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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9장
간단히 복습합니다. 1장과 4장은 질서와 조직의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셨지만 주님은 그 백성들이 광야를 건너가야 하기 때문에 광야를 건너는 일은 반드시 질서와 조직이 필요합니다.
5장 6장의 이야기는 그 질서와 조직은 조직의 힘만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고 하나님의 백성들의 구원 사역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함께하셔야만 그 질서와 조직이 움직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조직을 주시고 조직을 부정하게 하시고 질서 있게 하신 그 진중에 여호와께서 계시려면 종결해야 한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것이 5장 6장입니다.
엄격히 말하면 사실 5장부터 시작된 그 정결에 관한 요구가 9장까지 이어집니다.
그래서 5장 6장에는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여러 제거해야 하는 등의 제거해야 하는 것들이 있어야 한다면 이제
7장부터는 있어야 하는 것들이었죠.
있어야 하는 것들이 뭐였나요? 우선 지휘관들의 모범이었죠.
그들이 헌물을 들였습니다. 수레 6개와 소 12마리 드렸잖아요.
그래서 그들의 헌신으로 결국 하나님께서 진중 가운데 임재하시는 그 역사를 위해 성소봉사하는 그 종들이 결국 성소와 관련된 모든 물건들을 옮기는데 수레가 쓰이고 이제 소가 되었죠.
7장에 12지파의 대표자들이 드린 똑같은 헌물을 12번 기록했죠.
12번 기록했다는 사실이 또 의미 있다고 말씀을 드렸죠.
똑같은 기록을 12번 반복되니까 사람 이름만 바뀌고 우리 읽는 사람들은 지루하지만은 그렇게 드린 사람을 하나님은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고 기억하신다는 사실을 나타내주고 그 다음에 마지막에 그것들을 또 다 모아서 총계를 냈었죠.
7장 끝에 각 지파마다 이렇게 드렸더니 총계 이게 뭐죠?
한 사람도 빠지지 않을 때 이렇게 총합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나타내줍니다.
8장은 등대가 나왔습니다. 등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뭐였죠?
등대의 방향이었습니다. 상위에 있는 금잔인데 앞으로 이렇게 빛을 비추게 하라.
등대의 빛을 어떻게 비추라 하는 것이었죠. 그다음 8장 후반부에는 5절부터 26절에 레위인을 구별하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레위인 구별 이야기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뭐였습니까?
나실인과는 달리 전신 삭도였습니다. 그리고 레인을 구별하는 목적이 뭐라고요?
이거 핵심이 봉사였어요. 근데 또 중요한 게 있었죠.
그들을 봉사하게 하고 그들로 속죄하게 하려는 것이다.
굉장히 제가 의미부여 했었죠. 제가 지난주에 말씀드리고 하면서 저희 내자 이야기까지 해가면서 이 속죄하게 하는 얘기 의미 설명해 드렸잖아요.
레위인은 속죄하는 일 안 합니다. 성소에 봉사하는 제사장을 돕는 일밖에 안 해요.
그런데 누군가 속죄하는 일을 돕는 레위인들을 성경은 뭐라고 표현해요?
속죄를 돕게 하고가 아니에요. “속죄하게 하고” 돕는 일도 그 일입니다.
그 일이 이루어지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주의 사역에 크고 작은 일 모두 다 함께 하는 일을 주님께서는 똑같이 그 일을 한다고 보신다 살펴보았습니다.
9장에 건너와서 이제 출발을 위한 마지막 준비로 유월절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제 오늘 그 이야기를 지난번에는 그저 서론만 잠깐 말씀드렸던 그 내용을 이제 좀 제대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민수기 9장으로 갑니다.
민수기 9장 1절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기 12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오면서 유월절이 시작됐죠.
그렇죠 출애굽기 12장에서 유월절이 시작됩니다.
우리 한번 출애굽기 12장 가서 살짝 살펴보고 오겠습니다.
출애굽기 12장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말씀하시되”(출 12:1)
그다음 12장 2절이 캘린더의 시작이라고 그랬죠.
“이 달을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출 12:2)
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 이게 이제 유월절에 시작 이면서 이제 성력 달력이 이제 시작되는 순간이죠.
이게 첫 유월절입니다. 그렇게 하고 만 1년이 지났습니다.
그래서 제 2년이 된 거죠. 절 민수기 9장 1절입니다.
