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은 많은데 글로벌 케미컬 CDMO는 없다
케미컬 완제의약품을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이 많고, 어느 기업 못지 않게 높은 품질의 의약품을 생산할 수 있는 역량이 높다는 자화자찬이 쏟아지는데 정작 내세울만한 글로벌 CDMO 한곳이 없는 것은 아이러니다. 우리는 안되나, 못하나.
① 내수적 마인드, 생각도 안해 본 글로벌 CDMO
② 그들에게도 처음은 있었다-테바와 썬파마
③ 우리는 어떻게 글로벌 가격을 맞출 수 있나
④ 번외편, 대한민국 CDMO 현실
[끝까지HIT 7호] 살을 빼려면 운동을 해야 한다. 일찍 잠들고 싶다면 핸드폰을 덜 보면 된다. 성적을 올리고 싶으면 예습, 복습을 하면 된다. 당연하다 못해 지루하다. 하지만 그 당연함이 바로 왕도(王道)다.
모두가 왕도를 걸을 수는 없지만, 샛길을 걷다가도 이따금 왕도로 눈길을 돌릴 필요가 있다. 그 길이 모든 길의 기준이 되어 왔기에, 그리고 언젠가는 걷게 될지도 모르는 길이기에 그렇다. 그래서 이스라엘 '테바(Teva Pharmaceutical Industries)'와 인도 '썬파마(Sun Pharmaceutical Industries)'의 이야기를 다시금 읽어낼 필요가 있다.
테바와 썬파마는 세계 제네릭ㆍ합성의약품(케미컬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시장에서 단연 돋보이는 강자다. 파마슈티컬 익제큐티브(Pharmaceutical Executive)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2022년 기준 테바는 두말할 것 없는 세계 제네릭 시장 1위로, 2022년 195억달러(약 26조원)의 매출을 냈다. 제네릭 강국 인도에서 요지부동 1위인 썬파마는 51억달러(약 7조원)를 벌어들여 세계 제네릭 시장 4위를 차지했다.
두 거인이 지금의 위치에 이르기까지 걸어온 길은 놀라우리만치 비슷하다. 사업 초기에는 자국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국내 기업들을 인수했다. 그렇게 내수를 장악하고는 해외 매출을 일으켰고, 그 수익과 투자금을 합쳐 해외 기업들을 사들였다. 당연한 이야기, 사업 확장의 왕도다. 그 왕도를 수놓은 연석의 틈새 하나하나에 두 회사의 전략적인 행동이 깃들어 있었다.
1. 테바
33개국 이상에 53개 이상 제조시설 보유
테바 본사 전경 / 사진=테바 공식 소개영상 캡처
1980년대 이전, 테바는 아씨아(Assia)와 조리(Zori)에 의해 합병되면서 이미 본국인 이스라엘에서 덩치를 불린 상태였다. 다만 연간 매출은 1억달러(약 1300억원) 미만을 맴돌고 있었다. 내수 매출에서 한계를 느낀 테바의 경영진은 이내 해외 진출을 최우선 목표로 설정했다.
테바가 눈여겨보게 된 시장은 미국이었다. 1984년 미국에서 햇치-왁스먼법(Hatch-Waxman Act)이 통과됐기 때문이다. 해당 법은 제네릭 허가 절차를 간소화시키고, 퍼스트 제네릭(First generic)에 대해 일정 독점 기간을 주는 등 미국의 제네릭 시장의 저변을 넓혔다. 이에 테바는 매우 공격적인 전략을 펼치게 된다. 겨우 긁어모은 100만달러의 대출금을 들고 미국의 화학기업 '그레이스(W.R. Grace)'를 설득해 조인트벤처(JV)를 만든 것이다. 심지어 그 조인트벤처의 초창기 가치는 약 2300만달러로, 테바의 당시 기업가치였던 1800만달러보다 높았다.
테바 사업 개요 / 표=박성수 기자
2. 썬파마
란박시 인수, 5대 제네릭 제약회사의 모멘텀
썬파마 본사 전경 / 사진=BusinessToday 캡처
썬파마는 테바와는 사뭇 다른 환경에서 시작했다. 국가적으로 제네릭 산업을 대폭 지원하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 근간이 1970년의 인도 특허법(The Patent Act)이다. 해당 법에 따라 인도의 제약사들은 특허권자에게 로열티를 지불하지 않고도 제네릭을 생산할 수 있었다.
