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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두산 전설 ]
백두산설화가 본격적으로 수집 정리된 것은 청나라 말에 유건봉(劉建封)이 편찬한 ≪장백산강강지략 長白山江崗志略≫에서부터이다.
유건봉은 청나라 길림성 안도현 지현(知縣)을 역임한 사람으로 1908년 5월부터 국경을 감독하는 감계 위원으로 임명되어 백두산을 답사하고 이 책을 편찬했는데 여기에는 150편에 달하는 설화가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 자료들은 한족·만주족·조선족의 설화를 두루 수집한 것으로서 한문으로 정리된 것이다.
연변의 조선족이 조선족 사이에서 구전되는 자료를 1960년대 수집, 정리하여 ≪천수≫·≪조선족구비문학재료집≫으로 간행하였으나 문화혁명을 겪으면서 소실되어 전하지 않으며, 1981년 북한의 근로단체 출판사에서 간행한 ≪백두산전설≫은 백두산을 중심으로 한 김일성의 빨치산 활동만을 수록한 것이어서 순수한 설화라고 보기 어렵다.
백두산설화의 수집 간행은 이천록·최룡관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이 두 사람은 백두산 일대를 현지답사하여수집한 설화 중 백두산에 얽힌 전설만을 따로 모아 ≪백두산전설≫이라는 이름으로 1989년 연변 인민출판사에서 한글로 간행하였다. 이 책에는 천지를 비롯하여 백두산의 여러 산봉과 호수, 동식물에 얽힌 전설 35편이 정리되어 있다.
그리고 중국민간문학연구회 연변 분회에서 간행한 ≪길림성민간문학집성 상 吉林省民間文學集成 上≫(1987) 등에 조선족과 만주족의 설화 자료 편에 20여 편의 자료가 수록되어 있고, 그 밖에 조선족 설화를 간행한 ≪조선족민간고사선≫(상해 문예출판사, 1985)·≪팔선녀≫(흑룡강 조선민족출판사, 1987)·≪삼태성≫(연변 인민출판사, 1983) 등에 몇 편씩의 백두산설화가 수록되어 있다.
이러한 자료들은 민간문학 작가에 의하여 표현이 다듬어진 것으로서 구연 그대로의 기록은 아니다. 또한, 사회주의 사상을 주입하여 윤색한 부분도 적지 않아서 순수 구비문학 자료라고 보기 어려운 점도 있다.
그러나 백두산의 천지, 폭포, 산봉 등에 얽힌 전설은 사회주의 국가가 세워지기 이전에 민간에서 자연스럽게형성된 설화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어서 우리 민족이 가졌던 백두산에 대한 관념을 아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백두산 설화 중에서 신화적 성격을 띠는 자료는 <천지>·<용을 동여맨 돌기둥>·<천지를 기운 돌바늘>·<세 쌍둥이 별> 등이 있다. 이 설화에서는 사람들의 삶을 방해하는 악독한 흑룡을 물리치는 영웅적 인간의 활약을 이야기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천지>는 백장수라는 영웅적 인물이 물줄기를 불칼로 지져 말리는 흑룡을 물리치고 땅을 파 던진 것이
십육기봉이 되었고, 파낸 웅덩이는 천지가 되었으며, 천지를 지키기 위해 백장수와 공주가 혼인하여 천지 속에 용궁을 짓고 그 속에 살면서 지킨다는 이야기이다.
<세 쌍둥이 별>은 ‘삼태성 유래’라고도 하는데 지상에서 신기한 재주를 공부한 삼 형제가 어머니의 부탁을
받고 태양을 훔치려는 흑룡을 물리치고 태양을 지키는 별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이야기는 백두산의 악천후와 화산의 폭발 등 자연재해를 체험했던 주민들이 이를 극복하려는 의식에서 천신 신앙을 기저로 하여 형성된 영웅설화로서 신화적 성격을 보여 주는 자료들이다.
백두산설화 중에는 여러 산봉과 폭포에 얽힌 전설 및 동식물의 유래를 이야기한 전설이 많다.
어느 한 효자가 어머니의 병에 백두산 제일 높은 산봉에 얼음처럼 찬 명약이 있다는 노인의 말을 듣고 이 약을 구해다가 어머니를 살려 냈다는 <백운봉> 전설, 한 아들이 어머니의 병에 특효약이 있다는 신선들의 이야기를 듣고 신선의 도움으로 산봉에 올라 명약을 구했다는 <신선봉> 전설, 한 가난한 소녀가 호랑이 새끼를 구해 주었는데 나중에 이 소녀가 부자에게 종으로 팔려 고통을 받는 것을 호랑이가 알고, 나서서 사랑을 이루어 주고 부자를 징치하여 은혜를 갚았다는 <와호봉> 전설 등이 그러한 예이다.
이러한 전설은 대체로 가난하고 착한 인물이 신의 도움으로 질병이나 고난을 극복하고 행복하게 되고, 욕심을 부리는 사람이나 악행을 일삼던 부자는 신의 징벌을 받아서 망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서 백두산은 신령이 거주하는 성산(聖山)으로서 착한 사람을 도와주고 악한 사람을 징치하는 권능과
조화를 갖춘 산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찾을 수 있 다.
그 밖에 <관일폭포>·<선녀폭포>·<백두폭포> 등의 폭포전설과 <옥장천>·<소천지>·<구룡담> 등의지소전설(池沼傳說), 그리고 꽃사슴과 산삼 등에 얽힌 동식물전설이 있다.
