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01. 06
2017년 새해가 밝은 뒤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새 시즌을 준비하는 KBO리그는 벌써부터 분주하다. 2월에는 각 구단이 스프링캠프를 떠나고, 3월에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라운드 경기가 서울의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다. 4회 만에 처음으로 한국에서 유치하는 WBC라 더 의미가 있다. 그 후에는 10개 구단이 팀당 144경기를 치르는 대장정을 다시 시작하게 된다.
프로야구는 여전히 최고 인기 스포츠다. 지난해 승부조작과 각종 사건·사고, 무더위라는 여러 악재 속에서도 사상 최초로 800만 관중을 돌파했다. 결국은 선수들의 멋진 플레이, 그리고 그 과정에서 탄생하는 각종 기록들이 야구팬들의 마음을 다시 야구장으로 돌려놓는 것이다. 올해 역시 ‘최초’의 금자탑을 쌓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는 선수들이 많다. 2017년에도 KBO리그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나갈 기념비적 인물들을 예상해봤다.
▲ 박한이. / 임준선 기자
# ‘부상 없는 선수’의 가치를 기록으로 승화시킨 박한이
삼성 박한이는 ‘부상 없는 선수’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보여준 인물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프로에 입단한 박한이의 올해 나이는 만 38세. 그런데도 2001년 프로 입단 후부터 지난해까지 16년 동안 단 한 시즌도 거르지 않고 매년 세 자릿수 안타를 쳤다. 그 기간 내내 1군에서 주전 선수로 활약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인데, 자기 역할까지 모자람 없이 해낸 것이다. 그라운드에서 늘 부상 없이 뛸 수 있도록 몸을 잘 관리하는 것은 프로야구 선수의 첫 번째 의무이자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박한이는 그 분야에선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사실 지난해에는 기록 달성에 위기를 맞았다. 무릎 부상에 시달려 경기를 많이 뛰지 못했다. 시즌 도중에는 스스로 100안타 달성을 포기하고 마음을 내려놨을 정도다. 그러나 박한이는 역시 ‘박한이’였다. 정규시즌 종료까지 딱 3경기를 앞뒀던 지난해 10월 4일 대구 LG전에서 마침내 시즌 100번째 안타를 때려냈다. 1회말 첫 타석에서 홀가분하게 남은 숫자 하나를 채웠다. 16년 연속 100안타라는 대기록이 달성되는 순간이었다. 소위 말하는 ‘상남자’ 스타일에 무뚝뚝하기로 소문난 박한이지만, 이 경기가 끝난 뒤 결국 울먹였다. 그간의 몸 고생과 마음고생을 훌훌 털어낸 베테랑 타자의 복잡한 심경이 그 눈물 안에 담겨 있었다.
이제 박한이는 2017시즌 개막과 동시에 한국 프로야구 역대 최초의 17년 연속 100안타를 향해 나아간다. 16년 연속 100안타는 삼성에서 은퇴한 양준혁의 역대 최다 기록과 일치한다. 박한이는 지난해 ‘공동’ 1위가 됐다. 이제 혼자만의 경지에 우뚝 설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스스로는 “지난해 실패했으면 2017년엔 마음을 비우고 좀 더 편안하게 뛸 수 있을 뻔했다”고 짐짓 머리를 싸맸지만, 올해 도전하는 이 기록에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는 그 누구보다 잘 안다. 박한이의 안타 행진을 눈여겨봐야 할 이유다.
▲ 장원준. / 연합뉴스
# 이강철의 대기록들에 도전하는 ‘장꾸준’ 장원준
두산 장원준의 별명은 ‘장꾸준’이다. 말 그대로다. 정말 꾸준하게 잘하는 투수라는 의미다. 연속 10승 기록이 그 증거다. 장원준은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7년 연속 10승(군복무한 2012년과 2013년 제외) 이상을 해냈다. 이강철(1989~1998년)의 10년과 정민철(1992~1999년)의 8년에 이어 역대 세 번째 기록. 왼손 투수로는 역대 최초라 더 상징적이었다. 장원준의 목표는 20년째 깨지지 않고 있는 이강철의 기록을 넘어서는 것이다. 올해는 그 고지로 가는 길목이다. 일단 1년을 더 늘려 정민철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게 우선이다.
