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진의 미식 탐식 과식] 로봇 셰프가 왔다
김유진 음식칼럼니스트
입력 2016.08.10 07:00
휴식시간, 월차, 휴가 필요없는 로봇이 인간 셰프를 대신하다
단 한방울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는 로봇 라멘 세프
20일 중국 안후이(安徽)성 허페이(合肥)시에 있는 ‘월E(Wall. E)’ 레스토랑에서 요리사 로봇이 음식을 만들고 있다.
# 상하이, 중국.
쇼윈도우 너머로 국수를 먹는 사람들이 보인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ramen'이라는 단어가 나를 잡아끌었다. 짙은 돼지 육수 향이 코를 찌른다. 아주 약간 거북스럽다. 하지만 늘 그렇듯 '훅'하고 증발해버린다. 그리곤 단내가 뒤를 따른다. 양 볼에 침이 고이기 시작한다.
매장 안을 재빠르게 스캔한다. 홀 직원이 보이질 않는다. 셀프 주문 방식이군! 그러고 보니 두엇이 벽을 향해 서있다. 나와 같은 처지리라. 그들의 꽁무니에 붙어 눈동냥을 한다. 터치패드가 붙어있다. 이 정도 시스템은 서울에도 많다. 꽤 익숙하다. 게다가 난 60년대 生 아닌가. 한자를 좀비처럼 두려워하는 세대와는 그 길이 다르다.
칼로리가 줄줄 흐르는 라멘 사진 옆의 가격을 확인하고 터치를 한다. 다음 동작은 오토매틱이다. 어느새 카드가 손에 들려있다. 이제는 세상이 좋아져 카드를 쓱 긁는 행위는 하지 않는다. 그 덕에 마그네틱이 손상되는 일도 없다. 가볍게 센서에 카드를 대자 주문 내역이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온다. ‘라미옌’이라는 단어 말고는 알아들을 수가 없다. 자리를 잡을 차례다. 순간 몸이 얼어붙었다.
매장 인테리어쯤으로 생각했던 쇳덩이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안경을 슬쩍 올려 초점을 맞춘다. 분명 로봇이다. 헌데 거대한 팔만 달려있다. 그것은 마치 자동차나 백색 가전 생산라인에서나 볼 법한 모양새와 아주 흡사하다. 좌우에 팔이 있고 가운데는 펄펄 끓는 솥이 두 개 자리하고 있다.
좀... 지켜봐야겠다. 자리 잡는 걸 포기하고 자석에 끌리듯 로봇 셰프가 일하는 오픈 주방 유리에 코를 박았다. 밀폐된 공간이라 크지는 않았지만 분명 쉑~, 찡~, 음~ 치키, 잉~ 치키 소리가 공간을 채운다. 주문이 들어간 모양이다. 왼쪽 팔이 허공을 향해 원을 그린다. 이 녀석의 팔 끝 클립에는 면을 삶는 스테인레스 체가 들려있다. 너무나 동작이 빨라 하마터면 이 광경을 놓쳤을 지도 모른다.
일본 도쿄에서 열린 국제 식품 기계·기술 박람회에서 한 일본 로봇 업체가 출품한 ‘오코노미야끼 로봇’이 요리 시범을 보이고 있다. 이 로봇은 반죽 섞기, 굽기, 뒤집기 등 오코노미야끼(일본식 지짐) 요리의 전 과정을 소화할 수 있다. 음식이 완성되면 접시에 얹어 손님에게 원하는 소스를 뿌려 서빙한다.
어느새 오른팔은 브레이크 댄스를 추듯 관절을 두어 번 꺾더니 라멘 대접을 흡착했다. 아마도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이는 기능이 있는 모양이다. 그 사이 반대 팔은 면을 유탕기에 넣고 흔든다. 40년 장인의 손놀림에 비할 수야 있겠냐마는 나름 원칙이 있는 모양이다. 면이 담긴 체를 담그고 돌리고 다시 담그고 돌리고.... 그 사이 오른 팔은 라멘 대접을 정 가운데 앉혔다.
이내 단 1초도 쉬지 않고 거침없이 국자를 들어 소스 통에 담근다. 분명 이건 고난이도다. 실패하겠지. 대접 옆으로 소스가 주르륵 흐를 지도 몰라. 올림픽 중계를 맡은 해설자처럼 나도 모르게 중얼거린다. 그런데 이 얄미운 선수는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았다. 이 친구처럼 관절을 움직였다가는 골절상을 당하기 쉽다. 프로그램 코딩이 예술이다. 단 한 방울도, 그렇게 기대했건만 흘리지 않았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왼팔이 허공과 바닥을 왕복하며 면의 물기를 빼는 그 찰라에 소스 국자를 놓고 육수 국자를 잡았다는 사실이다. 주방 기구들은 마찰계수가 높지 않다. 그만큼 미끄러지기 쉽다. 생각해보시라. 인간에게 스테인레스 국자를 소스 통의 같은 자리에 몇 번이고 놓으라면 가능하겠는가? 아마 주인장의 얼굴에 국자를 내던질 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녀석은 오차 없이 국자를 잡고, 놓고 자유자재다. 순간, 팔 끝에서 새나오는 붉은 빛을 보고 말았다. 그래 센서야. 그래서 계산이 딱 들어맞았던 거야. 로봇 셰프의 움직임을 복기하는 사이 면이 대접을 향해 다가온다. 처음 진행 속도는 상당했는데 대접에 다가올수록 조심스러워진다. 스피드가 눈에 띄게 떨어졌다. 속이 깊은 체를 슬며시 기울이더니 그릇의 바닥을 향해 밀어 넣는다. 붕어를 방생하는 불교신자의 손처럼... 채 2초가 걸리지 않았다.