이러한 설화에는 남녀의 아름다운 사랑의 사연이 등장하고 한결같이 현실 세계에서 찾을 수 없는 신비한 힘이 작용하고 있으며 옥황상제나 선녀 등이 등장하여 도선적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백두산설화에서 집약되는 전승 집단의 의식 성향은 한마디로 성산 의식(聖山意識)이라고 할 수 있다. 백두산은 우리 민족이 창업을 이룩한 터전이며 국가를 지키는 수호신의 거주처이고 정의롭고 선량한 사람에게 행운을 주고 악독한 사람에게 벌을 주어 선악을 재판하는 권능이 있는 산으로 존숭됨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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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대]
리천록.최룡관(옮긴이)
백두산 전설(출전)
이시환(우리말 교정 교열)
천지가의 자라 낚은 터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얼마 멀지 않은 곳에 4~5미터 되는 언덕이 있는데 이 언덕을 방학대(放鶴臺)라 부른다.
옛날 백두산 천지는 단정학들의 놀이터여서 단정학들은 봄이면 남에서 백두산 천지로 날아들었고, 가을이면 새끼 학들을 거느리고 강남으로 날아가곤 하였다.
그러던 어느 해 가을이었다. 세상에 늦게 태어난 탓으로 한 새끼 학은 어미를 따라서 강남으로 날아갈 수 없게 되었다. 백두산 천지에 홀로 남은 새끼 학은 찬 하늘을 바라보며 고독한 나날을 보내었다.
늦은 가을 어느 날이었다. 백두산으로 나무하러 갔던 한 부자집의 나무꾼이 천지가에 내려갔다가 불쌍한 새끼 학을 보았다. 주둥이도 아직 굳지 않고 날개짓도 변변하지 못한 새끼 학을 불쌍히 여긴 나무꾼은 그 새끼 학을 품속에 넣어 가지고 돌아왔다.
새끼 학을 처음 본 부자집 아이가 희한해하였다. 나무꾼이 저녁을 먹고 뜨락에 나섰을 때 부자집 아이는 뜨락에서 새끼 학을 못살게 굴었다. 주둥이를 쥐고 빙빙 돌려도 보고, 회초리로 껑충한 다리를 때리기도 하였다.
다음날 나무꾼은 나무하러 가게 되었다. 그는 쪽지게에다가 누더기를 가득 지고 품속에다는 새끼 학을 안고 떠났다. 새끼 학을 집에 두었다가는 언제 죽을지 모를 일이여서였다.
나무꾼은 천지가에 가서 새끼 학을 둘만한 곳을 찾아보았다. 마침 벼랑에 굴이 있었다. 나무꾼은 굴속에다 누더기를 깔아서 학의 보금자리를 마련한 다음 들쭉과 같은 산열매를 가득 따다가 굴속에 넣어 주고 학을 넣었다. 그는 학이 추워할까봐 굴 입구도 잘 막아주었다. 그 해 겨울에 나무꾼은 이따금 학을 찾아가서 먹을 것이며 잠자리를 보살펴 주었다.
기다리던 이듬해 봄이 왔다. 백두산 천지가에 와서 보금자리를 잡던 학들이 강남에서 다시 날아왔다.
죽었으리라고 생각했던 새끼 학이 어미 학처럼 자라난 것을 보고 학들은 기뻐서 야단이었다. 이 때 새끼 학은 자기가 어떻게 지난 겨울을 났는가를 어미 학에게 자세히 들려 주었다.
따사로운 봄날, 나무꾼은 새끼 학이 보고 싶어서 천지가로 왔다. 학들은 공중을 날아예며 은인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나무꾼은 새끼 학을 안고 깃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하여 나무꾼이 집으로 돌아가려 하는데 학들은 하얗게 무리를 지어서 앞길을 막고 새끼 학은 뒤에서 그의 바짓가랑이를 물어 당겼다.
그는 새끼 학이 끄는 대로 뒷걸음질을 쳤다. 새끼 학이 겨울을 나던 언덕에 이르자 학들은 더는 앞길을 막지 않았다. 이상한 생각이 든 나무꾼은 굴속을 들여다보았다. 굴속에는 단정학의 알만한 금덩어리가 더부록히 쌓여 있었다.
허허, 이걸 갖고 가라고 그랬구나!
나무꾼은 금덩이 하나를 꺼내어 품속에 간직하였다.
부자집으로 돌아온 나무꾼은 주인 앞에 금덩어리를 내놓고 빚을 결산하자고 하였다. 그러자 부자는 나무꾼이 그 금덩이를 훔쳐온 것이라 하며 바른 대로 대라고 야단을 쳤다. 하지만 나무꾼은 바른 대로 말할 수 없어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다. 그러자 주인은 이 일을 관청에 고발하였다. 그러자 관청의 우두머리는 귀가 솔깃해져서 사실이 그러면 실물을 보자고 했다. 그래서 그는 허둥지둥 달려와 나무꾼을 데리고 갔다. 관청의 우두머리는 나무꾼을 보자 그를 족치기 시작했다.
금덩이가 있다지? 어서 보자.
나무꾼은 금덩이를 내놓았다.
이건 어디서 난 거야? 사실대로 말을 하지 않으면 한평생 옥살이를 시키겠다.
나무꾼은 더는 속일 수 없어 사실대로 말했다. 그러자 부자 놈은 관청 우두머리의 귀에다 입을 대고 소곤거리었다.
그 금덩이를 다 들춰오고 학들을 붙잡아다가 금을 낳게 하면 우리 둘은 대뜸 억만 장자가 될 것이다.
관청 우두머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무꾼을 향하여 뇌까렸다.
이 금덩이는 몰수야. 그리고 내일 우리와 함께 천지로 가자. 네 말이 정말이면 이 금덩이를 돌려주고 네 말이 거짓말이면 돌아오려고도 하지 마라.
