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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본고는 조선 중·후기 폭발적으로 유행하였던 불교가사 작품들을 대상으로 사설 구성 방식을 유형화하고,
불교가사 연행 방식에 따른 사설의 구현 양상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러한 연구를 통하여 지금까지
문학적으로 크게 주목하지 못하였던 불교가사를 문학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향유 측면과 밀접하게 관련지어
살펴봄으로써 불교가사가 가지는 문학사적 의의를 조명하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고려 말에서 조선시대 전반에 걸쳐 불교는 지배계층으로부터의 억제 속에서도 다양한 문화 활동을 펼쳐왔다.
불교가사의 창작과 연행 역시 이러한 문화 활동의 일환으로 ‘下化衆生’에 입각한 것이다. 또한 조선조 사찰은
사찰계와 더불어 모연, 불사를 통한 시납, 걸립패 운영 등을 중요한 경제활동으로 삼았다. 이와 같은 경제 활동은
법당 건립, 탱화 제작 등 여러 불사를 시행하기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활동이었으며, 이러한 활동 가운데 불교가사는
중요한 포교 방편 중 하나였다.
이러한 불교가사는 많은 연구자들에 의해 주목을 받아왔지만, 다양한 측면에서 논의가 이루어지지는 못하였다. 불교가사에 대한 논의는 1970년 이상보에 의해 이루어진 이후 상당한 내용이 축적되었으나, 주로 불교사상의 반영적 측면을 주목한 경우가 많았으며, 불교가사의 연행과 관련된 문학적 특징, 나아가 문화적 특징에 대해서는 크게 주목받지 못하였다. 최근 불교가사의 유통,
연행에 대해 점차 논의가 전개되고 있으나, 이러한 논의가 문학적 측면의 논의와 결합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본 논의는 조선시대 주로 향유되었던 불교가사를 대상으로 하여 문학적인 측면에서 그 사설 구성 방식을 검토하고,
이를 토대로 연행 방식과 연관지어 살펴보고자 한다. 불교가사 작품은 계열별로 정리하더라도 100여 편이 넘는 방대한 양이
남아 전한다. 이를 본고에서는 사설의 ‘단락’과 ‘절’을 기본 단위로 하여 사설 구성 방식을 분석할 것이다.
이러한 사설 구성 방식은 此第說法, 輪廻轉生, 十牛圖頌을 기반으로 하여 분석된 것이며,
이러한 각각의 사설 구성 방식이 불교의 의례 활동, 신행 활동, 기복 활동과 관련하여 다양하게 적용되었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점들을 집중적으로 다루어 불교가사를 본격적인 문학 연구의 대상으로 주목하고,
이 작품들이 가지는 문학사적, 문화사적 의미를 조명하고자 한다.
2. 조선 후기 사찰 경제와 불교가사의 연행
조선 후기 불교가사는 사찰의 포교의식과 더불어 경제력 확보와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다.
조선조로 접어들면서 국가의 공식적인 억압으로 말미암아 불교는 전대에 비해 위축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었다.
특히 조선이 건국된 이후 사찰의 토지, 노비 소유가 불가능해짐에 따라 사찰계, 모연을 통한 시납,
승려들의 생산 활동을 통한 재물 확보 등의 방법이 중요한 경제력 확보 방안으로 부각되었다.
현재 조선 후기 불교의 사찰계 자료는 200건이 넘는데
그만큼 사찰의 경제력 확보가 중요한 활동임을 확인할 수 있다.
모연 역시 다양하게 이루어지는 불사와 관련하여 재화나 인력을 충당하기 위해 이루어지는 것이며,
임진왜란 이후 무너진 사찰을 복원하고,
사찰 운영에 필요한 각종 기구, 불상 등을 제작, 안치하는 불사를 위해 실시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승려들의 생산 활동은 국가의 요구에 의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으나, 이를 통해 경제적 이익을 남기는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경제력 확보와 관련하여 불교는 다양한 문화 활동을 전개하였다. 사찰의 경제력을 보다 확대시키기 위해서는
사찰을 지원하는 신도의 규모가 큰 영향을 미친다. 그렇기 때문에 대중들의 관심을 끌고, 대중들이 불교에 귀의하게
만들기 위하여 이들을 감화시킬 만한 문화활동들이 다양하게 전개된 것이다. 물론 이러한 문화 활동은 조선시대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며, 노래의 향유를 통한 포교활동 역시 다양하게 이루어져왔다.
