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마리아 상식
1. 개신교에서는 마리아를 성모님이라고 부르지도 않던데요...
개신교는 마리아를 거룩한 어머니, ‘성모님’이라고 부르기를 거부한다. 하지만 개신교신자들은 자기네끼리는 서로서로 거룩한 신도라는 뜻으로 ‘성도님’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성모마리아가 신자들보다 못하다는 말인지 모르겠다.
우리는 거룩한 곳을 성지라고 한다. 특히 예수님의 발자취가 서린 곳을 성지로 부른다. 예루살렘이 성지이고 베들레헴도 성지다. 나아가 순교자들이나 성인들의 숨결이 서린 곳도 성지라고 부른다. 이렇게 신앙에 도움을 주는 장소를 다른 곳과 구별하여 성지, 거룩한 지역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러한 언어습관에 비추어 구세주를 낳으신 어머니를 성모님라고 부르는 것이 지나친 것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성모님이라는 말은 마리아를 우상화하는 용어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 구별하여 훌륭한 삶을 살았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어떤 사람이 훌륭한 삶을 살았을 때 다른 사람들의 모범이 되는 뜻으로 성인으로 부른다. 시를 잘 쓴 이백도 시성, 음악을 잘했던 베토벤도 악성, 바둑을 잘 두어도 기성이라고 부르지 않나?
천사 가브리엘이 처녀 마리아를 방문하였을 때 마리아를 ‘은총을 가득히 받은 이’로 불렀다. “은총을 가득히 받은 이여 기뻐하여라.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마리아, 너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았다.”(루카 1,28 이하)
마리아는 은총을 가득히 받은 여인, 구세주 예수님의 어머니, 예수님의 구원 사업에 특별한 방법으로 협력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모범을 보여주신 거룩한 어머니이시고, 바로 이러한 뜻으로 성모님이다.
2. 미사가 형식이 아닌가요?
미사는 형식이 아니다. 인간생활은 ‘상징’과 나눌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영혼만이 아니라 육신을 가지고 살아간다. 사람은 속에 있는 마음을 밖으로 표현하는데 '상징물'을 사용한다.
언어가 대표적인 상징물이다. 우리는 ‘사랑해’라는 말을 통해서 사랑하는 마음을 주고받는다. 언어뿐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전하는 모든 것이 상징물이다. 눈짓이나 손짓, 또 다양한 표정도 그렇고, 요즘 젊은 연인들의 커플링이나 커플팬티도 사랑의 마음을 전하는 상징물이다. 상징물뿐만 아니라 사람은 다양한 '상징행위'를 통해서 관계를 나눈다.
인사를 할 때 머리를 숙이는 행위, 성호를 그을 때 십자표를 긋는 행위, 사랑의 표현으로 머리위로 하트모양을 하는 행위들 모두가 상징행위이다. 친한 친구를 오랜만에 만났을 때 하는 악수, 부모님께 드리는 큰절이 상징행위이고, 학교를 졸업할 때의 졸업식, 올림픽을 시작할 때의 개막식, 혼인할 때의 혼인예식, 장례 때의 장례예식들이 상징예식들이다.
하느님께 드리는 인간의 공경행위도 거룩하고 장엄한 미사나 예배와 같은 상징행위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느님께 봉헌하는 미사는 인간을 구원하신 하느님께 드리는 최고의 찬미와 감사제사이며 인간의 모든 정성을 담은 상징행위다. 이러한 상징행위를 통해 우리는 하느님을 공경하고 찬미를 드리는 것이다.
개신교는 미사에서 제사요소를 빼고 오직 설교와 찬송만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다. 이렇게 보면 가톨릭과 개신교는 하느님께 드리는 인간의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이 ‘서로 다른 것’이다. 각자 자신의 신앙을 실현하는 방식이 서로 다른 것이다.
가톨릭은 처음부터 다양한 상징물과 상징행위들을 통해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표현해왔다. 예수님상이나 천사상, 성모상과 다양한 성화들이 초대교회 때부터 신자들의 신앙을 표현하는 상징물이었고, 하느님을 공경하고 찬미를 드리는 다양한 예식들이 하느님께 드리는 신자들의 상징행위로 자리를 잡게 되었던 것이다. 모든 종교에 상징물이 다 있다. 로만칼라도 상징물이다. 요즈음 개신교목사님들도 더러 로만칼라를 본 뜬 복장과 영대를 착용하신 분들도 있다. ‘상징’과 ‘우상’의 의미를 잘 구별할 줄 알아야 하겠다.
3. 목사님들이 자꾸 로만칼라를 하고 다니시던데요?
성모님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상징과 관련된 로만칼라 이야기이다.