이튿날 부자와 관청 우두머리는 나무꾼을 앞세우고 백두산으로 향하였다.
학들이 재앙을 입으리라 생각한 나무꾼은 화개봉에서 천지가로 내려가면서 목청을 다하여 소리쳤다.
학아, 학아, 어서 날아가라, 너넬 잡으러 온단다!
학들은 이 소리를 듣고 하늘에 하얗게 날아올랐다가 모두 제자리에 내려앉았다. 나무꾼이 다시 소리쳐도 학들은 태연했다.
나무꾼을 따라서 학이 있는 굴 앞에 가 선 부자와 관청 우두머리는 입이 해벌쭉해졌다. 굴속에 노란 금덩이가 두 개나 있었다. 그들은 그것을 꺼내 하나씩 가졌다.
그들의 수작을 지켜보던 학들은 일시에 하늘로 날아올라가더니 멀리멀리 사라져 갔다.
학을 잡으려다가 금덩이만 들춰낸 그들은 섭섭해도 돌아서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발자국을 뗄 때마다 금덩이가 커지었다. 그들은 서로 자기 금덩이가 커진다고 좋아서 야단이었다.
그들이 산봉우리를 한 절반쯤 내려왔을 때는 금이 무거워서 등에다 지지 않으면 안 되었다. 급기야 그들은 옷을 벗어 금을 싸고 등에다 졌다. 걸을수록 금은 무거워져서 숨도 쉬기 바쁘고 발도 옮겨 떼놓기가 어려워졌다. 하지만 그 귀한 금을 버릴 수는 없었다. 버리자니 아깝고 그냥 지자니 무겁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망설이던 그들은 그만 금덩이에 깔려서 엎어지고 말았다.
금밑에서 빠져나오려고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움직일수록 금이 커지는 바람에 둘은 그 금덩이에 눌려 황천객이 되고 말았다.
그들이 숨지자 학들이 다시 날아왔다.그 후 나무꾼은 학들이 준 금덩이를 가지고 타향에 가서 집도 짓고, 밭도 사고, 아내도 맞아들이고, 복을 누리었다.
사람들은 학의 굴이 있던 벼랑을 학을 살려 놓아준 곳이라 하여 방학대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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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속의 용궁]
천지에서 하얗게 떨어져서 흘러가는 강물을 끼고 어느 한 언덕에 초가집 한 채가 있었다. 앞에는 백하수白河水요 뒤에는 청산靑山이라 보기에는 오붓한 초가집이었지만 이 집에는 한 불행한 가정이 살고 있었다.
그 집에서는 형제가 살고 있었는데 형은 장우라 부르고 동생은 바우라 불렀다. 형은 열다섯 살이고 동생은 열두 살이라 살림도 꾸려나가기 어려운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바우는 중병重病에 걸려 누워있었다.
장우는 바우의 병을 낫게 하려고 산에 가서 약을 캐오고 외지에 가서 의사를 청해오는 등 애를 썼지만 동생의 병은 돌아설 줄 몰랐다.
핏기라곤 없이 빼빼 말라지는 동생의 모습을 볼 때면 장우는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장우는 동생의 병시중을 들다가도 가끔 어머니가 생각나서 망연해지곤 하였다. 어머니가 계실 때에는 그도 응석둥이었다. 밖에 나가 뜀질하다가 배가 고프면 집에 달려와서 '어머니, 배 고파요.' 하고 소리치면 어머니는 먹을 것을 주었던 것이다.
'아이구!' 바우는 갑자기 신음소리를 크게 내었다. 장우는 동생이 덮은 누더기를 바로잡아주고는 또다시 어머니를 그리워했다. 그의 눈에서는 방울방울 맑은 눈물이 떨어졌다. '얘야, 난 인제... 틀렸다. 넌 동생을.... 잘.... 보살펴라....' 유언을 남기던 어머니 얼굴이 선하게 떠올랐다.
어느덧 밤중이 되었다. 장우는 졸음이 와서 견딜 수 없었다. 눈두덩이가 천근처럼 무거워졌다....
어머니가 오셨다. 인자한 얼굴로 오셨다. 어디서 얻었는지 새하얀 치마저고리를 입으셨다. 바우 곁에 다가선 어머니는 바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측은한 눈길로 바우를 내려다보았다.
'네 병을 떼다면 백두산천지의 용궁에 가서 약을 얻어와야 한단다. 그런데 나이어린 장우가 어떻게 가겠느냐?' 어머니는 천천히 장우한테로 돌아섰다.
'어머니, 내가 왜 어리다고 그래요. 길만 알려주세요. 얼마든지 갔다올 수 있어요.'
'그래, 우리 장우가 장하지.' 깨어 보니 꿈이었다.
장우는 밖에 나가서 하늘을 쳐다보았다. 별들이 도글도글 여물었다. 동녘이 푸름히 밝아오기 시작하였다.날이 밝자 장우는 천지를 향하여 떠났다. 하늘엔 꽃구름이 흘렀다. 나무에선 새들이 지저귀었다.
장우는 어머니가 생전에 어디로 해서 가야 백두산으로 갈 수 있다던 말이 생각나서 곧추 그 방향으로 갔다.들판도 지나고 가시덤불도 헤치고 강도 건너고 산도 넘었다. 바지가랭이와 옷소매가 여러군데 찢어졌다.팔과 다리의 여러 곳에 생채기도 생겼다. 온통 바위천지인 벼랑이 앞길을 막았다. 어떻게 벼랑을 넘어갈까 하고 궁리하며 길을 찾았다. 한 곳에 좁다란 오솔길처럼 길이 틔어있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더니 실로 그랬다. 벼랑기슭에서 숨을 돌리며 땀을 들인 장우는 벼랑길에 달라붙었다.