특히 고려시대 창작된 <普賢十願歌>는당시 대중들에게
불법을 전파하고자 한 불교의 포교의식을 잘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불교가사 역시 이러한 포교의식을 중심으로 창작, 향유되었으며, 사찰 공간, 일상 공간의 구분 없이
다양한 경로로 연행되었다. 사찰 공간에서의 불교가사 연행은 크게 두 가지 차원에서 이루어졌는데,
일상적인 수행의례 속에서 이루어지는 경우와 재의식의 진행 가운데 和請의 방식으로 연행되는 경우가 그것이다.
수행의례 가운데 불교가사가 연행되는 경우는 주로 염불의 형태였는데, 이는 불교의 기본적인 수행방법인
동시에 불전을 향유하는 기본적인 형태이다. 화청은 대중들의 기호를 불교가 받아들여 만들어진 일종의
포교가 연행이라고 할 수 있으며, 주로 齋가 끝나는 시점에 연행된다.
일상 공간에서의 불교가사 연행은 크게 募緣활동 가운데 이루어지는 경우와 단순 오락적 형태로 공연되는 경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모연은 주로 緣化라는 명칭으로도 불리며, 승려가 대중들에게 시주를 권유하여 재물을 거두는 것을
의미한다. 조선시대 모연 활동은 국가로부터 부정적으로 인식되었지만, 다양한 경로를 통하여 모연 활동이 이루어졌으며,
불교인들은 효과적인 모연의 방법을 꾸준히 추구하였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불교가사를 통한 모연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또한 불교가사는 기복신앙적 차원에서의 공연이나
오락 형태의 연행 역시 분명히 존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불교가사의 공연은
사당패,
굿중패, 절
걸립패 등에 의해
연행되는 경우가 많았으며,
무속과 결합하여 연행되는 경우도 많았다.
무가 중 <회심곡> 사설이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점을 통해 이러한 점을 확인할 수 있으며,
민요의 형태로 발전하게 된 경우도 있어 불교가사가 오락 형태의 연행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3. 불교가사의 사설 구성 방식
1) 불교가사의 사설 구성 기반
(1) 차제설법적 원리
차제설법이란 사다리나 계단을 오르듯이 점차적으로
수준을 높여 나가는 불교의 포교 방법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차제설법은 부처는 물론 불교 승려들의
가장 기본적인 말하기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법의 진리가 단계별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중생들의 근기에 따라 법을 전파가 각기 다른 형태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차제설법의 방식은 불교 경전에서 상당히 빈번하게
쓰일뿐더러 역대 조사들의 저작에서도 흔히 발견되는 방식이다.
특히 포교의 차원에서 불교는 대중들에게 불법을 전파하는
‘방법’에 상당한 관심을 기울였으며, 이러한 ‘방법’ 가운데
가장 기본이 되었던 것이 차제설법이라고 할 수 있다.
불교의 문학 창작과 향유 역시 경전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시가 갈래의 경우 경전 속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게송이 가장 기본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으며,
게송을 통한 말하기 역시 차제설법적 원리가 다양하게 활용되었다.
이러한 방식에 영향을 받아 조선조 승려의 불교시 역시 차제설법적 원리가
활용된 사례를 다양하게 발견할 수 있는데,
이를 통하여 차제설법적 원리가 불교 문학의 창작에도 영향을 미쳤음을 확인할 수 있다.
(2) 윤회전생적 원리
윤회전생은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불교의 논리로 사람이 현세의 삶을 마감한 후 각자의 업에 의해
다시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윤회전생의 논리는 현세를 살고 있는 인간의 삶을
넘어서 인간들이 살고 있는 세계가 운용되는 이치를 불교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윤회’ 개념은 고대 인도인들의 사유에서도 발견할 수 있으며, 이후 불교와 습합되는 과정에서
사상적인 충돌도 있었으나, 불교의 다른 사상들과 결합하여 중심 논리로 전승되었다.