1982년 창업한 썬파마는 틈새시장이었던 정신질환 분야에서 제품을 판매하며 입지를 넓혔다. 이후 만성질환 분야로 사업을 넓히며 지속적인 현금흐름을 만들어내게 된다. 1989년에 이르러서는 인접 국가들로 수출을 시작했으나, 1991년 벌크(Bulk) 의약품의 가격 하락으로 위기를 맞이한다. 이에 적은 수의 제품 포트폴리오에 리스크가 있음을 깨달은 썬파마는 본격적으로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기 시작했다.
1997년 썬파마는 미국 디트로이트의 '카라코제약(Caraco Pharmaceutical)'을 인수하며 국외 M&A를 개시했다. 카라코제약 인수는 미국 일반의약품(OTC) 시장에 진입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썬파마는 1997년, 2002년, 2003년 및 2004년에 연속적으로 지분을 확대하면서 해당 전략을 마무리했다.
또 2004년에는 미국의 '우먼스 퍼스트 헬스케어(Women’s First Healthcare)'로부터 3개의 브랜드를 인수하며 현지 브랜드 일반의약품 시장에 첫발을 내딛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 다음 해인 2005년에는 미국 '에이블(Able Laboratories)' 인수가 이뤄졌다. 에이블이 마케팅하던 전체 제품 라인과 제조 시설을 확보하면서 썬파마의 미국 사업은 대폭 확대됐다. 같은 해에 헝가리 소재 '밸리언트(Valeant)'의 원료ㆍ제제 공장 인수도 이뤄졌는데, 이는 썬파마가 처음으로 확보한 유럽 생산기지였다.
결국 2000년대 동안 이뤄진 M&A 질주는 2007년 이스라엘 '타로제약(Taro Pharmaceutical Industries)' 지분 인수로 정점을 찍게 된다. 이 때를 기점으로 썬파마에는 강력한 피부과ㆍ심혈관ㆍ신경계ㆍ항염증 치료제 포트폴리오가 갖춰지게 됐다.
그리고 2014년 썬파마를 세계 5대 제네릭사의 위치로 올려놓은 딜이 이뤄졌다. 40억달러가 들어간 인도 '란박시(Ranbaxy)' 인수 건이다. 썬파마의 소개에 따라붙는 '100개국 40개 제조시설' 구축이 이 시기에 이뤄졌다. 이후 올해 추진한 인도 '비발디스(Vivaldies Animal Health and Foods)' 지분 인수까지 포함하면 여태 완료된 썬파마의 M&A는 총 23건에 달한다. 이에 힘입어 현재 썬파마는 매출의 72%가 미국을 포함한 44개 지역에서 발생하는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으로 자리잡았다.
결국 테바와 썬파마의 성장을 이끈 주요 전략은 시기적절하며 공격적인 M&A임을 알 수 있다. 두 회사는 내수에서 현금흐름을 확보해 초창기 M&A를 진행했고, 여기서 얻은 다양한 제품 포트폴리오로 수익성을 한층 더 강화했다. 또 글로벌 M&A와 파트너십에서 얻은 자체적인 유통망을 이용해 물류 비용을 절감시키며 제품 가격 경쟁력을 높였다. 이에 더해 M&A한 현지 기업에서 얻어낸 각국의 규제 업무(Regulatory AffairsㆍRA) 지식이 제품 출시를 앞당기면서 제네릭 성공의 주 요소인 신속한 시장 진입을 이뤄낼 수 있었다.
국내 제약바이오 업체 고위 관계자는 "사업 초창기에 테바는 이스라엘 인구가 적어서, 썬파마는 인도 내 가격 경쟁이 치열해서 내수로는 무언가 하기 힘들었을 것"이라며 "이에 두 곳은 초창기부터 시장을 해외로 잡는 전략에 집중함으로써 성공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출처 : 히트뉴스(http://www.hi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