'벼랑에 오를 땐 아래를 보지 말아야 하느니라.'라고 하던 어른들 말이 생각나서 장우는 벼랑꼭대기에만 눈길을 팔며 한발자국 두발자국 톺아올랐다.(*톱다: 샅샅이 뒤지면서 찾다-운영자 주)
한참 기어오르던 장우는 길을 따라 가로질러 나갔으나 길이 막혔다. 벽처럼 깎아지른 벼랑이 여남은 (10~그 이상-운영자 주)발 너비로 섰는데 발붙일 곳이 없었다. 그것만 넘으면 앞길이 환하였다.
장우는 속이 바질바질(=버쩍버쩍,바짝바짝-운영자 주) 탔다. 뛰어도 못넘고 날 수도 없지, 그러나 죽으나 사나 넘어야 할 천험天險(험한 벼랑)이었다. 장우는 무릎을 꿇고 앉아서 하늘에 대고 두손을 싹싹 빌면서 애원하였다.
'하늘님이시여, 내 동생을 불쌍히 여기시고 내 앞에 길을 내어주시옵소서!'
장우가 감았던 눈을 뜨고 보니 하늘에서 학 한 쌍이 날아 내려오고 있었다. 학들은 기다란 주둥이에다 새하얀 바오라기(=짧은 막대기)를 한끝씩 물고 내려왔다. 양켠에 제각기 내린 학들은 바오래기 끝을 바위에 놓고 부리로 똑똑 쪼았다. 그리고는 기다란 다리를 껑충거리다가 서로 날아갔다 날아왔다 하였다. 눈깜짝할 사이에 옥석교가 생겨났다. 이 모든 것을 눈이 휘둥그래져 지켜본 장우는 너무도 기뻐서 하늘에 대고 연신 절을 올렸다.
옥석교를 건너서 천지가에 이르니 눈세계였다. 천지는 은으로 둘레를 두른 둥그런 거울 같았다. 장우는 용궁으로 들어가는 문이 어디에 있을까 하고 두리번거리며 천지가를 거닐었다. 그는 눈 속에서 뒹구는 빨간 잉어를 발견하였다. 언제부터 뒹굴었는지 잉어는 기진맥진하여 아가미만 펄쩍펄쩍하였다.
'이놈은 왜 여기서 고생하나?' 장우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잉어를 두 손으로 받들어 천지 속에 넣었다. 잉어는 물위로 헤엄쳐가다가 세 번이나 돌아와서 물위로 펄쩍 뛰어올랐다. 그리고는 둥그런 원을 그리며 느릿느릿 돌오가던 잉어는 꼬리로 찰랑 물을 치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장우는 두 눈이 휘둥그래졌다. 글쎄 천지 속으로 들어가는 돌층계가 눈앞에 나지 않았는가! 돌층계는 천지 밑까지 깊숙이 뻗어져있었다. '용궁으로 들어가는 돌층계일지도 몰라. 한번 들어가보자.'
장우는 천천히 층계를 내리 디뎠다. 얼마나 깊게 내려섰는지 하늘이 보이지 않았고 주위에선 고기들이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천지 밑에는 수정으로 지은 웅장한 궁궐이 있었다. 궁궐에는 큰 대문이 나있었고 대문 양켠에는 푸르싱싱한 용뇌나무(용뇌수:용뇌향과의 상록교목, 보르네오와 수마트라 원산으로 줄기가 갈라진 틈에서 무색투명한 용뇌향을 얻음. 구강청량제, 방충제 등에 쓰임-운영자 주)가 서있었다. 그 나무 밑에는 용검을 든 무사들이 보초를 서고 있었다. 보초병들의 얼굴은 사람과 비슷하였지만 머리에는 뿔이 나있었고 허리에는 은회색날개가 달려있었다. 장우는 이러한 것들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들어갈까 말까 망설였다.
'자, 가자요.'
갑자기 처녀의 맑은 목소리가 정답게 들려왔다. 온몸이 연분홍색깔인 연분홍처녀가 생글생글 웃고 있지 않는가.
'저어...'
'호호... 전 빨간 잉어래요. 우리 아버지가 기다리고 계셔요.'
처녀는 장우의 옷자락을 허물없이 잡아끌었다. 처녀는 푸른 세계에 홀로 피어난 한송이 연꽃처럼 고왔다.
장우는 연분홍처녀를 따라서 용궁 안에 들어섰다. 아름다운 음악소리가 은은히 들려오고 이따금 둥둥 북소리도 들려왔다. 궁궐 복판에는 수염이 가득한 용왕이 용상에 앉아있었다. 코밑수염은 좌우로 갈라져 양볼로 구불구불 올라 뻗어서 뿔에 걸려있었고 턱수염은 가슴을 가리웠다가 다시 뻗어 올라서 어깨를 덮고 있었다. 오른쪽 어깨로 올라간 것은 붉은 수염이고 왼쪽어깨로 올라간 것은 흰수염이었다.
으리으리한 궁궐, 엄엄한(=몹시 엄한-운영자 주) 용왕을 처음으로 마주한 장우는 겁이 나서 온몸이 바르르 떨렸다.
'무서워말아요. 아버지세요.' 연분홍처녀가 옆구리를 툭 다치며 일깨워주어서야 장우는 시름을 훌 놓았다. 용왕 앞으로 사뿐사뿐 다가간 처녀는 입을 열었다.
'아버지, 이분이 저를 구해주셨어요.'
용왕의 목소리는 우렁우령하였다.