그 사이에 정확하게 1년이 지난 거죠. 애굽 땅에서 나온 다음 해 첫째 딸, 첫째 딸의 여호와께서 신의 광야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첫째 달이죠.
여러분 민수기 1장 1절을 다시 보세요.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후 둘째 해 둘째 달 첫째 날에 여호와께서 시내 광야 회막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민 1:1)
첫째 날에 그랬죠. 그러니까 1장 1절은 둘째 해 둘째 달 첫째 날이에요.
근데 9장 1절은 애굽에서 나온 다음에 첫째 딸 첫째 딸이죠.
그러니까 9장 사건이 민수기 1장 1절보다 먼저 있죠.
9장 1절부터 5절까지입니다. 우선 그래서 기록 순서가 발생 사건 순서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우선 제가 읽겠습니다.
“[1] 애굽 땅에서 나온 다음 해 첫째 달에 여호와께서 시내 광야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이스라엘 자손에게 유월절을 그 정한 기일에 지키게 하라”(민 9:1-2)
그 정한 기일 곧 이달 첫째 달 열넷째 날 해질 때에 1월 14일이죠.
“그 정한 기일 곧 이 달 열넷째 날 해 질 때에 너희는 그것을 지키되 그 모든 율례와 그 모든 규례대로 지킬지니라”(민 9:3)
5절
“그들이 첫째 달 열넷째 날 해 질 때에 시내 광야에서 유월절을 지켰으되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것을 다 따라 행하였더라”(민 9:5)
이렇게 9장 1절부터 5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만 1년 후에 그들의 역사에서 두 번째
이 유월절을 지킨 것을 말하고 있죠.
그야말로 그 모든 2절 3절에서 한 2 3절 끝에 말한 대로 그 모든 율례와 그 모든 규례대로 했습니다.
아주 원칙대로 지킨 것이죠. 그런데 6절부터 다른 사건이 생깁니다.
그때에 사람의 실체로 말미암아 부정하게 되어서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수도 있고 친척이 돌아가실 수도 있죠.
그래서 유월절을 지킬 수 없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여러분 출애굽기 10 이 창에서 맨 처음 유월절을 지킬 때는 시체 만진 사람은 유월절 못 지킨다 이런 게 없었죠.
그때 다 애굽에 있을 때 처음이었어요. 그러니까 시체를 만져서 부정하게 된 자는 유월절을 지킬 수 없다 이런 이야기 자체가 맨 처음 애굽에서 유월절 지킬 때는 없었는데 이제 이런 규칙이 언제 생겼는가 다 함께 민수기 19장 11절을 보시죠.
“사람의 시체를 만진 자는 이레 동안 부정하리니”(민 19:11)
이 부정한 날에는 아무런 떡도 마실 수가 없고 종교 예식에 참여할 수가 없어요.
이게 민수기 19장 11절에서 이제 제시된 거죠.
그전에 부정한 사람이 레위기 7장 20절을 보세요.
“만일 몸이 부정한 자가 여호와께 속한 화목제물의 고기를 먹으면 그 사람은 자기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요”(레 7:20)
그렇죠 그러니까 이런 법들이 다 성전이 세워지고 난 다음에 주어진 거예요.
여러분 그런데 출애굽기 12장 때는 성전이 없었잖아요.
성전은 출애굽하고 난 다음에 성전 지으라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그때는 성전이 없는 시절입니다. 그러니 그때는 부정에 의해 유월절에 참여할 수 있다고 하는 조례 자체가 없었어요.
그런데 여기 9장 6절의 말씀대로 시체로 말미암아 부정하게 되어서 유월절을 지킬 수 없게 되었어요.
근데 이 사람들이 가족이나 친척이 죽어서 장례식 치른 것도 슬픈데 살아가는 이들을 위해 장례식을 치른 슬픔 때문에 유월절에도 참여할 수 없게 되니까 공동체와도 단절되는 그런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죠.
그래서 이 사람들이 모세에게 요구합니다.
“[6] 그 때에 사람의 시체로 말미암아 부정하게 되어서 유월절을 지킬 수 없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그 날에 모세와 아론 앞에 이르러 [7]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사람의 시체로 말미암아 부정하게 되었거니와 우리를 금지하여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 정한 기일에 여호와께 헌물을 드리지 못하게 하심은 어찌함이니이까”(민 9:6-7)
우리가 뭐 안 하고 싶어서 한 줄 아세요?