오른팔이 육수를 부어넣는 데 걸린 시간이... 이번에도 소스 때처럼 국물이 가장자리에 흐르지 않았다. 더 이상 오른 팔을 의심하는 건 의미 없는 짓이겠다. 그러고 보니 이 친구들 이름이 있단다. koya와 kona. 이름을 설명하는 데 관사도 없고 성별이 나뉘지 않는 걸 보니 분명 중성이다. 이름으로 유추를 해보면 형제임에 틀림이 없다. 돌림자를 ‘코’로 사용하는 쌍둥이 형제. 이제야 눈치를 챘는데 눈도 있다. 커다랗고 둥근 초록색 눈. 한없이 착해 보이는 왼팔과 오른팔. 아차 각각의 이름이 있으니 독립된 개체이지.
코야와 코나는 1년 365일 8,760시간 근무를 할 수 있다. 휴식시간도 필요 없고 월차나 휴가를 사용하지도 않는다. 뜨거운 육수에 데일 염려도 없다. 4대 보험 등으로 오너와 ‘밀당’을 하는 일도 없다. 정전만 되지 않는다면 아무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이것도 대형 사업장에는 자체 발전기가 있어 기껏해야 1-2분 휴식이면 족하다. 수다가 길어졌다.
독일 브레멘대 인공지능연구소의‘PR2’로봇이 팬케이크를 요리하고 있다.
어느새 코야는 토핑을 준비 중이다. 계란, 김, 짜슈... 능숙하게 면 위로 내려놓는다. 육수로 미끄러진 삶은 달걀 말고는 흠 잡을 데가 없다. 맛이 궁금하다. 대접을 들어 ‘후후’ 입김으로 열기를 식힌다. 국물을 한 모금 목구멍으로 넘긴다. 눈이 감긴다. 이내 입 꼬리가 올라간다.
“나쁘지 않은데...”
아니 로봇 셰프가 일하는 주방 앞에 가림막이라도 있었다면 난 깜빡 속아 넘어갔을 지도 모른다. 상해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라멘이라 했어도 믿었을 것이다. 어차피 육수는 상향 평준화되어있다. 라멘의 생면인 면도 유탕기의 온도와 삶는 시간이 일정해 맛이 널뛰지 않는다.
맛난 음식을 입으로 삼키면서도 생각이 많아진다. 거스를 수 없는 이 파도를 그저 바라만 보면 되는 것인지? 아니면 친한 오너들과 셰프들만 데리고 속리산에라도 들어가 더욱 가열차게 수련과 정진을 하는 게 좋을지? 이도 저도 아니면 19세기 초반 영국의 섬유 공장 노동자들처럼 러다이트 운동이라도 벌여야 하는 걸지? 더 무서운 사실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라멘 만들기에만 집중하고 있는 코야와 코나다. 어느날 갑자기 이 녀석이 라멘 만들기를 구경하고 있는 나에게 말을 걸어오면 어떡하지?
“형은 원래 유치원 때부터 잘생기셨어요?”
◆ 김유진 김유진제작소 대표는 올해로 21년째 음식 관련 방송을 제작하고 있다. 13년 동안 컨설팅을 통해 성공시킨 레스토랑이 200곳을 넘고, 국립중앙박물관 식음료 총괄 컨설턴트를 맡았다. MBC프로덕션 PD로 일하던 그는 순전히 ‘맛’ 때문에 피디 생활을 마치고 요식업계에 뛰어들었다. 맛있는 요리가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면 100시간 내로 맛을 보고야 만다. 울릉도 옆 죽도에서 출발해 동해, 남해, 서해를 거쳐 백령도까지 44개의 섬을 취재하고 대박의 비결까지 섭렵한 대한민국 유일한 칼럼니스트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은 뭘 먹을까? 어떻게 하면 재미있는 하루를 보낼까만 연구한다. 아침을 먹으면서 점심 고민하고 점심 먹으면서 저녁 고민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식탐왕이다.
첫댓글 바보들 주방에 로봇은 매일 청소 안하면 기름때 ? 습기로 인해 그방 멍충이가 될텐데 시간이 많이 걸릴걸 웨이터는 가능 하지 주방은 매일 청소 안하면 고철이야 참고해라 돈이 더들어가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