'공주를 구해준 그대에게 감사를 드리오.' 용왕은 만면에 웃음을 짓고 용상에서 내려와 장우의 팔을 잡고 옆칸으로 들어갔다.
옆칸은 연회청이었다. 벌써 용궁의 산해진미山海珍味가 풍성하게 갖추어져 있었다. 용왕은 왼쪽에 딸을 않히고 오른쪽에다 장우를 않혔다. 연회상에 마주 앉았으나 장우는 음식을 먹을 수 없었다.
'왜 자시지 않나요?' 공주가 물었다.
장우는 일어나서 용왕에게 절을 올리며 말하였다. '용왕님, 지금 제 동생 바우가 생사를 다투고 있나이다.' 이렇게 허두(=虛頭 ;말이나 글의 첫머리-운영자 주)를 뗀 장우는 용궁까지 오게 된 사연을 처음부터 쭉-- 이야기하였다.
그의 말을 듣고 난 용왕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이었다. 용왕은 그 자리에서 붉은 수염 한오리와 흰 수염 한 오리(실, 나무, 대 따위의 가느다란 가닥-운영자 주)를 뽑아서 장우의 손에 쥐어주면서 '이것을 갖고 가면 꼭 쓸모가 있을거네. 동생의 병을 뗄 약은 얘가 갖다줄거네.' 장우는 너무도 기뻐서 연회가 어느새 끝났는지도 몰랐다.
공주는 장우를 바래면서 윤기 반드르르한 노랑버섯 세송이를 주었다. '이것을 하루에 한 송이씩 달여 먹이면 동생의 병이 인차( 이내) 떨어질거예요.'
장우가 돌아오는 길은 아주 순조로왔다. 강을 만나면 다리가 있고 벼랑을 만나면 평탄한 길이 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장우는 용왕한테서 선사받은 수염을 궤짝 안에다 넣고 인차 약을 끓였다. 동생한테 약을 한번 먹였더니 얼굴에 피기가 돌고 약을 두 번 먹였더니 일어나 앉고 약을 세 번 먹였더니 밖에 뛰어나가서'형님, 형님!'하고 퐁퐁 뛰었다.
동생의 병이 가신 듯이 사라지자 장우는 천근 짐이라도 부린 듯 어깨가 가벼워졌다. 그는 동생의 병을 뗄 약을 주던 용왕이 생각나서 궤짝문을 열었다. 용왕의 수염은 간 곳이 없고 금 한 가락과 은 한 가락이 금빛은빛을 뿌리고 있지 않는가!
장우는 바우를 불러들여 이 기쁨을 낱낱이 이야기하고 무릎을 꿇고 천지용왕에게 절을 올렸다.
- 남은철로부터 안도현 이도백하에서 78년 5월 리천록(연변) 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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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월,라월의 사랑]
중국 연변의 조선민족사에서 「백두산 전설」속에 백두산에서만 자라는 솔인 미인송(美人松)전설이 있다.
미인송은 세계의 모든 소나무 중에서 가장 키가 크고 아름답다.
미인송이라 생겨난 설화문화의 주인공은 송풍(松風)이란 청년과 라월(蘿月)이란 처녀이야기 이다.
'송풍라월'이란 말은 원래 솔가지 사이로 부는 바람과 덩굴사이로 비치는 달빛을 뜻하지만 옛사람들은 미인송의 전설을 품은 선남선녀를 의인화하여 놓았다.
백두산 북쪽 안도현 복흥 이도백하 마을 어귀에는 송풍라월이라 부르는 미인송 숲이 있는데 이 숲은 이 마을 에 살았던 송풍과 라월의 애절한 사랑이 깃들여 있다.
둘은 어려서부터 한 마을에서 자랐고 송풍은 건강한 청년이 되고 라월은 마음씨 곱고 예쁜 처녀가 되었다.삼월 보름달빛이 백하강 물살을 은빛으로 내리던 밤 , 두 사람은 장차 부부가 되자는 언약을 맺었다.
찢어지게 가난하여 해마다 마을의 부자이자 이장인 구호한테서 빌린 곡식과 빚으로 고통받기는 두 집 다 마찬가지였고 마을 이장 구호는 라월의 미모를 남 몰래 탐했다.애첩으로 들어 앉힐 궁리를 하던 중 라월과 송풍과 가까이 지낸다는 소문을 듣고 구호는 사람을 강제로 떼어놓을 꾀를 짜내었다.송풍에게 1년 동안 성 쌓는 부역을 떠맡기면서 부역이 싫으면 밀린 빛을 즉시 갚으라는 것이었다.
부역을 떠나기 전날 밤 송풍과 라월은 백하강 기슭에서 몰래 만나 이승에서 함께 못살면 저승에서라도 부부가 되자는 언약을 확인하며 둘은 애절하게 포옹했다.
송풍이 떠나자마자 구호는 중매꾼을 라월에게 보내 자신의 첩이 되도록 회유하기 시작했고 라월은 그때마다 중매꾼을 따돌리며 1년을 버텼다.
1년 뒤 다른 부역꾼들은 다 돌아왔지만 송풍만은 오지 않았다.몇칠 뒤 송풍이 성을 쌓다가 돌에 치어 죽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중매꾼은 매일같이 라월을 찾아와 구호의 첩이 될 것을 종용하기에 이르렀고죽은 사람을 기다리지 말고 팔자를 고치라고 권한 것이다.라월이 거절하자 구호는 최후의 수단으로 밀린 빛을 독촉했고빛을 못 갚으면 종으로 잡아가겠다고 협박했다.
구호는 그의 머슴들에게 꽃가마와 오랏줄을 들고 가서 라월이 어느 쪽을 택하겠느냐고 밀어 부치도록 시켰고 애첩이면 꽃가마를 태우고 거절하면 오랏줄에 묶어 끌고 가겠다는 것이다.
