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루가 다르게 여름 기운이 물신 느껴지는 날들입니다. 내복을 입은 채로 입소를 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계절이 이렇게 바뀌었네요. 어쩌다 담장 너머로 풍겨오는 아스팔트의 열기를 스치고 나면 여느 여름밤 편의점 앞에서 마시던 시원한 캔맥주 생각이 간절해지기도 합니다.
2. 저는 오늘 2주 만의 휴일을 누리고 있습니다. 이 곳 '수용자 취사장'에서 일을 시작한지도 한 달을 훌쩍 넘겼습니다. 육체노동의 강도와 '군기'의 정도가 비례하는 것인지 혹은 비례해야만 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쨌든 저는 여기 '국조'에서 이제 칼을 잡기 시작했습니다. 이곳의 질서에 따르면 칼질을 한동안 배운 뒤에는 직접 국을 끓이고 간을 보는 서열에 오르게 됩니다. 고기 먹고 힘 좀 쓰라는 주변의 조언 또는 협박에도 불구하고 채식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습니다만, 나중에라도 제가 정말 뼈다귀 국물의 간을 보는 일은 피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3. 수용자들이 아침을 먹는 7시에 맞추어 준비를 하려면 매일 번갈아가며 누군가는 새벽 4시 20분부터 일을 시작해야 합니다. 최근에 저도 이 '조출'을 시작했는데, 피곤하리란 애초의 걱정과는 달리 먼동이 터오는 하늘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선물과도 같은 경험을 하였습니다. 방에 항상 켜져 있는 형광등 불빛의 방해를 받지 않고 서서히 밝아오는 하늘과 고요한 사위를 맞는 황홀함에 영혼이 정화되는 기분마저 들었습니다.
4. 여기서 만난 누군가는 이곳이 "인생의 가장 밑바닥인 삶들이 모인 곳"이기에 "한 번쯤 경험해 볼 만한 곳"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겐 이런 묘사보다는 오히려 계층의 상하와 무관하게 존재하는 군사주의 문화가 날 것 그대로 재현된 곳이라는 이미지가 더 와닿습니다. 나이에 따라 바로 반말과 존댓말이 결정되고 철저한 위계서열에 따라 개인의 자율성과 존엄마저 재단되는 곳. 군사주의 문화를 거부하고 감옥행을 감수한 제게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기도 합니다.
5. 이 곳 재소자들 사이에는 "징역은 결국 혼자 살아내야 한다"는 모종의 믿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믿음의 바탕에는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나 "적자생존의 정글"을 떠오르게 하는 말들입니다. 혼자 이겨내야 한다는 주문은 자신이 처한 역경에 현명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일면 유용한 믿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결국엔 아무도 믿어선 안 된단 이런 말들이 제겐 영 불편했습니다. 연결된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저의 믿음에 반하는 말처럼 들렸기 때문입니다. "착하면 무시 당한다"는 말이나 "여기는 타인의 배려를 오히려 이용해먹는 곳"이니 잘 처신해야 한다는 조언 아닌 조언을 들으며 이곳에 발 딛고 있는 저의 자세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게 됩니다.
6. 이 곳 재소자들이 가진 큰 욕구 중 하나가 '자신의 안전' 그리고 '평탄한 징역살이'라고 했을 때, 이 평탄함을 얻는 한 가지 방식은 상호간 유대와 신뢰를 통한 따뜻한 관계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는 제 생각에 가장 도움이 되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에 반해 이곳에서 효과적이고 쉬운 (것으로 여겨지는) 방식은 "나사를 하나 풀고" 자기 괴로움의 근원인 뭇감정들을 아예 삭제해버리는 것입니다. 섣부른 유대나 친밀함을 좇기보단 일단 경계를 하는 것이 이곳을 살아가는 보다 현명한 관계맺음의 방식으로 여겨지는 것 같습니다.
7. 징병제를 유지함으로써 체제 순응적 노동자를 양성한다는 박노자 선생의 지적에 비유하자면, 이곳의 '교정'이 개별 교도관들의 인성이나 성품과 무관하게 재소자들로 하여금 인간에 대한 불신, 시스템에 대한 무기력감(문제가 있는 건 알지만 혼자 나서봐야 자기만 손해라는)을 학습시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징역에서 자기 몸을 건사하기 위해선 누구도 쉬이 믿어선 안된다는 정신을 심어주고 이로써 사회에 복귀한 이들이 세상에 분노하고 연대를 도모하기 보다는 자발적으로 체제에 순응하도록 만드는 것은 아닐까 싶은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연대를 상상하는 것 자체를 불가능하게끔 만드는 것, 이것이야말로 이 사회의 지배계급이 바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8. 이곳에 만연한 (것처럼 보이는) '불신'의 기운이 바깥 사회와는 다른 교도소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기인한다고 말하기엔 뭔가 찝찝한 감이 있습니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기보다 자신의 이익과 먼저 결부시켜 사고하는 정신은 교도소 바깥에서도 쉽게 발견되기 때문입니다. 노동자들의 파업을 귀족노조로 몰아가는 모습이나 군가산점을 두고 여성들에게 흥분하는 예비역들의 모습은 쉽게 서로를 못 믿고 비난하게 되는 이곳의 문화와 꼭 닮아있습니다. 이제 남는 것은, 결국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는 선언을 다시금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악함’을 발현하게끔 만드는 구조·환경에 대한 문제제기 그리고 역경 속에서도 ‘측은지심’을 가질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놓지 않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9. 재소자들이 인간에 대한 불신을 내면화한다는 저의 의견 역시 하나의 ‘평가’에 불과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 대화를 나누다보면 상대의 개인사가 보이면서 기본에 갖고 있던 ‘적이미지’는 사라지고 그의 인간성이 보이기 시작하겠지요. 그렇다면, 거꾸로 이런 인간적 대화를 가로막는 이곳만의 질서는 구체적으로 무엇이며,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운 주제가 될 것 같습니다.
10. 누구나 남을 측은히 여길 줄 아는 선한 본성을 갖고 있다는 저의 믿음이 이곳에서 쉬이 꺾이지 않도록 기운을 내야겠습니다. 마치 정글에 맨 몸으로 던져진 것과 같은 원초적 공간으로 이곳을 단정짓기 보다는 여기에서도 서로의 인간성을 확인하고 연결될 수 있다는 희망을 아직은 붙들고 있습니다. 나중에 제가 출소를 할 즈음엔 지금보다 더 따뜻한 사람이 되어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적어도 하루에 한 번씩은 제게 찾아오는 선물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정신을 맑게 유지하고 있어야겠단 다짐을 해봅니다. 하늘보고 심호흡 한 번, 씨익 웃음 한 번. 갈수록 더워지는 계절, 모쪼록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2011. 6. 19. 일요일
구 영등포교도소에서 날맹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