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한국신학대학과 기독교장로교단은 군사독재정부에 맞선 민주화운동에서 화살촉처럼 앞서 나가는 존재였다. 그리고 한신민주화운동 동지들은 한신과 기장의 정수(精髓)이며 정예(精銳)였다. 1974년 봄에 박정희 군사정권이 긴급조치 1~4호를 내리고 계엄령을 선포하며 민청학련 중심인물들에게 사형을 언도하였을 때 한국사회는 꽁꽁 얼어붙었다. 언론, 종교, 지식인 학자들과 청년 학생들마저 절망과 죽음의 침묵 속에 있었다. 1974년 가을에 이 절망과 죽음의 침묵을 깨고 자유와 민주를 외치며 지성과 양심과 신앙의 소리를 낸 것은 한신민주동지들이었다. 그 해 9월 새 학기가 시작되자 한신학생들은 독재정권에 항의하는 신앙고백 선언문을 낭독하고 시위를 벌이고 단식농성을 하였다. 2024년 10월 29일 70년대 한신민주화운동 50주년 기념행사에서 김명수 박사는 당시 한신민주화 운동을 자세히 밝혔다.
“1974년 10월 29일, 50년 전, 바로 오늘입니다. 새벽 야음을 틈타, 기숙사생 우리는 서너 명씩 짝을 지어 기숙사 건물 지하 후문을 통해, 몰래 학교를 빠져나갔습니다. 학교 정문 앞에는 기관원들이 상주하면서 학생들의 동태를 감시하고 있었지요. 오전 9시 정각 광화문 동아일보사 주변에 삼삼오오로 모여 있던 우리는 ‘유신철폐, 민주회복, 언론 자유’가 적힌 시국선언문을 시민들에게 배포하며 가두시위를 벌였습니다. 광화문 우체국 앞까지 나아갔을 때 급거 출동한 기동경찰대는 곤봉을 휘두르며 우리를 무자비하게 구타하고 연행해갔습니다.
동 시간대에 수유리 캠퍼스에 등교하던 신학생 우리는 아침 채플을 마친 후 ‘자유, 민주, 예수’라고 쓰인 머리띠를 동여매고 교문 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 기숙사 침대보를 찢어 만든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 치리라!“(누가복음 19장 40절)는 성경말씀이 쓰인 현수막을 앞세우고 통나무로 만든 십자가를 어깨에 메고 가두시위를 벌였습니다. 당시 전체 학생 수는 200여명 정도, 그중 81명이 연행되어, 종로, 동대문, 북부경찰서에 분산 수용되었습니다. 우리 대학의 동시다발적인 유신철폐 가두 시위에 당황한 유신정권은 청와대 특별보좌관을 파견하여 학생들과 대화의 시간을 갖는 등 유화정책을 폈습니다.”
이로써 한국민주화운동의 물꼬는 다시 터지기 시작하였다.
그 후 한신민주화운동 동지들은 감옥을 두려워하지 않고 가난한 노동자, 농민들과 함께 민중교회, 민중선교운동을 통해 한신과 기장의 정신을 지키며 민주화운동을 이어갔다. 동지들이 가난과 박해와 외로움 속에서 지성과 양심과 신앙을 끝까지 지켜간 것은 한민족과 한국기독교의 생명과 영혼의 등불을 지켜간 것이다. 어쩌면 한신민주화운동 동지들은 자신들의 삶의 가치와 의미를 충분히 모를 수도 있다. 한번 한민족과 한국교회를 위해 한신민주동지들의 삶과 행동이 어떤 의미와 가치를 지녔는지 생각해 보자.
수 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인류가 세계로 퍼져나갈 때 해 뜨는 동쪽을 향해 유라시아 대륙 끝까지 나아온 사람들이 해 뜨는 동쪽 아침의 나라 한반도와 민주에서 한민족과 한국어를 형성하였다. 주어진 땅을 밟아버리고 하늘을 우러르며 아름답고 풍성한 삶을 찾아서 해 뜨는 동쪽 아침의 나라로 오는 동안 이들은 하늘의 높은 뜻을 체화하고 강인한 생명력과 깊은 생명사랑을 체득하였다. 하늘의 높은 이념과 깊은 생명사랑을 가진 민족이지만, 깊은 신앙과 철학을 갖지 못한 한민족은 5천 년 국가문명의 역사 속에서 사나운 국가주의세력들에 부대끼는 동안 두 가지 고질병을 갖게 되었다. 하나는 정신문화적 사대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인류의 유아기적 종교형태인 샤머니즘, 무당종교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한신대학은 처음부터 높은 신학적 지성과 자유를 앞세우며 설립되었다. 그 이름 한국신학대학교(조선신학교)에서 보듯이 정신문화적 사대주의를 극복하고 정신문화적 주체성을 확립하자는 것이 한신정신에 깊이 박혀 있다. 또한 높은 신학적 지성과 학문적 자유를 앞세운 한신정신은 유치한 샤머니즘, 무당종교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다. 한신과 한신정신으로 설립된 기장은 한민족의 이런 고질적 질병을 고치는 치유자였다. 한신정신을 알뜰하고 충실하게 지키며 살았던 한신민주동지들은 한민족의 이런 질병들을 고치고 한민족의 삶과 정신이 올바르고 건전하도록 이끈 주역들이다. 아직도 한민족이 이런 질병들을 온전하게 치유하고 극복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만일 한민족이 정신문화적 사대주의와 무당종교에 완전히 빠져서 살았다면 오늘의 민주화와 산업화는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세계 인류를 감동시키는 노래와 춤, 드라마와 영화, 문학은 낳지 못했을 것이다.
한신정신과 기장정신에 사무쳐 살았던 민주동지들의 삶과 실천은 생명의 알곡과 정신의 금쪽으로서 참으로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이었지만 이 땅에서 제대로 평가되지 못하고 보답받지 못하였다. 그러나 인생과 역사를 불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한신민주동지들의 삶과 정신, 말과 행동을 생명의 알곡과 정신의 금쪽으로서 하늘나라의 생명 창고에 길이 보존하실 것이다. 또 하나님이 낡은 정치와 사회, 종교와 문화를 청산하고 새 문명과 새 나라, 새 종교와 새 문화를 지으실 때 민주동지들의 삶과 일, 정신과 생각을 귀한 건축재료로 쓰실 것이다. 한신민주화운동 50주년을 기념하는 책의 출간과 행사를 축하하며 한신민주동지들께 경의를 표한다.
한신대 동문이며 기장 총무를 지냈고 한국교회와 한국민주화운동의 원로인 김상근 목사는 한신민주화운동 50주년 기념행사에서 이렇게 축사하였다.
늙으막에 이르면 옛날에 묻혀 살게 되기 마련이더라고요. “나 위대하게 살았노라” 자랑하고 싶어지더라고요. 우리, 과거에 묻히지 맙시다. 오늘 내가,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것, 수행해야 합니다. 저도 무진 애쓰고 있습니다. 오늘 책임 있게 살면서 동시에 여러분의 그 믿음, 그 혼, 이어주는 길을 찾읍시다. 10년은 젊어질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고린도 교회에 준 교훈을 읽고 축사를 마감하겠습니다. “참으로 인정받을 사람은 스스로 자기를 내세우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께서 내세워 주시는 바로 그 사람입니다.”(고후10:18) 고맙습니다.
나의 찬사는 김 목사의 축사로 이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