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원(柳馨遠, 1622년 음력 1월 21일 ~ 1673년 음력 3월 19일)은 조선 중기의 실학자,작가이다. 본관은 문화, 자는 덕부(德夫), 호는 반계(磻溪)이다.[1] 한성 태생으로 벼슬을 하지 않고 전국의 명승지를 유람하며 학문에 일생을 바쳤다.[2]
주요 이력[편집]
당색으로는 북인계열로, 북인 당원이던 아버지 유흠이 인조 반정으로 장살된 이후, 과거에 여러 번 응시하였으나 낙방하였다. 그 뒤 1654년(효종 5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이후 효종 때 북인계 인사들을 발탁, 등용하던 허목, 윤휴의 천거 등 관직에 나갈수 있는 주변의 배경이 있었으나 관직을 단념하고 학문 연구와 후학 양성에 전념하였다. 남인 실학자의 첫 세대 인사 중의 한사람이다.
그는 윤영과함께 경제력 양성과 사회 개혁, 그리고 북벌론을 주장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존주대의의 실천을 위해 그는 북벌론을 주장했고, 북벌을 위한 이상촌 건설, 병력 양성, 훈련, 중국 현지 답사 등을 하기도 했다. 흉년과 기아, 농민들의 참상을 목격하면서 그는 권세를 지키기에 급급한 벼슬아치들이나 고통받는 농민들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하면서 고담준론(高談峻論)하는 유식자들을 비판하였다.[3] 이후 그는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선비의 길을 택하게 되었다. 과거 공부를 그만두었고, 당대의 권세가들이 권유하는 벼슬도 마다하였다.[3] 이후 현종 때인 1665년, 1666년에도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었으나 모두 사퇴하였다.
초기 실학자의 한사람으로 그의 학문은 후에 중농학파인 이하진, 이서우, 오상렴, 이익 등에게로 이어진다. 남인 실학자 성호 이익의 내재종형이나 생전에 한번도 만나본 적은 없다. 저서로는 경세서인 반계수록, 문집인 반계집 등이 있다. 이원진, 동명 김세렴, 정언옹, 미수 허목의 문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