이러한 윤회전생의 논리 역시 대중들에게 불법을 전달하기 위한 방편으로 조선시대 내내 다양하게 활용되었다.
문학의 창작 및 향유 측면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문학에서의 윤회전생적 원리를 ‘삶/죽음’과 관련된 주제의식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으며, 시간/공간적 차원을 모두 반영하고 있다.
실제 작품에서의 윤회전생적 원리는 ‘생-로-병-사’가 인과적으로 서술되다가 다시 작중의 화자가 머무는
현재의 생으로 돌아오는 순차성이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원리는 인간의 삶과 죽음을 설명하는
핵심 방식이라고 할 수 있으며, 대중 포교에 다양하게 활용되어 온 것이다.
(3) 십우도송적 원리
<십우도>가 한국 불교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점은 이미 여러 논의를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
<십우도>는 인간이 불교적 깨달음을 얻어나가는 과정을 그림과 시를 통하여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흔히 ‘십우도’로 불리는 문화는
보명의 <목우도>와
확암의 <십우도>가 대표적인 시화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들 두 도상이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두 도상이 가지는 결정적인 차이는 대승적 차원에서의
중생구제의 측면이 반영되어 있는가에 있다.
확암 <십우도>의 第十 立廛垂手는 깨달음을 얻은 화자가
다시금 일상 공간으로 돌아가 손을 드리우는 내용으로,
중생구제의 차원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불교문학에서의 십우도송적 원리는 공간적 측면에서의 회귀성과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다.
즉 자신의 본성을 찾아 현실적 공간에서 자연 공간으로 이동하여 깨달음을 얻은 후
다시 이를 중생들에게 전파하기 위하여 현실적 공간으로 돌아오는 회귀성은
확암의 <십우도>에서 확인할 수 있는 기본적 구조이며,
이를 통하여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진리를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회귀성에 기반을 둔 원리는
십우도에 영향을 받은 한시, 국문시가에 다양하게 적용되고 있다.
2) 불교가사의 사설 구성 방식
(1) 병렬적 사설 구성
불교가사의 사설 구성 방식 가운데 병렬적 구성은
주로 작가의 목적의식을 표출하고자 하는 의도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병렬적 구성은 부처의 설법에서도 자주 나타나는 의사 표출 방식이며,
이러한 방식이 가사의 시상 전개에도 적용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차제설법적 원리는 결국 근기에 상응하는 여러 가지 방편을
병렬적, 순차적으로 제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원리가 가사의 사설 구성에 적용되면,
병렬적 구성으로 나타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가사 <태평곡>에서는 절 단위, 단락 단위 모두의 경우에서 병렬적 사설 구성을 확인할 수 있다.
도반선붕 아니붓고 할안종사 참례야
법어육단 바히몰나 일개무자 둘혜내
용심줄 라쳐도 일졀아니 고지듯고
흑산하의 조오다가 귀굴리예 춤흘려
옫긷셔길 이로다
이윽고 면 음이 유탕야
산란의 붓들려 기허을 못내계워
도리곳갈 지버연고 깃업슨 누리입고
조랑망태 두러메고 괴톱낫 겻틔바가
조막도 릅쥐고 쟈 밤줏쟈
석이쟈 송이쟈 그러 머로래
다훌더 무더두고 죽반도올 이로다
우유일반 늘근거슨 삼십년 이십년을
산중의 드러이셔 활구참상 노라
두찬노장 의빙야 악지악각 잔갱수반
잡지견을 주어화 선문도 내알고
교문도 내아노라 무지 수좌려
매도록 샤와리되 칠식자리 이러고
팔식자리 져러다 선문의 활구을
다주해 노매라
위의 인용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태평곡>의 전반부는 법어를 전혀 모르는 대중의 모습,
법어를 전혀 공부할 생각이 없는 모습, 사찰에 들어와 음식만 축내는 모습 등을 병렬적으로 이어 사설을 구성하고 있다.
