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자기 사주팔자 조졌다는 말을 무당이나 돌팔이들한테 듣고 나한테 상담하러 오는 사람들이 있다.
망신살... 도화살... 충극... 형살... 천라지망... 군겁쟁재... 상관견관... 뭐 이런 것들.
이것들이 분명히 흉한 것일 수도 있다.
사주팔자에 인생의 흥망성쇠가 없다면 실제 우리네 인생이 이렇게까지 어렵고 힘들고 괴로울 리가 없다.
사주팔자는 인생을 표현한 것이므로 당연히 팔자에도 길흉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보통 명리학에서 흉하다고 하는 저런 것들은 대부분 흉한 값을 하는 것도 맞다. 억지로 미화시키지는 않겠다.
그래서 뭐 어쩌라는 것인가?
너 사주팔자 조졌으니 그냥 욕심 버리고 기도나 하면서 대가리 팍 숙이고 살라는 것인가?
몸이 아파 의사를 찾아갔더니 너 건강 다 망쳤으니까 죽을 날까지 손놓고 기다리라는 말과 무엇이 다른가...
흉한 것은 흉한 것인데 그래서 뭐 어쩌라는 것인지?
왜 흉한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가르쳐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대부분 무당이나 역학자들은 악담이나 퍼붓고 부적이나 하라고 한다.
이러니 대한민국 역술계가 돌팔이 사기꾼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이다.
명리학적으로 흉하다고 풀이되는 것들은 다 이유가 있다.
여기서 그것들을 일일이 나열하면서 왜 흉한지 설명하지는 않겠다. 그러면 말이 너무 길어진다.
(군겁쟁재, 상관견관은 이 카페에 따로 게시판까지 만들어 자세히 다루고 있으니 참고 부탁드린다.)
그런데 대부분 명리학적으로 흉하다고 풀어되는 것들은 수기유통이 좋지 않은 것이며
이렇듯 수기유통이 좋지 않은 사주를 보통 활인업 하는 사주라고 한다.
활인업이 무엇인가? 남을 돕고 살라는 명을 타고난 것 아닌가?
특히 재관과 무정하거나 비겁이 많거나 진술축미 화개살이 많거나 형충이 아주 안좋게 있거나 음양의 균형을 잃어버린 사주를 활인업 해야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활인업을 하라고 하는 것인가?
그냥 듣기 좋으라고 표현하면 당신은 하늘로부터 선택을 받았으니 하늘의 뜻을 당신의 손으로 펼쳐야 하기에 이 땅에서 남을 돕고 사는 운명을 타고났다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설명은 명리학에서 지향하는 바가 아니다. 기독교에서나 좋아할 설명이다.
명리학에서는 반드시 음양론에서 출발해야 한다.
수기유통은 음양에 뿌리를 두는 것이고 수기유통이 좋다 함은 음양의 배치가 좋고 따라서 오행의 흐름 까지도 아름답게 이루어져 인생이 잘 풀리는 것을 말한다. 이것을 현실로 끄집어내 풀이하면 나만의 경쟁력과 사회적으로 비교우위를 갖추고 있어서 인간 사회에서 희소한 가치인 돈, 명예, 지위, 사랑, 인기 따위를 얻기 유리한 상태를 말한다.
수기유통이 안좋다 함은 그 반대일 테다.
그러므로 수기유통이 안 좋은 사주는 비유를 하자면 그물에 걸린 새와 같은 것이다.
나는 어릴 때 새총을 가지고 방앗간 주변을 서성이면서 참새를 잡으려고 하던 때가 있었다. 참새를 잡아서 무엇에 쓰려고 그랬던 것은 아니다. 단지 재미였다. 그런데 어설픈 사냥꾼인 내 손에 잡혀주는 참새는 단 한마리도 없었다. 포기하고 집에 가려던 때 이삿짐 그물에 걸려 있는 비둘기 한 마리를 보았다.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 운명이다. 새총으로 새를 잡으러 여기까지 왔던 내가 오히려 그물에 걸린 새를 살려주려고 집에까지 뛰어가 커터칼을 갖고 와서 그물을 잘라내고 있었으니 말이다. 비둘기는 그물에서 풀려나서 잠깐 어리둥절해 있더니 날개를 펼치고 하늘을 향해 날아갔다.
나는 명리학에서 말하는 흉한 상황에 빠진 것을 이와 같다고 본다.
현실이 답답하고... 뭘 해도 안 되고... 미래가 암울한...
운명이 나를 배신하게 되면 그야말로 그물에 걸린 새의 신세가 되는 것이다. 비둘기는 내 도움으로 그물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으나 우리에게는 그러한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 상태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다른 새의 몸에 걸린 그물을 벗겨주는 것 뿐이다.
그게 활인업하는 사주란 소리다.
나의 상황도 좋지 않고 너의 상황도 좋지 않으니 내가 너를 도와줌으로서 오히려 나를 구제하는 것이 활인업하는 사주란 소리다.
이것은 음양론의 가르침과도 일치한다.
음양론이 가르치는 바는 동전의 앞뒤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니 타인을 도와주는 것은 곧 나를 도와주는 일임을 깨우치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안 좋은 팔자"는 곧 "남을 도와줄 운명을 가진 숭고한 팔자"이며 이 운명을 갖고서 사회에서 타인을 짓밟고 깎아내리고 나만 잘 먹고 잘 살겠다고 욕심을 부리면 흉화를 면하지 못할 사주인 것이다.
왜 역술인들은 이러한 모든 이야기를 안 해주고 위기에 빠진 사람들에게 그냥 악담만 해대는 것인가?
이야기를 해 봤자 내담자들이 들어먹지를 않아서? 참...그것도 맞는 말이다.
10명 중에 이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일 사람은 1명 뿐이다.
나머지 9명은 끝끝내 욕심을 놓지를 못한다.
끝끝내 "성공, 부자"에만 집착을 한다.
그것이 인간이다...
첫댓글 그물에 걸린.........
고마운...공감되는 글입니다..
도움되셨으면 저는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