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실상(諸法實相), 즉 있는 그대로의 실상, 범소유상 개시허망의 도리를 넘어선 형상의 성품들이 이러하다(十如是). 모든 드러난 제법의 실상은 이러한 모든 형상을 갖추었으니 남자는 남자, 여자는 여자 만물은 있는 그대로의 형상과 본성을 갖추고 있다.
즉 우주 만물 하나하나는
외적 형상과
내면의 본성,
사물의 주체,
잠재된 힘과 작용,
구조,
직접적인 원인과 결과,
간접적 원인과 결과,
궁극의 경지를 한꺼번에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여시상(如是相)·여시성(如是性)·여시체(如是體)·여시력(如是力)·여시작(如是作)·여시인(如是因)·
여시연(如是緣)· 여시과(如是果)·여시보(如是報)·여시본말구경(如是本末究竟))
동식물은 물론 광물도 인지한다는 과학적 사례가 있다 한다. 사람 속에서는 선지식을 만나면 큰 인물이 나오게 된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이 성품은 불성이라는 이름으로 각자의 존엄성을 갖고 정해진 것이 아니라 대자유의 길로 갈 수 있다.
종교적으로 이 우주를 이야기 할 때,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힌두교의 영향), 인간, 천상,
위에 깨친 자 성문 아라한이 있고
그위에 연각 벽지불이 있고
연각위에 성불한 보살로 가는 길이 있고
마침내 부처를 이루는 10계로 되어 있다.
이들 각각세계는 다시 그안에 십계를 내포하고 있으므로(지옥 안에 다시 지옥부터 부처까지) 총 100계가 되고,
100계는 각각 십여시를 지니므로 세계는 총 1000계가 된다.
중생사는 중생사이에서 나라고 여기는 오음세간(五陰世間)·
전 우주를 대표하는 중생세간(衆生世間)·
국토세간(國土世間 :인간이 사는 환경)의 3세간에 걸쳐 있기 때문에 삼천세계라고 하고
존재의 세계에서 일어난 모든 것은 일념에, 전우주의 모습이 갖추어져 있다는 일념삼천 (一念三千)이란 말이 나온다.
부처님의 놀라운 위신력을 드러낸 자아득불래(自我得佛來 )의 해석에는
'나 여래는 부처를 얻어온 이래 무수한 과거 겁 전에 이미 구원이 되어있다'
<무죄론의 입장에서 이미 구원이 되어있다!>
<그대들은 이미 부처다- 구원실성?>
라는 놀라운 말로, 구원받아야된다는 타종교의 말은
이미 내가 규정지어져서 형성되어있음을 의미하여 불교와 그 차원이 다름을 드러낸다.
마음의 성품은 원래 물들 바가 없고 마음의 본자리에서 보면 이미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고
진리에 어두워 죄를 지은 어제의 나와 모든 것이 밝게 드러난
오늘의 나는 다른 사람이니 나라고 할 것이 원래 없는 것이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행위자)은 미워하지 말아야
법화경을 본 다음에는 금강경을 통하여 심법의 도리를 깨우쳐 갈 수 있다.
다겁생을 가도 못녹일 업을 불법을 만나 녹여 나가며
평생을 해도 신앙기도만 할 것을 천일기도를 통해 바꿔줄 수있다
사람에 따라 천일 할 것을 백일, 백일 할 것을 21일 21일 할 것을 선칠수행으로 녹여줄 수 있는 것이
선지식의 역할이다.
몰입은 삼매의 효과성을 나타내며 부처님의 해탈 성불수행인 안반선 호흡명상을 사마타로 들어가다가
선정을 얻고 선정 다음에 위빠사나를 아누빠사나로 간화선을 들듯이 점점 묻고 물어 들어간다.
선정을 얻은 자는
내가 없다는 제법무아,
오온, 무아를 보았기 때문에
거기서 영원한 것이 하나도 없는 무상반조가 일어났는가?
내가 얼마나 탐욕을 여의었는가?
더 나아가 탐진치를 얼마나 조복받았나(불환과)?
그리고 사리에 대한 반조,좋다싫다에 대해 얼마나 여의었나?에 대해 통찰이 일어난다.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시인 행사도 불능견여래)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금강경 사구게가
초기경전 상윳다니까야 박깔리의 경(Vakkali sutta)에 같은 표현이 그대로 나와 있다.
"박깔리여! 나를 보는 자는 법을 보고 법을 보는 자는 나를 본다."
네 느낌, 인식, 감정은 참으로 덧없지 않느냐
부처는 모든 아상이 내려진 자이고 응하는 바마다 의도 없는 마음(무심)을 내는 자이고
자기 방식의 잣대가 없는 자이다. 상대 업성은 절대 녹이지 못하고 내 업성도 녹이지 못하니
추구하는 바없이 내 할 바만 하면 된다.
"유화질직자 즉개견아신(柔和質直者 卽皆見我身)"
"유연하고 평화롭고 맑고 곧은 자는 즉시 부처님을 만날 수 있다.