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도에서 태어나 야밤에 생명을 걸고 38선을 넘어온 나는 스탈린과 김일성의 인민 살육에 관한 아버지의 생생한 목격담을 틈틈이 듣고 자랐다.
아버지는 13세에 부모의 病死로 고아가 되었으며 형제와 누이동생은 뿔뿔이 헤어지고 평생에 교육이라고는 국민학교 2학년 중퇴가 전부라고 하셨다.
부친은 일본 양복점주의 도제가 되어 고급 재단, 재봉사의 일을 배워 일본 패전으로 급히 환국한 점주의 양복가게를 물려받았으며 번쩍이는 적산가옥까지 구입하고 상당한 치재에도 성공하였음으로 누이동생이 주도하는 공산평등사회를 건설한다는 인민재판과 운동장 처단의 처참한 참살을 피하여 탈북을 결행하게 되었던 것이다.
로스케(소련군)의 북한 진주와 부녀자 겁탈, 귀중품 약탈과 그 자신들의 일상적 야만행위에 대하여도 구체적으로 생생히 말씀하시곤 하였는데, 로스케의 권세를 등에 업은 김일성은 공산평등을 실현한다는 구실로 훗날 캄보디아, 월남, 아프가니스탄등에서 자행된 <안경 쓴 자>와 <손에 못 박히지 않은 자>를 척살한 그 야만행위의 원조가 되었던 것이다.
로스케는 식량으로 들고 다니던 식빵 덩어리를 취침 때에는 베개로도 사용하고 약탈한 시계는 양쪽 팔에 줄줄이 차고 다녔다는 것이다.
야만과 잔혹의 모든 것을 동원한 인민 핍박과 동족상잔의 남침이라는 인류사 최악의 집단 범죄정권을 우리는 너무나도 생생히 겪어 보았으며 세계 자유진영의 고귀한 희생과 지원을 받아 지금과 같은 기적적 발전을 이루게도 된 것이다.
이런 야만적 주변 공산전체주의와 내통하고 굴종하는 주사파 무리들의 국가파괴행위는 자금 또다시 어떠한 위기로 우리를 몰고 가고 있는 것인가.
한국의 생존과 지속적 발전 또는 사망의 갈림길에서 우리 지식인들의 몸 사림이나 방관은
어떤 말로 정당화 될 수 있으며 우방의 지탄을 免할 수가 있을까.
동북아의 NATO로 불려지는 한국의 지식인들.
No Action Talk Only!.
부끄럽고 절망한다.
세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