즉, 이러한 대중들의 잘못된 모습들을 비판적으로 나열하여 이에 대한 반성을 유도하고 있으며, 병렬적 구성을 통하여
사설을 구조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병렬적 사설 구성이 대부분의 사설에 영향을 미치며, 이러한 사설이 병렬적으로
연결된 후, 이에 대한 해결방식을 제시하는 형태로 작품이 마무리된다.
이러한 사설 구성은 지형의 <수선곡>과 같이 경전의 일부분을 차용하여 사설을 구성하는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되며,
이는 경전에서의 설법 방식이 가사의 사설 구성에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불교가사 가운데 18세기
창작된 <권선곡>과 같이 일종의 연작가사와 같은 형태로 사설이 구성되어 있는 작품들도 있는데,
이 역시 병렬적 사설 구성으로 이루어진 경우이다.
<권선곡>의 경우
‘선중권곡’,
‘명리권곡’,
‘재가권곡’,
‘반인권곡’과 같이 청자의 근기에 따라
그에 맞는 법을 설파하고 있는 형태이다.
이외에도 남호영기의 <광대모연가>,
용성의 <중생상속가> 등의 작품도 병렬적 구성에 따라 사설이 구조화되어 있다
. 특히 용성의 <중생상속가>는 개화가사의 구조와 같이 장이 구분되어 있는 것이 특징적이며,
이러한 각 장이 병렬적 사설 구성으로 구조화되어 있다.
이러한 병렬적 사설 구성은 경전에서의 부처의 설법 방식과 가장 직접적인 영향관계에 있는 것으로,
불교 설법에 드러난 표현 방식이 불교가사의 사설 구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2) 인과적 사설 구성
불교에서 시간과 관련된 의식은 대중들의 삶과 죽음의 문제를 설명하는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불교가사의 인과적 사설 구성은 윤회전생을 바탕으로 하고, 불교적 시간 개념과 관련한 인과적 순차성이 핵심이다.
대중들에게 생사의 문제는 본질적인 것이었으며, 이에 대한 불교적 해답은 시간적 개념을 전제로 할 수밖에 없다.
즉, 윤회전생적 원리에 따른 인과적 사설 구성은 순차적으로 시간이 흐르며 업에 따라 인과적으로 순환한다는 점을
중심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인과적 사설 구성은 주로 역사인식과 결합하거나 인간의 삶과 죽음에 관련된 사설의 전개에 주로 나타난다.
이러한 사설 구성 방식이 가장 전면적으로 나타나는 작품은 <회심곡> 계열의 작품들이다. <회심곡> 사설들은 대체로
개인의 일생을 다루고 이를 토대로 靈駕를 천도시키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는데,
개인의 일생을 두고 윤회를 설명하는 경우 생-로-병-사의 사설이 인과적으로 구성된다.
① 인간세상 무상하여 아침에 성하던 몸 저녁에 병을 얻게 됨
② 무슨 수를 써도 이를 고칠 수 없으며 인간세상을 하직함
③ 일직사자, 월직사자의 명으로 손발이 결박당하여 북망으로 감
④ 생전에서 재물, 가족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채로 끌려감
⑤ 시왕전에 들어가 재판을 받음
⑥ 생전에 선심을 닦은 사람은 극락왕생하여 복덕을 누림
⑦ 생전에 십악업을 지은 사람은 지옥에 떨어져 형벌을 받음
위는 <회심곡> 사설 단락을 단락별로 정리한 것으로 ‘생-로-병-사’와 함께
영가의 사후세계 체험까지 순차적으로 이루어지며, 이 가운데 인과 논리가 내재되어 있다.
또한 이러한 사설들이 순차적으로 이어진 이후 중생구제의 측면에서 생으로 다시 돌아오는
구조로 되어있다는 점 역시 <회심곡> 계열 사설이 가지는 뚜렷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화자의 시선이 현재로 돌아오는 이유는 인과에 의한 윤회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것이
바로 현세의 공덕이기 때문이다.