우리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우리 친척이 돌아가셔서 어쩔 수 없이 장례 치르는데 유월절도 참여 못하게 아닙니까?
이렇게 된 거죠. 이제 이런 12장에서 이런 규례가 생기기 전에 다 공통적으로 유월절 시킨 거고, 이제는 규례가 만들어져서 유월절에 참석 못하게 되니까 이런 얘기를 하게 되는 거죠.
이때 모세가 뭐라고 말합니까? 8절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기다리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대하여 어떻게 명령하시는지 내가 들으리라”(민 9: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민 9:9)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나 너희 후손 중에 시체로 말미암아 부정하게 되든지 먼 여행 중에 있다 할지라도 다 여호와 앞에 마땅히 유월절을 지키되”(민 9:10)
“둘째 달 열넷째 날 해 질 때에 그것을 지켜서 어린 양에 무교병과 쓴 나물을 아울러 먹을 것이요”(민 9:11)
“아침까지 그것을 조금도 남겨두지 말며 그 뼈를 하나도 꺾지 말아서 유월절 모든 율례대로 지킬 것이니라”(민 9:12)
그다음 12절 끝에가 중요합니다.
유월절 모든 율례대로 지킬 것입니다.
여러분 두 번째 기회는 모세가 한 말 전하는 말이 아니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직접 선수하신 여호와의 말씀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12절을 잘 이해해야 돼요. “유월절 모든 율례대로 지킬 것이니라”
여기서 1월 14일이라고 하는 날짜는 하나님에 의해 2월 14일로 세컨 찬스가 주어졌는데 유월절 모든 율례대로 지킬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시니까 유월절을 1월 14일에서 2월 14일 한 번 더 하는 것은 사람을 위하는 탄력성 혹은 융통성이고 그 윤리를 다 지켜야 하는 것은 원칙인 거죠.
하나님께서 굉장히 실질적으로 해결해 주십니다.
즐거운 명절에 가능한 많은 사람이 포함될 수 있도록 융통성을 조정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여기서 전체 일정을 우리가 한번 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 함께 출애굽기 40장으로 돌아갑니다. 이제 일정을 한번 좀 찾아보겠습니다.
출애굽기 40장 17절입니다.
“둘째 해 첫째 달 곧 그 달 초하루에 성막을 세우니라”(출 40:17)
그러니까 제2년 1월 1일에 성소가 건립이 됐죠.
민수기 9장 1절부터 보죠.
애굽 땅에서 나온 다음에 첫째달 하고 그다음에 3절에 첫째 이달은 열넷째 날 그러니까 1월 14일이죠.
1월 1일에 성소가 건립이 되고 그다음에 1월 14일에 첫 번째 유월절을 지킨 겁니다.
여러분 그러니까 민수기 9장 1절로 5절은 사실상 바로 직후에 있었던 일이죠.
민수기 10장에 있을 때 있는 일이 아니고 이해되셨죠?
시간 순서로 보면 그러면 왜 1월 1일 다음 1월 14일에 있었던 일 1월 14일에 첫 번째 유월절이 있고 그다음에 민수기 1장 1절에서 2월 1일에 인구 조사가 시작이 됐죠.
이걸 시간 순서로 다시 다 정리하면 출애굽기 40장, 민수기 9장 1절 5절 그다음에 민수기 1장부터 쭉 이어지는 거죠.
그다음에 민수기 9장 6절에 2월 14일이라고 그랬으니까 두 번째 유월절 지키는 9장 6절 이하 사건은 2월 14일에 있죠.
그렇죠 그렇게 두 번째 유월절을 지킵니다.
민수기 10장 11절에 보면 드디어 출발하는데 둘째 해 둘째달
“둘째 해 둘째 달 스무날에 구름이 증거의 성막에서 떠오르매”(민 10:11)
이제 전체 일정이 정리되셨나요? 출애굽기 40장 17절에 1월 1일, 그 다음에 민수기 9장 1절로 5절에서 1월 14일 민수기 1장부터 그 다음에 2월 1일, 그다음에 민수기 9장 6절부터 2월 14일 민수기 10절 11절에서 2월 2일에 출발.
그러면 도대체 민수기 9장 1절 4절은 왜 여기 와 있느냐 하는 거죠.
왜 여기 와 있는가 하면 왜 둘째 유월절을 지키게 되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첫 번째 유월절에 있었던 일을 둘째 유월절 앞에다가 갖다가 기록해 놓은 거죠.
