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박철영 두 아이 나가고 없는 집에서 아내와 둘이서 쇠주 한잔했습니다. 말년 휴가 나온 큰 아이와 고 2인 둘째 무엇이 그리 바쁠까요? 꽉 찬듯한 집 두 아이들이 비우고나가면 마음속 순간 쓸쓸해집니다. 전어회를 만원어치 떠다가 쓰리디 쓰릴 초고추장에 범벅을 시켜 참 몹쓸일을 하고 있습니다. 잎새주 한잔으로는 부족해서 아내와 번갈아가며 두어잔 마셨습니다. 추석지나서도 여름같던 날 아내의 귀 밑으로 붉으스레 단풍 들었습니다.
귀향/박철영 야근 첫날 제철소 출근버스안 피곤한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퇴직 앞둔 김반장 오늘 밤 따라 이마에 새긴 주름살만큼 하고 싶은 말 너무 많은 듯 고향이야기로 마음이 들떠있다. 쉬는 날 바삐 둘러본 시골에서 예까지 따라와 넝쿨을 뻗은 청미래 주름진 이마에서 이파리가 푸르다 주변 사람들 귀 기울이다 고향이야기 하나씩 넝쿨처럼 불거져 꿀밤보다 맛있다는 깨금 한 주먹과 왕도토리 나무등걸속 하늘소와 찍게벌레 풍뎅이에 울어제끼는 왕매미소리까지 아름다운 여름 밤은 깊어가고, 제철소야 쇳물 펄펄 끓어 세상 어디보다 뜨거웁지만, 저 사람들 가슴 언저리께는 어림도 없지 출근 버스 속 몹시 술렁거리다 오늘 밤 기어이 고향을 찾아 꿈 같은 귀향을 하고 있다. 주령골 개망초/박철영
평소에 그냥 지나치던 길도 내 사는 곳이라 살피면서 걸을 때가 있다 4차선으로 뻗은 국도변에서 붉은 신호등에 갇힌 사람들 찰라의 시간이지만 불안한 것이다 그런 길가에서 입 앙다문 표지판 무언가 싶어 들여다보니 읽어보다 잊혀진 과거의 섬뜩한 절규 여순 사건때 갓 스물도 안된 아이들을 몰아다 죽인 이곳이 피 맺힌 주검터라니 처참한 골짜기와 이념도 사라져버린 그 땅 위로 모진 바람 불 때마다 비명에 피고지던 주령리 개망초꽃 핏발 선 좌익으로 묻힌 주검터에서 왜 하얀 개망초는 피어나는지. 주령골: 광양읍 소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