불교적 역사인식과 인과적 사설 구성이 결합되어 나타나는 경우는
<몽환가>, <몽환별곡> 계열의 사설이 대표적이다.
하우씨 세운거업 하걸이 망오니
그도역시 몽환이요 성탕의 어지무로
은주가 무도니 이도역시 몽환이요
이숙제 충절노도 수양산에 깁피들어
고사리만 야먹고 속절업시 죽어시니
이도 몽환이요
위의 사설과 같이 <몽환가>, <몽환별곡> 계열의 사설에는 중국의 역대 나라가 흥하거나 망하고,
여러 인물들이 가치가 있는 행위들을 한 것이 모두 몽환이라는 점을 반복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이러한 사설의 구성은 역사적 사실과 화자의 인식 간에 인과 관계게 뚜렷하게 드러난다는 점에서
인과적 사설 구성에 해당한다. 즉, 과거에서 현재까지 시간적 흐름 속에서 중요하게 인식되었던
일들이 모두 부질없는 것이며, 이러한 윤회의 고리 속에서 시간이 흘러 현재에 이르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외에도 사설 구성은 <회심곡> 계열 외에도 <무량가>, <저승가>, <환참곡>, <선심가> 등에서도 나타난다.
(3) 회귀적 사설 구성
소승불교와는 달리 대승불교의 핵심은 부처가 설법하여 중생을 제도하는 것처럼,
깨달음을 얻은 승려들이 일상공간으로 돌아와 대중들에게 설법하여 도를 깨닫게 하는 것이다
. <십우도>는 이러한 흐름 속에서 형성된 것으로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과정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십우도송적 원리에 영향을 받은 회귀적 사설 구성은 공간성의 측면이 기반이 되어, 일상 공간에서 산수 공간으로, 다시 일상 공간으로 돌아오는 방식의 구조이다. 물론 이러한 회귀가 단순히 원래로 돌아오는 것은 아니며, 한 차원 더 높아진 나선적 회귀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회귀적 사설 구성은 토굴가 계열의 작품이나 침굉의 작품에서 주로 나타난다. 침굉의 <귀산곡>은 크게 세 단락으로 나누어지는데 이러한 단락의 구성이 전형적인 회귀적 사설 구성의 형태로 되어 있다.
단락 1. 현실 공간 가운데 인생이 덧없음을 깨달음 | 단락 2. 자연 공간으로 들어가 깨달음을 얻음 | ||
단락 3. 세상 가운데 애착과 집착을 일삼음을 경계하여 자연 공간에서 살아갈 것을 다짐 | |||
토굴가 계열의 사설들은 단락의 구조화 측면에서 회귀적 사설 구성 방식이 복합적으로 적용되었다. 즉, 토굴가 계열의 작품들은 현실 공간에서 선적 경계로 나아가고, 선적 경계에서 다시 현실 공간으로 돌아오는 공간 이동이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중복적인 형태는 결국 돌아온 현실 공간이 곧 이상공간이라는 유심정토적 깨달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선각자에게 있어 현실 공간은 곧 이상 공간이고, 이러한 인식에 따라 가사의 사설 역시 이상 공간과 현실 공간이 넘나드는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회귀적 사설 구성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지만, 회귀성이 뚜렷하게 드러나지는 않는, 소위 변형적 사설 구성의 형태가 나타나기도 한다. 침굉의 <청학동가>나 작자미상의 <초암가> 등의 작품들이 이러한 경우에 해당한다.