이해되셨죠?
날짜 순서대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유월절을 두 번째 지키게 하셨다는 사연을 설명하려면 첫 번째 유월절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붙여서 설명해 줘야 되니까 이렇게 정리 기록해 주고 있는 것을 알게 했죠.
다시 말해 하나님은 민수기 9장에서 말 그대로 유월절을 두 번째 기록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이런 하나님이세요. 여기서 유월절에 모두 주제대로 지키는 것은 본질입니다.
그런데 날짜를 다른 날로 지킬수 있게 해둔 것은
다시 지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잠 24:16)
여러분 회개가 뭡니까? 요나의 경우를 보면 내가 다시 여호와의 성전을 바라보리라.
아마 요나서 2장인 것 같습니다. 요한계시록 10장에 보면
“[10]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두루마리를 갖다 먹어 버리니 내 입에는 꿀 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11] 그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더라”(계 10:10-11)
뭔가 실망했다가 다시 일어서게 되는 경우죠. 그다음에 그 유명한 요한복음 14장 1절 3절에 재림의 약속은 뭡니까?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3)
모든 복음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again “다시”에요.
인간이 범죄 했는데 하나님께서 회복시켜주겠다는 건 “다시”에요.
그래서 언젠가 사슴의 동산에서 야영해 인도하면서 “again theology”“다시 신학”이라는 주제로 일주일 말씀을 준비한 적도 있습니다.
이게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여러 사정 때문에 유월절의 기쁨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에게 그 기회를 주시는 이런 하나님의 모습을 우리가 좀 잘 이해할 필요가 있죠.
고린도전서 9장 19절로 23절 유명한 말씀이죠.
“[19]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20]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21]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22]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23]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고전 9:19-23)
우리는 이게 뭔지 바울이 이렇게 했던 이게 뭔지 주님이 유월절에 세컨 찬스를 주신 것이 어디까지인지, 이런 걸 우리 복음의 현장에서 참 좀 더 깊이 생각해 보고 이걸 논쟁하지 말고 따뜻하게 적용하도록 함께 생각해 봐야 하죠.
이런 논쟁을 지난주에 마무리하면서 무슨 논쟁이라 그랬죠 아디아포라 논쟁이라 그랬죠.
이게 소위 루터의 사후에 루터의 후계자들 사이에서 어디까지 용납하는 게 옳으냐 비본질적인 교회의 비본질적인 문제를 가지고 논쟁했던 루터의 동역자인 멜란히톤과 그의 동료들 사이에서 있었던 논쟁에서 비롯된 아디아포라 논쟁이라고 합니다.
이게 유명한 신학적 문제입니다. 교회가 늘 본질적인 것이 아니고 비본질적인 것 때문에 갈등이 생긴다는 거죠.
한 예를 들어드렸었잖아요. 뭡니까?
이 피아노를 어느 쪽에 놓느냐를 놓고 멀쩡하던 교회가 혼란이 생기고 신발을 신고 들어가야 되느냐 벗어야 되느냐 , 기도할 때 무릎을 꿇느냐 엉덩이를 붙이냐 이런 거 가지고 논쟁해요.
우리 어떤 분들 중에는 이런 거 어기면 난리 나는 줄 압니다.
저도 가끔씩 집에 갔다가 말씀 잘 전하고 점심 먹으려고 앉았는데 벌써 얼굴 심각한 표정으로 제 앞에 딱 앉으면서 목사님 이거 어떻게 생각합니까?
딱 이거 하고 들어오면 아이고 이렇게 밥이 체하기 시작합니다.
아비아포라 논쟁에 사로잡힌 사람들은요. 정말 대화하기 힘듭니다.
그런데 여기 아디아포라의 어떤 넘지 않아야 할 선을 하나 보여주는 게 13절에 있습니다.
13절 보십시오.
“그러나 사람이 정결하기도 하고 여행 중에도 있지 아니하면서 유월절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이런 사람은 그 정한 기일에 여호와께 헌물을 드리지 아니하였은즉 그의 죄를 담당할지며”(민 9:13)
13절은 세컨 찬스가 있더라도 또 첫 번째 유월절을 의도적으로 지키지 않은 사람에게 의도적인 것은 허용하지 않는다고 하는 사실에 원칙을 분명히 선을 긋고 있는 거죠.
