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절을 하다
오토바이가 지나간 하늘에 한 줄 빗금이 그어졌다
줄 바깥으로 튕겨져 나온 그녀가 뒤집힌 우산처럼 단속곳을 드러낸 채 널브러져 있었다
낯선 전화번호 하나가 그녀의 죽음을 중계하던 한낮, 앰뷸런스가 달려오고 나는 거기 없었으나 있었다
슬리퍼가 벗겨진 맨발바닥엔 그동안 그녀가 밟고 다녔던 길들이 뭉게뭉게 지워지고 있었다
흡혈귀 같은 길이 그녀의 피를 빨아먹고 있을 때, 쌩쌩 지나가던 바퀴들은 up, 업, 자꾸만 생을 주저앉혔다
침묵하는 입들과 재잘거리는 눈들이 웅성웅성 그녀를 굽어볼 때, 그녀는 거기 있었으나 없었다
무당이 굿을 한다
빨간 치마에 청색 쾌자, 노란 활옷을 걸친 무당이 오른손엔 부채, 왼손엔 방울을 들고
수많은 발이 갈팡질팡하는 수원시 매탄동 삼성수퍼 앞에서 춤을 춘다
무당이 입을 열자 그녀가 다시 길 위로 쏟아진다
성냥을 그어야 불이 붙지, 누가 성냥을 그어다오 활활 타오르는 젖은 길을 따라 옥신각신 어디론가 그녀가 끌려갈 때, 그녀 곁에 나는 있었으나 없었다
길 위엔 느닷없이 복제되는 죽음과 또 다른 삶을 흥정하는 무당이 있고, 나는 무릎 꿇고 앉아 큰절을 올린다
길 위의 길들이 그녀를 따라간다
이재린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흥 문학상 대상
바다 문학상 대상
<시집> 마농꽃이 걸어서 우체국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