지리산 청학동을 녜듯고 이제보니
최고운 종적이 처처의 완연다
향로봉 속용호매 기암은 경수고
괴석이 쟁영야 송백조쳐 창창
삼천척 옥류 구천의셔 듯듯
기하의 석지예 일광이 침파매
산영 겨든 백운 홍수지변의
일쌍 청학은 한왕한래 노매라
차중의 승사을 나혼자 아희시
혼자알고 낙담야 불각애 교수니
낙하 창망지외예 호상 고봉은
반유반무 노매라 완포대 취셔올라
불일암 주각은 백암반의 나타든
금신이 현완고 옥탑 최외
백납 한승은 선흥을 못내겨워
옥로애 향을곳고 일성 금경을
만학풍의 울니노매 아희야 요설을말고랴
탐승소인 알려다
위의 작품은 침굉의 <청학동가>로 사설의 단락을 나누어 설명할 만큼 장형인 것은 아니지만, 최고운의 자취를 찾아 이상 공간으로 찾아들어가는 전반부와 그 가운데 선적 흥취를 표출하는 후반부로 나눌 수 있다. 하지만 일반적인 회귀적 사설 구성과 같이 이상 공간에서 다시 현실 공간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이상공간에서 현실공간을 단절시키는 형태이다. <초암가> 역시 일상 공간으로 다시 돌아오는 ‘회귀성’이 드러나지 않지만, 공간성을 중심으로 시적 화자가 현실 공간에서 이상 공간으로 이동하는 형태로 사설이 구성된다는 점에서 회귀적 사설 구성의 형태라고 할 수 있다.
(4) 혼합적 사설 구성
위에서 살펴본 병렬적, 인과적, 회귀적 사설 구성 방식은 사실상 불교가사의 사설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방식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설 구성 방식들은 단독적으로 하나의 작품에 작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여러 방식들이 복합적인 축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19~20세기에 불교가사가 널리 향유되면서 이러한 혼합적 사설 구성이 더욱 유행하게 되었다. 앞서 분석한 작품들과는 다르게 두 가지 이상의 사설 구성 방식이 대등한 층위에서 결합된 경우를 혼합적 사설 구성이라고 한다.
혼합적 사설 구성이 많이 나타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불교가사의 사설이 작품마다 온전히 창작되는 것이 아니라 연행이나 향유의 과정 속에서 서로 혼합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현대의 불교가사 연행을 보더라도 이러한 점을 확인할 수 있는데, 재의식 가운데 불교가사 화청을 연행하게 되면, 보통 ��석문의범��에 수록된 가사 사설 가운데 괜찮은 사설을 엮어 부른다.
특히 19세기 필사본 작품들이 양산되면서 필사자 혹은 연행자의 주관이 가사의 사설에 상당히 개입되었으리라는 점은 쉽게 추측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여러 사설이 혼합되어 하나의 작품으로 기록되었으며, 사설 구성 방식 또한 혼합적으로 나타날 수 있었던 것이다.
현재 남아있는 불교가사 작품을 분석하여 보면, 대체로 병렬적 사설 구성과 인과적 사설 구성이 동시에 적용되거나 병렬적 사설 구성과 회귀적 사설 구성이 동시에 적용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병렬적 사설 구성 방식이 불교 말하기, 글쓰기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어떤 주제를 다루더라도 ‘포교’라는 목적의식이 내재되어 있는 이상 병렬적 사설 구성 방식이 가장 쉽게 활용될 수 있었으며, 이 가운데 다른 사설 구성 방식이 결합되는 형태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4. 연행 방식을 통해 본 사설의 구현 양상
1) 의례 활동에 따른 사설의 구현
사찰 공간 내에서 불교가사의 연행과 관련된 의례 활동은 크게 수행 의례와 천도 의례로 나누어볼 수 있다.
수행 의례는 예불, 법회, 강경, 공양 등 다양한 측면에서 특정 절차에 따라 이루어지는 활동들을 말하며,
종파에 따라서도 세부적인 차이가 난다. 이러한 사찰 공간의 수행 의례 가운데 불교가사는 의례 과정 가운데 편입되거나
수행의 과정 속에서 연행되기도 하였다. 현재까지도 의례활동 가운데 불교가사의 연행을 단편적으로 확인할 수 있으며,
사찰 공간 내에서의 승려들의 생활 가운데 다양하게 활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현대에까지 일상의례에 연행되고 있는
<경허당참선곡>,
<원효대사발심수행가>,
<보조국사계초심학인가> 등은 수행 의례에서 연행되는
불교가사의 대표적인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작품들은 주로 병렬적 사설 구성을 중심으로 하여 다른 사설 구성 방식들이 혼합되어 있는 형태이다.