그렇죠 우리가 13절에 이 말씀이 사정과 상황이 없는 나태와 의도는 의도적인 것은 불허한다고 하는 원칙을 선명하게 13절에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모두가 유월절을 지키는 것으로 나중에 우리가 이제 이 구약 성경을 계속 읽어보것입니다.
요시아의 종교 개혁 때도 그렇고 여호사밧왕 때도 그렇고요.
이게 뭔가 이스라엘 역사에서 거대한 종교개혁이 있을 때 늘 유월절을 지키는 것으로 시작이 됩니다.
왜 그럴까요?
어떤 의미에서 유월절은 이스라엘의 건국절이거든요.
어떤 의미에서 유월절은 이스라엘의 독립 기념이거든요.
애굽에서부터 나오는 순간이 유월절로 시작이 됐잖아요.
그날 첫 해로 새 역사가 시작이 되니까 그러니까 뭔가 그들의 정체성과 어떤 역할을 선명하게 해주는 거 그게 이들의 기쁨이 되는 것이죠.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가 다 모든 준비를 끝내고 모두를 정결하게 한 다음에 기쁘게 유월절을 참여하고 지키는 것으로 이제 출발 준비를 시작한 것이죠.
그렇게 하고 이제 15절부터 23절입니다.
“[15] 성막을 세운 날에 구름이 성막 곧 증거의 성막을 덮었고 저녁이 되면 성막 위에 불 모양 같은 것이 나타나서 아침까지 이르렀으되 [16] 항상 그러하여 낮에는 구름이 그것을 덮었고 밤이면 불 모양이 있었는데 [17] 구름이 성막에서 떠오르는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곧 행진하였고 구름이 머무는 곳에 이스라엘 자손이 진을 쳤으니 [18]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였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을 쳤으며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동안에는 그들이 진영에 머물렀고 [19]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날이 오랠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행진하지 아니하였으며 [20] 혹시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날이 적을 때에도 그들이 다만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영에 머물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였으며 [21] 혹시 구름이 저녁부터 아침까지 있다가 아침에 그 구름이 떠오를 때에는 그들이 행진하였고 구름이 밤낮 있다가 떠오르면 곧 행진하였으며 [22] 이틀이든지 한 달이든지 일 년이든지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물러 있을 동안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진영에 머물고 행진하지 아니하다가 떠오르면 행진하였으니 [23] 곧 그들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을 치며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고 또 모세를 통하여 이르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여호와의 직임을 지켰더라”(민 9:15-23)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서 여기에 이르기까지 그들을 인도했던 것도 구름 기둥 불기둥이었었죠.
그 하나님의 임재가 여기 15절에서 낮이 되면 구름이 덮이고 저녁이 되면 불 모양 같은 것이 나타나서 아침까지 일어났습니다.
이거 이렇게 낮에는 구름, 밤에는 불 이게 들을 수 있는 거예요 볼 수 있는 거예요? 네 볼 수 있는 거죠. 하나님께서 굉장히 시각적으로 내가 너희와 함께한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거죠.
다시 말해 하나님 임재의 시각적 증거, 낮에는 구름, 밤에는 불 너무 선명하잖아요.
그렇죠 그 구름과 불이 어디에 나타났다고 말하죠?
“[15] 성막을 세운 날에 구름이 성막 곧 증거의 성막을 덮었고
성막을 곧 뭐라고 설명해요?
증거의 장막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이게 아주 굉장히 독특한 표현이에요.
이런 히브리어 표현은 구약 전체에서 여기밖에 없어요.
왜 증거의 성막이라고 표현했을까요?
여러분 지성서에 있던 그 궤를 흔히 법궤라고 한다고 말씀드렸죠.
근데 성경에서 법궤라는 표현은 두 번밖에 안 나온다고 그랬죠.
근데 흔히 우리는 법궤라는 표현을 가장 많이 써요.
근데 오히려 법궤라는 표현은 성경에서 두 번밖에 안 나와요.
그 다음으로 많이 나오는 게, 증거궤, 그 다음 언약궤 다 똑같은 표현이에요.
법궤, 증거궤, 언약궤 이렇게 들어가죠. 여기 지금 증거궤 증거의 장막, 증거의 성막 뭘 나타내주는 거예요?
성소의 핵심은 “십계명을 담고 있는 증거궤”다 하는 사실을 다시 강조해 주는 거죠.