충분히 가능해 보인다. 그는 2015년 두산으로 이적한 뒤 지난 2년간 더 높은 수준의 투수로 성장했다. 지난해에는 자신의 개인 한 시즌 최다승인 15승도 올렸다. 무엇보다 장원준은 부상이 거의 없는 선수다. 7년 내내 10승 이상을 올릴 수 있었다는 것은 그 기간 동안 시즌을 중도 포기할 만한 큰 부상이나 수술이 없었다는 의미도 된다.
이뿐만 아니다. 장원준은 2006년부터 이어온 9년 연속 100탈삼진 기록도 한 해 더 늘릴 수 있다. 세 자릿수 탈삼진 역시 이강철의 10년이 최다 연속 기록이다. 장원준이 올해도 삼진 100개 이상을 잡아내면, 최고의 자리에 나란히 이름을 올리게 된다. 물론 이 기록 역시 왼손 투수로는 최초의 기록이 된다.
▲ 임창용. / 사진제공=기아 타이거즈
# 메이저리거 오승환과의 기록 경쟁 중인 임창용
KIA 임창용의 야구 인생은 굴곡이 많이 졌다. 야구로 최고의 자리에 서봤지만, 야구 외적인 문제로 다시 추락하기도 했다. 고향팀 KIA는 그런 그가 찾은 마지막 둥지다. 그는 올해 이 팀에서 한일 통산 400세이브 기록에 도전한다. 한국 선수로는 역대 최초 기록이다. 그동안 한국에서 247세이브, 일본에서 128세이브를 각각 기록해 통산 375세이브를 쌓아 올렸다. 미국에서도 1년 뛰었지만, 세이브는 올리지 못했다.
400세이브까지 남은 숫자는 25개. 임창용은 지난해 한 시즌의 절반만 뛰고도 15세이브를 했다. 앞선 두 시즌에도 삼성에서 각각 33세이브(2015년)과 31세이브(2014년)를 해냈다. 마무리 투수 보직을 지키면서 한 시즌을 풀타임으로 소화한다면 충분히 올해 안에 해낼 가능성이 있다.
세인트루이스 오승환과 임창용의 장외 경쟁도 흥미롭다. 한국 프로야구 역대 최고의 마무리 투수인 오승환은 KBO리그 역대 최다 세이브(277세이브) 기록을 갖고 있다. 임창용의 한국 무대 통산 세이브와 30개 차다. 임창용이 올해 30세이브 고지를 밟는다면, 이 기록도 깰 수 있다는 의미다. 게다가 오승환은 한국와 일본, 미국을 통틀어 총 376세이브를 올렸다. 오승환 역시 통산 400세이브까지 단 24개가 남은 셈이다. 다만 오승환이 뛰는 리그는 세계 최고의 수준을 자랑하는 메이저리그다. 세이브 추가가 임창용보다는 상대적으로 어렵다. 과연 한국인 투수 최초로 ‘400세이브’를 먼저 정복할 주인공은 둘 중 누가 될까.
▲ 이승엽. / 이종현 기자
# 은퇴 시즌에 4000루타 1500타점 1300득점 도전하는 이승엽
삼성 이승엽은 올해 현역 생활의 마지막 시즌을 맞는다. 이미 홈런에 관련된 거의 모든 기록은 이승엽이 다 보유하고 있다. 앞으로 그 기록을 넘어설 만한 타자도 아직은 보이지 않는다. 한국 프로야구 35년 역사에서 그동안 숱한 스타플레이어들이 나왔지만, 이 정도로 완벽한 선수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런 이승엽은 은퇴 시즌에도 그냥 물러나지 않는다. 또 다른 발자취를 KBO리그 역사에 남길 작정이다. 하나도 아닌 셋이다.