또한 이 작품들의 주제의식과 관련하여 주목하여야 할 작품들은 근대전환기
학명, 한암, 만공, 용성 등의 작품으로,
특히 용성선사의 <왕생가>, <권세가>, <대각교가>, <세계기시가>, <중생기시가>,
<입산가> 등 역시 수행의례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토굴가 계열 작품들 역시 수행 의례와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는데, 이들 토굴가 계열은 회귀적 사설 구성을 중심으로 사설이 구조화되어 있다. 이는 불교 승려들의 선수행과 주제의식의 측면에서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토굴가류 작품들
역시 세부적인 사설 구성이 동일하지 않다. 즉, ‘수행’이라는 활동의 다양한 층위에 따라 사설 구성 방식들이 다양하게 결합하고, 이를 통해 복합적으로 사설이 구현되는 것이다.
천도 의례는 영가를 극락으로 인도하는 것을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활동이기 때문에 가장 대중적이며,
현재까지도 다양한 형태로 전승되고 있다. 조선후기 불교의 재의식은 대중들에게 널리 퍼지면서 무속 등과
습합된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불교가사 가운데 재의식에서 연행된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회심곡> 계열의 사설들이다.
이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사설은 <인과문>이 있으며,
<선심가>, <환참곡>, <무량가> 등 역시 재의식과 연관된 작품들이다.
불교가사에 나타나는 인과적 사설 구성은 재의식에서의 불교가사 연행과 더불어 크게 유행하였던 것으로 보이며,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면서 다른 가사 작품의 사설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2) 신행 활동에 따른 사설의 구현
신행 활동은 사찰 공간을 중심으로 이루어지지만, 사찰 공간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불교가사의 연행과 관련하여
가장 주목할 만한 신행 활동은 ‘모연’이다. 널리 인연을 모으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활동이지만, 사찰의 경제력 확보라는
목적 역시 중요하게 작용하였다. 조선시대 모연활동은 각종 모연문이나 記文 등을 통하여 더러 남아있지만,
이러한 활동에 불교가사가 활용된 것을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료는 많지 않다.
현전하는 불교가사 가운데 이러한 정황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은
남호영기의 <광대모연가>와 <장안걸식가>이다.
이들 두 작품은 19세기 봉은사의 판전 및 화엄경판 판각 불사 당시 모연활동에 활용되었으며,
병렬적 방식을 중심으로 사설이 구성되어 있다. 이들 두 작품과 더불어 주목할 만한 작품들은 지형의
<참선곡>,
<권선곡>,
<수선곡>,
<전설인과곡> 등의 작품이다.
이 작품들은 佛庵寺의 18세기 전적 발간 불사와 깊은 관련을 가진 작품들로,
당시 처음 불서가 간행되었던 1795년 창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들 역시 병렬적 사설 구성 방식을 중심으로 사설이 구성되어 있다. 이는 불교의 기본적인 설법 방식이 모연활동에 적용된 것으로, 복잡한 문학적 형상화에 중점을 둔 것이 아니라 그 의도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의식에 따른 것이다.
출판 활동 역시 불교의 교리를 대중들에게 전파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이고, 효과적인 신행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본 절에서 주목한 출판 활동은 근대 전환기 인쇄 방식의 근대화와 더불어 나타나게 된 근대적 기록물 발간과 관련된 것이다. 근대 전환기 인쇄 방식의 변화는 불교가사의 향유 범위의 변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30년대 안진호의 『석문의범』 간행은 이러한 출판 활동과 관련하여 큰 의미를 가진다. 안진호의 행적 가운데 주목할 만한 부분은 선진문물의 습득과 이에 따른 불교 대중화 노력이다.
이러한 부분들이 『석문의범』에 그대로 반영되었으며, 많은 불교가사가 수록되었다.