라월은 하룻밤만 기다려 달라고 애원했다.달빛이 교교하게 흐르는 밤 라월은 새 옷으로 갈아입고 송풍과 언약했던 백하강 기슭으로 나가서 바위 위에 물 한 그릇 떠놓고 절을 올리면서홀로 송풍과 혼인을 맺는 의식을 치루고는 강물에 몸을 던졌다.
라월의 주검은 백하강 물굽이를 몇 번 돌다가 이도백하 마을 어귀에 떠밀려 왔고 백하강도 슬피 울며 부드러운 모래와 흙을 실어다 라월의 주검을 덮어 밋밋한 무덤을 만들어 주고는 다시 제 갈 길로 흘러갔다.
무덤 위에 솔한 그루가 솟아났고 라월이 죽은 지 3년 뒤에 송풍이 돌아왔다.성을 쌓다 돌에 치여 죽었다가 깨어났지만 상처가 워낙 심하여 몸이 온전하지 않았다. 송풍은 라월의 소식을 들었고 제대로 걸을 수도 없는 몸으로 기다시피 돌아온 고향에서 확인한 라월의 죽음을 접하고 송풍은 목놓아 울었다.
송풍과 라월과 언약을 맺었던 강변으로 나갔다.강물 소리도 통곡으로 변하고 마을 사람들이 알려준 대로 라월의 무덤을 찾아갔다.무덤 위에 미인송 한 그루가 하늘을 향해 자라고 있었다.
송풍은 미인송을 끌어안고 울다가 늦은밤 마을로 돌아왔고 혼신의 힘으르 다해 구호의 집에 불을 질렀다.화염에 휩싸인 광경을 지켜보던 송풍은 큰 소리로 웃으면서 라월의 묘지로 향했다.
라월을 부르면서 미인송을 끌어안은 송풍은 붉은 피를 토하며 죽었다.
송풍은 주검 안에서 안개가 피어오르기 시작했고 안개는 미인송을 휩싸며 빙빙돌다가 하늘로 천천히 올라갔다.
그 뒤 미인송은 쑥쑥 자랐고 가지마다 주렁주렁 솔방울이 맺히고 익어서솔씨들이 바람에 흔들려 사방으로 퍼졌다. 송풍의 피는 미인송의 몸이 되고, 푸른 잎은 라월의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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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설봉]
리천록
백두산의 옛전설
백두산 16기 봉의 하나인 옥설봉은 천지 남쪽에 있는데 사시장철 적설이 십여 장이나 쌓여 있어 설산이라고 부른다. 산 아래에는 얼음으로 된 빙혈이 많은데 빙혈로부터 연한 연기 같은 것이 모락모락 피어올라 마치 선인이 연단(煉丹)을 굽는 것만 같았다. 이 봉우리를 옥설봉이라 부르는 데에는 이런 이야기가 전한다.
아득한 먼 옛날 백두산은 바다 밑에 있었는데 후에 천지가 변하여 육지가 되어 나무도 생기고 짐승들도 생겨 나왔으며, 사람들도 이 고장에 와서 살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한 해 갑자기 화산이 터지는 바람에 모든 생물이 생매장을 당하게 되어 어딜 가나 짐승들이 뛰노는 것을 볼 수 없었고, 사람들의 말소리는 더구나 들을 수가 없었다.
이 때 백두산 북쪽 기슭에 천명이라고 부르는 총각이 있었는데 천지신명이 도와 유독 그만이 재난 속에서 살아남아 황폐한 이 고장에서 근근득식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불연듯 파랑새 한 마리가 날아와서 청아한 목소리로 지저귀며 천명이 앞으로 날아갔다.
생명을 가진 것이란 좀체로 보지 못하다가 나는 짐승이라도 보니 어찌나 기쁜지 천명이는 무작정하고 새가 날아가는 쪽을 따라갔다. 거의 한 식경이나 새를 따라가던 천명이는 좀 이상한 생각이 들어 길을 멈춰섰다. 그랬더니 파랑새도 날아가지 않고 그의 옆에 내려앉아 지저귀었다. 말 못하는 짐승이라도 필유곡절이라 천명이는 다시 생각하고 파랑새를 따라 가기로 작심했다.
천명이 파랑새를 따라 하루 낮 하루 밤을 걸어서 높은 산봉우리에 오르니 아침노을이 막 피어오르고 있었다. 산에 큰 굴이 있어 파랑새를 따라 그 굴속으로 들어갔다. 굴속에는 밑보리 이삭이 수북히 쌓여 있었고, 퐁퐁 솟구치는 정갈한 샘물도 있었다. 파랑새는 포르릉 한 구석에 날아가 앉더니 째잭째잭하며 울어댔다.
천명이 보니 웬 처녀가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천명이는 처녀를 흔들어 깨웠다. 헌데 처녀는 가는 실오리 같은 숨이 붙어서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다. 천명이는 정신을 바싹 차리고 처녀를 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니 파랑새가 작은 주둥이로 밑보리알을 부지런히 까댔다.
천명이는 돌가마를 걸고 미음을 쑤어서 처녀의 입에 한 방울 한 방울 떠넣어 주었다. 반나절이 지나서 처녀의 얼굴에 핏기가 돌며 숨도 고르게 쉬었다. 천명이가 일심으로 처녀를 구하는 것을 본 파랑새는 밑보리알을 물어다 돌가마에 넣어도 주고 천명이더러 죽물이라도 마시라고 짹짹거리며 울었다.
