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정말 쓰기 싫었다. 이 이야기는 내 인생에 오점이고 부끄럼이고, 실망이다. 경매일도 주식도 어려워졌다.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어느날 우연히 아파트에서 같이 은행을 다니다 퇴직한 직원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나보다 3년정도 늦게 퇴직을 하고 '21세기컨설팅주식회사에 근무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21세기컨설팅주식회사를 이미 알고 있었다. 신문에 홍보된 광고를 보고 그 회사에서 보유하고 있던 강원도 정선 땅에 3천만원을 투자하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 같이 근무하지 않겠냐고 제의했다. 일이 없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던 나는 그 회사에 입사하기로 결정했다. 그 회사는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땅들을 여러개로 쪼개 투자를 받고 있던 기획부동산이었다. 이미 그 회사에 투자를 하고 있었던 나는 입사를 쉽게 결정 할 수 있었다. 기획부동산이란 개발이 어렵거나 경제적 가치가 없는 토지를 여러 투자자를 모아 분양하는 회사였다. 그러나 입사 당시 나는 기획부동산의 정확한 정체를 몰랐다. 몰랐다는것도 잘못이다. 모르면서 남에게 소개했다는것은 더 큰 잘못이다. 내가 회사를 처음 입사했을 때 회사에서는 보유하고 있는 토지의 개발계획에 대하여 교육을 시켰다. 나는 강원도 정선에 있는 임야에 투자를 했는데 그 임야에 대한 각종 공부, 강원도에서 승인 받은 개발승인서, 시공사와 맺은 MOU 체결서, 청사진, 개발도면 등을 가지고 교육을 시켰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개발에 착수 할 수 있을것 처럼 보였다. 회사는 정선뿐만 아니라 제주도, 울진 등에도 토지를 구입하고 투자자를 모집하고 있었다. 모든 지역의 계획은 모두 같았다. 시청이나, 도청에 허가를 신청했고 허가와 관련된 서류들이 즐비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그리고 개발과 관련된 내용, 투자시 수익 등을 교육했다. 나는 교육을 받은 후 본격적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영업은 지인 영업이었다. 나를 잘 알고 있는 지인을 최우선으로 영업했다. 그때 나보다 늦게 은행을 퇴직한 동기가 있었다. 그 친구는 먼저 퇴직한 나에게 여러가지를 물었다. 나는 그 친구에게 산에 가서 심신을 단련하라고 했다. 그 친구와 함께 서너번 북한산도 같이 갔다. 그리고 경매 관련 일도 설명해줬다. 그러다 회사에서 정선쪽 착공식을 한다고해서 같이 참석했다.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이제 투자 수익이 실현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착공식은 성대히 치러졌다. 유명 트로트가수도 출연했다. 모든것이 착착 진행되었다. 그 친구는 착공식을 다녀온 후 투자 결심을 하고 1억을 투자했다. 그리고 서너명의 지인들에게도 투자를 소개해서 약 3억원 정도 투자를 시켰다. 그러다 어느날 갑자기 회사 대표가 구속되었다. 투자사기 죄였다. 회사는 난리가 났다. 선장을 잃어 버린 배는 곧 난파할 것처럼 흔들렸다. 회사 임원진이 수습하러 투자자 회의를 열었다. 여기저기서 성토를 했다. 나는 그 와중에도 미몽에서 깨어 나오지 못했다. 몇몇 투자자들과 함께 대책위원회를 만들었다. 사분오열된 의견을 합쳐 현상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았다. 회사 대표가 구속되었어도 토지는 남아 있었고 많은 투자자들이 문제 해결을 위해 뛰어들었으니 해결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큰 시행사나 시공사를 물색해서 개발과 관련된 내용을 의뢰하고 받아들여진다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것 같았다. 그나마 땅의 소유권을 가지고 있으니 개발만 차질없이 진행된다면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을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개발된다던 토지는 착공하자 마자 중단되었고, 다른 투자지는 개발을 허가 받지 못하는 땅으로 판명되었다. 만명 이상의 사람과 몇 백억 이상의 돈이 투자된 사업은 그렇게 무너져 내렸다. 나는 그제서야 미몽에서 깨어났다. 나를 믿고 투자한 사람들도 손해를 봤다. 그들은 나를 신뢰해서 투자를 했건만 나는 그들이게 아무것도 해줄수 없었다. 나는 내 머리를 쥐어 뜯었다. 내 빰을 손바닥으로 마구 때렸다. 나는 입이 있어도 말을 할 수 없었다. 백방으로 해결책을 찾아 뛰어 다녔다. 다른 투자자들과 힘을 합쳐 대책을 모색했다. 그러나 모든것은 돈으로 귀결되었고 그 돈을 해결할 힘이 나에겐 없었다. 나는 좌절했다. 눈 앞으로 생과사가 왔다갔다 했다. 정말로 죽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무기력에 빠져 들었다. 방에 틀어밖혀 꼼작도 하지 않았다. 나는 요즘도 간혹 내 자신을 책망한다. 2천만원을 제주도에 투자한 국민학교 친구를 지금도 만난다. 그 친구가 잘 나가고 있어 그나마 위안이 된다. 그래도 내가 좋아했던 그 친구에게 마음의 짐이 있다. 은행을 퇴직했던 친구는 연락을 하지 못한다. 그는 은행 퇴직 후 퇴직금을 모두 날려버렸다. 너무 마음이 아프다. 그러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나는 나의 죄를 용서 받을 수 없다. 그들에게 용서를 빌 수 없다. 나는 반드시 지옥에 떨어질것이다. 그런다고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들의 고통 받는 현실을 바꿔줄 수 있는가?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것이 없었다. 나는 후회와 자책으로 하루하루를 살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 사건도 점점 희석되었다. 시간은 많은 것을 치료하는 만병통치 약이었다. 그러나 요즘도 간혹 그 일이 생각난다. 내 인생에서 지울수 없는 오점이다. 친구들에게 씻을 수 없는 고통을 남겼다. 그리고 난 후 나는 절대로 다른이에게 투자를 권유하지 않는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나 혼자 해결할 수 는 범위에서 일을 벌인다. 나는 그 일이 다시 생각날 때마다 자책을 한다. 바보멍청이 죽일놈, 쓰레기, 그래도 어찌하랴 목숨은 질기고 생때같은 자식들이 있는것을, 나는 나만을 생각하는 이기심으로 고통의 바다를 건너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