『석문의범』에는 <회심곡>, <별회심곡>, <참선곡> 등 이전 시기부터 향유되었던 가사 작품들도 다양하게 실렸지만,
<원적가>, <왕생가>, <신년가>, <오도가>, <월인찬불가> 등 당시 새로 창작된 작품들도 다수 실려 있다.
당시 작품들은 이미 근대 가사 창작 형태에 영향을 받아 형식적으로 변형된 경우가 많다. <신불가>의 경우처럼 후렴이 나타나기도 하고, <찬불가>와 같이 3음보가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작품들은 중심이 되는 사설 구성 방식을 확인할 수 없는 경우가 많으며, 여러 사설 구성 방식이 혼합된 형태가 가장 일반적이다. 근대 이후 불교가사가 복잡하게 향유되는 과정 속에서 다양한 사설
구성 방식이 하나의 작품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3) 기복 활동에 따른 사설의 구현
기복 활동은 불교의 사찰공간과 대비되는 차원인 일상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연행 행위를 지칭한다. 특히 이러한 기복 활동 가운데 불교가사의 연행은 승려 계층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당패, 절걸립패, 무당 등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는 불교가사가 사회적으로 크게 유행하여 사회적으로 다양한 계층들에 의해 불교가사가 향유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사례이다.
걸립 활동은 사당패, 절걸립패 등을 중심으로 불교가사의 연행이 이루어지는 경우를 말한다. 이러한 활동은 주로 사찰과의 결탁을 통한 해당 집단의 경제력 확보가 중심이 되었다. 이러한 연희패들의 활동은 구체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들이 전무한
실정이기 때문에 자세히 알기는 어렵지만, 불교가사의 연행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특히 불교가사 가운데 유행하였던
<회심곡> 계열의 사설은 불교가사 사설과는 또다른 차원으로 민간에서 전승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연행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연행 활동은 결국 민요 <회심곡>의 독자적인 발전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현재 <회심곡>은 경기소리 창자들이 부르는 민요 형태로 가장 널리 전승되고 있는데, 이러한 민요 <회심곡>은 민간 연행 현장에서 불리던 불교가사 <회심곡>이 독자적인 발전단계를 거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연행되고 있는 민요 <회심곡>은 불교가사 <회심곡>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다.
대중들에게 염불을 권유하고, 이를 통해 극락세계에 간다는 주제의식을 표출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내용의 구성은 오히려 병렬적 사설 구성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기도 하다.
한편, 무속 활동이 불교와 다양한 연관성 속에서 전개되어 왔다는 점은 지속적으로 논의된 부분이다. 이러한 무속 활동이 전개되는 과정에서도 불교가사의 연행이 이루어졌으며, 이역시 기복 활동 가운데 이루어진 불교가사 연행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무속 활동과의 관련성 속에서 가장 주목받아왔던 불교가사는 <회심곡>이다. 이는 무속 활동 역시 망자의 영혼을 천도하기 위한 차원에서 많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회심곡> 외에도 <서왕가>. <자책가>, <용선가> 등의 사설이 무속 활동 가운데 연행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들은 무속 활동에서 활용되었다고 하더라도 사설의 구성이 크게 변형된 것은 아니었다. 전체적인 작품의 틀은
승려들을 중심으로 연행되었던 사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연행의 과정 가운데 사설이 축소 혹은 확대되기도 하고,
다른 사설이 첨가되기도 하는 등 다른 연행 방식에 의해 연행되는 사설과는 구체적으로 차이가 난다고 할 수 있다.
4. 결론
이상을 통해 조선조에 주로 향유된 불교가사를 대상으로 그 사설 구성 방식과 연행 방식에 따른 구현 양상에 대해 살펴보았다.
결국 고려 말부터 근대전환기까지 지속적으로 창작, 향유되었던 불교가사는 불교의 문화적 기반에 따른 사설 구성 방식을 다양
하게 활용하여, 불법의 전파와 시대적 상황에 따른 작가의식을 효율적으로 표출하였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불교가사의문학적 성격에 대한 해명은 차후 종교가사들이 종래의 관점과는 다른 관점에서의 접근이 필요하며,
중요한 문학 연구의 대상으로 다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