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요리라고 하면 프랑스 요리, 중국 요리, 튀르키예 요리가 꼽힌다. 이들 세 나라는 다른 나라들 보다 우월한 지형 조건으로 양질의 자원을 얻게 되었고 그것은 자연스레 식문화의 발달로 연결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 프랑스 요리는 세계 3대 요리의 최고로 꼽힌다. 세계에서 제일 좋은 식당에 늘 프랜치 레스토랑이 이름을 올리는 것만 봐도 세상이 어떤 시각으로 프랑스 요리를 바라 보는지 알 수 있다.
중국은 오랜 세월 동안 넓은 영토에서 다양한 산물과 풍부한 해산물을 얻을 수 있었으며 이들 산해 진품을 이용한 요리는 불로장생을 목표로 하여 오랜 기간의 경험을 토대로 꾸준히 다듬고 연구, 개발되어 현재는 세계적인 요리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중국 음식문화의 전설로 가장 유명한 만한전석(滿漢全席)은 청나라 시대의 화려함과 호사스러움의 극치를 이룬다. 상어 지느러미, 곰 발바닥, 낙타, 원숭이 골 등 중국 각지에서 준비한 희귀한 재료들을 이용하여 100종 이상의 요리를 준비해서 이틀에 걸쳐 먹는 것으로서 이 요리를 완벽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 다고 한다.
그런데 요리가 발달한 국가는 최대 강국은 되지 못한 것 같다. 영국 요리나 미국 요리는 내세울 만한 것이 뚜렷하지 않다. 독일 요리도 특별한 것이 없다. 기껏해야 소세지와 맥주 정도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한 때 세계 최대 제국을 이루었고, 태양이 지지 않는 나라로 불렸던 영국은 특별히 거론할 만한 요리가 없다. 현재 세계 최대 강국인 미국도 마찬가지이다. 영국과 미국은 일을 하면서도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샌드위치나 햄버거가 있을 뿐 화려함하고는 거리가 멀다.
프랑스와 중국이 넓은 땅과 풍부한 자원을 가졌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많은 고난을 당한 것을 알 수 있다. 영국과 프랑스는 제국주의 시대 세계를 두고 자웅을 겨뤘던 사이이다. 그러나, 프랑스는 영국을 이긴 적이 거의 없다. 또한 1871년 독일 통일 이후 독일과도 자력으로 이긴 적이 없다.
유럽 제국주의는 1870년대부터 산업혁명이 만들어낸 새로운 산업에 공급될 원료에 대한 수요가 촉발되어 1880년부터 1914년 사이에 이러한 자원쟁탈전이 벌어진 결과, 유럽의 영토는 기존의 해외 식민지 외에 더 늘었는데, 프랑스와 영국이 그 선두를 달렸다. 1914년 당시 프랑스 제국의 규모는 1,040km2, 독일은 260만km2 였고, 영국은 2,380km2 로서 지구 표면적의 4분의 1, 지구 총인구의 4분의 1을 다스리는 최대 제국이 되었다.
북미 대륙을 놓고 보면, 미국과 캐나다를 두고도 영국과 프랑스는 서로 겨뤘는데, 프랑스는 캐나다에서는 퀘백주를 제외하고는 전 캐나다를 영국에 넘겨 주었고, 미국의 경우 미국 독립 이전엔 루지애나를 차지했으나 나폴레옹 때 짊어진 전쟁 빚으로 이를 미국에 팔아 넘겼다. 루지애나주는 270만km2로서 1803년에 미국에 팔 당시 미국 영토의 반 정도에 해당하는 거대한 땅이었다. 아프리카에서는 영국의 종단정책, 프랑스의 횡단정책으로 프랑스가 약간 유리했다. 아시아에서는 영국이 인도, 파키스탄, 미얀마, 말레이시아 등을, 대양주에서 호주와 뉴질랜드를 식민지로 차지했지만 프랑스는 인도차이나 정도에 그쳤다.
프랑스-프로이센 전쟁(1870-1871)이 프로이센의 승리로 끝난 후 독일제국이 출범했다. 독일제국과 그 후로도 제 1,2차 세계대전으로 프랑스는 독일로부터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했으나, 이를 자력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연합국의 도움으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
한편 중국은 어떠한가? 역사적으로 보면 소수 민족인 몽고족(원나라)과 만주족(청나라)에 한족이 주권을 상실했다. 중국은 15세기까지 세계 최강을 자랑했으나, 서양의 지리상의 발견 후 쇠락하기 시작했고 19세기에서 20세기 전반기에 걸쳐 서구열강과 일본에 의해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었는지 모른다.
1644년 만주족이 지배 세력인 한족인 명나라를 무너뜨리고 청나라를 세웠다. 그 때까지만 해도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넓고 인구가 많은 나라였지만 경제적 어려움과 무력한 관료제도 때문에 중국 시장 개방을 요구하는 서구 열강의 압력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었다.
아편전쟁(1838-1840)의 패배로 중국은 홍콩을 영국에 넘겨 주고 다섯 곳의 개항장을 개방해야 했다. 1911년이 되자 청 제국은 완전히 신뢰를 잃었고 군대의 반란으로 황제가 퇴위하게 되었다. 그러나 1912년 쑨원을 초대 대통령으로 하여 선포된 공화국은 과거로부터 물려 받은 문제들에서 헤어나지 못했고, 쑨원은 결국 구체제의 장군 위안스카이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했다. 중국국민당과 공산당 간의 긴 투쟁 끝에 1949년 중국인민공화국이 선포되었다. 1970년대말부터 개혁, 개방정책을 시행하였고, 2010년엔 드디어 중국이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등장했다.
위에서 역사적 관점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중국과 프랑스는 일등 요리로 유명하였지만, 일등 국가는 되지 못했다. 프랑스는 영국과의 경쟁에서 승리한 적이 거의 없었고, 독일과의 전쟁에서도 자력으로 승리를 하지 못했다. 독일과 프랑스를 자동차로 여행해 보면 프랑스는 절대로 독일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중국은 거대한 땅덩어리와 거대한 인구 대국이었지만 서구 열강과 일본으로부터 치욕을 당한 과거를 지니고 있다.
성경에 빵만으론 살 수 없다고 하였다. 사람이 살아 가는데 있어서 먹는 것이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발전을 향한 의지,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물질적 풍요와 편안함 속에서 일품요리는 탄생하였지만, 도전정신은 싹트지 않는다.
토인비가 말했듯이 역사는 도전과 응전에 있다고 했다. 먹는 것을 우선시하는 나라에서는 도전정신이 부족하여 강력한 국가를 이루는 데는 실패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2017.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