로만칼라Roman Collar는 로마가톨릭교회 성직자의 공식적 복장을 표시하기 위하여 목에 두르는 아마포로 된 희고 빳빳한 칼라를 말한다. 가톨릭교회를 정확히 표현할 때 로마가톨릭교회라고 표기하고, 로만칼라는 전세계 로마가톨릭교회 성직자들의 공통된 복장을 표시하는 상징물이다. 가톨릭성직자는 직무를 수행할 때 공식적으로 수단soutane을 입거나 로만칼라를 하고 검은 양복을 입는다.
로만칼라의 정확한 기원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로마시대 때부터 가톨릭성직자들은 일정한 복장을 갖추어 입었다. 이런 복장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화를 거쳐왔다. 로만칼라가 보다 일반적으로 정착된 것은 16세기 정도로 추정된다. 당시 유럽에서는 셔츠에 칼라를 다는 것이 유행이었는데 성직자들도 이런 영향으로 복장에 칼라를 도입하게 된 것 같다. 처음에는 칼라에 레이스나 자수와 같은 아름답고 화려한 장식을 부착하였는데 청결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고 오랜 기간 발전하면서 점차 현재의 모양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로만칼라는 로마가톨릭교회의 성직자를 상징하는 상징물이다. 흰색은 독신과 정결 그리고 교황님께 대한 순종을 상징하고, 수단이나 셔츠의 검은색은 스스로 죽음으로써 하느님과 교회를 위한 전적인 봉헌을 의미한다. 가톨릭성직자들은 하느님의 말씀과 은총을 전달하는 ‘사제직’을 수행하는 사람으로 일반 평신도들과 구별되고, 복장도 성직자를 나타내는 수단과 로만칼라를 착용하게 되었다.
마르틴 루터 신부는 가톨릭교회의 대부분을 형식적인 것이라고 비판하고 버렸다. 루터 이후로 개신교는 가톨릭교회의 상징물과 상징행위들을 모두 버렸다. 미사나 7성사뿐만 아니라 고유한 복장이나 제의와 같은 예식을 위한 예복들을 모두 버렸다. 루터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를 중재하는 것은 가톨릭교회가 아니라고 하면서, ‘모든 인간이 사제’라고 했고, 요한 칼빈은 더 나아가 ‘사제는 없다. 모든 인간은 동등하게 하느님과 직접 통교한다’고 했다. 따라서 개신교는 사제직 자체가 없다. 사제직이 없으니 사제의 고유한 복장도 없다. 하지만 요즈음 한국의 개신교 일부 목사님들은 로만칼라를 본 뜬 복장과 영대를 하고 심지어 수단까지 착용하는 경우도 있다.
복장은 특정한 신분을 나타내는 상징물이다. 학생들이 교복을 입고, 군인들은 군복을 입는다. 한국인들은 한복을 입고, 일본인들은 기모노를 입는다. 마찬가지로 가톨릭성직자들은 수단과 로만칼라를 착용한다. 가톨릭교회를 싫어하는 개신교가 왜 굳이 가톨릭성직자들의 고유한 복장인 로만칼라와 예복인 영대를 착용하는지 이해가 잘 안 된다. 한복이 좋다고 일본인이 한복을 입고 다니는 것을 탓하기는 어렵겠지만 기분이 좋은 것만은 아닐 것이다.
일부 개신교 목사님들조차 목사님들의 로만칼라 착용을 비판하고 있다:
'첫째, 목사들의 로만칼라는 ‘모든 인간이 동등하게 하느님과 직접 통교한다’는 루터의 신념을 무시하고 신도들과 구별되는 특별한 신분임을 과시하려는 것이다.
둘째, 목사들이 로만칼라를 착용하는 것은 가톨릭성직자의 복장을 흉내내는 것이다.
셋째, 목사들이 로만칼라를 착용한다면 로만칼라가 의미하는 독신과 정결을 지켜야하고, 로마교황에게 순종해야한다.’
로만칼라와 관련하여 천주교와 개신교 사이에 법적인 다툼으로 발전된 분쟁이 있었다.
1998년 12월12일, 개신교단체 중 가장 규모가 큰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로만칼라를 한국 개신교목사들의 공식복장으로 특허청에 등록을 신청하였고, 특허청에서는 1999년 5월31일 특허등록을 허락하였다. 이를 알게 된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는 1999년 7월23일 특허청에 이의를 신청하였다. 로만칼라는 전 세계 가톨릭성직자의 공식복장으로 로만칼라를 한국 개신교목사들의 공식복장으로 특허를 내준 특허청의 결정은 문제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2000년 4월14일, 결국 특허청은 특허등록을 취소하였다. 하지만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이에 불복하여 법원에 상소를 하였다. 로만칼라를 반드시 목사들의 공식복장으로 관철시키고자 하였던 것이다. 오랜 논란 끝에 2001년 12월14일, 법원의 최종판결이 있었다. ‘개신교의 상소는 이유 없다.’ 로만칼라를 두고 벌어진 해프닝이었지만 씁쓸한 여운을 남긴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