고 하였으며,
초순을 지나서 들면,
노동지라고 하였습니다.
애동지가 드는 해는
그 해 겨울이 춥고,
노동지가 드는 해는 춥지 않다는 말이 전해 옵니다.
그러니까
올해는 노동지가 되는 것이지요.
동짓날에 특별한 민속놀이나 의례를 진행하는 것은 없었고
다만 팥죽과 관련한 독특한 풍습이 있었을 뿐입니다.
팥죽은 팥을 푹 삶고 거기에 흰쌀을 넣은 다음
물을 많이 붓고 끓였습니다.
이 때 찰떡을 새알 같이 빚어 놓고 쑤었습니다.
이 떡을 새알심이라고 하는데
동짓날 새알심을 자기 나이만큼 먹어야
몸이 건강해진다는 말이 전해 옵니다.
또한 동짓날에 팥죽을 먹으면 감기를 앓지 않는다는 말도 있습니다.
이것은 팥죽을 꼭 쑤어 먹도록 하기 위해 건강에다 비유한 것입니다.
팥죽은 영양과 소화에도 좋고
계절 음식으로 만들어 먹을 만한 별식이었습니다.
동짓날 고려에서는 팥죽을 쑤어 별식으로 먹었을 뿐
그것을 어디에 바르거나 버리는 것과 같은
허황된 놀음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조선시대 일부 사람들이 팥죽을 먹기도 했지만
문짝에 그것을 바르면서
잡귀신을 쫓는다고 하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나무 서가모니불, 나무 서가모니불, 나무 시아본사 서가모니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