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초 <한국의 발견>에 실린 해운대
80년대 발간된 <뿌리깊은 나무사>의 <한국의 발견>에 수록된 해운대에 관한 내용을 몇 회에 걸쳐 싣는다. 30여년이 지난 지금의 해운대와 비교해보면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과거의 해운대와 현재의 해운대를 살피면서 미래의 해운대를 상상해 보자.
그 아름다운 해안선을 낀 고장… 해운대
1960년대 해운대 해수욕장 - 지금과는 달리 넓은 백사장이 펼쳐져 있다.
해운대구는 동래구와 더불어 그 일부가 조선시대에 동래구에 속했던 곳으로 부산지방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고장에 든다. 이 구의 한복판에 634m높이의 장산이 솟아있는데 이 이름으로 미루어보아 <삼국사기>나 <동국여지승람>에 나오는 삼한시대의 ‘장산국’이 있었던 곳이 장산 기슭을 중심으로 한 해운대구의 땅이었던 듯하다.
조선시대에는 동래구 남촌이라 불렀고, 1942년에 부산시 수영출장소 밑에 들어가 부산시에 들게 되었다. 그러다가 1976년에 세워진 해운대 출장소의 관할구역이 됐다가 1980년 4월 1일에 구가 되었다. 해운대구는 장산을 가운데에 두고 북쪽에서 부터 서남쪽으로 내려오면서부터 반송 2동, 석대동, 반여 1동이 동래구와 맞닿아 있고, 서남쪽으로 재송동, 우 2동이 수영천을 사이에 두고 남구(수영구)와 이웃하고 있다. 이 구는 또 북쪽에서 동남쪽으로 장산 뒤를 돌아내려오면서 반송 2동, 반송 3동 반송 1동, 좌동, 송정동이 양산군과 경계를 이루고, 우 2동과 남구와의 경계에서부터 송정동과 경상남도 양산군이 만나는 곳까지의 남쪽 10km는 푸른 바다를 낀 해안지역이다.
◆처음에는 온천이 빛났다.
해운대구란 말은 부산에 살지 않는 사람들에겐 귀에 익숙하지 않은 말이다. 이 구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서도 그렇거니와 ‘해운대’하면 그 곁의 해수욕장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동백섬에 대한 언급
<신증 동국여지승람>은 해운대를 가리켜 “현(동래현)의 동쪽 18리에 있다. 산의 절벽이 바다에 빠져 있어 그 형상이 누에의 머리와 같으며 그 위에는 온통 동백나무와 두충나무 그리고 소나무, 전나무 따위로 덥혀 있어 푸르기가 사철 한결같다. 이른 봄철이면 동백꽃잎이 땅에 쌓여 노는 사람들의 발굽에 채이고 밟히는 것이 서너 치나 되며 남쪽으로는 대마도가 아주 가깝게 보인다”고 했다. 이 설명에 따르면 해운대는 오늘의 동백섬 동쪽 벼랑을 가리킨다.
1960년대 해운대 해수욕장과 동백섬
첫댓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이 글에서 양산군 또는 경상남도 양산군이라는 지명이 나오는데 양산군은 양산시가 되었고 이 글에서는 부산시 기장군이 맞습니다.기사를 쓸 때 좀 더 세심한 관심이 필요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