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아래 엄마가 보인다. 동생을 내려놓고 뛰어가 치마폭에 얼굴을 묻는다. 코로 입으로 가슴으로 험씬 향을 들이마신다. 엄마는 동생을 안으려고 내 손을 밀어내지만 그럴수록 더욱 치마 끄덩이를 부여잡았다. 아무리 맡아도 싫지 않은 엄마 냄새다.
엄마가 외출하면 할머니 곁에서 놀며 늘 마음이 허전했다. 점심상에 오른 제법 흰 밥과 시금치나물, 잘박한 된장찌개를 아무리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았다. 사금파리를 주워 한 살림 차려 놓고 동무를 불러 돈드께비를 해봤다. 다른 애에게 엄마를 하라 하고 내가 딸이 되어 봤지만, 재미가 없었다.
뒤곁 장독대로 가 앉아 꽃밭을 들여다보았다. 봉숭아가 꽃을 오종종 달았고 맨드라미는 벼슬을 높이 처들었으며 색색의 분꽃도 초여름을 밝혔다. 담벼락의 자주달개비와 땅나리꽃은 바쁜 중에도 정성을 들인 엄마에게 보답하듯 꽃을 많이 피웠다. 어스름이 내릴 때까지 그 앞에 앉아 있었다.
차종손 칠 남매의 맏며느리로 시집온 엄마는 시 백부모가 일찍 세상을 버리는 통에 장손 아버지를 따라 얼떨결에 종부가 되었다. 매년 초여름 벌초 때는 일가친척들이, 가을이면 묘제 지낼 제물들이 넓은 마당을 가득 채웠다. 한 해 열한 번의 제사 때마다 오는 친척들도 수십 명에 이르렀다. 가난한 형편에 장손 몫이라야 남산 중턱의 천수답 몇 마지기가 전부라 음식 준비에 힘에 부쳤다. 엄마는 치자 열매를 두어 주먹 구해 짚으로 묶어 정지 기둥 높은 곳에 매달았다. 큰일 때마다 노란 물을 우려내어 곱고 맛난 고구마전과 파전을 몇 광주리씩 만들었다.
중년이 되어 서울, 부산, 대구 경주의 친구들이 고향 동네 최치원 선생 사당 앞에 모였다. 옛 추억을 살려 남산의 팔각정을 향해 오르니 금방 몇십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어린아이가 되었다. 재잘거리며 올라가는데 어디선가 낯익은 향내가 슬쩍 코를 간질인다. 이게 무슨 냄새인가 고개를 갸웃하다 무릎을 쳤다. 두터운 단내, 엄마 냄새다. 사방을 둘러보니 길 왼쪽의 나무에 새하얀 치자꽃이 뭉실하게 피어있다.
엄마는 부엌에서 불을 지피다가도 눈은 자주 높은 곳에 조롱하게 달린 치자에 가 닿았다. 비가 오거나 밥이 끓어 넘치면 혹시 그것이 눅눅해지지 않았나 하고 살폈다. 틈날 때마다 만지더니 마음이 통했는지 언제부턴가 둘의 냄새가 비슷해졌다.
외할아버지 제사에 가는 엄마를 따라가지 못한 날은 집안에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이튿날 학교에서 오는 길로 대문 앞에서 기다리다 돌아오는 엄마를 보고 뛰어가 부둥켜안았다. 외할머니가 보낸 맛있는 봉송에는 관심이 없고 엄마 냄새가 좋아서 그냥 오래도록 들여마셨다.
큰애가 두 돌을 막 넘기고 둘째가 태어났을 때다. 새내기 주부는 서툰 솜씨로 부엌과 마당과 장독대를 동동거렸다. 아기가 한사코 우유를 먹지 않아서 울 때마다 젖을 물려야 하니 첫째를 봐줄 시간이 없었다. 재롱떨며 엄마 따라 다닐 나이에 형이 돼 버린 아이는 늘 허전해했다.
어느 날 옷걸이에 걸어둔 윗옷이 없어졌다. 집안 곳곳을 아무리 찾아도 안 보이더니 삼촌 방에서 놀다 나오는 큰애가 몸에 두르고 있었다. 바빠서 제게 못 오는 엄마를 그것으로 대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후에도 수시로 내 옷을 끌고 다녔으며 밤에는 이불 위에 얹어 놓고 한 뭉텅이를 코에 대고 잤다. 엄마 옷을 감고 다니던 큰 아이를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아린다.
내가 어릴 때는 먹을 것이 넉넉지 않아서 항상 밥때를 기다렸다. 할머니 아버지께 겸상을 차려 드리고 두레상의 양푼밥을 중심으로 형제들이 둘러앉았다. 쌀이 귀하던 시절이라 서로 흰밥을 골라 먹으려고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래도 막내 동생은 엄마 가슴팍만 파고들었다. 성가셔서 떼려고 해도 막무가내였고 청년이 되어서도 엄마 옷섶에 코를 박고 떨어진 줄 몰랐다.
엄마가 먼 나라로 가신 지 스무 해가 되어가니 강산이 많이 변했다. 제삿날 친정집에 들어서자 막내가 뛰어나와 덥석 안았다. 어서 와요, 누나“ 하면서 코를 킁킁댄다. 내게서 무슨 냄새가 나나 싶어 깜짝 놀랐더니 ”큰 누나한테서 엄마 냄새가 나요“한다. 나도 어느새 떠나던 엄마 나이에 가까워졌나 보다.
설 명절이 다가온다. 우리 부부의 한복을 챙기다 아들 며느리 것까지 내어서 거풍한다. 며느리의 저고리 동정이 거뭇하기에 서랍 속에 있던 여분을 꺼내 달았다. 반듯하게 편 후 거즈를 덮고 다리미질을 하자 조붓한 것이 날렵하다. 불현 듯 옛 장면이 떠오른다.
이십대 초반을 넘어선 어느 추석날 한복을 구해 입었다. 엄마는 시집갈 때가 되었다고 좋아하시며 다른 짐과 부딪혀 구겨진 동정을 새로 꿰매 손질해 주셨다. 납작하면서 참한 동정에도 치자꽃 냄새가 어렸다.
공원을 산책하다 아련한 향내를 맡았다. 살펴보니 수풀 앞의 아기 키만 한 나무에 하얀 꽃이 소복이 피어있다. 반가운 치자꽃이다.
한 다발의 꽃을 그러모아 오랫동안 얼굴을 묻는다.
첫댓글 아! 엄마냄새! 그립고보고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꿈 꾸시고, 우리 같이 희망 찬 내일을 맞이합시다. 이 해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길지 않은 2022년 마지막 마무리 잘 하시고, 내내 건강 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