지성소 증거궤 속에 십계명의 그 증거 기능을 이렇게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네 다함께 우리 민수기 17장 미리 보겠습니다. 17장 7절 8절에 보시면요.
“[7] 모세가 그 지팡이들을 증거의 장막 안 여호와 앞에 두었더라 [8] 이튿날 모세가 증거의 장막에 들어가 본즉 레위 집을 위하여 낸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열렸더라”(민 17:7-8)
모세가 그 지팡이들을 “증거의 장막” 안 여호와 앞에 두었더라. 증거의 장막이라는 표현이 나왔죠.
그렇죠 그 다음에 8절을 보세요. [8] 이튿날 모세가 증거의 장막 이렇게 여기 증거의 장막 표현이 나왔습니다.
18장 2절에도 나옵니다. 보면 우리 증거의 장막 근데 그 증거라고 하는 말 위에 다 뭐라고 그랬습니까?
“너는 네 형제 레위 지파 곧 네 조상의 지파를 데려다가 너와 함께 있게 하여 너와 네 아들들이 증거의 장막 앞에 있을 때 그들이 너를 돕게 하라”(민 18:2)
“증거의 장막”앞에 번호가 있고, 난하주에 법궤라고 나옵니다.
그렇죠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기록되었다고 하는 언약궤 속에 보관된 두 돌비를 그대로 나타내 줍니다.
민수기 9장으로 돌아와서요.
17절입니다. 18절 항상 그러하여 낮에는 구름이 그것을 덮었고 밤이면 불 모양이 있었는데 여러분 그러면 낮과 밤이 교차하는 낮과 밤이 교차하는 새벽에는 무슨 기둥이 있었을까요?
“[17] 구름이 성막에서 떠오르는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곧 행진하였고 구름이 머무는 곳에 이스라엘 자손이 진을 쳤으니 [18]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였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을 쳤으며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동안에는 그들이 진영에 머물렀고”(민 9:17-18)
낮밤이 교차한 새벽에는 무슨 기둥이 있었을까요?
제가 출애굽기 할 때 한 번 찾아 읽어드렸는데 출애굽기 14장 14절을 보세요.
여기 14장 24절에 보면 재미있는 표현이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 14:14)
“새벽에 여호와께서 불과 구름 기둥 가운데서 애굽 군대를 보시고 애굽 군대를 어지럽게 하시며”(출 14:24)
그러니까 낮밤이 교차하는 그 시간대는 옛날 개혁 한글에 보면 이거를 ‘과’자를 쓰지 않고 아예 뭐라고 써놨는지 아세요?
“새벽에 여호와께서 불 구름기둥 가운데서 애굽 군대를 보시고 그 군대를 어지럽게 하시며”(출 14:24, 개역)
‘불 구름기둥’ 이렇게 해놨어요. 그 시간이 교차하는 새벽 시간은 불구름 기둥이 함께 오고 갔던 거죠.
구름 기둥과 불기둥의 실체가 뭐였어요?
우리는 맨날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기둥 구름 기둥으로 인도해서 이렇게만 말하는데, 성경에서 이 불기둥 구름 기둥의 실체가 뭐라고 설명합니까?
출애굽기 14장 19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진 앞에 가던 하나님의 사자가 그들의 뒤로 옮겨 가매 구름 기둥도 앞에서 그 뒤로 옮겨”(출 14:19)
14장 19절에 보면 이스라엘 진 앞에 가던 하나님의 사자가 그들의 뒤로 옮겨감에 구름 기둥도 앞에서 그 뒤로 옮겨 이렇게 했죠.
여러분 그러니까 구름 기둥 불기둥 할 때 이 구름 기둥의 실체는 구름이 손오공 타고 왔다 갔다 갔다 한 게 아니고 하나님의 천사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옹호하면서 그 천사들의 움직임에 따라 하나님의 임재에 시각적 효과로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구름 기둥이 나타났던 거죠.
제가 종종 성경 주해하면서 우리 학생들에게도 수업시간에 물어봐요.
구름 기둥이 뭐지? 그러면 “구름 기둥은 구름이지! 뭐 예요!” 이렇게 대답해요.
아니 성경에서 구름이 뭐냐고 그럼 내가 이 노래를 불러야 알겠습니까?
