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산나무 1
여름이 길었다
말들이 차곡차곡 더위만큼 쌓였다
그늘이 깊은 이유이다
나뭇가지 사이로 햇살이 들지만
바라보기에 아팠다
자리를 지킨다는 것은
믿음이다
동네 어귀나 중심에서
누구를 기다려 온 시간은 아니, 세월은
백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어린아이가 커서 시집을 갔고
그 아이가 엄마가 되어
아이를 데리고 고향 집에 올 때
그렇게 서 있었다
부락1
"만수 아부지 진지 잡수시라고 오시라 하요!"
"알았다!"
안방부터 마루까지 사람들로 바글바글하다
1년에 한 번
집에 있는 모든 숟가락 젓가락이
외출한다
부족한 그릇은
어제 빌려와 정지에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명절보다 더 바쁜
아부지 생일
아침을 먹은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간다
손에는 시루떡 한 덩이씩 들고
엄마는 해가 뜨기 전 동에 터줏대감 당산나무에
다녀왔다
부락10
"아부지 엄마가 얼릉 오시라 안하요!"
대답이 없다
점방 주모는 쪼까 있다 보낸다고
엄마한테 말하라 하는데
그 약속 한번도 지켜지지 않았다
한 번, 두 번, 세 번 걸음 하고 나면
엄마가 출연했다
그런 날이면 밥상이며
몇 개 없는 그릇들이 날개도 없으면서
집 안 곳곳을 날아다녔다
아부지는 술이 좋은지 주모가 좋은지
끝내 말하지 않았다
카페 게시글
작가들의 신간
김희정 시집 『당산』최근 출간
박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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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1.08 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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