천명이는 죽물 몇 모금 마시자 저도 모르게 그만 소르르 잠이 들었다. 그러자 비몽사몽간에 향기 진동하더니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대나무 지팡이를 짚고 와서 점잖게 이르되,
저 처녀는 하늘이 도와 요행 명을 보존했은즉 옥설봉에 가서 선단을 구해다 먹일지라!
라고 말하였다.
천명이 옥설봉이 어디에 있느냐 물으려는데 백발노인은 구름배를 잡아타고 하늘 공중으로 떠나가 버렸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천명이 자기 소리에 놀라 깨니 꿈이었다. 천명은 꿈은 현실이라 믿고, 옥설봉을 찾아가 약을 구해다 처녀를 구하리라 굳게 마음 먹었다.
천명이 밖에 나서 궁리가 막연하여 이 산 저 산을 바라보는데 파랑새가 다시 날아와 길을 인도해 주었다. 천명이는 파랑새를 따라 가고 또 갔다. 한 봉우리를 오르고 나면 또 한 봉우리가 나타났다.
봉우리마다에는 백옥인지 빙설인지 분간할 수조차 없는 돌들이 햇빛을 받아 빛을 뿌리고 있어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천명이는 파랑새를 따라 궁전같은 동굴 속에 이르렀다. 한 아름씩 되는 백옥기둥이 서 있고, 벽과 천장에는 옥고드름이 달려 있었다.
신기하기도 하지만 두렵기도 한 동굴이었다. 하지만 옥설선단을 꼭 찾아내어 그 처녀를 구하리라는 천명의 마음은 일편단심이었다. 천명이 숨이나 돌리려 하는데 꿈에서처럼 짙은 향기가 진동하더니 굴 한 가운데 꿈에 본 백발노인이 다시 나타났다. 백발노인은 곱게 다듬은 얼음 의자에 앉아 있었다.
허허허… 내 자네 이렇게 찾아올 줄 믿었네. 내 약을 줄테니 가지고 가서 사흘에 한 알씩만 먹이면 될 걸세.
백발노인은 팔소매 안에서 옥설선단 세 알을 꺼내 천명에게 주었다. 천명이 그 약을 받아들고 너무도 고마워 엎드려 절하려는데 백발노인은 바람처럼 사라졌다. 천명이 옥설단을 받아들고 밖에 나서니 갑자기 몸이 허공중에 떴다. 천명이 발밑을 내려다보니 자기는 옥같은 징반 위에 서 있는데 발 아래 산과 바위들이 뒤로 자꾸만 물러갔다. 파랑새는 천명의 어깨에 앉아 있었다. 천명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처녀가 누워있는 굴속까지 날아왔다.
천명은 옥설선단 한 알을 꺼내어 물에 풀어 처녀의 입에 떠 넣었다. 처녀는 옥설선단을 한 알 받아먹자 눈을 뜨고 사방을 살폈다.
천명이를 보자 처녀는 수줍어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힘이 모자라 일어날 수는 없었다. 천명이는 처녀를 자리에 누워있으라 하고는 자기가 이 곳으로 오게 된 자초지종도 이야기하고, 옥설선단을 얻어오게 된 사연도 말해 주었다.
처녀는 눈물을 흘리며 낮은 소리로 천명에게 감사드리고 뒤어어 자기는 땅이 꿈틀거리며 요동 칠 때 큰 흙덩이에 얹혀 허공 만리에 오르다 정신을 잃었는데 눈을 떠보고서야 이 고장에 오게 된 줄 알게 되었다고 말하고는 다시 눈을 사르르 감았다.
사흘 뒤에 천명이는 처녀에게 또 옥설선단 한 알을 먹였다. 그랬더니 처녀가 기지개를 켜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또 사흘이 지나자 천명이는 마지막으로 한 알 남은 옥설선단을 처녀에게 먹였다. 그러자 처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굴밖 출입을 했다.
어느덧 처녀는 몸이 완쾌되어 천명이와 함께 이 일 저 일을 하였다. 일이 이렇게 되자 파랑새는 연이어 며칠 부지런히 밑보리 이삭을 물어다 쌓더니 천명이와 그 여인 앞에 사뿐 내려앉아 머리를 땅에 숙이며 절하고는 포르릉 하고 날아올랐다. 천명이와 처녀가 굴밖에 따라나오니 파랑새는 그들 머리 위에서 세 바퀴 뱅뱅 날아 돌고는 멀리멀리 사라져 갔다.
그 때로부터 일 년이 지났다. 어느 날 파랑새가 이 굴에 와 보니 굴앞 뜨락에는 밑보리가 무성하게 자랐는데 굴 앞에서는 천명이와 그 여인이 옥골선풍 같은 아들을 한가운데 놓고 즐겁게 웃으며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천명이와 그 여인은 옥설선단으로 귀중한 목숨을 구해주고 행복한 가정까지 이루게 한 백발노인의 은혜를 잊지 못해 해마다 한번씩 향불을 피우고 백발노인과 파랑새의 장수를 빌었다.
이후부터 생명이 없던 백두산 일대에 그의 자손들이 퍼져 잘 살게 되었는데 후에 그의 자손들은 옥설선단 덕분에 조상들이 살아난 봉우리를 옥설봉이라 하고, 옥설봉에 깃든 사연을 대를 이어 전해 주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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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호봉(臥虎峰)이 된 호랑이]
옛날, 와호봉 기슭에 자리잡은 어느 마을에서 연희라는 아이가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 어느 봄날, 어머니와 둘이서 나물을 캐러 산에 갔던 연희는 광주리에 가득하게 나물을 채우고는 이마에 배어난 땀을 손등으로 닦으며 잠시 쉬고 있었다. 연희의 눈 앞에는 노란 꽃이 한아름 피어 있었다.