찬미가 513. 주 여호와의 천사들이
1. 주 여호와의 천사들이 나를 둘러 나를 둘러 나를 둘러 밤낮 지켜 주도다
[후렴] 구름기둥으로 불기둥으로 나를 인도하소서 구름기둥으로 불기둥으로 나를 인도하소서
... 우리가 이 찬송을 부르면서도 아무 생각하지 않고 그냥 부른 거예요.
주 여호와의 천사들이 나를 둘러 나를 둘러 노래 해놓고는 구름기둥 불기둥이 뭐냐고 물으면 몰라요.
아무 생각 없이 노래만 부르는 거예요. 그렇죠 그러니까 이 구름기둥 불기둥의 실체가 천사라고 하는 사실은 우리 우리 찬미가 가사 자체가 그걸 다 말해주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 그 실체가 여기서 나타났구나 하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죠.
예 그렇습니다. 그럼은 하나님의 인도와 임재의 상징적 표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가시적 표현이었습니다. 한 번 더 찾아보겠습니다.
출애굽기 13장 21절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출 13:21)
구름 기둥의 근본적 기능이 인도라고 하는 사실을 말해주죠.
불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22절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출 13:22)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손길 이것이 출애굽기에서부터 시작되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 광야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성소 위에 구름이 머물러 있었습니다.
근데 구름 기둥이 이제 움직여야 이스라엘 백성들이 떠나는 거잖아요.
떠나는 준비 이야기가 민수기 6장부터 지금 9장까지 다 반복되고 읽는 것이죠.
민수기 9장으로 돌아와서요.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였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을 쳤으며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동안에는 그들이 진영에 머물렀고”(민 9:18)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날이 오랠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행진하지 아니하였으며”(민 9:19)
“혹시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날이 적을 때에도 그들이 다만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영에 머물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였으며”(민 9:20)
“혹시 구름이 저녁부터 아침까지 있다가 아침에 그 구름이 떠오를 때에는 그들이 행진하였고 구름이 밤낮 있다가 떠오르면 곧 행진하였으며”(민 9:21)
“이틀이든지 한 달이든지 일 년이든지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물러 있을 동안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진영에 머물고 행진하지 아니하다가 떠오르면 행진하였으니”(민 9:22)
“곧 그들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을 치며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고 또 모세를 통하여 이르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여호와의 직임을 지켰더라”(민 9:23)
철저하게 하나님의 임재와 인도, 그러니까 광야 행진에서 구름 이야기 나오고 불 이야기 나오면 이 두 단어로 딱 요약하면 되죠. 임재와 인도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러니까 가야할 때 하고 서야할 때 설 것을! 너무 선명하게 알 수 있었죠.
여러분. 그런데 언제 구름이 떠오를지 모르잖아요.
맨날 고개 들고 구름이 언제 떠오르나 성소 쳐다보고 있으면 그 사람이 살 수 있습니까?
정신 차리고 평상시에 얼마나 힘들겠어요. 딱 떠오르면 언제 떠오르나 해야 되니까 그 일을 위해 언제 구름이 떠오르는지 모든 사람들이 그것만 쳐다보고 인정하며 살도록 하지 않기 위해 하나님께서 또 다른 조치를 마련하셨습니다.
그게 뭘까요? 그전에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살아갈 때 구름이 이렇게 인도하시고 머물면 서고 떠나면 가고 이렇게 했는데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들은 무엇이 인도를 받습니까?
오늘날 하늘의 백성들에게 그들을 인도하는 구름 같은 게 뭡니까?
제가 생각해 보니까 이제 뭐 성경은 저를 찾아서 이거다라고 말하는 게 아니고 제 삶의 이야기로 50년 전을 돌아보면 저는 17살에 구름을 만난 것 같습니다.
1974년 5월 11일입니다.
1974년 5월 11일 그날 일요일인데, 이렇게 세 가구가 모여서 사는 가난한 강릉시 남대천 옆에 전셋집에 어머니 교통사고 나셔서 앓으시다가 이제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지금 생각해 보면 40대 중반의 아버지가 삶의 의욕을 다 이루시고 5남매를 데리고 가난한 전세 집에 들어가셔서 마루에 걸터앉아 삶의 의욕을 다 잃어버려 이렇게 먹지도 못하고 배고팠 때가 참 많았습니다.