일단 KBO 역대 최초 4000루타가 가시권에 들어왔다. 지난해까지 이승엽은 통산 3833루타를 쳤다. 역대 2위 기록이다. 그러나 1위 양준혁(3879루타)와 불과 46루타 차이다. 단타 46개만 쳐도 이 기록이 깨진다. 4000루타까지는 167루타가 남았다.
하나 더 있다. 이승엽은 이미 통산 1411타점으로 역대 최다 타점을 기록하고 있는 선수다. 올해 89타점을 추가하면 역대 최초로 1500타점 고지를 밟는다. 어마어마하다. 심지어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승엽의 통산 득점은 1290득점. 역시 통산 1위인 양준혁(1299득점)과 9점 차에 불과하다. 양준혁이 한끝 차로 놓쳤던 1300득점 역시 충분히 가능하다. 더불어 통산 450홈런까지도 딱 7개가 모자란다.
지난해 164안타(홈런 27개 포함)를 치면서 118타점을 올리고 91번 홈을 밟은 이승엽이다. 2016년만큼만 해도 게임은 끝이다. 루타, 타점, 득점 기록에 새로운 장이 열린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한 가지. 이승엽은 일본에서 8년이나 뛰다 한국에 돌아왔다. 만약 그가 일본에 가지 않고 한국에 남았다면? 과연 한국 프로야구에 어떤 기록들이 남았을지 상상하기 어렵다.
# ‘첫 승’ 노리는 3명의 초보 감독들
올해 KBO리그는 오는 3월 31일에 막을 올린다. 한 시즌의 개막일은 겨우내 야구를 그리워했던 모든 야구 관계자들과 팬들에게 가장 기쁜 날이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설레는 마음을 2017년 개막전을 기다릴 인물들이 있다. ‘첫 승’을 기다리는 세 감독이다. 두 명의 사령탑은 프로야구 감독으로서의 첫 승리에 도전하고, 미국과 일본에서 지도자로 잔뼈가 굵은 한 명의 감독은 한국 프로야구에서의 첫 승을 노린다.
SK는 창단 이후 처음으로 외국인 감독을 데려왔다. 그 주인공은 트레이 힐만. 미국 캔자스시티와 일본 니혼햄 등에서 감독을 역임했던 인물이다. 2008년부터 3년간 롯데 지휘봉을 잡았던 제리 로이스터 감독에 이어 KBO 리그 사상 두 번째 외인 사령탑이다. 삼성은 6년간을 지휘했던 류중일 감독 시대를 마감하고 김한수 전 타격코치를 새 감독으로 맞이했다. 새로운 삼성 야구가 시험대에 섰다. 넥센은 염경엽 감독과 결별한 뒤 프로 지도자 경력이 없는 장정석 전 운영팀장을 감독으로 깜짝 발탁했다.
세 감독은 아직 한국 프로야구에서 자신의 색깔을 보여준 적이 없다. 기존의 팀 색깔에 자신의 야구 철학을 어떻게 접목시킬지 관심이 쏠리는 게 당연하다. 세 감독의 특성도 다 다르다. 김한수 감독이 선수와 코치로 프로에서 남부럽지 않은 경력을 쌓아온 ‘준비된 감독’이라면, 장정석 감독은 넥센이라는 자립형 야구기업의 특성을 가장 잘 표현하는 깜짝 인사다. 힐만 감독은 오랜 지도자 생활을 통해 확립한 자신의 리더십을 한국의 SK와 성공적으로 접목시켜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세 명의 새 얼굴 가운데 가장 먼저 첫 승을 안게 될 행운의 감독은 누가 될까. 삼성은 KIA, 넥센은 LG, SK는 kt를 각각 개막전 상대로 맞아들인다.
배영은 / 일간스포츠 기자
자료출처 : 일요신문 [제128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