“엄마, 저 꽃 좀 봐요. 너무나 고와요!”
연희가 꽃을 꺾으려고 가까이 가 보았더니 빨간 꽃과 하얀 꽃들도 여기저기에 피어 있었다. 연희가 꽃들 사이를 누비며 이 꽃 저 꽃을 꺾고 있는데 뭔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어머니! 여기에 웬 호랑이 새끼가 있지?”
검은 줄이 쳐진 노란 새끼호랑이 한 마리가 연희를 올려다보며 다가오고 있었다. 연희가 호랑이 새끼를 안고 가자 어머니가 놀라며 말했다.
“아니, 얘가 무슨 봉변을 당하려고 그걸 가지고 왔니?”
“왜요? 엄마”
“새끼를 가져가면 어미 호랑이가 찾아와서 해코지를 한단다. 어서 원래 있었던 데다 갖다 놓아라”
“하지만 이걸 좀 봐요. 젖을 먹지 못해서 빼빼 말랐어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너무 불쌍해요”
“정말 그러네. 어미가 사냥꾼에게 잡혔나 보구나”
“엄마, 집에 가져다가 길러요”
두 모녀는 새끼 호랑이를 안고 집으로 돌아와 어미의 젖 대신 콩물을 떠 먹이면서 정성스럽게 보살폈다. 연희는 잠을 잘 때도 곁에서 함께 자게 할 정도로 새끼호랑이를 귀여워했다. 「호돌이」라고 이름도 지어 주었다. 연희가 “호돌아” 하고 부르면 얼른 알아듣고 달려오고는 했다.
작은 새끼 호랑이었던 호돌이가 제법 크게 자랐을 때, 연희의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집에는 연희와 호돌이만 남게 되었다. 그런데 며칠 후, 그 마을의 부자가 불쑥 연희네 집에 찾아왔다.
“네 어머니가 살았을 때 내게 진 빚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 아무래도 네가 갚을 수 없을 것 같으니 그 대신 우리 집에 와서 잔심부름이라도 해야겠다” 라고 말하고 휑하니 가버렸다.
“호돌아, 이젠 우리 둘이서 같이 함께 살 수가 없단다. 내가 커서 살 곳을 만들게 되면 그 때 다시 함께 살자”
남의집살이를 하게 된 처지여서 호돌이까지 데리고 갈 수 없게 된 연희는 슬퍼하면서 말했다.
그 후, 연희와 호돌이는 함께 살지는 않았지만 샘터나, 밭에서 이따금 만날 수는 있었다.
세월은 흘러 연희는 어느덧 아리따운 처녀가 되었고, 호돌이도 제법 늠름한 호랑이 티가 나게 되었다. 연희는 같은 마을에 사는 더벅머리 총각을 사랑하게 되었고, 호랑이도 그것을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 밤. 흑심을 품은 부잣집 주인이 연희의 방에 몰래 들어와 그녀를 범하려 했다.
“아앗, 저리 비켜요!
깜짝 놀라며 저항하던 연희는 베고 있던 목침으로 그의 뒤통수를 힘껏 내리치고는 집 밖으로 뛰어나갔다. 정신 없이 뛰어서 산기슭까지 온 연희는 그만 기진맥진하여 쓰러지며 정신을 잃고 말았다.
새벽녘쯤 되었을까? 갑자기 서늘한 기운이 느껴져 연희가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떠보니 호랑이가 옆에 앉아 그녀를 지켜주고 있었다. 연희는 너무나 반갑고 서러워서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그러자 호랑이는 갑자기 자기 등을 꼬리로 치면서 연희에게 타라는 시늉을 했다. 연희가 의아해 하며 등에 타자 호랑이는 바람처럼 빠르게 달려가더니 어떤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연희는 그 동굴에 머물면서 호랑이가 가져 다 준 것을 먹으며 하루를 보냈다.
그 날 한밤중이 되었을 때 난데없이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으응?”
연희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몸을 움츠렸다. 그런데 그녀의 앞에 나타난 것은 놀랍게도 더벅머리 총각이었다.
“아니, 당신이 어떻게 여기를?” 연희는 너무나 반가워 말을 잇지 못했다.
“호돌이가 데려다 준거라오. 밤중에 갑자기 내 방에 뛰어들더니 다짜고짜 나를 등에 태우고 여기로 달려왔다오”
“아! 그랬군요. 역시 호돌이가 당신을 데려다 주었군요”
이튿날. 동이 틀 무렵이 되자 호랑이가 다시 동굴로 찾아왔다. 그리고 두 사람의 옷자락을 물어 당겼다.
“으응?”
“호돌이가 왜 이러는 거지?”
두 사람이 이상하게 생각하며 밖으로 나오자 호랑이는 또 자기 등에 타라는 듯이 꼬리를 흔들었다.
두 사람이 등에 타자 호랑이는 천천히 달려가 마을로 내려왔다. 그 모습을 본 마을 사람들은 두 눈을 크게 뜨면서 놀랐다.
호랑이는 곧장 부자집 안으로 들어갔는데 집 안은 썰렁했으며 아무런 인기척도 없었다. 호랑이가 전날 밤에 총각을 동굴까지 업어다 주고 다시 부잣집으로 가서 부자를 물어 죽이고 나머지 식구들을 쫓아버렸기 때문이었다.
연희와 더벅머리 총각은 부잣집의 재산과 양식을 모두 마을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행복한 가정을 꾸며나갔다.
그 후, 호랑이는 항상 마을 앞산에 웅크리고 앉아 연희를 지켜주다가 그대로 굳어져 산이 되었는데, 그 산을 사람들은「외호봉(臥虎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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