그날도 아침에 이렇게 밥을 먹지 못하고 마루에 걸터앉아 있는데 옆집에 세수던 한 살 위 형님이 빨랫비누로 세수하던 나를 이렇게 쳐다보면서 “상래야! 오늘 우리 교회 경포대 바닷가로 자전거 하이킹 가는데 같이 하신 갈래?
여러분 제가 아침도 못 먹고 배고파 앉아 있는데 무슨 하이킹을 갑니까?
이 형님이 딱 그렇게 했을 때 멍하니 쳐다보는데 저보고 ‘점심으로 김밥 준다.’ 이러는 거예요. 여러분 그 시절에 김밥에다가 사이다 병 하나면 뭐 더 이상 바랄게 없는 수준이지요. ‘점심으로 김밥 준다.’ ‘여학생들도 같이 간다.’ 그때는 이 갈래 머리 다 여학생들 1학년은 참새 머리 2학년 고2는 조금 길게 고3은 길게 이렇게 갈래머리 한 여학생들 지나가는 것만 봐도 가슴이 콩딱콩딱 뛰던 시절 아닙니까?
그래서 진짜 따라갔어요. 경포대 바닷가에 따라가 가지고 바닷가에서 학생들 한 15명이 앉아가지고 수건 돌리기 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수건 돌리기 그게 뭐가 재미있습니까?
그렇죠 재미 하나도 없는 놀이인데 그거 그때는 그렇게 재미없었어요.
누가 내 뒤에다가 수건 놓나 안놓나?
그게 제가 그날 그 바닷가에서 저보고 있는 여학생들하고 노는 모습이 나한테는 이게 뭐 천국같이 보였어요.
그리고 제 마음속에 강렬한 동기가 생겨났죠. 얘 네들하고 계속 같이 놀아야 되겠다.
얘네들하고 이제 같이 놀아야 되겠다. 제가 어디 가서 우리 신학생들에게 이 이야기를 많이 해더니 우리 제 수업을 들은 한 학생이 목회자가 되어 가지고 어디 가서 전도회를 하면서 제 이야기를 완전히 다른 버전으로 설명했어요.
여러분 여러분이 잘 아시는 김상래 교수님은 어떻게 교회 나왔는지 아십니까?
그분은 전적으로 먹는 것에 대한 관심과 이성에 대한 관심으로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표현하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돼요. 여러분 어떻게 이야기를 그렇게 전할 수가 있어요?
그 이야기를 그렇게 들은 분이 나한테도 전했어요.
이건 정말 잘 놀아야 돼요. 정말 김밥 주고 노는 그 모습이 너무 좋았어요.
제가 그날 무슨 요한복음을 들었어요.
무슨 다니엘을 배웠어요.
그냥 얘네들하고 계속 같이 오고 싶다 그러고 나갔더니 그때 그 학생들이 모여가지고 교회에서 성경을 너무너무 잘 아는데 저요 교회 나간 지 한 달도 채 안 돼가지고 성경에 완전히 빠졌어요.
밥 먹으면서도 성경 이죠. 근데 성경 공부하는 게 재밌더라고요.
고등학교 2학년 그때부터 성경이 이렇게 여기가 맞고 틀리고 맞고 틀리고 하는 것들이 그렇게 신기했어요.
그리고 교회 나와서 처음 배웠던 그 성경절 삼육중고등학교 성경 교과서를 구해가지고 그 교과서에 나와 있는 성경 절들 외웠는데 그때 외운 성경절들은 하나도 안 사라지고 다 남아 있어요.
이 나이 들어가지고 그때 그 성경책 교과서 교과서들 지금 봐도 정말 괜찮은 성경 교과서들이에요.
그때 외웠던 성경 구절 중에 하나 여러분들 다 아시는 성경 구절 시편 119편 105절 유명한 구절이죠.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
그 이후로 좀 성경 말씀이 제 인생을 비추는 구름기둥이 됐어요.
성경이 뭐 하고 살아야 되고 뭘 가치 있게 생각하고 살아야 되고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을 시편 119편 105절, 시편 119편 9절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17살 18살 그때 그 가난한 청소년의 마음속에 많은 생각들이 일어날 때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이런 말씀이 딱 새겨지니까 그게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정말 생명의 말씀이죠. 주의 말씀이잖아요.
그렇죠.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디로 가야 할지를 가르쳐주는 완전히 구름 기둥이잖아요.
오늘날 우리에게 구름 기둥은 기록된 말씀으로 선명하게 우리의 인생을 인도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임재하신다는 빛이 되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